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극한기
이지민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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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랑을 교통사고에 비교한 첫 문장부터 시선을 끈다. 무면허, 무사고를 자랑한다는 그 아픈 감정을 내뱉으며 한 남자와의 소개팅을 이야기한다. 그 남자 이름은 남수필. 첫 만남의 장소인 스타벅스에서 그녀를 제대로 찾지 못하고 헤맨다. 어떻게 만나지만 그 만남이 길지 않고 금방 헤어진다. 여자는 의문이다. 자신의 이름이나 알까 하고. 그런 그에게서 전화가 온다. 집에 있다니 찾아오겠단다. 얼마 후 온다. 이 만남은 하룻밤을 같이 보낼 정도로 긴 시간이지만 어떤 낭만적인 장면도 연출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떠난다. 여자에게 왠지 모를 아쉬움과 뿌듯함을 안겨주고 말이다.

연봉 삼백만원의 시나리오 작가인 그녀가 이 남자와 소개팅을 한 이유는 그가 과학자이기 때문이다. 실험실에서 늘 살고, 자신이 실험하는 쥐들에게 미안함을 느껴 미키마우스를 모으는 특이한 인물이다. 하지만 이 특이한 인물 때문에 겪게 되는 앞으로의 일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들이다. 덕분에 우린 아주 즐겁고 재미있는 모험담을 듣게 되지만 말이다. 그리고 새로운 인물과 상황과 전개는 단숨에 읽게 만든다.

무시무시한 G-10 바이러스가 도시 곳곳에 죽음의 공포를 만든다. 이 소설의 배경은 이런 설정에서 시작한다. 얼마 전 전 세계, 특히 한국을 공포로 몰아넣은 신종플루를 생각하면 쉽다. 하지만 그 살상력은 그것을 몇 십 배 초월한다. 이런 공포 속에서도 변함없이 거리를 활보하는 존재들이 있다. 그들은 연인이거나 연인을 찾는 사람들이다. 이런 환경을 바탕으로 작가는 새로운 바이러스를 만들어내었다. 사랑 바이러스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곁에 있는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 이 바이러스 왠지 낯익다. 어딘가에서 본 듯한데 지금 생각나지 않는다.

작가는 남수필과의 만남부터 암시를 계속 깔아놓는다. 죽음과 미스터리한 상황을 말이다. 이런 설정은 앞부분에 상당히 많이 나온다.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설정이다. 읽으면서 의문이 생기고, 빠른 전개로 그 답을 곧 알게 된다. 하나의 상황이 끝나자마자 다른 상황이 벌어지는 이벤트의 연속이다. 그 속에서 만나게 되는 인물들은 강한 개성과 그들이 마주한 상황으로 즐거움을 준다. 한 편의 미스터리 소설로 읽히기도 하지만 그 속에 담긴 강력한 풍자는 문장 하나 단어 하나에 흘러넘친다. 사실 책 읽으면서 가장 큰 재미 중 하나가 이런 풍자와 뒤틀린 그녀의 감정과 대사들이었다. 

사랑 바이러스는 위험하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좋은데 그 상대방에게 키스 등을 하면서 전염시킨다. 죽는 경우도 많다. 물론 감염되면 행복감에 빠진다. 이것은 사랑이 단순히 화학적 반응에 불과함을 보여주는 하나의 장치다. 정말 그럴까? 순간의 충동에 의한 사랑과 이성과 감정의 교류에 의한 사랑은 구분한다면 어떨까? 사실 작가는 이 사랑에 대해 깊이 있게 파고들지 않는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 과거의 시간들 속에서 만나는 환상을 통해 삶의 행복한 순간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말이다. 깊이 있게 들어갔다면 좀더 좋은 소설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속도감과 재미는 떨어졌을 것이다.

