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와 개구리 - The Princess and the Fr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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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기 전에 휴일에 영화 보러 가쟀더니 하루 종일 우리 공주님 입가에 웃음이 떠날 줄을 모른다. 사실 나는 이왕 저연령 대상 영화를 볼 거라면 "아스트로 보이"나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을 보고 싶었는데 공주나 천사 안 나오면 쳐다보지도 않는 우리 달님공주는 아니나 다를까 [공주와 개구리]를 선택했다. 이럴 땐 그냥 아이에게 맞춰 주는 게 속이 편하다 싶어 딸이 하자는 대로 예매를 했다. 다시 말하면, 큰 기대 안 하고 갔다는 소리다.(...)

synopsis 주인공 "티아나"는 춤과 노래, 패션과 댄스파티에 한참 열중해 있는 또래 친구들과는 달리 레스토랑 오너가 되기를 꿈꾸며 번 돈은 악착같이 저축하는 야무진 아가씨다. 한편 너무나 방탕하게 군 탓에 부모가 돈줄을 끊어버릴 지경의 막장왕자 "나빈"은 궁한 끝에 부잣집 아가씨인 "샬럿"과 마음에도 없는 정략결혼을 하기 위해 뉴올리언스를 방문한다. 왕자와 결혼하기 위해서라면 개구리와 키스하는 게 대수냐는 적극적인 마인드를 가진 샬럿은 그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소꿉친구인 티아나에게 왕자와 첫대면을 하는 파티에서 음식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그런데 파티장에 채 들어가기도 전에 왕자는 마법사 파실리에의 계략에 빠져 개구리로 변해버리고, 개구리로 변해 숨어든 파티장에서 왕자는 약혼녀인 샬럿이 아닌 요리사 티아나와 마주하는데... 

In my opinion 극장을 나온 소감은 대만족이었다. 음악도 좋았고 줄거리도 자연스러웠고 주인공도 마음에 들었다. 가장 큰 수확은 달님공주에게 수동적이 아닌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여성상을 심어 주었다는 것이다. 한없이 가녀리고 예쁘기만 한 공주님들, 작정하고 달려드는 악한들에게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하고 당하기만 하는 무력함과 "왕자"가 나타나야만 비로소 구원받고 행복해진다는 마초성이 내 신경을 그렇게 긁었는지 모르겠다. 하여간 아이가 공주라면 환장하는데도 왠지 좋아하는 대로 골라 주기도 찜찜했었다.  

감독은 단언한다. 이번엔 다르단다. 같은 2D라도 우리가 미쳤다고 똑같은 걸 갖고 왔겠느냔다. 확실히 다르긴 다르다. 2010년 디즈니의 간판을 짊어지고 등장한 주인공 티아나는 에리얼/ 자스민/ 포카혼타스와는 너무도 동떨어진,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이 시대 여성 노동자들의 애환을 공유한 현실적인 캐릭터다. 처녀 몸으로 그 큰 가게를 감당할 수 있겠냐는 건물주들의 부당한 트집도 곱다시 당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말 그대로 아무 것도 없으니까. 물려받은 재산이 있나, 뒷배경이 빵빵한가, 하다 못해 돈 많고 근사한 남자친구라도 있어 주면 좋으련만 이 친구는 이성친구 사귈 주변머리도 없다. 참 딱한 캐릭터다. 

관전 포인트는 이 딱한 아가씨가 딱한 왕자님을 만나 차근차근 쌓아가는 사랑 이야기다. 개구리가 되어버린 티아나가 열심히 노를 젓고 있을 때 뗏목 위에서 여유롭게 기타나 쳐대는 왕자 개구리의 모습은 여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순정파 남자 주인공들과는 사뭇 다르다. 따지고 보면 나빈 역시 허우대만 멀쩡할 뿐 속빈 강정 아닌가. 이런 대책 없는 왕자병 개구리를 그나마 사람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의 워커홀릭 티아나다. 드넓은 강가 위에 휑뎅그레 버려진 판국에 식칼 하나 제대로 다룰 줄 모르는 초짜 개구리 나빈을 야무진 티아나 개구리는 야채 다듬는 법 가르쳐 가며, 다지는 법 배워 주며 사람 구실(?)하라고 이끈다. 영화는 구중궁궐 왕자님이 식당 웨이트리스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코믹하고도 섬세하게 표현했다.  

