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3월 4주

얼마나 속쓰리고 답답했으면 제목에다 이런 걸 썼을까.  

지난번에 시험 봤던 곳은 결국 떨어졌다. 나름 잘 봤다고 생각했기에, 들인 노력이 아까워서도 속이 상한다. 취업 어려운 거야 각오했던 바고 이런 것도 예상 못한 건 아니지만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역시 기분은 가라앉기 마련이다. 지난번에 결혼식 한다는 친구를 만나 슬쩍 떠봤더니 동기들도 대부분 백수 아니면 대학원으로 진학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아, 바야흐로 청년실업의 시대다. 의욕은 넘쳐 나는데 받아줄 곳이 없는 세상, 성실하게 대학 졸업하고 당당한 사회의 톱니바퀴가 되어 일하고 싶지만 그럴 기회조차도 쉽지 않은 것이 작금의 차가운 현실인 것이다. 그래, 나만 이렇게 지질하게 사는 거 아니야, 하고 수없이 자위를 해봐도 "불합격입니다."라는 상큼쌉싸름한 대답을 듣고 나면 아무래도 의기소침해진다. 전화 받는 분 누군진 몰라도 참 심플하게 대답해 주더라. 마치 이런 영화처럼 말이다.

미국 최고 베테랑 해고 전문가 이야기,[인 디 에어] 

봤냐고? 아니, 못봤다.(...) 그런데 지금 제일 보고 싶은 영화 하면 나는 지금 이걸 고를 것 같다. "그래 나 불합격이야, 그런데 고생고생해서 붙은 사람들 자르면 기분 좋냐, 엉?" 이런 원한 담은 건 절대 아니다(...). 취업을 하고 나서야 잘릴지 말지도 고민할 수 있는 거다.  

대부분의 기업은 합격자에 한해 개별 연락을 하고, 불합격에 대한 이유를 가르쳐 주는 법도 없다. 다만 떨어진 사람 입장에선 "내가 대체 뭐가 부족했기에 떨어졌는지" 무지무지 궁금하기 마련이다. 취업도 안 한 사람 속마음이 이러할진대 하물며 해고되는 사람은 오죽할까. 회사 다니고 있는 남편 얘기 중에는 해고대상자에게 나가라고 대놓고 말하는 대신 책상 및 비품을 몽땅 치워 버린다는 괴담(?)도 있다. 바늘구멍보다 더 좁다는 취업문을 기를 써서 들어가도 잘릴 땐 단칼에 잘리는 세상, 취업도 채 못한 내가 괜히 억울한 심정으로 보고 싶은 영화다. 더 자세한 정보는 여기로 고고씽

올해 초만 해도 나름대로 의욕에 차 있었다. 시작도 좋았다. 기대도 하지 않고 서류 넣은 곳에서 서류전형 합격 소식이 왔다. 들뜬 마음으로 2차 시험장에 갔지만 강당을 꽉 채운 사람수에 좌절했고, 생각보다 어려운 시험문제에 당황도 했다. 아니 내가 고등학교 졸업한 지가 언젠데 수학 문제를 풀라는 거야? 내가 물정을 몰랐던 탓도 있지만, 기껏 기회가 왔다 싶었는데 어느새 닭 쫓던 개 꼴이 되어 있는 것도 한심했다. 그래도 그때가 연초라 큰 실망은 하지 않았지만, 넣고 떨어지고 넣고 떨어지고 하는 일상을 반복하다 보니 처음의 패기가 점점 무뎌진 것도 사실이다. 하아, 집안은 개판이고 달님공주 학원비도 빼먹었고 준비물은 잊어버리기 일쑤다. 이럴 땐 달콤한 게 무지 땡기는데... 제대로 된 케익을 먹어 본 게 대체 언젯적인지 모르겠다.  

꽃미남을 앞세워 비만을 조장(!)하는 영화, [앤티크]  

개봉한 진 좀 됐고 당시부터 말이 많던 영화. 동성애 소재면 어떻고 주연배우가 마약을 했으면 또 어떠냐, 나는 만천하에 추천하고 말거다! (<-) 

"마성의 게이" 오노가 아무리 원작에서 화려하게 채인들, 우리 민선우에게는 한수 접고 들어가야 할 것이다. 차라리 칵 뒈져버리라고 모질게 한 소리 듣고 마는 게 낫지, 좋아하는 사람이 면상에 대고 역겹다며 케이크를 쳐바른다면 누군들 안 죽고 싶을까? 감독의 톡톡 튀는 원작 해석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그야말로 케이크와 설탕의 향연이 메인 코스인 영화다. 지금의 내 기분에는 딱 맞는 영화랄까. 물론 영화가 자극하는 대로 케이크와 과자를 먹어 댄다면 분명히 다음날 후회하게 되겠지만, 달콤한 케이크 속에 숨은 인생의 쓴맛을 느끼고 싶다면 이 영화 강추다. 단, 그 전에 원작부터 보시길 권한 다음에. 