이 소설 속엔 참 재미난 인물들이 많다. 먼저 주인공 옥택선은 좌충우돌하고 신랄하고 풍자적인 말투와 시선으로 즐거움을 주고, 그녀를 구할 인물로 나타난 이균은 냉소적이고 엄격한 모습을 유지하여 그녀와 묘하게 대조된다. 상도와 미리 두 학생의 아주 심각한(?) 연애 이야기는 풋풋한 가운데 충동적인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이 모두를 압도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남수필이다. 등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그의 존재는 우리들 주변에서 늘 보이는 미키마우스로 인해 더욱 빛을 발한다. 그의 첫 소개팅이 마지막이 되고, 그로 인해 수많은 소동이 벌어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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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해요 2010-06-17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
 
드라운
주노 디아스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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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모두 열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에서 화자로 나온 유니오르가 다시 나온다. 다시란 단어를 쓰기가 조금 쑥스럽다. 그 이유는 이 소설집이 먼저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십 수 년 전에 말이다. 작가는 유니오르 가족과 그 주변 인물의 과거를 그려낸다. 이들의 삶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역시 우리의 이민 1세대다. 예전에 읽은 책에서 이민 1세대가 겪었던 어려움과 고난이 이 소설 속에서 다시 재현되었다. 세부적인 곳에서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전체적인 윤곽에선 많이 유사하다. 그것은 주류사회로 편입하기 전까지 비주류가 겪어야 하는 아픔인지도 모른다.

이야기는 두 지역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한쪽은 도미니카고, 다른 한 곳은 뉴욕이다. 도미니카의 삶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빈곤하지만 열정과 깨어있다는 느낌이 있다. 뉴욕은 부를 조금 가지고 있지만 왠지 모르게 불안정하고 불안하다. 다른 문화와 경제 환경은 적응의 문제를 넘어 생존의 문제로까지 변하게 된다. 뉴욕에서 유니오르가 겪게 되는 수많은 일들은 정체성과 함께 생존을 돌아보게 만든다. 가난은 쉽게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돈은 늘 필요하다. 이런 곳에 유혹이 일어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른다. 그가 마약상이 된 것은 이런 삶에 대한 순응이거나 굴복이다. 하지만 그가 이런 삶을 즐기고 행복해하지는 않는다. 미래를 설계하기엔 결코 밝지만은 않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돈을 벌기 위해 뉴욕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아버지의 부재는 늘 아이들에게 허전함과 상실감을 준다. 언제 올지 모르는 아버지, 그를 기다리는 어머니, 어머니를 유혹하는 수많은 남자들, 이제 조금 자랐다고 여자를 유혹하고 다니는 형, 어린 시절 돼지에게 물려 얼굴에 큰 흉이 있는 이스라엘. 이들이 자신들의 사연을 말하고, 삶을 보여주고, 감정을 드러내고, 가끔은 폭력을 행사한다. 바로 이런 환경과 삶 속에서 드러나는 유니오르의 시선은 결코 아름답게 포장되지 않고 날 것 같은 신선함과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서 이 소설이 지닌 매력이 그대로 발휘된다.

얼굴에 거대한 흉이 있는 이스라엘에 대한 이야기에서 만나는 폭력과 희망과 불안은 가슴 한 곳을 아리게 만든다. 이민 후 삶에서 만나게 되는 가족은 불안정하고, 자란 후 삶도 안정과는 거리가 멀다. 새로운 인생을 그려보지만 쉽지 않다.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고, 허세와 허풍으로 비루한 삶은 이어진다. 아버지의 과거 속에서 만나게 되는 이민 1세대의 삶은 바로 우리 1세대를 생각나게 만들고, 그의 선택이 빚어낸 충돌과 왜곡은 쉽게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그 시절 혹은 그들은 성공했다. 가족이 모두 미국으로 이민을 왔으니 말이다. 

