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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와 개구리 - The Princess and the Frog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영화를 보기 전에 휴일에 영화 보러 가쟀더니 하루 종일 우리 공주님 입가에 웃음이 떠날 줄을 모른다. 사실 나는 이왕 저연령 대상 영화를 볼 거라면 "아스트로 보이"나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을 보고 싶었는데 공주나 천사 안 나오면 쳐다보지도 않는 우리 달님공주는 아니나 다를까 [공주와 개구리]를 선택했다. 이럴 땐 그냥 아이에게 맞춰 주는 게 속이 편하다 싶어 딸이 하자는 대로 예매를 했다. 다시 말하면, 큰 기대 안 하고 갔다는 소리다.(...)
synopsis 주인공 "티아나"는 춤과 노래, 패션과 댄스파티에 한참 열중해 있는 또래 친구들과는 달리 레스토랑 오너가 되기를 꿈꾸며 번 돈은 악착같이 저축하는 야무진 아가씨다. 한편 너무나 방탕하게 군 탓에 부모가 돈줄을 끊어버릴 지경의 막장왕자 "나빈"은 궁한 끝에 부잣집 아가씨인 "샬럿"과 마음에도 없는 정략결혼을 하기 위해 뉴올리언스를 방문한다. 왕자와 결혼하기 위해서라면 개구리와 키스하는 게 대수냐는 적극적인 마인드를 가진 샬럿은 그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소꿉친구인 티아나에게 왕자와 첫대면을 하는 파티에서 음식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그런데 파티장에 채 들어가기도 전에 왕자는 마법사 파실리에의 계략에 빠져 개구리로 변해버리고, 개구리로 변해 숨어든 파티장에서 왕자는 약혼녀인 샬럿이 아닌 요리사 티아나와 마주하는데...
In my opinion 극장을 나온 소감은 대만족이었다. 음악도 좋았고 줄거리도 자연스러웠고 주인공도 마음에 들었다. 가장 큰 수확은 달님공주에게 수동적이 아닌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여성상을 심어 주었다는 것이다. 한없이 가녀리고 예쁘기만 한 공주님들, 작정하고 달려드는 악한들에게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하고 당하기만 하는 무력함과 "왕자"가 나타나야만 비로소 구원받고 행복해진다는 마초성이 내 신경을 그렇게 긁었는지 모르겠다. 하여간 아이가 공주라면 환장하는데도 왠지 좋아하는 대로 골라 주기도 찜찜했었다.
감독은 단언한다. 이번엔 다르단다. 같은 2D라도 우리가 미쳤다고 똑같은 걸 갖고 왔겠느냔다. 확실히 다르긴 다르다. 2010년 디즈니의 간판을 짊어지고 등장한 주인공 티아나는 에리얼/ 자스민/ 포카혼타스와는 너무도 동떨어진,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이 시대 여성 노동자들의 애환을 공유한 현실적인 캐릭터다. 처녀 몸으로 그 큰 가게를 감당할 수 있겠냐는 건물주들의 부당한 트집도 곱다시 당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말 그대로 아무 것도 없으니까. 물려받은 재산이 있나, 뒷배경이 빵빵한가, 하다 못해 돈 많고 근사한 남자친구라도 있어 주면 좋으련만 이 친구는 이성친구 사귈 주변머리도 없다. 참 딱한 캐릭터다.
관전 포인트는 이 딱한 아가씨가 딱한 왕자님을 만나 차근차근 쌓아가는 사랑 이야기다. 개구리가 되어버린 티아나가 열심히 노를 젓고 있을 때 뗏목 위에서 여유롭게 기타나 쳐대는 왕자 개구리의 모습은 여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순정파 남자 주인공들과는 사뭇 다르다. 따지고 보면 나빈 역시 허우대만 멀쩡할 뿐 속빈 강정 아닌가. 이런 대책 없는 왕자병 개구리를 그나마 사람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의 워커홀릭 티아나다. 드넓은 강가 위에 휑뎅그레 버려진 판국에 식칼 하나 제대로 다룰 줄 모르는 초짜 개구리 나빈을 야무진 티아나 개구리는 야채 다듬는 법 가르쳐 가며, 다지는 법 배워 주며 사람 구실(?)하라고 이끈다. 영화는 구중궁궐 왕자님이 식당 웨이트리스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코믹하고도 섬세하게 표현했다.
