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1월 2주
아바타 - Avata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달님공주가 유치원을 처음 갔을 적 얘기다. 갑자기 온라인 게임 마비노기(이하 마비)가 급땡기기 시작했다. 출산 전에 한달 정도 쓰다가 버려 뒀던 계정을 꺼냈다. 서버를 옮겼다. 내친김에 쥐뿔도 모르면서 엘프 캐릭터 카드까지 확 질러줬다. 그리고 나의 뻘짓이 시작되었다. 

엘프 검사, 땅을 파다 마비에서 엘프는 원거리 공격에 특화된 종족이다. 글쎄 뽀대가 전부가 아니라는 남편의 말을 가벼웁게 씹어 주고서 검을 샀다. 맥뎀(Max damage) 50 간신히 넘는 정도였지만 개의치 않았다. 내가 게임하는 재미는 옷갈아입히기였지 전투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어느날 남편과 함께 라인알트를 돌다가 최고급 가죽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한장에 2만 골드씩 팔린다니... 아르바이트로 먹고살던 나에게는 최고급 가죽의 존재는 신세계였다. 전투의 전자도 모르던 내가 드디어 검을 들었다. ...비 내리는 배경의 라인알트에서 말 그대로 비오는 날 먼지 나게 맞았다. 가죽은커녕 치료비만 왕창 뜯겼다.  

던바튼 1채널, 이불을 걷어차고 싶을 만큼 창피했던 초랩시절 던바튼에서 처음 염앰(염색 앰플)을 팔던 기억도 죽도록 창피한 경험으로 남아 있다. 파티창을 띄우고 앉아 있으려니 누가 사겠다며 파갑(파티가입)을 해왔다. 은행에 갔다 오겠단다. 거기까진 좋았다. 누군가가 다시 다가왔다. 사겠단다. 당연히 아까 그 사람인 줄 알고 팔았다. 그런데 왠걸, 팔고 나니 파갑해 있던 사람이 돈 뽑아 왔다면서 독촉을 해 오는 게 아닌가. 아차 했다. 팔겠다고 해 놓고 전혀 딴 사람한테 팔아 버린 거다. 파티창도 열어 보지 않고, 먼저 왔던 사람의 아이디를 체크해 놓지 않은 내 잘못이 컸다. 돈 받기 전에 팔았으니 망정이지, 선불로 받고 거래를 했었더라면 눈총 깨나 받았을 거다.  

★나는 천성적으로 겁이 많은 성격이다. 던전, 머리칼이 쭈뼛 서게 무서웠다. 남편이 라비, 키아를 몇바퀴씩 도는 동안 나는 양털이나 열심히 깎았다. 그러던 내가 던전을 들어가게 된 것은 순전히 돈에 눈이 어두워서였다. 라인알트에서의 경험으로 가죽이 초랩에겐 꽤나 짭짤하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마스던전 한번 들어갔다 나오면 일반가죽 20여장에 간혹 나오는 고급 가죽, 그리고 코볼트 아처가 간혹 떨구는 역챈들을 팔면 하루에 2만, 운이 좋으면 7만까지도 벌 수 있었다. 이때쯤 레인지는 겨우 숫자 랭크를 찍었고 나는 간이 좀 부어 있었다. 

내 아바타는 용감했다 마비에는 하루에 일정 시간 간격으로 출현하는 대형 보스가 있다. 이 보스는 잡기도 어렵지만 보상품이 짭짤해서, 싸게는 몇백 골드에 비싸게는 마비 돈으로 천만 가까이 나가는 레어 아이템도 기대할 수 있다. 당연히 이들 보스가 출현하는 시간에 맞춰 많은 유저들이 아이템을 노리고 정해진 필드에 모인다. 이걸 레이드라고 한다. 

내 첫 전리품은 화려했다. 일명 둘리라 불리는, 평원 드래곤을 잡고 났더니 15만 골드짜리 아이템이 떨어진 게 아닌가? 신이 나서 다음 레이드에도 참가했다. 일주일에 한번 출현한다는 그 이름 찬란한 사막 드래곤이었다. ...내 앞에 떨어진 아이템은 어벤저 역템, 무려 100만 골드짜리였다. 나도 놀랐지만 옆에서 보던 남편 눈이 뒤집혔다. 한동안 우리는 남는 시간을 모두 투자해 레이드를 달렸다. 결과는? 가진 재산 다 날렸다. 내 행운은 그걸로 끝났는지, 그 이후 값나가는 아이템을 건진 일은 거의 없었고 레이드 나가면 족족이 죽었다.

돈? 그딴거 아끼지 말자 뭐든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한참 열중해 있다가도 어느 순간 "아 내가 미쳤구나" 싶은 때가 있다. 작년 연금술사 시즌이 시작되면서 사라진 VIP제도는 내게 마비노기에 대한 쓰디쓴 회의감을 심어준 사건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마비노기는 6개월 동안 끊김없이 정식 서비스를 유지한 고객을 기준으로 일명 VIP를 선정해 한달에 한번씩 희귀 아이템을 주곤 했다. ...그걸 한번 타먹어 보려고 판타지 라이프 패키지를 6개월이나 끊었었다. VIP까지 딱 한달 남았다! 하는 때 웬걸, 서비스 개편한단다. VIP 폐지한단다. ......지금 생각해도 속에서 열불이 끓는다.

그래서 나는 제이크를 이해한다 영화를 보는 관객이라면 한번쯤은 자신의 온라인 생활을 되돌아 보았으리라 믿는다. 영화 속 아바타와 인간의 관계는 게임 캐릭터와 유저의 그것을 빼다 박았다. 주인공은 게임 접속 대신 아바타 시스템을 통해 가상과 현실을 넘나든다. 영화 중간에 기록영상을 찍으며 충혈된 눈을 비비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나는 마비를 플레이하다가 간혹 화면 옆에 뜨던 "장시간의 온라인 게임은 삼가합시다"라는 사념파를 떠올린다. 하루에 몇번씩 마비 접속하고, 애 재우자마자 던전 돌고, 멧돼지 잡으려고 밤새 뺑뺑이를 돌아도 하나도 피곤하지 않던 그때가 생각난다. 그러나 게임 속 내 아바타의 모습은 실제 내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예쁘고 날씬하지도 않고, 타이틀도 없고, 인벤토리 안엔 꿍쳐둔 희귀아이템이 포진을 하고 있건만 내 통장 잔고는 더없이 초라하기만 하다. 제이크는 지구상에 수없이 존재하는 게임 유저와 슬프도록 닮았다. 판도라의 아름다운 자연을 숨가쁘게 뛰노는 제이크의 아바타와, 정작 휠체어에 의지해 움직이지도 못하는 장애인 제이크를 대조해보라. 누군들 공감 못할까?

재미있었지만 개인적으로 약간 곤혹스런 마무리 영화의 마지막은 제이크와 네이티리의 현피 뜨기로 끝났다.(웃음) 엔딩이 꼭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게임 속 아바타가 좋다고 아바타가 되어버리다니 그건 좀 아니잖아? 내가 이렇게 말하니 남편이 웃더라. 

[타이타닉] 이후 처음 만나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아바타]로 다시 한번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듯싶다. 어디서 보니 미국 박스 오피스 역대 흥행 3위를 눈앞에 두고 있단다. 아직까지 보지 못하신 분들은 끝물이라 생각지 마시고 한번 구경이나 해 보시길. 뻔한 스토리지만 볼만한 건 우릴 만큼 다 우려낸 올해의 오락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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