가산 포인트 1. 딸아이에게 긍정적인 가치관을 심어 주는 공주님 이야기   

딸아이가 조금 더 컸더라면 같이 얘기할 수 있을 거리가 많았을 것이다. 백설공주, 신데렐라,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공주, 그 수많은 공주 이야기를 읽어 주면서 혹여라도 딸아이가 "왕자가 나타나서 결혼"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생각할까 봐 조금 염려스러웠다. 왕자의 등장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결혼 후에도 또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을 달님공주가 언젠가는 알게 될 날이 올 것이다. 현실은 누가 구원해 주는 것도 아니고 나를 힘들게 하는 모든 것이 어느 날 갑자기 없어지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고단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은 다름 아닌 본인의 끊임없는 노력과 발전에 있다는 것을 아이가 알았으면 한다. 왕자에게 구원받는 공주님이 아니라 부단히 노력하고 스스로 고난을 헤쳐 나가려는 주인공의 모습을 달님공주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궁금하다. 

가산 포인트 2. 팬이에요! 더빙판 성우님들 

애니메이션 극장판을 보러 갈 때면 더빙이냐 원어냐로 취향이 갈리기 마련인데, 나는 둘다 가리지 않는 편이다. 원작 성우의 연기를 보는 것도 좋지만, 나로서는 우리말 제작을 맡은 성우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더 즐겁다. 지금은 더빙작 중에서도 레전드급에 속한다는 SBS판 [슬레이어즈] 이후로 국내 성우진에 대한 믿음은 변함이 없었고, 맨날 같은 사람이 주인공 맡는다는 불평을 들어도 한 귀로 듣고 넘기는 편이다. 내가 정말 감탄했던 사례 중 하나는 [트라이건] 더빙판이었는데, 공중파 방송이 아닌 케이블에서 더빙을 했기 때문인지 성우 한 사람이 1인 다역을 하는 경우도 포착한 적이 있다. 니콜라스 D. 울프우드 역을 맡으신 성우 오인성 님이 바로 그 주인공으로 매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악역은 거의 이분이 담당하셨다. 그때그때 목소리 톤을 확 바꿔서 모르고 지나친 사람도 꽤 있으리라 생각한다. 처음에는 "사람이 그렇게 없나...?" 싶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대단한 분이다. 왜 갑자기 상관도 없는 트라이건 얘기가 나오냐고? 내 귀가 녹슬지 않았다면, 반딧불 "레이"역을 맡은 사람이 바로 그 성우 오인성 님이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반가운 목소리, 에반젤린을 외치며 숨을 거둔 "레이"는 이번에도 대만족이었다.

가산 포인트 3. 자기 약혼자를 채가는데도 화내지 않고 무한 키스를 보내준 대인배 공주님 

사람은 생김새만 봐서는 모르는 법이라고, 영화 첫장면부터 등장하는 주인공의 소꿉친구 샬럿은 허영심 많고 질투심에 불타는... 딱, 악역같이 생겼다. 개구리랑 뽀뽀는 죽어도 싫다는 티아나에 비해 왕자와 결혼을 할 수 있다면 그깟 뽀뽀쯤 얼마든 해줄 수 있어! 라는 적극적인 마인드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돈 많은 집에 태어난 덕분에 이 친구도 수난이 예사롭지 않다. 왕자인 줄 알았던 약혼자가 늙어빠진 왕자의 시종이었고, 기껏 나타난 왕자님도 자기가 아니라 자기 친구와 사랑에 빠졌다며 그래도 사람은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키스를 요구해 온다. 그런데 이 판국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계산속일 것 같은 이 아가씨가 의외로 화내지 않는다. 오히려 친구에게 이제야 연애를 하게 되다니 잘됐다며 축복을 아끼지 않는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오랜만에 보는 대인배 공주님, 정말 인상적이었다.

