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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사람들 - 21세기 노예제, 그 현장을 가다
E. 벤저민 스키너 지음, 유강은 옮김 / 난장이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억압받고 착취받고 고통당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때로는 기아 선상에서 굶주리는 난민, 때로는 자기 키보다 더 큰 총을 들고 무차별적으로 다른 이들을 죽이는 소년 병사, 또 때로는 평생 자신은 한번도 가지고 놀지도 못하는 축구공을 꿰메는 어린 노동자, 달리트라고 불리는 인도의 불가촉 천민들, 멍든 몸으로 거리에서 몸을 파는 창녀, 선진국에서 학대당하는 아시아계 가정부 등등 다양한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다.
저자는 그런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을 한 단어로 규정한다. 바로 노예다!!
처음엔 현대 산업 자본주의 사회에 왠 노예??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물론 저임금으로 학대받고 착취당하는 많은 사람들이나 인신매매 당해서 불행의 늪에서 허우적 거리는 많은 사람들이 있겠지만, 21세기, 무엇보다개개인의 자유가 중시되는 시대에 현대에 만연한 노예제의 문제를 파헤치겠다니 무슨 얘기일까??
저자에 따르면 "노예는 사기나 폭력의 위협을 통해 생존을 넘어선 어떤 대가도 받지 않고 일하도록 강요 받은 인간"이다.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전 세계를 누비며, 저자 자신의 정의에 해당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그런 처지로 밀어넣은 사람들과 대담하게 접촉하면서 현대 노예제의 본질을 파고 든다.
저자에 따르면 세계 곳곳에는 수많은 형태의 노예가 존재한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인 아이티에는 더부살이라는 형태의 아동 노예 착취가 만연해 있다. 낙후된 시골의 부모들은 학교에 보내주겠다는 중개상의 말만 믿고 도시로 자신의 아이들을 보낸다. 그렇게 보내진 아이들은 대부분 도시 중하류층의 가정에서 온갖 노동을 강요당하고 성노리개가 되고 쓰레기처럼 버려진다.
아프리카의 수단은 인종과 종교와 석유 채굴권 등 때문에 여러 차례 내전을 겪었다. 좀더 발전된 수단 북부는 주로 아랍계, 즉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남부는 여러 부족들로 구성되어 있고,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과 다른 종교와 관습을 가진 남부 부족 자체의 멸절을 위해 북부 민병대는 끊임없이 남부의 마을들을 습격해서 다루기 껄끄러운 성인 남자는 죽이고 여자와 아이들을 자기 지역으로 끌고가 가재 노예로 만든다고 한다. 가재 노예란 말 그대로 주인집의 가축과 같은 재산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죽도록 일 시키고 채찍질하고 강간하고 쓸모없어지면 죽여버린다.
동유럽에는 인신매매가 만연해 있다. 루마니아나 몰도바의 여성들은 돈을 벌 수 있게 해주겠다는 말에 속아 서유럽이나 터키, 심지어 아시아쪽까지 팔린다. 이 세상에서 마약 다음으로 수익성이 높은 사업이 성매매업이란다. 하루에 수십명의 남자들에게 몸을 팔아도 빚은 계속 늘어만 가고, 포주는 계속 폭행과 협박을 일삼고 때로는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팔 다리를 자르거나 죽여버리기 까지 한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성매매를 하다 걸리면 상대 남성은 처벌받지 않고 성노예들만 처벌받는다.
또 저자가 만난 인도의 달리트들은 어떤가? 할아버지 혹은 아버지가 지주로부터 빌려쓴 몇 센트, 혹은 몇 달러가 2대, 혹은 3대를 평생토록 노예의 굴레로 살도록 해도 저항할 수 없다. 함부로 저항하다가는 살해당하게 되고, 힌두교의 가르침 속에서는 달리트를 죽이는 것은 브라만에게는 그다지 큰 죄가 아닌 듯 싶다. 어짜피 전생의 업보 때문에 이생에서 달리트로 태어난 것이니 그 속에서 분수에 맞게 살라는 게 힌두교의 가르침이니까.
책을 읽다보니, 가슴이 답답하다. 아마 직접 수년간 세계 곳곳을 누비며 이런 사람들을 직접 만나온 저자나 수십년간 이 사람들을 돕기 위해 외로운 싸움을 계속해온 사람들이 느꼈을 분노나 좌절감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도 같다.
폭력에 길들어져 노예로 살다보면, 대부분은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은 다 사라져버리고 노예로서의 굴종에 적응하게 된다. 비굴한 삶의 운명을 당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고 두려움에 떨며 주인에게 복종하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똑같이 이 세상에서 희망을 꿈꾸며 살 수 있는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예 취급을 받는 인간은 어느 사이엔가 스스로 노예가 되어버린다
우리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때린 놈은 발 뻗고 못 자고 맞은 놈은 다리 뻗고 잔다"고. 그런데 현대의 노예들에게는 이 속담은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노예로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사람들은 그게 더부살이건, 불가촉천민이건, 성매매여성이건, 가재노예건 간에 자기 스스로의 긍지나 자존감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늘 죄인처럼 움츠러들어 있건만, 그들을 착취하는 자들은 발 뻗고 호위호식하면서 잘 먹고 잘 산다.
이런 책을 읽다보면 "과연 인간의 본성은 원래 악한 걸까?"란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신의 작은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학대하고 착취하는 사람을 너무 쉽게 만나게 된다. 누구라도 저런 곳에서 태어났더라면, 저런 기회 밖에 주워지지 않았더라면 채찍 앞에서 굽실거리면서 주인 앞에 무릎꿇는 노예로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아니, 더 무서운 것은 노예의 노동의 댓가로 호위호식하면서 노예에게 채찍을 휘두르고 불쌍한 노예를 먹여살려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무자비한 노예주나 나 사이에 절대적인 차이는 없다는 점일 것이다.
자신의 취재원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사건에 개입하지 않으면서 세계 곳곳에 만연한 노예의 실태를 알려 보다 커다란 변화를 유도하고 싶다는 저자 스스로의 저널리스트로서의 각오는 종종 실제 비참한 상황에 놓인 노예들을 만나면서 당장 그 사람들이라도 돕고 싶다는 인간 본연의 동정심과 종종 충돌을 일으키는 듯 보인다. 하지만, 최대한 저자는 객관적으로 사실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한다.
물론, 안다고 해서 바로 문제가 극복되는 것은 아니지만, 무엇보다, 현재 전 세계의 빈곤 문제와 맛물려 움직이는 노예제의 실상을 제대로 인지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첫 출발점이라는 점에는 나도 동의한다.
그라민 은행의 성공사례처럼,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 때문에 희망을 포기하지 않도록 서로 로 연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할 듯 싶다. 내가 소중한 것처럼, 다른 사람 역시도 소중하다는 너무도 기본적인 사실을 항상 기억하는 것 역시도 중요할 것 같고, 커피의 불공정 무역 시정 사례처럼, 보다 현명한 소비자, 주권자가 되어서 조금이라도 나은 방향으로 사회를 개선시키는데 작은 힘이나마 보태는 것도 중요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음은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