가산 포인트 1. 딸아이에게 긍정적인 가치관을 심어 주는 공주님 이야기
딸아이가 조금 더 컸더라면 같이 얘기할 수 있을 거리가 많았을 것이다. 백설공주, 신데렐라,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공주, 그 수많은 공주 이야기를 읽어 주면서 혹여라도 딸아이가 "왕자가 나타나서 결혼"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생각할까 봐 조금 염려스러웠다. 왕자의 등장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결혼 후에도 또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을 달님공주가 언젠가는 알게 될 날이 올 것이다. 현실은 누가 구원해 주는 것도 아니고 나를 힘들게 하는 모든 것이 어느 날 갑자기 없어지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고단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은 다름 아닌 본인의 끊임없는 노력과 발전에 있다는 것을 아이가 알았으면 한다. 왕자에게 구원받는 공주님이 아니라 부단히 노력하고 스스로 고난을 헤쳐 나가려는 주인공의 모습을 달님공주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궁금하다.
가산 포인트 2. 팬이에요! 더빙판 성우님들
애니메이션 극장판을 보러 갈 때면 더빙이냐 원어냐로 취향이 갈리기 마련인데, 나는 둘다 가리지 않는 편이다. 원작 성우의 연기를 보는 것도 좋지만, 나로서는 우리말 제작을 맡은 성우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더 즐겁다. 지금은 더빙작 중에서도 레전드급에 속한다는 SBS판 [슬레이어즈] 이후로 국내 성우진에 대한 믿음은 변함이 없었고, 맨날 같은 사람이 주인공 맡는다는 불평을 들어도 한 귀로 듣고 넘기는 편이다. 내가 정말 감탄했던 사례 중 하나는 [트라이건] 더빙판이었는데, 공중파 방송이 아닌 케이블에서 더빙을 했기 때문인지 성우 한 사람이 1인 다역을 하는 경우도 포착한 적이 있다. 니콜라스 D. 울프우드 역을 맡으신 성우 오인성 님이 바로 그 주인공으로 매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악역은 거의 이분이 담당하셨다. 그때그때 목소리 톤을 확 바꿔서 모르고 지나친 사람도 꽤 있으리라 생각한다. 처음에는 "사람이 그렇게 없나...?" 싶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대단한 분이다. 왜 갑자기 상관도 없는 트라이건 얘기가 나오냐고? 내 귀가 녹슬지 않았다면, 반딧불 "레이"역을 맡은 사람이 바로 그 성우 오인성 님이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반가운 목소리, 에반젤린을 외치며 숨을 거둔 "레이"는 이번에도 대만족이었다.
가산 포인트 3. 자기 약혼자를 채가는데도 화내지 않고 무한 키스를 보내준 대인배 공주님
사람은 생김새만 봐서는 모르는 법이라고, 영화 첫장면부터 등장하는 주인공의 소꿉친구 샬럿은 허영심 많고 질투심에 불타는... 딱, 악역같이 생겼다. 개구리랑 뽀뽀는 죽어도 싫다는 티아나에 비해 왕자와 결혼을 할 수 있다면 그깟 뽀뽀쯤 얼마든 해줄 수 있어! 라는 적극적인 마인드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돈 많은 집에 태어난 덕분에 이 친구도 수난이 예사롭지 않다. 왕자인 줄 알았던 약혼자가 늙어빠진 왕자의 시종이었고, 기껏 나타난 왕자님도 자기가 아니라 자기 친구와 사랑에 빠졌다며 그래도 사람은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키스를 요구해 온다. 그런데 이 판국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계산속일 것 같은 이 아가씨가 의외로 화내지 않는다. 오히려 친구에게 이제야 연애를 하게 되다니 잘됐다며 축복을 아끼지 않는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오랜만에 보는 대인배 공주님, 정말 인상적이었다.