감점 포인트 1. 바뀌었다고? 그런데 바뀐 건 별로 없어 

여기서부터는 내가 마음에 좀 안 들었던 부분. "확 바뀌었다" 이 소리만 안 했어도 그냥 넘어갈 수 있었다. 역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여주인공을 한번 생각해 보자. 티아나가 가진 적극성은 이미 에리얼과 포카혼타스, 뮬란이 이미 가지고 있던 것들이었다. 디즈니는 그때그때 다른 여성상을 추구해 왔고, 그들에게 공통적인 것이 있다면 "전통적인 여성상을 지양하고 진취적 감각을 가진 현대적 히로인"이었다. 에리얼은 안데르센의 인어공주가 가진 비극성을 벗어던지고 왕자의 사랑을 쟁취했으며, 포카혼타스는 보수적인 부족의 전통을 저버리고 이방인과 사랑에 빠진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뮬란"의 경우는 아예 남장을 하고 남자 못잖은 액션을 펼치는 히로인이 구국의 영웅이 되는 과정을 그렸다. 아무리 "다르다"를 외쳐 봤자 이미 "다른 것들" 사이에 끼어 있으면 특별할 것도 없다. "다르다"가 가진 함정이 그것이다. 이 경우는 차라리 감독이 보는 현대 여성상의 반영이라고 봐야 옳지 않을까? 우연찮게도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상승할수록, 디즈니가 그리는 공주 캐릭터도 그에 비례해 적극적이고 성취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디즈니 최초의 흑인 공주님이 갖는 의미는 2010년 현재 여성들이 가지는 자기 반영의 이미지라고 봐도 좋겠다. 쥐꼬리 월급에 밤낮 없이 일해도 세상 일이 내 맘대로 안 되는 것, 그게 고달프지만 우리의 현실 아니던가. 

감점 포인트 2. 화려한 그래픽과 재즈 음악에 숨어 있는 감출 수 없는 보수성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다. 티아나 개구리가 허허벌판에서 살아 보기 위해 죽어라고 뗏목을 젓는 사이 왕자병 개구리는 여유롭게 뗏목을 타고 앉아 노래나 부르고 앉았다고.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 아닌가? 나는 딱 생각나는 게 있다. 우리 딸이 얼마 전까지 읽어 달라고 졸랐던 개미와 베짱이. 우화나 동화는 곧잘 인간에게 욕망을 억누르고 근면할 것을 요구하곤 한다. 전형적인 프로테스탄티즘이다. 캐릭터에 현실감을 부여하는 것도 좋지만, 영화 내내 끊임없이 연상되는 물질지상주의와 절제, 근면의 메시지는 사람을 참 피곤하게 한다. "확 바뀌었다는" 2010년판 디즈니 애니메이션, 확실히 음악과 그래픽은 나무랄 데 없었고 미술효과도 세련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최신 기술로 구현된 영화의 메시지가 칼뱅 시절부터 내려온 "일하는 자와 노동의 고귀함"이라니 좀 맥이 빠진다.  

영화를 보고 나온 소감은 우리 부부 둘다 만족, 딸네미에게 물어봤더니 쌕 웃으며 재밌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영화관을 나올 때만 해도 나름 흡족한 기분이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런저런 걸리는 점도 있어서 생각나는 대로 적어 봤다. 하여간 그 바뀌었니 어쩌니 하는 소리만 안 했어도 별을 두개나 빼지는 않았을 텐데... 하여간 팜플렛을 누가 만들었는지 그 입이 웬수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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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니콜라 - Little Nichol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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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나로 이번달 위시리스트 1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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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1월 3주

대학 다니던 시절에는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극장이 있어서 왠만한 개봉 예정작은 대충 꿰고 있었는데, 졸업하고 바깥 출입을 할 일이 별로 없다 보니 꼬마 니꼴라 개봉 소식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온식구가 롯데시네마를 가서, 달님공주가 조르는 대로 먹을거리를 사주려고 팝콘코너 앞에 줄을 서 있다가 예고편을 접했다. 화면을 보고 있자니 그만 빙그레 웃음이 나온다. 나 초등학교 때 저걸 읽었지 아마?  

