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페이퍼에는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본래 제 블로그의 원칙상 스포일러는 흰색 글자로 처리하는데, 오늘만은 스포일러의 내용이 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의 일부라서 부득이하게 흰색 글자 처리를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나는 [백야행]보다 [환야]를 먼저 접했다. 처음 학교 도서관에서 [환야] 3권짜리를 읽었는데, 그때의 감상은 "무슨 이런 싸이코가 다 있어?" 였다. 오늘 히가시노 게이고에게 사과를 해야 하는 이유는 [환야]의 원조격인 [백야행]을 오늘에야 읽었기 때문이다. 흔히 그와 자주 비견되곤 하는 [모방범]의 작가 미야베 미유키에 비교해서 솔직히 나는 히가시노 게이고를 약간 낮게 봤다. [모방범]이나 [이유]에서 본 미미 여사의 치밀한 필력에 비해 히가시노의 작품들은 발상이 독특하긴 하지만 구성력은 약간 미흡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방범]을 봤으면서 [백야행]을 안 보다니, 정말 미안한 마음이다. 대표작을 읽지 않고 작가를 평가절하하다니.

사람 뼛골도 모자라 골수까지 빼먹는 여주인공의 존재 이유  

[환야]에서도 그렇지만, [백야행]에서도 받기만 하고 주지는 않는 이상한 사랑 이야기가 계속된다. 두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쳤고, 인간성마저 버렸고, 자기 손을 피로 적시는 짓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환야]에서는 그게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고, 자신을 위해 목숨까지 버리는 남자를 보고도 눈 하나 깜짝 않고서 "아름다운 밤이에요, 환상 같아" 어쩌고 씨부리는 여주인공이 정말 싸가지 없어 보였다. [백야행]을 읽지 않았다면 [환야]의 여주인공은 지금까지도 4가지가 부족한 히로인으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인간은 자신 안에서 구성되어 있는 자신의 역사를 오롯이 정확하고 틀림없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때로는 제 3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자신의 역사가 더 객관적일 수도 있다. 틀림 없이 뭔가 있다, 는 믿음으로 장장 20년 동안 여주인공을 추적하는 형사의 발길을 따라가다 보면 그녀가 저지르는 잔인한 범죄들보다 더 참혹한 그녀 자신의 상처가 석류 열매 벌어지듯 드러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열한 살짜리 어린 아이가 부모를 살해하고 증거를 은폐한다고? 말만 들으면 사건은 패륜의 극치로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파고들면 살해된 아버지는 남자 주인공의 마음 속에 고이 아롱져 있는 학급 친구를 강간하는 변태성욕자였고, 살해된 어머니는 생계를 핑계삼아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친딸을 남자들에게 파는 비인륜적인 행각을 저질러 왔음을 알 수 있다. 수렁 속에서 남자 주인공에 의해 구출된 여자 주인공은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이 끊임없는 상승을 꿈꾼다. 필요하다면 살인이나 폭행도 서슴지 않는다. 대신 번번이 피로 물드는 것은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 주인공이다. 사랑하는 여자 대신 자기 손을 더럽히고, 자신 안의 존엄성을 망가뜨리고,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은 온전히 여자를 위한 사랑 때문이기에. 히가시노는 애처롭게 사라져 가는 남자 주인공의 지고지순한 최후와 그것을 바라보는 여자의 무표정한 아름다움을 절묘하게 배치시켰다.  

팜므 파탈 유키호와 미후유, 그녀들이 풍자하는 우리 사회의 "도덕 불감증"  

받기만 하고 주지는 않는 여자와 주기만 하고 받지는 않는 남자의 이상한 사랑 이야기는 사람에 따라 이기주의의 전형으로 볼 수도 있다. 사실 유키호나 미후유는 우리 사회의 통념으로 보았을 때 용납될 수 없는 악녀이다. 그러나 그들을 비난하기 전에 우리는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낸 것은 누구인가라는 준엄한 물음에 대답해야 한다. 주인공은 편모 슬하에서 12살 어린 나이에 뭇 남성들에게 성상납을 해야 했던 극빈계층이었고, 그대로 어머니에게서 방치되었다면 채 피어 보지도 못하고 사그러졌을 사회적 약자였다. 우리 사회는 이런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어떤 수단을 가지고 있는가? 과연 그 수단은 충분히 이들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가? 관련 행정 서비스는 제대로 제공되고 있는지? 혹은 그러한 수단들을 우리들의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는 이유로 혹은 개인의 타산을 위해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지는 않은가? 바로 얼마 전까지 신문을 장식했던 어린이 성폭행 피해자들은 대부분 가난한 맞벌이 가정의 자녀들이었고, 그들의 최후에 온 국민이 가슴을 쳤었다. 유키호 역시 그러한 위험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던 어린이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그녀를 변호할 생각은 [백야행]을 읽고 난 후에도 추호도 없다. 왜냐하면 그녀 역시 그녀 자신의 "도덕 불감증"에 대해 비난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유키호는 류지가 죽는 것을 눈 빤히 뜨고 봤으면서도 모르는 사람이라면서 유유히 사라졌고, 미후유는 마사야의 죽음을 남편 될 사람 입으로 전해 듣고는 환상 같은 밤이라면서 미소짓는 여자다. 소설은 문학적 장치로 그녀들의 모습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어여쁘고 아름답기만 한 그녀들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얘기다. 작가는 의도하지 않았을지 모르겠지만, 독자는 그들의 모습을 일종의 사회적 풍자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받기만 하고 주지는 않는 것들, 욕망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것들, 우리 주변에 찾아 보면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장님 김용철 변호사가 이야기하는 진실의 단면  

