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웃집에 무지 큰 개가 한 마리 있습니다. 동네에선 한마디로 "미친개"라고 통하는 녀석인데요, 성질도 지랄맞은 데다 사람도 심심찮이 물어 놔서 이제는 짐승보단 사람이 슬슬 피하는 지경이랍니다. 주인도 한 두번 바뀌었고요. 

이 녀석 첫 주인은 사람이 참 순했어요. 순하다 못해 좀 등신같아 보일 정도였죠. 개가 지랄을 떨면 야단을 치는 게 아니라 사람이 살살 기면서 되려 개를 달래더라고요. 그냥 한번 확 쥐어 박으면 될 일을 어르고 달래고 여차하면 먹을 것까지 동원해 가면서 개한테 그렇게 살뜰히 대했어요. 동네 사람들이 죄다 뭐라고 했어요. 그냥 어디 갖다 주던지, 이도 저도 아니면 버리기라도 할 일이지 동네 사람 어디 살겠냐고요. 암튼 개도 개지만 개주인도 참 대책 없었던 걸로 기억해요. 

근데 어느 샌가 주인은 어디 갔는지 안 보이고 사람만 바뀌었더라고요. 아마 어디 이사를 간 모양인데 개는 못 데려간 것 같더라고요. 아무튼 지금은 주인이 바뀐 상탠데 이게 또 난감하게 됐어요. 아니, 예전보다 더 무서워요. 미친개도 미친개지만 주인 때문에 진짜 돌아버릴 것 같아요. 

오죽하면 별명이 미친개겠어요? 저도 개 키워 봤지만 기르던 짐승 두고 가는 거 기분 진짜 드럽거든요. 옛날 주인 아저씨가 고생은 좀 했겠지만 그래도 맘은 편하지 않았을 거라고 믿어요. 근데 이번 개주인은 완전 대책 없어요. 진짜 개에 대해서 너무 몰라요. 가만 보면 사람이 개하고 바락바락 싸우는데 보고 있자면 내가 화나요. 개한테 시끄럽다고 야단을 하는데 정작 자기가 더 시끄러운 건 모르나봐... 가만 보면 개를 야단치는 게 아니라 개를 약을 올려요. 말로만 왁왁 떠들고 가끔 때리는 시늉도 하는데(자기도 무서워서 진짜로 건들지는 못하구요) 그게 짐승한테는 더 약오르는 거 아닌가요? 보고 있자니 내가 속이 터져서 진짜. 

근데 더 무서운 게 뭔지 아세요? 어제 슬쩍 보니까 개밥을 안 주더라고요. 버릇 고칠 때까지 물도 안 주겠대요. 어제부터 애가 쫄쫄 굶고 앉아 있는데 진짜 눈에서 살기가 뚝뚝 흘러요. 어린애 데리고 그 근처 지나가기 겁나요. 개 잘 묶어 놓지도 않았어요. 어쩔 땐 정말 사납게 짖는데 농담 아니고 그러다 줄 끊어질까 봐 무섭다니까요. 진짜에요. 개도 개지만 주인이 더 나쁜 놈이에요. 저러다 사고라도 나면 책임질 것도 아니면서... 문도 제대로 닫아 놓지도 않는다니까요? 저러다 누구 하나 저 개한테 물려서 사고 나는 거, 순식간이에요. 내가 보기엔 그래요.  

동네 사람들 중엔 개 주인 바뀐 거 갖고 오히려 잘됐다고, 저딴 놈은 좀 굶어 보고 맞아 봐야 정신 차린다고 하는 사람들 있는데 전 그 사람들이 더 이해가 안가요. 그 주인 아저씨 되게 얍삽하거든요? 자기 개한테 누가 물렸다고 따져봤자 사과할 사람 절대 아니구요. 내 개 아니라고 뻗대거나 공연히 물린 사람 탓하거나 아예 딴 데로 도망가면 도망갔지 절대 책임은 안 질 아저씨예요. 근데 잘한다는 거예요. 먼젓번 주인이 너무 무르게 대해 놔서 개가 사람 무서운 줄을 모른다는 거예요. 저도 얼마 전까진 그전 주인이 되게 병신같아 보였거든요? 근데 일이 이지경 되고 보니까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요. 누가 알아요? 언제 저 개가 줄 끊고 나와서 누구 피를 볼지. 

