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뇌의 원근법>을 리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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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의 원근법 - 서경식의 서양근대미술 기행
서경식 지음, 박소현 옮김 / 돌베개 / 2009년 5월
평점 :
'서경식?? 모르는 사람이군!! 고뇌의 원근법이라?? 당연히 서양 회화에 대한 이야기겠네.. 원근법 따지는 것은 서양 미술일테니까..'
이런 단순한 생각을 가지고 책을 주욱 넘겨 보았다. 일단 책에 그림이 많이 실려 있는 점은 좋았는데, 곳곳에 소개되는 그림들은 나 같은 문외한이 보기에 그다지 아름답거나, 굉장히 훌륭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아니었다. 미술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오래전에 미술 시간에 배운 몇 안 되는 정보와 달력에 실린 그림들, 아니면, 고흐전, 르느와르전, 클림트전 등처럼 신문 지상에 가끔 소개되는 유명 화가들 작품 정도랄까. 그런데, 책에 언급되는 화가나 그림은 고흐를 제외하고는 모두 낯설었다.
책의 주제도 바로 그 것이었다. 재일 한국인으로서, 시국 사범으로 투옥된 두 형을 둔 저자는 우리들에게 묻는다.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작품에 대해 왜 우리는 낯선 느낌을 갖는가? 우리 자신의 미의식이 지나치게 예쁜 것, 혹은 추상적인 것에만 편향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만약 그렇다면 우리문화 자체가 암묵적으로 과거의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취지를 가지고 저자는 20세기 현대 화가 가운데, 자신이 처한 현실 앞에 진실하고 당당했던 화가들의 작품을 더듬는다. 땅(때로는 독일에 때로는 덴마크에 포함되기도 하는 인간이 만든 국경에 근거한 땅이 아니라, 삶의 터전으로서의 땅 자체?)에 뿌리 박고 그곳에 사는 인간의 정서, 그곳의 풍경을 그대로를 표현하고자 했던 에밀 놀데의 그림들을 찾아 동서독을 넘나들기도 하고, 나치 치하에서 전쟁의 무가치함과 참혹함을 그대로 드러낸 그림들로 인해 나치 당국의 탄압을 받았던 오토 딕스의 그림들을 살펴보면서 시대와 함께 숨쉬고 시대의 진실을 표현하는 예술에 대해 고찰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생을 마감한 유대인 화가 펠릭스 누스바움에게 삶과 예술은 분리될래야 분리될 수 없는 주제였다. 멋진 풍경을 그리거나, 퇴폐적일만큼 아름답고 고혹적인 여인을 그리기에는 그의 인생이 그리 녹녹하지 않았다. 독일 중산층으로 태어났지만, 유대인이라는 굴레는 그를 독일 사회에서 내몰았고, 피난처로 택했던 벨기에에서도 2차 세계 대전이 터지자 결국 독일인 취급을 받아생시프리앵 수용소에 보내졌다가, 간신히 탈주해서 벨기에로 돌아왔지만, 전쟁 막바지에 결국 아우슈비츠로 보내진 굴곡 많은 삶은 그의 불안한 눈빛이나, 분노한 눈빛의 자화상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림 역시도 화가의 사상과 그 화가가 몸 담았던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기에, 혼란의 시대, 격정의 시대, 전쟁과 대량 살육의 시대인 20세기를 거쳐온 화가들의 작품이 슬프거나, 참혹하거나, 가슴이 답답하거나, 경악스러운 것이 어쩌면 보편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면에서는 그림보다도 현실이 더 참혹스럽거나 끔찍했으니까.
오히려 똑같이, 아니 어쩌면 저자의 말처럼 그보다 더 험한 시대를 살아온 우리들에게 그런 그림이 없는 게 더 이상한 일인지도 모른다. 시대를 반영하는 그림이라고 하면, 고작 운동권에서 만든 커다란 걸개 그림 정도 밖에 떠오르는 게 없다. 하기사 과거사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은 나라에서 그림인들 온전하게 진실할 수는 없을 테고, 현실에 발 붙이지 못한 그림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란, 그저 탐미적이거나, 추상적인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아름다운, 보는 그 자체로 사람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고 평화롭게 만들어주는 그림들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그런 종류 밖에 없다는 게, 극우 보수로 치닫는 우리 사회의 일면이 그림에까지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 같다.
그런데, 고뇌의 원근법이라는 책의 제목을 보면서 뭉크의 그림 [절규]를 떠올린 건 나뿐이었을까?? 책을 다 덮고 나니 괜히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