바야흐로 복고의 시대다. [셜록 홈즈]의 흥행성적을 이어 상영관에서는 아톰을 리메이크한 [아스트로 보이]가 개봉했고, 로네 고시니의 [꼬마 니꼴라]도 상영을 코앞에 두고 있다. 한국영화로는 99년작 [주유소 습격사건]도 이번에 후속편이 나올 예정이고, [인어공주]와 [Aladdin]의 론 클레멘츠 감독과 존 머스커 감독이 [공주와 개구리]를 들고 찾아 온단다. 9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번 페이퍼의 주제는 그 시절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작품 3편이다.  

추억의 고전이라기보다는 초등학교 동창생을 연상케 하는 [꼬마 니꼴라] 시놉시스를 보니 니꼴라에게 동생이 생긴다는 설정으로 시작하는 모양이다. "동생이 생겼어요" 에피소드는 원작에 실제로 있는 내용이다. 물론 동생이 생긴 당사자는 니꼴라가 아닌 같은 반의 죠아심이었고, 이 에피소드의 백미는 형제가 있는 친구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부풀려서 죠아심을 겁주는 대목이다. 어린 시절엔 무척 공감하며 읽었지만, 지난번에 달님공주에게 재미 삼아 읽어 주었더니 표정이 제법 심각해 보였다.  

골 때리는 장난꾸러기들의 활약상도 볼거리지만, 학교와 가정을 중심으로 그린 작품인 만큼 이 소설에는 맛깔나는 음식들이 유난히 많이 등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작품 속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대하새우, 별장에서 요리해 먹는 각종 채소들과 바베큐, 니꼴라가 가출했을 때 사먹은 에끌레르 과자, 안 주면 애들이 세상 끝난 것처럼 여기는 각종 디저트... 바게뜨 빵도 드물었던 그 시절 알쎄스뜨가 항상 달고 다니는 크로와상이 얼마나 먹어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지금 내가 소장하고 있는 꼬마 니꼴라 책에는 라면 국물이 조금씩 튄 자국이 있다. 머나먼 프랑스 음식들을 정 먹고 싶을 땐 라면으로 대리만족을 해 가며 읽었던 기억, 혹시 나 말고도 있을지 모르겠다.

돌아온 아톰, [아스트로 보이] 난 사실 아톰을 본 적은 없다. 내가 본 것은 [제트소년 마르스]라는 제목이었는데, 꽤 최근까지 아톰 하면 이 녀석이려니 생각해 왔었다. 그런데 오늘에야 찾아보니 전혀 다른 작품이란다. 아톰의 감독 데즈카 오사무의 또 다른 로봇 시리즈로 감독도 다른 사람이라고 한다. ...왜 속은 것 같은 기분이 들까? 

아이랑 같이 보려면 꼼짝 없이 더빙판을 보아야 하는데, 목소리 더빙을 전문 성우진이 아닌 연예인들이 맡았단다. 유승호나 남지현의 팬이라면 반길지도 모르겠지만, 성우들의 숙련된 연기를 선호하는 나로서는 많이 아쉬운 기분이 든다. 참고로 아톰의 한국 성우를 네이버에서 검색해 보니 손정아라는 이름이 뜬다. 50년생에 엄연한 현역이신, 도우너의 그리운 목소리를 가진 분이시다. 옛날 그 느낌 그대로 손정아님이 아톰 연기를 하셨더라면 무척 기뻤을 테지만, 어느 작품이든 열의를 쏟는 유승호이니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사실 본심을 말하라면 아톰보단 텐마 박사 역의 조민기가 더 기대된다. 

우리 딸이 꼭 보자는 [공주와 개구리] 까다로운 달님공주가 예고편만 보고 꼭 보자고 조르니 안 갈수도 없다. 나도 어렸을 적 공주라면 환장하게 좋아했지만, 어른이 되어서 애가 조르니 공주 나오는 책이나 만화를 찾기도 쉽지 않다. 덕분에 우리 집 아이는 엄마 어렸을 적 보던 인어공주와 알라딘까지 다 섭렵했다.  