우리 동네엔 미친개가 있어요. 그건 분명해요.  

그리고 그 개를 어르고 달래면서 어떻게든 사고는 내지 않으려고 애썼던 주인과, 저딴 놈 한번 당해 봐야 한다면서 앞뒤 생각 없이 개를 도발하는 주인이 있었어요. 

어느 쪽이 더 현명한 대응을 한 걸까요? 

 

이제 와서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해요. 전 절대 우리 애 데리고 그 개 얼쩡거리는 골목에 안 갈 거예요. 코빼기도 안 비출 거구요. 적어도 그 골목에 다니는 사람 중에 저 하나는 확실히 빠지는 셈이죠. 누가 알아요? 그 골목 아예 유령 골목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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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4일 모처 발표날, 합격 소식을 받았다.  

완전히 들떠서 그날은 혼자서 웃고 구르고 지랄 발광을 하면서(;;;) 쌩쇼를 한 다음 남편하고 축하 겸 영화 한편을 때렸다. 

그리고 어제도 달님공주를 대동하고 케로로 극장판을 보러 갔다 온 다음 집에 와서 다들 엎어졌더랬다. 

그런데 심부름 갔다 온 남편이 툴툴거리는 거였다. 나더러 셔츠 하나 빨아 달라고 애걸복걸해야 하는 게 싫다나? 난데 없이 왠 셔츠야? 싶기도 했지만 요새 내가 좀 그랬(...)던 건 사실이다. 이력서 쓰는 날은 하루 종일 혼자서 동동거렸고, 떨어진 날은 우울해하고, 또 이력서 쓰면서 반복되는 나날 동안 집안일을 살필 여유가 전혀 없었다. 뭐 내가 죽어라고 싫어하는 탓도 있지만...;;; 

사실 말이 그렇지 와이셔츠라는 게 참 귀찮은 물건이다. 일단 세탁기로 돌리는 게 안 되므로(지난번 실험으로 확인 마침-_-) 일일이 손빨래 해줘야 하고, 탈수해서 꺼낸 다음 딱딱 각이 살도록 다려 줘야 한다. 내 방도 귀찮아서 안 치우고 살았던 궁극의 귀차니스트 달님엄마가 과연 그딴 귀찮은 짓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까지 한 것만 해도 용하구만! (...........) 

근데... 쬐끔 미안한 마음도 든다. 애걸복걸할 것까진 없는데... 훗 역시 당신은 나의 지니?(...)

일거리도 생겼으니 슬슬 집안일도 챙겨 줘야겠다는 생각이 아주 쬐까 드는 오늘이다. 근데 하필 빨래 하려고 맘먹은 날 비가 오잖아? 때려 치라는 하늘의 계시ㅇ (남편한테 입막힌채 끌려간다) 

아무튼 오늘의 주제는 이것. 

  

 

붙었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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夢影 2010-05-06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해 축하해. 와!!! 내가 막 기분이 좋다!!!! 근데 셔츠 빨래는 정말 귀찮지! 나는 내꺼만 빠니까 씻으면서 그냥 빠는데...
 

얼마 전에 이런 충격적인 기사를 봤다.  

왜 내가 좋아하는 남자들은 끝이 다 이러냐? 남편한테 말했더니 갈갈 넘어간다.  

나: 당신! 얘들한테 밤마다 저주했지? 윌리엄 대머리 까져라, 석호필 뚱땡이뚱땡이 그러면서 저주했지? 물어내! 물어내란 말이야!  

남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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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내가 저주했다 그래! 

윌리엄 네 아버지가 누구냐, 네 아버지를 기억해라, 호필아, 피자 안 땡기니, 삼겹살 먹고프지 않니 

저주한 게 바로 나란 말이다아아아아  

 

 

 

윌리엄, 나의 왕자님이었는데... 석호필, 작년 한해를 흐뭇하게 만들어준 꿈의 주인공이었는데에... 