사실 오늘 서점에 간 이유는 이 책을 읽기 위해서였다. 삼성 비리 폭로 사태가 촉발된 지 거진 3년이 지난 지금, 서점가에서 화제가 된 이 책의 표지만 보고 든 생각은 "제목 참 잘 뽑았다"였다. 생각한다는 행위에는 원망도, 비난도 담겨 있지 않다. 그저 사유와 비판이 있을 뿐이다. 김용철 변호사라는 인물을 그저 표면적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이라 해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나 역시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감정과 분노를 벗어난 객관적인 사유가 담겨 있기를 기대했었다. 그러나 내 기대가 너무 컸을까, 아니면 김용철 변호사의 비탄이 더 컸을까. 적어도 내 눈에는 그의 잣대가 한치의 벗어남 없는 수직을 그렸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다만, 이 책을 나더러 말하라면 "장님 코끼리 만지기"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이유는 필자의 독특한 배경 때문이다.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에 대해 "객관적으로" 서술할 수 있는 위치에 서 있지 않다. 그의 폭로에 의해 삼성에 기소된 혐의들은 하나하나 무죄 처리가 되어 빠져 나갔고, 최근 정부가 단행한 이건희 특별사면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우리 국민들은 모르고 있지 않다. "목숨을 걸고" 폭로에 나섰다는 필자의 심정은 참담했을 것이다. 적어도 감정적으로 필자는 삼성에 대해 자유로울 수가 없다. 온전한 코끼리의 모습을 보기에는 분노라는 색안경이 가리고 있기 때문에, 그도 결국 장님이 되어 코끼리를 만지고 있는 것이다. 김용철 변호사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에 의해 이건희 일가와 가신 집단이 가진 비도덕성, 각종 비리들이 폭로되었지만 아직까지 삼성은 국내 최고의 기업집단으로 군림하고 있고 그로 인해 이미지가 실추되지도 않았다. 모든 것이 백일하에 밝혀졌지만 화사하게 미소짓는 유키호와 미후유의 모습에서 삼성을 본다면 억지일까? 그러나 필자가 그리는 삼성은 분명히 "도덕 불감증"이라는 병에 시달리고 있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장님이 만지는 코끼리가 가짜인 것은 아니다. 그가 만지는 코끼리의 털과 피부의 감촉은 적어도 그에게는 생생한 진실인 것이다.  

생각하자, 생각하고 또 생각하자 

우리는 지금까지 삼성을 어떤 이미지로 생각해 왔을까?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리 폭로 사건 이후로 사회 각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맹목적으로 감싸는 목소리가 있었는가 하면, 엄정한 수사를 통해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런 것에 관계 없이 여전히 삼성을 동경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삼성을 생각한다]를 나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에 비유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시도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장 크게 경계할 것은 장님인 것을 핑계삼아 만지려고도 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 필자가 진실의 단면만을 드러내 보였다고 해도, 단면이 수없이 모이면 온전한 모습에 가까워진다. 우리들은 기업으로서의 삼성을 사유하기보다는 각종 매체에 의해 주입되는 이미지에 매몰되는 것에 익숙해졌다. 주기만 하고 받지는 않는 [백야행]의 남주인공처럼 말이다. 삼성도 이제는 동경의 대상이 아니라 사유의 대상으로 삼아 보면 어떨까. 끈질긴 추격 끝에 유키호의 정체를 밝혀낸 형사가 그녀를 떠나 보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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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 10일이면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서점을 뒤지던 때도 있었건만, 요즘 라이트노벨 시장엔 한마디로 물건이 별로 없다. 애 보기에 바쁜 나 대신 라노베를 공급해 주는 건 주로 남편과 그 친구였다. 매번 고맙게 받기는 하지만, 남이 골라 주는 거랑 내가 직접 나서서 고르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게다가 골라다 주는 건 왜 하나같이 남성향이냔 말이다.  

다행히 요 몇년간은 달님공주도 제 생활리듬을 만들어 준 탓에 나에게도 짬짬이 노는 시간이 생겼다. 비는 시간엔 공부하고, 애보고, 이력서 쓰고 떨어지는 영양가 없는 일과를 반복해 오는 동안 없던 짜증이 솟는다. 젠장, 책이라도 마음껏 사보자. 이왕이면 내 취향에 맞는, 닭살이 돋다 못해 하늘로 날아갈 듯한 소녀 취향도 좋고, 심장 떨리는 추리괴기물도 좋다. 내용 하나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낄낄 웃음만 삐져나오는 코믹물도 대환영이다. 내는 이력서마다 줄줄이 떨어지는 이 우울한 일상을 잊을 수만 있다면! 그래서 골랐다. 완벽하게 내 취향으로. 