간결하면서도 짧은 문장은 직설적인 표현과 더불어 읽는 내내 호흡을 간단하게 만든다. 약간만 집중력을 흩트리면 유니오르의 이야기가 주는 재미를 놓친다. 아메리카 드림이 깨어진 곳에서 마주한 이민자들의 삶은 사실적이고, 환상과 홍보가 빚어낸 삶은 아주 먼 곳이나 텔레비전 속에서만 존재한다. 인종차별은 곳곳에 암묵적으로 존재하고, 자신의 정체성은 쉽게 세워지지 않는다. 연대순으로 정리되지 않아 약간 혼란을 겪기도 하지만 조금만 신경을 쓰면 화자와 이야기의 대상이 누군지 알 수 있다. 낯선 문화와 환경 속에 보이는 우리 소설의 편린들은 문학이 지향하는 공통점을 발견한 듯한 느낌이다. 엄청나게 느리게 글을 쓰는 그를 생각하면 다음에 나올 책은 언제가 될지 모른다. 하지만 역시 기다려지는 것은 그가 빚어낸 문장과 현실 마주하기와 멋진 캐릭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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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제인형 도시의 살생부 사건
팀 데이비스 지음, 정아름 옮김 / 아고라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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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발상이다. 봉제인형도시라니 얼마나 탁월한 발상인가! 단순히 발상만 뛰어났다면 이런 표현을 하지 않았다. 작가는 봉제인형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이들이 사는 세계 속에 근본적인 철학적 물음과 함께 미스터리를 뒤섞어 놓았다. 그래서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이 봉제인형들의 대화와 역사 속에서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 전체를 정밀하면서 세밀하게 잘 그려내어 사실적으로 다가오게 만들었다. 

봉제인형도시가 배경이라면 이야기의 구성은 쌍둥이 곰 인형 중 형 에릭 중심으로 이끌어간다. 그 사이사이에 막후 실력자와 동생 곰 인형 테디 등을 화자로 등장시켜 새로운 정보를 제공한다. 이 새로운 정보는 에릭의 과거와 연결되어 있다. 작가는 회상 속에도 거짓을 뒤섞어놓았는데 뒤로 가면서 그 사실이 밝혀진다. 복잡한 미스터리 구성에 캐릭터를 잘 살려내었고, 가독성이 좋아 단숨에 읽게 만든다. 