하여간 이눔의 남편 땜에 되는 일이 없어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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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윌리엄, 장가 가냐?
    from 공부하는 달님엄마 2010-04-13 09:56 
    오늘자 매경에 이런 기사가 떴다.  물론 난 얘보다 훨씬 먼저 결혼했지만(...) 그래도 섭섭은 하다. 젠장, 내 청춘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니 왠지 슬퍼 ㅠㅠ 그래도 상대가 패리스 힐튼이 아니라 정말 다행 <-   슬프지만, 추카추카 윌리엄, 잘가라 ㅠㅠ  난 이제 우리 롭군이나 예뻐해 줘야지 흑흑 (근데 얘도 임자 있는 애였네 이런 
 
 
 

요새 딕울프식 막장드라마 로앤오더 SVU시리즈를 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남자와 마초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일단 여기서 나오려는 한숨을 참는다) 

사실 결혼 전, 다시 말해 지금의 남편과 사귀기 이전에는 나에게도 남자친구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존재했었고 그 중 대부분은 다분히 순정틱한 것이었다. 적어도 등에 꽃을 매달고 후까시와 매너에 넘쳐 사는 온실 속 꽃돌이는 아니더라도, 그렇다고 말끝마다 오 마이 스위티 허니를 달고 사는 느끼남까지는 바라지도 않았지만, 그 많은 환상들 속에서 '당연하게도' 대부분의 남자들이 가진 마초성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었다.  

그러던 중 당시의 남자친구를 사귀게 되었고, 머지 않아 내가 고이고이 간직해 왔던 대부분의 꽃돌이 이미지들은 현실이라는 시궁창(?!)에서 와장창 와장창 순서대로 아작나 버렸다. 많고 많은 사건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나를 가장 슬프게 했던 것은 교제 전부터 남편이 표방해 온 자신의 마초성이었다.(사실 말하면서도 조금 울분을 느끼고 있다) 분명히 나는 교제를 시작할 때 분명히 말했었다. 사귀더라도 예의는 지켜주세요. 애인사이라고 확 말 놓기 없기에요.  

남편은 내가 사귀자고 말했을 때 무지 좋아했다고 한다. 나중에 들어보면 친구한테도 나 고백 받았다고 자랑문자 닭살 돋히게 날려대면서 아주 생난리를 피웠다는데, 너무나 기뻐서인지 그 뒤에 내가 한 말은 잘 안 들렸나보다. 물론 연애 초기에는 우리 마초가 그나마 품위를 지키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달수가 흐를수록, 이놈의 영감탱이가 내 눈치를 봐 가면서 은근슬쩍 말을 놓는 것이었다! 어느 순간에는 완전히 말을 텄다. 나는 아직도 존대를 하고 있는데! 남자들은 아니라고 우길지 모른다. 그렇지만 여자들은 안다. 자기들이 생각할 때는 아무렇지 않은 일인지 몰라도, 이런 사소한 일상에서 은근슬쩍 고개를 내미는 남자들의 마초성을. 아무튼 여자한테 꿀리고 살 수는 없다는 유치한 유아적 마초성에서부터 어떻게든 남들 위에 서고 보자는 전투적 마초성까지 그 형태는 다양하다.  

그런데 옆에서 보면 그거 되게 웃긴다. 웃겨서 어쩔 때는 배꼽이 땡긴다. 근데 본인들은 진지하다. 그래서 더 웃긴다. 언젠가 누군가 우스개로 여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얘기가 남자들 군대얘기, 더 싫어하는 얘기가 군대에서 족구한 얘기라고 말한 적이 있다. 군대 이야기야말로 남자들, 그야말로 땀내나는 마초성의 절정이 아닌가. 혹자는 그래서 아예 밀리터리 라이프 스토리를 메인으로 하고 소설 속에서나마 땀내 나는 마초들을 신나게 씹어댄다. 똑같은 내용을 보고 남편은 웃을 수 없는데 나는 웃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아, 현대 사회는 비정한 평등사회.  

