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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아이히만 ㅣ 한길그레이트북스 81
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 한길사 / 2006년 10월
평점 :
좋은 책을 만난다는 건 인생의 행운 같다
수많은 책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정말 괜찮은 책을 집었을 때의 흥분!!
한나 아렌트, 이름만 많이 들었지 실제로 책을 읽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저 유명한 여자구나, 이렇게만 생각했는데 책 읽으면서 홀딱 반해 버렸다
앞 장에 실린 사진도 흑백이라서 그런지 더욱 우아하고 지적으로 보인다
글솜씨는 또 얼마나 좋은지!!
도서관에서 신간 신청한 후 빌려 읽은 책이지만 이런 책은 집에 고이 모셔다 놓은 후 여러 번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악의 평범성...
언제나 그것이 의문이었다
민주 투사들을 고문하는 고문관들이 잠시 쉬면서 자식 걱정을 한다고 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말이다
방금 전까지 자신이 한 일은, 인간이라면 감히 하기 힘든, 그런 끔찍한 행위였는데도 정작 그 일에 대해서는 아무런 감정도 없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자식 걱정, 마누라 걱정을 한다고 한다
그 사람들도 인간일까?
그런데 한나 아렌트의 책을 읽으면서 그것이 바로 악의 평범성임을 깨달았다
아이히만 역시 마찬가지다
유대인 학살의 총책임자였는데도 악한 사람이긴 커녕, 매우 평범한 흔해 빠진 인물에 불과했다
우리가 상상하는 악마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얼마나 모순적인 상황인가!!
결국 아이히만의 죄는, 고금에 없는 악한이라서가 아니라 생각하지 못하는 것, 무사유야 말로 사형에 처해질 죄라고 아렌트는 역설한다
그는 인식의 힘이 없었다
유대인 학살이 왜 잘못인지, 끔찍한 범죄인지를 전혀 몰랐다
모르고 한 일이니까 용서가 되는가?
천만에!!
왜 범죄인지 모르는 것도, 사고의 능력이 부족한 것도 충분히 죄가 된다
그는 타인의 입장을 이해할 사유의 능력이 결여된 사람이었다
아렌트는 바로 그 이유로, 아이히만의 사형 판결이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돌이켜 보면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것들은 얼마나 많은가!!
온갖 부정부패와 비양심적인 행위들이 도처에서 일어나지만 그것을 지켜 보는 것은 물론, 직접 저지르는 사람들조차 왜 잘못인지 모르고 넘어간다
어쩌면 군부독재 시절 생업에만 열중했던 이들은 아이히만처럼 사고가 결여된 사람들이었는지도 모른다
아이히만처럼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하는 경고인지도 모른다
나는 사회 불평등과 불의에 대해 과연 얼마나 인식하고 사는가?
나치 치하의 관리들은 오히려 국가에 충성한다고 생각하고 자신들이 저지르는 행위에 대해 자부심을 가졌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지만, 사유가 결여된 이들에게는 그것이 충성이고 애국심이라고 여겨졋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몰랐다는 변명을 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 열심히 생각하고 무엇이 정의인지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행동하지 못한다면 적어도 선악을 구분할 줄은 알아야 하고 동참하지 않을 정도의 용기는 있어야 한다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을 세세히 분석한 글이라 다소 길고 지루한 면도 없지 않으나, 평범한 이들의 인식 결여가 얼마나 큰 결과를 가져오는지 신랄하게 파헤쳐진 글이기 때문에 반드시 읽어야 할, 중요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시대의 양심과 도덕성에 호소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