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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미인 1 ㅣ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0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 지음, 최세희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7월
평점 :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읽으실 때 주의하세요>
작년에 구입한 PSP 게임 [당신을 용서하지 않아]를 클리어하고 난 후로 한동안 잠을 못 이룬 적이 있었다. 순간순간이 뇌리에 딱 박혀서 자면서까지 주인공 둘이 보트에 흘러가면서 나누던 대사를 몇번이고 되뇌였는지 모른다. 떠난 줄 알았던 남편이 실은 말기 암환자였고, 아내는 죽어가는 남편을 머리맡에 눕히고서 그들이 이룰 수 없었던 꿈을 하염없이 중얼거린다. 결혼하기 전에 당신이 말했지. 아마존에 보트를 같이 타러 가자고. 미안해, 안 들려. 못 들어도 괜찮아. 그리고 아내는 의식을 잃어가는 남편의 머리를 끌어안은 채 말못하는 남편과 끝없이 대화를 나누며 흘러가는 배에 몸을 맡긴다.
[렛미인]을 덮고 나서 기분이 딱 그랬다. "May I come in?" "Yes." 수키 스택하우스 시리즈에도 비슷한 설정은 있다. 주인의 허락이 없으면 그 집에 들어갈 수 없다는 룰은 여기에도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여기서의 요청과 허락은 단순히 마음의 벽을 허무는 데 있다. [렛미인]의 경우는 조금 더 강렬한 의미다. 필요가 없는 한 사람을 해치지 않는 빌과는 달리 엘리는 분명히 살상력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엘리는 여타 뱀파이어 로맨스물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깔끔하지도, 세련되지도 않다. 에드워드나 빌이 보면 천리만리 도망칠 듯한 지저분한 몰골에 제대로 된 집도 없이 아무 인간에게나 기생해서 살아가는 식객 신세. 관에서 자는 건 차라리 양반이다. 엘리의 은신처는 어두컴컴한 아파트 구석의 '피에 잠긴 욕조'니까. 설정도 제대로다. 엘리에게 물리면 그 즉시 뱀파이어 직행이다. 가장 최악인 것은 엘리가 항상 굶주려 있다는 것이다. 열두 살의 외모에 비해 조금이라도 굶으면 그 예쁘다는 얼굴의 몰골이 초췌해지고 없던 새치까지 휘날린다. "비참하고, 역겹고, 고독한" 그야말로 우리가 생각하는 무시무시한 뱀파이어의 모습 그대로다. 빌이 "들어가도 되겠소?" 하고 물었을 때 수키의 심정은 어땠을까? 물론 무서웠을 것이다. 이 남자 들여놔도 될까? 그렇지만 오스카르만큼 목숨을 걸고 허락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빌은 사람 피를 빠는 대신 우아하게 합성혈액을 가방에 넣고 다니지만, 엘리는 사람 목을 물고 쭈쭈바 먹듯 쭉쭉 빨아대는 리얼 뱀파이어니까.
이 소설의 매력은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구질구질하고 헐벗었다는 데 있다. 오스카르는 허구헌날 괴롭힘을 당하고 사는 학교 왕따에, 편모슬하에서 도둑질을 밥먹듯 하는 최악의 주인공이다. 주인공을 괴롭히는 아이들도 각자의 문제를 안고 산다. 엘리에게 기생당해 사는 호칸은 소아성애자인 데다 잇달아 성범죄를 일으키고 다니는 탓에 직장도 잃고 가정도 잃었다. 이들이 얽히고 설키며 전개되는 사건은 혐오스러움과 공포의 절정이다.
하지만 공포와 잔인이라는 단어를 한데 뭉쳐 시궁창 속에 빠뜨린 듯한 사건과 사고들 속에서 주인공들의 로맨스는 빛을 발한다.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 피어나는 둘의 은근한 관계는 황순원의 [소나기]를 연상케 한다. 엘리는 굶주려 있고, 자신의 존재성에 대해서도 '그냥 그런 것'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잔혹하지만, 오스카르의 피는 탐하지 않는다. 오스카르 역시 엘리의 존재가 살떨리게 무서우련만, 망설임과 공포심을 무릅쓰고 그가 결국 선택한 것은 엘리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아이들이 모르스 부호로 소리 없는 이야기를 나누고, 인간의 피 없이는 살 수 없는 엘리가 살육과 추격으로 얼룩진 일상을 벗어나 맘 편히 또래와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은 오스카르의 더럽고 작은 방이다. 자신에 대한 추격이 점점 가까워짐을 깨닫고 오스카르 방 벽에 붙여 있는 모르스 부호표를 떼가는 엘리의 모습은 차라리 짠하다. 오스카르는 뱀파이어인 엘리의 정체를 알았고, 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묘한 살인 사건들의 원인을 확실하게 깨닫고 있다. 그렇지만 엘리를 향한 마음은 거둘 수가 없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는 부모와 도망칠 길 없는 학교에서의 따돌림으로 점철된 일상을 지키느냐, 모든 것을 버리고 엘리를 선택하느냐, 오스카르에게는 두 갈래의 갈림길이 놓여져 있다.
소설의 엔딩은 논란이 많았다고 들었다. 오스카르의 선택은 아름답고 감동적이지만, 결국은 호칸이 그랬듯이 조력자 신세로 전락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은 지금 막 책을 덮은 나로서도 부정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작가는 그러한 부정적인 견해를 적극 부인함으로써 이들 커플에게 펼쳐질 희망적인 미래 또한 암시하고 있다. 오스카르와 엘리는 각자 선택을 했고, 선택의 결과는 이제 운명의 몫이 되었다.
영화를 보지 못해서 공포영화다운 부분이 어떨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뱀파이어들의 또 다른 로맨스를 기대하고 산 나로서는 간만에 물건 한번 잘 골랐네, 하는 흐뭇한 심정이다. 살이 찢기고 피가 튀는 그로테스크한 잔혹을 보고 나서도 가슴 한켠에 공포 대신 따스한 감정이 솟아나는 책. 혹여라도 이 책을 읽을지 말지 고민하고 있을 이에게 망설이지 말고 한번 읽어 보시라고 적극 추천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