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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찬
소피 오두인 마미코니안 지음, 이혜정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사놓은 지 몇 년이나 된 <타라 덩컨>의 작가가 스릴러를 한 편 내었다고 한다. 판타지 <타라 덩컨>을 아직 읽지 않았지만 많은 호평과 계속해서 나오는 시리즈를 생각하면 관심이 갔다. 책 소개를 읽으면서 약간은 전형적인 구성이 아닌가 생각했다. 이런 기대와 우려 속에 펼쳐든 <만찬>은 빠른 속도로 읽히면서 재미를 준다. 독창적인 느낌은 덜하지만 전형적인 구성과 캐릭터가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소년의 생일부터 이야기가 시작한다. 축복받고 행복해야 할 이 날이 소년에겐 공포와 고통으로 가득하다. 그 날 소년의 마음은 산산조각 난다. 그리고 그 소년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요리를 하고, 그가 가둔 사람들의 비명으로 가득하다. 공포와 긴장이 스멀스멀 피워나면서 사건의 서막을 올린다.
작가는 상처받은 사람들을 중심인물로 설정했다. 형사반장 필리프 하트, 젊은 소아정신과 여의사 엘레나. 이 두 사람이 바로 그들이다. 하트는 비행기 사고로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고, 그 시체마저 찾지 못해 그 환영 아래 고통 받고 있다. 엘레나는 어린 시절 자신을 성추행하려고 한 아버지 친구 때문에 남자에 대한 거부감이 늘 자리 잡고 있다. 이 둘의 상처는 둘의 만남으로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그 과정을 만드는 것은 사랑이다. 순간의 오해도 있지만 서로 강하게 끌리고, 자기의 아픔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이해하고 공감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부드럽고 긴장을 풀어주는 장면을 그들이 만든다.
어린이를 성추행한 범인 피에르 자비가 병원에서 사라지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한다. 피해 아이를 치료하는 의사가 엘레나고, 그 범인을 잡은 형사가 하트다. 이 둘은 짧은 만남으로 강한 인상을 받는다. 하지만 범인이 사라진 것은 의문을 자아낸다. 그가 자발적으로 탈출했다기보다 외부의 도움이 있은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곧바로 시체 한 구가 발견되었다는 연락을 받는다. 하트는 그 시체가 자비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니다. 다른 인물이다. 너무나도 처참하게 죽은 시체의 모습은 섬뜩하고 잔혹하다. 그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끝났다고 생각한 사건에 새로운 사건의 가능성이 보인다. 그렇다. 바로 뚱보 연쇄살인사건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고도 비만자의 실종을 파악하고, 연쇄살인의 가능성을 알게 되지만 이들의 공통점을 찾지 못한다. 범인이 남긴 시로 다음 장소를 알게 되지만 이미 늦었다. 그런데 이 시를 해석한 인물이 경찰이 아니다. 그는 엘레나의 환자인 천재소년 카를이다. 카를의 오만한 성격과 탁월한 능력은 짜증과 감탄을 동시에 자아내게 만든다. 단숨에 시에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는 이 소년의 모습과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만약 이 소설이 시리즈로 만들어진다면 중심인물로 키우거나 주인공으로 삼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잔혹한 시체의 모습은 겉으로 드러난 것이다. 죽음의 원인은 굶주림이다. 그들은 굶어죽은 것이다. 시체가 발견될 당시 모습은 단지 이런 사실을 순간적으로 가려줄 뿐이다. 시체가 발견될 때마다 나오는 시는 다음 범행 장소를 알려주고, 경찰과의 대결을 암시한다. 그리고 두 번째 시체가 발견되고, 그 피해자의 집에서 발견한 사실은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주는 동시에 아동매매라는 또 다른 사건을 드러낸다. 이 사실이 피해자들이 뚱보였다는 사실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의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살인자는 정의의 사도 역할을 한 것이다. 이런 의문이 하트의 마음 한 곳에 자리 잡는다.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 열기와 사랑을 바탕으로 끔찍하고 잔혹한 살인사건을 엮어서 멋진 스릴러를 만들었다. 약간 전형적인 구성이나 인물상이기 하지만 잘 버무려내었다. 범인의 모습을 최후까지 숨기면서 머릿속에서 누굴까 하는 호기심을 키운다.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용의자도 한두 명 늘어나고, 범인의 행적은 점점 교묘해진다. 일방적인 경찰의 패배다. 하지만 연쇄살인의 경우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밝혀질 수밖에 없다. 작가는 이런 과정을 기존 방식을 따르면서도 새롭게 만들었다. 액션으로 멋진 장면을 만들기보다 심리 속으로 들어가 긴장감을 조성하고, 왜 그가 그렇게 변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무겁고 난해할 수도 있는 이 과정을 매끄럽게 풀어냈다. 이야기꾼으로서의 탁월한 재능을 보여준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시리즈로 나왔으면 좋겠고, <타라 덩컨>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