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아프리카
권리 지음 / 씨네21북스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독특한 여행소설이자 성장소설이다.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쓴 소설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행소설이 되고 있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주인공 유석과 쇼타의 성장을 다루고 있다. 각자 찾고자 하는 것을 위해 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그들도 그 여행이 근 일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닐지는 몰랐을 것이다. 실제 작가가 힘겹게 여행한 경험을 이야기 속에 녹여낸 탓인지 그 힘겨움이 실감나게 다가온다. 지치고 힘들고 가난한 여행이지만 보면서 떠나고 싶은 욕구가 샘솟는다.

유석의 아버지 야마는 유명한 화가다. 어느 날 갑자기 죽는다. 유석은 이에 스트레스를 받고 원형탈모증이 생긴다. 아버지의 유산은 거의 없고, 믿고 있던 <야마 자화상>은 위작으로 판명나면서 쫄딱 망한다. 대입에 떨어진 그가 간 곳은 아버지의 한때 연인이었던 최 교수의 집이다. 그 집에서 기거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재수를 준비한다. 왠지 모르게 집중이 되지 않는다. 자신이 영감을 받아서 그렸다고 생각한 그림이 최 교수에게 혹평을 받는다. 분노가 치밀어 최 교수의 고양이를 죽이고, 쇼타의 집으로 도망간다.

쇼타는 한국에 사는 일본인이다. 일본드라마 자막의 오타 때문에 둘이 만났다. 그런데 쇼타가 <야마 자하상>을 가지고 있다. 유석은 단번에 위작임을 안다. 진품이 있다면 당장 50억을 받을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쇼타는 자신의 가정을 파괴한 형으로부터 받았다. 그리고 형에게 이탈리아의 한 곳으로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하지만 보내지 않았다. <야마 자화상>을 둘러싼 의문은 유석을 자극하고, 진실을 알고자 한다. 최 교수에게 약간의 정보를 얻고, 쇼타를 충동질해 둘은 함께 런던을 향해 날아간다. 자화상은 긴 세계여행 속에 긴장감을 불어넣어주고, 미스터리 분위기를 풍긴다. 

이 둘이 함께 떠난 여행은 가난하기 그지없다. 최소한의 경비로 이들은 여행을 떠난다. 히치하이킹은 기본이고, 친하지는 않지만 아는 사람에게 빈대 붙어 살기도 한다. 유석의 목적은 <야마 자화상>의 진품을, 쇼타는 사라진 형을 찾는 것이다. 물주인 쇼타의 형을 찾기 위해 먼저 움직이면서 그의 흔적을 좇아간다. 그 흔적은 흐리지만 끊어지지는 않는다. 자화상을 좇는 유석의 결과는 통 시원치가 않다. 긴 여행 도중에 쇼타의 그림을 노리는 사람까지 등장한다. 혹시 유석이 위작임을 확인한 그 작품이 진품이 아닐까, 의문을 품게 만든다. 

<야마 자화상>, 쇼타의 형을 찾는 과정은 사실 두 사람의 자아를 찾는 과정이다. 전 세계를 돌면서 그 흔적을 좇지만 그 과정에서 만나고, 경험하고, 부딪히는 모든 것들이 결국은 그들의 성장을 도와주는 밑거름이다. 가난한 배낭여행객이 겪는 어려움과 현지의 모습과 숙소에서 길에서 만난 여행객들과 어울림은 갇혀있던 그들의 생각과 자아를 풀어놓게 만든다. 실제 작가의 경험인지는 모르지만 세상에 저런 고생을 왜 하나, 할 정도의 것을 겪으면서 그들은 찾고자 하는 것을 향해 나아간다. 그 의지와 집념과 열정은 각국의 다양한 삶과 풍경 속에서 조용히 녹아들어있다. 그리고 가난한 여행자의 기록은 간접경험의 즐거움을 주면서 책에 시선을 고정하게 만든다.

작가는 39개국 여행 끝에 이 소설을 완성했다고 한다. 여행 경비를 위해 집필했다. 이런 사전 지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유석의 성장과 그의 경험이 어느 지점에서 만나는지 짐작할 수 없다. 유석의 여행길에 예술에 대한 생각과 이론을 풀어내는데 읽는 재미가 솔솔하다. 약간 관념적이기는 하다. 유석이 아버지의 아틀리에에서 발견한 빈 캔버스로부터 받은 충격은 앞으로 펼쳐질 그의 여행이 어떤 것일까 살짝 내비쳐주는 역할을 한다. ‘눈 오는 아프리카’로 이름 붙이고, 자신이 그 그림에 집착하고, 결국은 그것을 뛰어넘어야 한다. 이런 강박관념은 아프리카와 인도를 여행하면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조금씩 무너진다. 긴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곳들이 아프리카와 인도인 것이 우연은 아닌 것 같다. 긴 여행 끝에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과거의 그가 아니다. 자신만의 예술관을 정립하기 시작했고 세계시민으로 부쩍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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