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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서주의자의 책 - 책을 탐하는 한 교양인의 문.사.철 기록
표정훈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10월
평점 :
품절
기대를 너무 많이 했어서인가?
생각만큼 아주 재밌지는 않았다
지난 번에 읽은 같은 저자의 책, "책은 나름의 운명을 지닌다" 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내가 원하는 내용은 책의 역사 같은 객관적인 얘기 말고 저자 자신의 책에 대한 애정을 기대했는데 이 부분이 좀 적었다
개인적인 에세이라기 보다는 책 읽기에 대한 일반론이 많았다
그래도 가벼운 마음으로 훑어 보는 건 재밌는 책이다
미국의 어떤 정신분열자는 각 도시의 도서관에서 수십만 권의 책을 훔쳤다고 한다
심지어 그가 털지 않은 도서관은 별 볼 일 없는 도서관이라는 말까지 나돌 정도로 전국 각지의 도서관에서 절도 행위를 계속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잠도 안 자고 책만 읽고 살았는데 책에 대한 집착과 소유욕 때문에 급기야는 도서관에서 훔치는 수준에 이른 것이다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라는 말도 다 옛날 말일 정도로 요즘은 책 절도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한다
농촌에서 수박 서리 하면 도둑놈으로 몰리는 것처럼 말이다
요즘 책 값이 비싸긴 하지만 다른 재화에 비하면 아주 싼 편인데 왜 그는 책을 훔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을까?
희귀본을 갖고 싶어서?
사실 나는 책 자체에 대한 소유욕은 없는 편이다
책만 쌓아 놓고 읽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더구나 새로 나오는 책이 얼마나 많은데 같은 책을 보고 또 볼 시간적 여유도 없다
그래서 책을 훔쳐서까지 소유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아직은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도서관에 가면 절판본을 비롯 온갖 희귀한 서적들이 다 비치되어 있고 대여까지 해 주는데 헌책방을 전전하면서 수집에 열을 올리지도 않는다
그 점에서는 참 다행스럽다
나도 탐욕적일 만큼 책에 대한 집착이 강한 편인데 다행히 소유 대신 읽는 행위에 대해서만 몰두하는지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읽고 싶은 책을 다 가지려고 한다면 월급이 남아나질 않을 것이다
저자는 유명 인사를 인터뷰 하는 장면을 볼 때 마다 꼭 그 뒤의 서재에 무슨 책이 꽂혀 있는지 관심을 갖게 된다고 말한다
"전작주의자의 꿈" 을 쓴 조희봉 역시 같은 고백을 한다
나는 한 번도 다른 사람의 서재에 대해 구체적인 관심을 가진 적이 없는데 생각해 보니까 독서 성향을 알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읽는 책 목록만 봐도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어디에 관심이 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책을 읽고 쓴 감상문을 읽는다면 더더욱 내면의 세계를 짐작하기가 쉬워지지 않을까?
맞선을 보게 된다면 뻔한 질문 대신 어떤 책을 즐겨 읽느냐는 질문을 해 보고 싶다
탐서주의자란 책을 탐하는 사람을 일컫어 생긴 조어다
뭐든 욕심내거나 집착하는 건 좋지 않다고 하지만, 술이나 담배, 섹스 등에 집착하는 것 보다는 책에 집착하는 게 훨씬 바람직한 건 아닐까?
나는 지식을 얻기 위해 책을 읽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부차적인 이득이고 우리가 책을 읽는 진정한 이유는 재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독서는 취미가 아니라는 말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저자 역시 다만 읽으라고 충고한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냐는 질문에 미국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스티븐 킹은 일단 열심히 쓰라고 충고한다
저자 역시 독서의 방법론에 대해 열심히 읽으면 된다고 말한다
나는 이 말이야 말로 가장 올바른 독서법이라고 믿는다
자기 수준에 맞고 흥미가 생기는 가벼운 책부터 읽으면 된다
TV를 보거나 인터넷을 하듯 책을 펼치면 된다
좋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책을 일상에서 멀어지게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책을 가진 사람은 은행원인데 약 5만 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5만권이면 시골 도서관 보다 많은 장서수다
우리나라에 딱 한 종 뿐인 어떤 책은 집 한 채 값을 주고 샀으며 15억에 팔라는 일본 어느 기업의 제안도 거절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이 사람에게 책은 예술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출판업계에 관련된 사람도 아니면서 5만 권이나 되는 책을 개인이 모을 수 있다는 건 참으로 대단하다
다른 것도 아닌 책에 대한 열정이라 더욱 순수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 사람은 죽을 때 과연 이 책들을 어떻게 처분할까?
이 정도 장서 수준이면 도서관 등에 기증해도 길이길이 이름을 남길 수 있을 것 같다
자식들이 아버지의 열정을 이해한다면 유산으로 물려 줘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나는 가끔 아빠의 서재를 보면서 저 많은 책을 아빠 돌아가시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난감할 때가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나에게 물려 주면 될 것 같다
내가 읽어 치우면 되는 것이다
폴 오스터의 "달의 궁전" 을 보면 주인공 마르코에게 삼촌은 죽으면서 돈 대신 수 천 권의 책을 물려준다
마르코는 매일 책을 읽어 치우고 읽는 즉시 헌 책방에 팔아서 생계를 유지한다
나는 그거야 말로 책을 해치우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읽은 후 버리면 책의 임무를 다 수행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책읽기에 대한 가볍고 즐거운 에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