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제인형 도시의 살생부 사건
팀 데이비스 지음, 정아름 옮김 / 아고라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기발한 발상이다. 봉제인형도시라니 얼마나 탁월한 발상인가! 단순히 발상만 뛰어났다면 이런 표현을 하지 않았다. 작가는 봉제인형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이들이 사는 세계 속에 근본적인 철학적 물음과 함께 미스터리를 뒤섞어 놓았다. 그래서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이 봉제인형들의 대화와 역사 속에서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 전체를 정밀하면서 세밀하게 잘 그려내어 사실적으로 다가오게 만들었다. 

봉제인형도시가 배경이라면 이야기의 구성은 쌍둥이 곰 인형 중 형 에릭 중심으로 이끌어간다. 그 사이사이에 막후 실력자와 동생 곰 인형 테디 등을 화자로 등장시켜 새로운 정보를 제공한다. 이 새로운 정보는 에릭의 과거와 연결되어 있다. 작가는 회상 속에도 거짓을 뒤섞어놓았는데 뒤로 가면서 그 사실이 밝혀진다. 복잡한 미스터리 구성에 캐릭터를 잘 살려내었고, 가독성이 좋아 단숨에 읽게 만든다. 

기본 줄거리는 조폭 비둘기가 자신이 이름이 쓰진 살생부를 찾으라고 에릭에게 명령하고, 이 살생부를 찾기 위한 에릭과 그 동료들의 노력과 활약을 그려내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살생부다. 봉제인형도시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소문이지만 누구도 그 실체를 확인한 적이 없는 물건이 바로 살생부다. 이곳에 이름이 적히면 바로 저승사자 같은 배달부에게 끌려간다. 즉, 죽는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살생부가 이곳에 적히고, 이 명부에 따라 누군가가 죽인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이 소설 속에선 바로 죽음 그 자체다. 이곳에 이름이 적히면 지워지기 전까지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봉제인형도시에서 출생은 인간사회와 다르다. 공장에서 결혼한 가정에 배달됨으로서 가족이 된다. 출산의 고통은 없지만 아이들을 배달받기 위한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낳는 고통과 혈육이란 관계가 없지만 자라면서 맺은 유대관계와 정이 그것을 능가한다. 작가는 이런 설정을 통해 가족이란 함께 하는 것이지 낳는다고 되는 것이 아님을 은연중에 알려준다. 그리고 각각 다른 모양의 봉제인형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도 다른 동물 모양인데 이 또한 인간사회를 살짝 비튼 설정이다. 바로 같은 부모가 낳은 자식이라도 형제 간이나 부모 자식 간에 차이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조폭 비둘기가 왜 곰인형 에릭을 선택했을까? 그것은 그의 어머니가 바로 환경부 장관을 역임했기 때문이다. 이 봉제인형도시에서 환경부 장관은 엄청난 지위다. 높은 지위에 있다는 것은 고급 비밀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의미고, 이것을 알아챈 비둘기가 에릭을 통해 자신을 죽음을 막으려는 것이다. 처음엔 단순히 떠돌아다니는 전설이었던 것이 에릭 일당의 조사와 연구 속에서 그 실체를 하나씩 벗게 된다. 이 과정 속에 드러나는 도시의 모습과 인형들의 삶은 인간 사회와 유사하면서도 봉제인형의 특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기이하면서도 어느 순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살생부의 존재에 대한 의문과 그 실체를 좇는 에릭 일당의 활약이 이야기를 중심적으로 이끌어간다면 그들을 둘러싼 과거와 다른 봉제인형과의 관계나 삶은 또 다른 중심축을 이룬다. 동물봉제인형이 동물의 특성을 그대로 가진 듯하면서도 다른 성격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이 소설을 읽는 재미 중 하나다. 특히 살생부의 존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실 공방과 에릭의 현실을 뒤집는 테디 이야기의 진위 여부는 이야기 전체를 미스터리로 몰아간다. 끝으로 오면서 이 미스터리는 하나씩 풀리지만 봉제인형도시의 존재란 거대한 미스터리는 그대로 남아있다. 앞으로 계속 나올 이야기에서 어느 정도까지 풀릴지 기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