기본 줄거리는 조폭 비둘기가 자신이 이름이 쓰진 살생부를 찾으라고 에릭에게 명령하고, 이 살생부를 찾기 위한 에릭과 그 동료들의 노력과 활약을 그려내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살생부다. 봉제인형도시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소문이지만 누구도 그 실체를 확인한 적이 없는 물건이 바로 살생부다. 이곳에 이름이 적히면 바로 저승사자 같은 배달부에게 끌려간다. 즉, 죽는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살생부가 이곳에 적히고, 이 명부에 따라 누군가가 죽인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이 소설 속에선 바로 죽음 그 자체다. 이곳에 이름이 적히면 지워지기 전까지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봉제인형도시에서 출생은 인간사회와 다르다. 공장에서 결혼한 가정에 배달됨으로서 가족이 된다. 출산의 고통은 없지만 아이들을 배달받기 위한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낳는 고통과 혈육이란 관계가 없지만 자라면서 맺은 유대관계와 정이 그것을 능가한다. 작가는 이런 설정을 통해 가족이란 함께 하는 것이지 낳는다고 되는 것이 아님을 은연중에 알려준다. 그리고 각각 다른 모양의 봉제인형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도 다른 동물 모양인데 이 또한 인간사회를 살짝 비튼 설정이다. 바로 같은 부모가 낳은 자식이라도 형제 간이나 부모 자식 간에 차이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조폭 비둘기가 왜 곰인형 에릭을 선택했을까? 그것은 그의 어머니가 바로 환경부 장관을 역임했기 때문이다. 이 봉제인형도시에서 환경부 장관은 엄청난 지위다. 높은 지위에 있다는 것은 고급 비밀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의미고, 이것을 알아챈 비둘기가 에릭을 통해 자신을 죽음을 막으려는 것이다. 처음엔 단순히 떠돌아다니는 전설이었던 것이 에릭 일당의 조사와 연구 속에서 그 실체를 하나씩 벗게 된다. 이 과정 속에 드러나는 도시의 모습과 인형들의 삶은 인간 사회와 유사하면서도 봉제인형의 특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기이하면서도 어느 순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살생부의 존재에 대한 의문과 그 실체를 좇는 에릭 일당의 활약이 이야기를 중심적으로 이끌어간다면 그들을 둘러싼 과거와 다른 봉제인형과의 관계나 삶은 또 다른 중심축을 이룬다. 동물봉제인형이 동물의 특성을 그대로 가진 듯하면서도 다른 성격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이 소설을 읽는 재미 중 하나다. 특히 살생부의 존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실 공방과 에릭의 현실을 뒤집는 테디 이야기의 진위 여부는 이야기 전체를 미스터리로 몰아간다. 끝으로 오면서 이 미스터리는 하나씩 풀리지만 봉제인형도시의 존재란 거대한 미스터리는 그대로 남아있다. 앞으로 계속 나올 이야기에서 어느 정도까지 풀릴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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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찬
소피 오두인 마미코니안 지음, 이혜정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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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놓은 지 몇 년이나 된 <타라 덩컨>의 작가가 스릴러를 한 편 내었다고 한다. 판타지 <타라 덩컨>을 아직 읽지 않았지만 많은 호평과 계속해서 나오는 시리즈를 생각하면 관심이 갔다. 책 소개를 읽으면서 약간은 전형적인 구성이 아닌가 생각했다. 이런 기대와 우려 속에 펼쳐든 <만찬>은 빠른 속도로 읽히면서 재미를 준다. 독창적인 느낌은 덜하지만 전형적인 구성과 캐릭터가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소년의 생일부터 이야기가 시작한다. 축복받고 행복해야 할 이 날이 소년에겐 공포와 고통으로 가득하다. 그 날 소년의 마음은 산산조각 난다. 그리고 그 소년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요리를 하고, 그가 가둔 사람들의 비명으로 가득하다. 공포와 긴장이 스멀스멀 피워나면서 사건의 서막을 올린다. 

작가는 상처받은 사람들을 중심인물로 설정했다. 형사반장 필리프 하트, 젊은 소아정신과 여의사 엘레나. 이 두 사람이 바로 그들이다. 하트는 비행기 사고로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고, 그 시체마저 찾지 못해 그 환영 아래 고통 받고 있다. 엘레나는 어린 시절 자신을 성추행하려고 한 아버지 친구 때문에 남자에 대한 거부감이 늘 자리 잡고 있다. 이 둘의 상처는 둘의 만남으로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그 과정을 만드는 것은 사랑이다. 순간의 오해도 있지만 서로 강하게 끌리고, 자기의 아픔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이해하고 공감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부드럽고 긴장을 풀어주는 장면을 그들이 만든다.