항설백물어, 교고쿠 나츠히코, 비채, 2009 

내 생각에 이 양반은 독자 골탕 먹이는 게 취미인 것 같다. [우부메의 여름]을 보려면 몇십 장에 걸치는 주인공의 수다를 다 읽어야 한다. [망량의 상자]나 [광골의 꿈]은 [우부메의 여름]의 분량의 딱 두배다. 마치 독자더러 "너네 어디까지 읽을 수 있는지 한번 보자" 하고 놀리는 것 같다. [항설백물어]의 경우도 한숨 나오는 분량이지만, 서로 다른 에피소드로 나뉘어 있는 방식이라 읽는 데 어렵지는 않았다. 첫머리에 귀신 얘기부터 나온다고 기죽지 말자. 이 양반은 독자 겁줘 놓고 "쟤네 놀랜다, 쟤네 놀랬어!" 하고 뒤에서 박장대소하는 타입이다. 오기를 갖고 끝까지 읽다 보면 귀신보다 더 무서운 건 작가 당신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다. 애니메이션 제작도 되었다고 한다. 한번 보고는 싶은데 무서워서 볼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우부메의 여름]도 영화화 되었다는 소식은 벌써 들었는데 보지는 못했다. 에노키즈 역에 무려 아베 히로시가 캐스팅됐는데!  

대역 백작 시리즈, 세이케 미모리, 학산문화사, 2009 

오랜만에 화려하고 달달한 소녀 취향 책을 골라 보겠노라는 일념 하에 고르고 고른 회심의 주문품목. 기대한 만큼은 아니었지만 남주인공이 바라던 만큼의 훈남이라 읽는 보람은 있었다. 왕자에, 괴도에, 쌍둥이 오빠에, 보기만 해도 마음이 흐뭇해지는 남자들이 아름다운 왕궁을 거닐고 있는 걸 보자면 그 동안 남성향 하렘물에 황폐해졌던 마음이 정화되는 듯한 기분이다. 오랜만에 끈적한 러브씬이 별로 없는 것도 마음에 든다. 걸핏하면 물핧빨로 돌입하는 러브물만 봐 와서 그런지 이렇게 다가갈 듯 말 듯하는 관계도 산뜻하니 좋다. 철모를 시절엔 이런 관계 설정이 답답할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이런 설정 자체가 십대물의 정석이라는 걸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주인공들끼리 뽀뽀하는 건 줄창 그려대도 베드씬은 절대 안 그리겠다는 작가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게 이해가 간다. 소녀만화는 자고로 감질나게 그리는 게 정석이라니까. 어, 그러고 보니 이거 요새 신간 나오지 않았나? 

어느 비공사에 대한 추억, 이누무라 코로쿠, 서울문화사, 2009 

이건 내가 고른 게 아니고 남편이 회사 연수 갔다가 재밌다면서 준 책인데 읽는 데 하룻밤을 꼬박 새웠다. 아 씨 이거 누가 썼어, 누군진 몰라도 내 취향을 완전 찔렀네? 주인공이 남자고 히로인이 청순가련 공주님이길래 또 남성향이려니, 했다. 그런데 작가를 보니 자극적인 설정으로 독자를 완전 홀딱 녹여 놓고서 처음부터 끝까지 하악하악하게 만들다가 깔끔하게 한권으로 마무리지을 줄 아는 포스의 소유자다. 애엄마인 나를, 그것도 아침 새벽바람부터 일어나 남편 밥 차려줘야 하는 초보엄마에 쓰는 이력서마다 줄줄이 떨어지는 고달픈 취업준비생인 이 나에게 날밤을 새게 만들다니, 제법이군 작가! 이번에 신간이 나왔다는데 사주지 않으면 이건 작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고로 이번 연가 시리즈는 꼭 사야 하는데, 이번 달 생활비를 꼽아보니 입에 당장 풀칠할 게 없었다. 그런데 이게 왠일, 오늘 알라딘 계정을 아무 생각 없이 열어 보니 난데없는 3만원이 적립되어 있다. 이번주 영화 리뷰 당선 축하금이란다. 크흑, 고맙다, 알라딘! 그런데 내 이력서는 왜 떨어뜨리니.   

책을 사 놓으니까 저녁 시간을 재미나게 보낼 수 있어서 좋다. 그런데 문제는 내 독서 방식에 있다. 재밌다고 한꺼번에 한권씩 읽어 버리면 대체 며칠을 버티려고? 결국 지난번에 사 놓은 책은 다 읽어 버리고 이젠 읽을 게 없다. 이번에 적립금이 나와 줘서 다행이다. 3만원 갖고 무슨 책을 살까나, 흥흥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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