지난번 시험은 나름대로 정말 잘 봤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발표 날 때까지 김칫국도 참 많이 마셨다. 망상은 깊어만 간다. 퇴근하고 들어오면 저녁 준비 해 놓고 남편 퇴근길 마중 나가 줘야지. 여름이 가까워 오는 노을 속에서 버스 정류장에 아빠가 보이면 딸네미 앞장 세워서 맞아 주고, 아빠 목말을 탄 달님공주가 재잘재잘 떠드는 동안 세 식구가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것... 소박하지만 한번도 해보지 못했던 나만의 "스위트홈" 이미지다. 지난 5년간 고시공부 때문에 퇴근은커녕 주말에 얼굴 한번 보기 쉽지 않았던 남편이라 이런 꿈은 내 가슴 속에만 담아 두었었다. 정작 직장을 다니게 되면 남편 퇴근 시간보다 일찍 들어오기는 커녕 땅거미 다 져서야 들어올 때가 더 많겠지만, 언제나 꿈만은 공짜인 법이니까. 어떻게든 취업을 해놓고 경제적 기반이라도 좀 닦아 놓고 싶지만, 막상 현실은 남편한테 용돈 받아 사는 백수 아줌마일 뿐이다. 워낙 마음이 심란하다 보니 이런 영화가 눈에 띄는 게 무리는 아닐지도. 

임상수 감독의 신작 [하녀]

 내가 이 작품 소식을 들은 건 시험 결과를 애타게 기다리던 지난주였다. 마침 달님공주는 유치원에 보내 놓고 나 혼자 하릴없이 인터넷을 하고 있을 때, 누가 벗었네 어쨌네 하는 가십 뉴스가 얼핏 눈에 들어왔다. 클릭해 보니 전도연 씨가 [그때 그 사람들]의 임상수 감독과 찍은 새 작품 이름이었는데, 시놉시스가 묘하게 내 모습과 겹쳐졌다. 내가 이러려고 지금까지 노력한 게 아닌데, 할 수 있는 것이 있는데도 손 놓고 있는다면 나야말로 "하녀'와 다를 게 뭐가 있나, 하는 생각이었다. 물론 영화는 백수 아줌마의 안일한 일상과는 거리가 멀다. 부잣집에 일하러 들어간 "하녀"가 집주인과 금지된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란다. 1960년대엔 집에서 일해주는 소위 "식모"를 어렵잖게 볼 수 있었기에 이런 감성이 통했을진 모르겠지만, 21세기에 리메이크된 주인과 하녀의 사랑이 과연 얼마나 관객에게 설득력을 가질지는 모를 일이다. 아무튼, 난 내 인생의 "하녀"가 되긴 싫으니까 더 열심히 노력해야겠다...는 원론적인 이야기. 스틸컷에서 화제가 된 이 대사도 허구헌날 서류 넣었다 떨어지는 일상을 반복하는 구직자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저 이짓 좋아해요..." 이짓이라는 대사 대신 매번 서류 넣고 떨어지는 짓이라는 말을 살포시 넣어 보시길. 야하게 느껴질까, 진저리가 쳐질까?

 아무튼 떨어진 건 떨어진 거고, 3월도 슬슬 마무리를 지어 간다. 죽은 자식 XX 만져봐야 아무 소용 없다던가, 이제는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 나설 때다. ...하지만, 말처럼 쉽진 않다. 

이럴 때일수록 초심으로 돌아가라던가... 그러고 보니 이런 영화도 곧 개봉한다고 한다. 교육 인프라가 비교적 잘 갖추어져 있는 것으로 이름난 프랑스, 그 프랑스의 어느 중학교 교실을 배경으로 하는 선생님과 학생들의 이야기다. 요즘 출산율과 교육에 관심이 많아진 것 같으니 이 영화가 무엇을 포인트로 하는 건지는 대강 감이 잡히지만, 처음 이 영화를 접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엉뚱하게도 요시나가 후미의 단편 [사랑해야 하는 딸들]의 한 구절이었다. "그 시절 얘기했던 자그마한 꿈을 지켜내 주고 있는 친구가 이렇게 있었던 거다." 누구나 중학교 시절에는 미래에 대한 희망에 부풀어 있기 마련이다. 막상 사회에 나와 보면 생각보다 힘겨운 현실에 부닥쳐 그런 꿈을 꾸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릴 수도 있지만, 그래도 토모에의 말마따나 그 시절의 그 꿈을 이루려고 애쓰는 친구를 혹시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나 역시 울어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힘내자, 구직자! 기회는 많이 남아 있고 나는 아직 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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夢影 2010-03-29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차가 면접이 아니라 시험이면.. 큰 데구나.. (나는 서류 끝나면 언제나 사장님과 1대1 면접인 작은 회사.. orz) 암튼 화이팅. 꿈이 높은 만큼 시행착오도 많겠지만 그만큼 이뤘을 때 성취감도 크겠지. 지금까지 고생 많이 했으니까 곧 좋은 소식 있을 거야.

달님엄마 2010-03-29 10:16   좋아요 0 | URL
여기저기 막 넣는 중이야ㅠㅠ 내 소원이 한번이라도 좋으니까 면접 한번 보는 거(...) 이번 주말에 또 이력서 마감이라능.

이번 서류 넣고 우리 언제 얼굴 한번 볼래? 주말에 아저씨가 달님공주 봐준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