어린이를 성추행한 범인 피에르 자비가 병원에서 사라지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한다. 피해 아이를 치료하는 의사가 엘레나고, 그 범인을 잡은 형사가 하트다. 이 둘은 짧은 만남으로 강한 인상을 받는다. 하지만 범인이 사라진 것은 의문을 자아낸다. 그가 자발적으로 탈출했다기보다 외부의 도움이 있은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곧바로 시체 한 구가 발견되었다는 연락을 받는다. 하트는 그 시체가 자비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니다. 다른 인물이다. 너무나도 처참하게 죽은 시체의 모습은 섬뜩하고 잔혹하다. 그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끝났다고 생각한 사건에 새로운 사건의 가능성이 보인다. 그렇다. 바로 뚱보 연쇄살인사건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고도 비만자의 실종을 파악하고, 연쇄살인의 가능성을 알게 되지만 이들의 공통점을 찾지 못한다. 범인이 남긴 시로 다음 장소를 알게 되지만 이미 늦었다. 그런데 이 시를 해석한 인물이 경찰이 아니다. 그는 엘레나의 환자인 천재소년 카를이다. 카를의 오만한 성격과 탁월한 능력은 짜증과 감탄을 동시에 자아내게 만든다. 단숨에 시에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는 이 소년의 모습과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만약 이 소설이 시리즈로 만들어진다면 중심인물로 키우거나 주인공으로 삼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잔혹한 시체의 모습은 겉으로 드러난 것이다. 죽음의 원인은 굶주림이다. 그들은 굶어죽은 것이다. 시체가 발견될 당시 모습은 단지 이런 사실을 순간적으로 가려줄 뿐이다. 시체가 발견될 때마다 나오는 시는 다음 범행 장소를 알려주고, 경찰과의 대결을 암시한다. 그리고 두 번째 시체가 발견되고, 그 피해자의 집에서 발견한 사실은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주는 동시에 아동매매라는 또 다른 사건을 드러낸다. 이 사실이 피해자들이 뚱보였다는 사실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의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살인자는 정의의 사도 역할을 한 것이다. 이런 의문이 하트의 마음 한 곳에 자리 잡는다.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 열기와 사랑을 바탕으로 끔찍하고 잔혹한 살인사건을 엮어서 멋진 스릴러를 만들었다. 약간 전형적인 구성이나 인물상이기 하지만 잘 버무려내었다. 범인의 모습을 최후까지 숨기면서 머릿속에서 누굴까 하는 호기심을 키운다.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용의자도 한두 명 늘어나고, 범인의 행적은 점점 교묘해진다. 일방적인 경찰의 패배다. 하지만 연쇄살인의 경우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밝혀질 수밖에 없다. 작가는 이런 과정을 기존 방식을 따르면서도 새롭게 만들었다. 액션으로 멋진 장면을 만들기보다 심리 속으로 들어가 긴장감을 조성하고, 왜 그가 그렇게 변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무겁고 난해할 수도 있는 이 과정을 매끄럽게 풀어냈다. 이야기꾼으로서의 탁월한 재능을 보여준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시리즈로 나왔으면 좋겠고, <타라 덩컨>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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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 동경대 가다! 세트 - 전21권 (신장판) - KBS 드라마 '공부의 신' 원작 꼴찌, 동경대 가다! 신장판
미타 노리후사 지음, 김완 옮김 / 북박스(랜덤하우스중앙)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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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만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입시에 도움이 되는 만화란 것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이미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입시와 너무나도 멀리 동떨어져 있는 나의 현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적지 않은 분량의 만화를 읽은 것은 드라마 <공부의 신> 때문이다. 평소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는 내가 이 드라마를 본 것은 아니다. 다만 이동 중에 택시나 식당의 텔레비전을 통해 잠시 잠깐 본 것이 거의 전부다. 그런데 왜 봤냐고? 그것은 우연히 이 만화를 읽을 기회가 생겼고, 다른 책들에서 벗어나 잠시 쉬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첫 권을 쥐고 읽을 때만해도 사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일본의 동경대가 어떤 위치고, 얼마나 들어가기 힘든 곳인지 알기 때문이다. 서울대보다 더 높은 위치의 학교고, 일본 최고의 대학임을 알기에 단순히 일 년만에 들어간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로 여겨진 탓이다. 이것은 어느 정도 학력이란 것을 아는 사람에게 그대로 통용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선입견과 편견이 이 만화를 읽으면서 조금씩 깨어졌다. 그리고 그 가능성이 조금씩 문을 열고 있었다. 바로 이 문을 조금씩 열어서 보여주는 것이 이 만화가 보여주는 재미이자 많은 것을 생각하고 배우게 만드는 요인이다.