나는 소위 말하는 인어공주 세대는 아니지만, 내 동생 말에 따르면 어렸을 적 자기네 반 친구들은 모두 인어공주가 왕자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산 걸로 알고 있었단다. 개중에는 "인어공주가 왜 죽냐?" 하고 심각하게 반문한 친구도 있었다고 한다. 해석하기 좋아하는 어른들은 곧잘 디즈니 만화의 폐해라면서 인어공주가 죽은 것도 모르는 아이들을 두고 독서부족의 전형적인 사례로 몰아붙이기도 했었다. 이해찬 세대, 단군 이래 최저학력, 모두 우리 혹은 우리 후배들이 흔히 듣고 컸던 말들이다. 단군 이래 최저학력은 그나마 낫다. 그보다 한해 늦게 입학한 친구들의 별칭은 전체 문구는 그대로인 채 단군 이래에서 창세기 이래로 바뀌었다. 웃으면서 한편으로는 씁쓸해하던 그 시절, 지금 그 친구들이 고스란히 88만원 세대가 되어 있으니 이 일을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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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엔 3D로 봤으면 좋겠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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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1월 2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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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님공주가 유치원을 처음 갔을 적 얘기다. 갑자기 온라인 게임 마비노기(이하 마비)가 급땡기기 시작했다. 출산 전에 한달 정도 쓰다가 버려 뒀던 계정을 꺼냈다. 서버를 옮겼다. 내친김에 쥐뿔도 모르면서 엘프 캐릭터 카드까지 확 질러줬다. 그리고 나의 뻘짓이 시작되었다. 

엘프 검사, 땅을 파다 마비에서 엘프는 원거리 공격에 특화된 종족이다. 글쎄 뽀대가 전부가 아니라는 남편의 말을 가벼웁게 씹어 주고서 검을 샀다. 맥뎀(Max damage) 50 간신히 넘는 정도였지만 개의치 않았다. 내가 게임하는 재미는 옷갈아입히기였지 전투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어느날 남편과 함께 라인알트를 돌다가 최고급 가죽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한장에 2만 골드씩 팔린다니... 아르바이트로 먹고살던 나에게는 최고급 가죽의 존재는 신세계였다. 전투의 전자도 모르던 내가 드디어 검을 들었다. ...비 내리는 배경의 라인알트에서 말 그대로 비오는 날 먼지 나게 맞았다. 가죽은커녕 치료비만 왕창 뜯겼다.  

던바튼 1채널, 이불을 걷어차고 싶을 만큼 창피했던 초랩시절 던바튼에서 처음 염앰(염색 앰플)을 팔던 기억도 죽도록 창피한 경험으로 남아 있다. 파티창을 띄우고 앉아 있으려니 누가 사겠다며 파갑(파티가입)을 해왔다. 은행에 갔다 오겠단다. 거기까진 좋았다. 누군가가 다시 다가왔다. 사겠단다. 당연히 아까 그 사람인 줄 알고 팔았다. 그런데 왠걸, 팔고 나니 파갑해 있던 사람이 돈 뽑아 왔다면서 독촉을 해 오는 게 아닌가. 아차 했다. 팔겠다고 해 놓고 전혀 딴 사람한테 팔아 버린 거다. 파티창도 열어 보지 않고, 먼저 왔던 사람의 아이디를 체크해 놓지 않은 내 잘못이 컸다. 돈 받기 전에 팔았으니 망정이지, 선불로 받고 거래를 했었더라면 눈총 깨나 받았을 거다.  

★나는 천성적으로 겁이 많은 성격이다. 던전, 머리칼이 쭈뼛 서게 무서웠다. 남편이 라비, 키아를 몇바퀴씩 도는 동안 나는 양털이나 열심히 깎았다. 그러던 내가 던전을 들어가게 된 것은 순전히 돈에 눈이 어두워서였다. 라인알트에서의 경험으로 가죽이 초랩에겐 꽤나 짭짤하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마스던전 한번 들어갔다 나오면 일반가죽 20여장에 간혹 나오는 고급 가죽, 그리고 코볼트 아처가 간혹 떨구는 역챈들을 팔면 하루에 2만, 운이 좋으면 7만까지도 벌 수 있었다. 이때쯤 레인지는 겨우 숫자 랭크를 찍었고 나는 간이 좀 부어 있었다. 