감점 포인트 1. 바뀌었다고? 그런데 바뀐 건 별로 없어
여기서부터는 내가 마음에 좀 안 들었던 부분. "확 바뀌었다" 이 소리만 안 했어도 그냥 넘어갈 수 있었다. 역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여주인공을 한번 생각해 보자. 티아나가 가진 적극성은 이미 에리얼과 포카혼타스, 뮬란이 이미 가지고 있던 것들이었다. 디즈니는 그때그때 다른 여성상을 추구해 왔고, 그들에게 공통적인 것이 있다면 "전통적인 여성상을 지양하고 진취적 감각을 가진 현대적 히로인"이었다. 에리얼은 안데르센의 인어공주가 가진 비극성을 벗어던지고 왕자의 사랑을 쟁취했으며, 포카혼타스는 보수적인 부족의 전통을 저버리고 이방인과 사랑에 빠진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뮬란"의 경우는 아예 남장을 하고 남자 못잖은 액션을 펼치는 히로인이 구국의 영웅이 되는 과정을 그렸다. 아무리 "다르다"를 외쳐 봤자 이미 "다른 것들" 사이에 끼어 있으면 특별할 것도 없다. "다르다"가 가진 함정이 그것이다. 이 경우는 차라리 감독이 보는 현대 여성상의 반영이라고 봐야 옳지 않을까? 우연찮게도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상승할수록, 디즈니가 그리는 공주 캐릭터도 그에 비례해 적극적이고 성취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디즈니 최초의 흑인 공주님이 갖는 의미는 2010년 현재 여성들이 가지는 자기 반영의 이미지라고 봐도 좋겠다. 쥐꼬리 월급에 밤낮 없이 일해도 세상 일이 내 맘대로 안 되는 것, 그게 고달프지만 우리의 현실 아니던가.
감점 포인트 2. 화려한 그래픽과 재즈 음악에 숨어 있는 감출 수 없는 보수성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다. 티아나 개구리가 허허벌판에서 살아 보기 위해 죽어라고 뗏목을 젓는 사이 왕자병 개구리는 여유롭게 뗏목을 타고 앉아 노래나 부르고 앉았다고.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 아닌가? 나는 딱 생각나는 게 있다. 우리 딸이 얼마 전까지 읽어 달라고 졸랐던 개미와 베짱이. 우화나 동화는 곧잘 인간에게 욕망을 억누르고 근면할 것을 요구하곤 한다. 전형적인 프로테스탄티즘이다. 캐릭터에 현실감을 부여하는 것도 좋지만, 영화 내내 끊임없이 연상되는 물질지상주의와 절제, 근면의 메시지는 사람을 참 피곤하게 한다. "확 바뀌었다는" 2010년판 디즈니 애니메이션, 확실히 음악과 그래픽은 나무랄 데 없었고 미술효과도 세련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최신 기술로 구현된 영화의 메시지가 칼뱅 시절부터 내려온 "일하는 자와 노동의 고귀함"이라니 좀 맥이 빠진다.
영화를 보고 나온 소감은 우리 부부 둘다 만족, 딸네미에게 물어봤더니 쌕 웃으며 재밌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영화관을 나올 때만 해도 나름 흡족한 기분이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런저런 걸리는 점도 있어서 생각나는 대로 적어 봤다. 하여간 그 바뀌었니 어쩌니 하는 소리만 안 했어도 별을 두개나 빼지는 않았을 텐데... 하여간 팜플렛을 누가 만들었는지 그 입이 웬수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