로앤오더 시리즈에는 여러 가지 변태들이 속출한다. 다수의 여성을 강간해 놓고 강간한 여자마다 임신 키트 뽑아가는 남성 변태도 경악스러웠지만 애들만 골라먹는 소위 소아성애자, 상습강간범, 공권력 동원해서 언론 플레이 하는 변태들... 꼽자면 한이 없다. 강간은 힘의 원리를 전제로 한다. 약육강식이다. 이런 마초들은 소위 "썩은 꽃이 달린 마초"로 분류된다. 같은 남자들에게도 이런 마초는 혐오의 대상이다. 그럼 혹자는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이런 것들 갖다 뭐에 써?"  

여기서 주목해야 할 대상은 오늘의 '한떨기 가녀리고 련략한 마초' 되겠다. 세상에 다수 존재하는,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하고 여상한 마초들 말이다. 얘들도 기본적으로는 남자로 태어난 이상 남자만이 가질 수 있는 로망이 있고 남자답기를 바라며 남자들이 가진 사회적 우위를 포기하기 싫어한다. 그런데 얘들이 아무리 해도 벗어날 수 없는, 벗어나기 불가능한 굴레가 있다. 바로 책임감이다. 그놈의 자존심이 뭔지, 굶어 죽으래도 시궁창에는 구르지 않겠다! 는 그놈의 웬수같은 자존심이 그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내가 몰래 바람을 피워서 밖에서 애를 낳아 와갖고는 남편을 감쪽같이 속여 자기 애로 믿게 만들고 자신과 아이를 위해 뼈빠지게 고생하게 만든다 해도, 남편은 직장을 때려칠 수 없고 애를 패대기칠 수 없고 이혼장도 내밀 수 없다. 왜? 가장의 책임감이 있으니까, 사회적 법규가 그러니까, 빌어먹을 법률에 뎀잇와이프와 이혼을 하더라도 양육비는 칼같이 부쳐줘야 하며 위자료까지 지불하라고 해놨으니까, 하물며 와이프는 지금까지와 같이 '즐겁게' 남친과 러브라이프를 즐길 수 있다. 왜? 세상은 자유평등 민주주의 사회니까. 누구랑 사귀든 내맘이라고 뻗대면 그만이잖아? 물론 극중 남편은 총부림을 해서 와이프를 살해하고 끝냈지만, 대부분의 심약한 우리 남성 동지들은 이런 극단적인 선택이 쉽지 않다. 그저 눈물을 삼키며 이혼장과 도장만 내밀 수 있을 뿐. 이런 애들은 보호 대상이다. 된장남 초식남이 등장하고 남성사회에도 지각변동이 시작된 지금, 그래도 끝까지 자존심 하나로 버티고 사는 이런 마초들은 가히 "보호 대상 천연 기념물" 간판을 당당하게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혹시 집에서 이런 마초들이 꿍치고 있다면, 절대 버리거나 방치하지 말기를 바란다. 겉보기에 튼튼해 보일지 몰라도 속은 세파에 찌들어 있고 군데군데 찢어져서 남몰래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 터이니, 혹시 이런 마초꽃을 보신다면 급히 손질해 주시고 모자란 수분을 보충해 주시기를. 오냐오냐 해줬더니 태도가 꼽고 하는 짓이 지랄맞아요. 하는 주인분의 하소연도 있을지 모른다. 참자. 아무리 화가 치솟더라도 얘들은 보호 대상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머지 않은 때에 멸종할지도 모르잖은가? 버릇이 없으면 버릇이 없는 대로,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요는 교육이다. 좋은 마초란 다른 것이 아니다. 주인이 어떻게 기르느냐에 따라 다른 것이다. 다행히 얘들도 짐승은 아니니(?!?!) 가르치면 또 잘 알아 듣는다. 참으로 기르기에 매력적인 식물이 아닌가?  

개인적인 경험을 기반으로 하므로 태클은 정중히 사양합니다 

여기에 쓰여진 "마초"란 단어의 의미와 개념은 매우 협소하고 개인적인 것임을 아울러 밝힙니다. 제공해 주시는 팁은 기꺼이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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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인 아파트 같은 동에 연예인 A씨가 산다. 처음엔 몰랐는데 엘레베이터에서 딱 마주치고선 식겁한 적이 있다. 근데 놀라야 될 사람은 나일 텐데 그 분도 같이 뻣뻣하게 굳어 있더라. 얼마 전에 부인도 같이 본 적 있는데 TV에선 좀 통통해 보이더니 실제로 보니까 완전 인형같이 이뻤다. 산후비만 때문에 입고 싶은 옷도 못 입고 손가락만 빨고 있는 내게는 얼마나 부럽고 이뻐 보이던지. 