내 아바타는 용감했다 마비에는 하루에 일정 시간 간격으로 출현하는 대형 보스가 있다. 이 보스는 잡기도 어렵지만 보상품이 짭짤해서, 싸게는 몇백 골드에 비싸게는 마비 돈으로 천만 가까이 나가는 레어 아이템도 기대할 수 있다. 당연히 이들 보스가 출현하는 시간에 맞춰 많은 유저들이 아이템을 노리고 정해진 필드에 모인다. 이걸 레이드라고 한다. 

내 첫 전리품은 화려했다. 일명 둘리라 불리는, 평원 드래곤을 잡고 났더니 15만 골드짜리 아이템이 떨어진 게 아닌가? 신이 나서 다음 레이드에도 참가했다. 일주일에 한번 출현한다는 그 이름 찬란한 사막 드래곤이었다. ...내 앞에 떨어진 아이템은 어벤저 역템, 무려 100만 골드짜리였다. 나도 놀랐지만 옆에서 보던 남편 눈이 뒤집혔다. 한동안 우리는 남는 시간을 모두 투자해 레이드를 달렸다. 결과는? 가진 재산 다 날렸다. 내 행운은 그걸로 끝났는지, 그 이후 값나가는 아이템을 건진 일은 거의 없었고 레이드 나가면 족족이 죽었다.

돈? 그딴거 아끼지 말자 뭐든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한참 열중해 있다가도 어느 순간 "아 내가 미쳤구나" 싶은 때가 있다. 작년 연금술사 시즌이 시작되면서 사라진 VIP제도는 내게 마비노기에 대한 쓰디쓴 회의감을 심어준 사건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마비노기는 6개월 동안 끊김없이 정식 서비스를 유지한 고객을 기준으로 일명 VIP를 선정해 한달에 한번씩 희귀 아이템을 주곤 했다. ...그걸 한번 타먹어 보려고 판타지 라이프 패키지를 6개월이나 끊었었다. VIP까지 딱 한달 남았다! 하는 때 웬걸, 서비스 개편한단다. VIP 폐지한단다. ......지금 생각해도 속에서 열불이 끓는다.

그래서 나는 제이크를 이해한다 영화를 보는 관객이라면 한번쯤은 자신의 온라인 생활을 되돌아 보았으리라 믿는다. 영화 속 아바타와 인간의 관계는 게임 캐릭터와 유저의 그것을 빼다 박았다. 주인공은 게임 접속 대신 아바타 시스템을 통해 가상과 현실을 넘나든다. 영화 중간에 기록영상을 찍으며 충혈된 눈을 비비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나는 마비를 플레이하다가 간혹 화면 옆에 뜨던 "장시간의 온라인 게임은 삼가합시다"라는 사념파를 떠올린다. 하루에 몇번씩 마비 접속하고, 애 재우자마자 던전 돌고, 멧돼지 잡으려고 밤새 뺑뺑이를 돌아도 하나도 피곤하지 않던 그때가 생각난다. 그러나 게임 속 내 아바타의 모습은 실제 내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예쁘고 날씬하지도 않고, 타이틀도 없고, 인벤토리 안엔 꿍쳐둔 희귀아이템이 포진을 하고 있건만 내 통장 잔고는 더없이 초라하기만 하다. 제이크는 지구상에 수없이 존재하는 게임 유저와 슬프도록 닮았다. 판도라의 아름다운 자연을 숨가쁘게 뛰노는 제이크의 아바타와, 정작 휠체어에 의지해 움직이지도 못하는 장애인 제이크를 대조해보라. 누군들 공감 못할까?

재미있었지만 개인적으로 약간 곤혹스런 마무리 영화의 마지막은 제이크와 네이티리의 현피 뜨기로 끝났다.(웃음) 엔딩이 꼭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게임 속 아바타가 좋다고 아바타가 되어버리다니 그건 좀 아니잖아? 내가 이렇게 말하니 남편이 웃더라. 

[타이타닉] 이후 처음 만나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아바타]로 다시 한번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듯싶다. 어디서 보니 미국 박스 오피스 역대 흥행 3위를 눈앞에 두고 있단다. 아직까지 보지 못하신 분들은 끝물이라 생각지 마시고 한번 구경이나 해 보시길. 뻔한 스토리지만 볼만한 건 우릴 만큼 다 우려낸 올해의 오락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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