누군가가 서울대에 일 년 동안 열심히 공부하면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하면 거짓말이라고 할 것이다. 그것은 그만큼 서울대에 들어가기 힘들다는 의미다. 만약 천재가 있다면 게으름의 껍질을 벗고 단숨에 입학시험에 합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내신 성적은 별도로 하고 말이다. 그런데 삼류 고등학교에서 수학 공식도, 영어 단어도 모르는 평범한 학생이라면 어떨까? 아마 대부분 불가능하다고 말할 것이다. 맞다. 사실 대입에 필요한 학력을 일 년 만에 쌓는다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다. 그런데 이 만화는 그 힘든 일을 쉽게 이루는 것이 아니라 아주 많은 노력과 집중과 뛰어난 선생들의 도움으로 이룬다. 그리고 그 과정을 보여주는데 바로 이 부분에 내가 관심을 둔 것이다.

잠시 만화 내용 이야기를 하면 삼류보다 못한 고등학교에 임시 교장으로 온 변호사가 학교 재건을 위해 동경대 합격을 내세우고, 이 공약을 달성하기 위해 학생 둘을 모으고, 이 둘을 가르칠 뛰어난 선생을 구성하여 가르치는 것이다. 단순히 학생을 가르치는 내용만 나온다면 재미가 없다. 그래서 선생 개개인에게 강한 개성을 부여하고, 그 개성을 학업과 연결시킨다. 선생들의 등장도 한꺼번에 이루어지지 않고, 순차적으로 등장하여 새로움을 배가시키고 지루함을 들어내었다. 그리고 이들의 등장은 한 과목마다 비법이 있음을 알려주는데 나중에 보면 결국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음을 보여준다.

만화는 역할 분담을 철저하게 나눴다. 교장역의 변호사 사쿠라기는 좋은 선생을 섭외하고, 그 선생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마음껏 펼치게 만든다. 그리고 두 학생 미즈노와 야지마를 독려하고, 그들이 흔들릴 때마다 바로 잡아주는 역할이다. 특히 그가 말하는 교육관은 아주 현실적이다. 다만 만화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두 학생을 둘러싼 현실이 너무 과장되어서 그렇지 말이다. 특히 학생을 위한다고 말하는 선생과의 토론은 진정으로 학생의 발전을 위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구체적이지 못하고 추상적인 선생에 비해 사쿠라기의 주장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이다. 작가는 또 이 사쿠라기를 통해 수많은 심리학과 교육학과 수업과 공부 방법을 설명한다. 이 만화의 진정한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 미즈노와 야지마의 합격에 대한 궁금증도 있지만 교육 철학과 구체적인 학습법 등이 계속해서 읽게 만드는 것이다. 

만화를 보면서 고등학교 시절의 장면들이 수없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학교 선생하는 친구에게 한 번 읽어보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어떤 장면에서 내가 사용한 방법 중 하나가 그대로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만약 나에게도 이런 선생들과 환경이 받쳐줬다면 서울대에 합격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물론 그 답은 아니다, 다. 아무리 좋은 선생이 있고, 특별한 공부 방법이 있다고 하여도 만화 속 두 주인공 미즈노와 야지마와 같은 집중력과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만화 속에서도 동경대를 위한 시험이지 다른 사립 명문대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하는 대목에선 그 수업이 지향하는 바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 둘의 학력이 다른 학생들에 비해 그 기반이 약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단지 합격만을 위해 그들은 달린 것이다. 동경대 합격이란 절대적인 목표를 향해 달려가지만 그들 또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현실이다. 실제 합격자도 어느 정도 타협하는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이런 사실들은 결과론이고, 만화의 가치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공부하는 방법과 교육철학과 심리학 등에 있다. 거기에 이 두 학생의 성장도. 공부하는 학생이나 그런 자녀를 둔 사람들이 차분하게 한 번 읽어보면 상당히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는 만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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