근데 오늘의 화제는 그 분이 아니라 그 분의 어머니 되시는 할머니다. 아들 인물이 좋아서 그런지 할머니도 하얗고 깔끔한 태가 나는 노부인이시다. 근데 내가 이 분께 대단한 실례를 해버렸다. 

언제쯤인지 벨이 울리더니 누군가가 친정엄마와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단밤을 몇봉지 주시는 걸 누구냐고 여쭤봤더니 무슨무슨 층에 사시는 할머니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층에 할머니가 계시던가, 싶어서 다시 물어보니 엄마가 왜 그 A씨네 있잖아, 하고 슬쩍 눈치를 줬다. 거기서 내가 엄마의 사인을 못 알아들은 게 화근이었다. 

아, 그 A네 할머니 말이지?  

농담이 아니다. 존칭도 붙이지 않고 성도 띄어먹은 채 이름만 나가버렸다(...) 이럴 땐 눈치 없는 내가 정말 좌절스럽다. 아직 문밖에 계셔, 하는 엄마 사인도 못 알아먹고 남의 아들 이름을 누구네 친구나 되는 마냥 입밖에 내버렸으니 할머니가 거기서 들으셨다면 속 좀 상하셨을 것이다. 벌써 올라 가셨으려니 하고 넘어갔던 것이 아무래도 그 후 눈치를 보니 들으신 모양이다.(...) 난 몰라 ㅠㅠ 

그 뒤로 그 할머니가 나만 보면 샐쭉해지셔서는 말씀도 안 하신다. 아예 대놓고 야단을 치신다면 모를까 그런 것도 아니니 나는 그저 그 분만 뵈면 오금만 저릴 뿐이다. 오늘도 아침에 길에서 우연히 마주쳤길래 안녕하세요, 하고 최대한 기분 좋게 인사를 드려 봤는데, 세상에 그냥 무시하셨다(...) 그렇게 큰 인사 소리를 못 들으셨을 리는 없는데, 아무래도 화가 이만저만 나신 게 아닌가보다. 

나는 연예계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래서 A씨와 가족들이 어떤 고충을 겪었을지는 알지 못하지만 아마 할머니도 그만큼 많이 마음 고생을 하신 탓이 아닐까, 하고 조심스레 상상해 본다. 엘레베이터에서 마주친 A씨의 얼굴에 담겨 있던 표정은 자기 집에서의 편안함이 아닌, 극도의 긴장감이었다. 내가 알기로 그는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인기 절정을 달리던 스타였고, 지금도 역시 건실한 이미지를 가진 대중적인 연예인이다. 굴곡 많은 연예계 생활을 큰 스캔들 없이 이만큼이나 오래 견뎠으니, 그 뒤에는 아마 그 자신의 피나는 노력과 함께 남들 앞에 이야기 못할 일도 많이 겪었으리라 생각된다. 내가 조금이라도 호들갑스럽게 굴었다면 그분에게 오히려 죄송한 일이다.  

물론 내 잘못을 거기에 핑계댈 생각은 조금도 없다. 할머니가 특별히 완고한 분도 아니고, 별것 아닌 일로 나이 어린 사람에게 퉁명스럽게 구시는 것도 아니다. 혹시라도 내 실언을 들으셨다면, 화를 내시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 일에 대해 할머니가 지금이라도 나를 붙들고 화를 내신다면, 그야말로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하고 진심으로 사과를 드릴 용의가 있다. 그렇다고 확증도 없는 일에 내가 먼저 나서서 죄송하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이고, 하여간 난감하다. 딱 바로 윗윗층에 사는 이웃인데 어쩌면 좋을까. 

*실명은 밝히지 않습니다. ^^ 

*근데 진짜 어쩜 좋아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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