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1월 3주
대학 다니던 시절에는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극장이 있어서 왠만한 개봉 예정작은 대충 꿰고 있었는데, 졸업하고 바깥 출입을 할 일이 별로 없다 보니 꼬마 니꼴라 개봉 소식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온식구가 롯데시네마를 가서, 달님공주가 조르는 대로 먹을거리를 사주려고 팝콘코너 앞에 줄을 서 있다가 예고편을 접했다. 화면을 보고 있자니 그만 빙그레 웃음이 나온다. 나 초등학교 때 저걸 읽었지 아마?
바야흐로 복고의 시대다. [셜록 홈즈]의 흥행성적을 이어 상영관에서는 아톰을 리메이크한 [아스트로 보이]가 개봉했고, 로네 고시니의 [꼬마 니꼴라]도 상영을 코앞에 두고 있다. 한국영화로는 99년작 [주유소 습격사건]도 이번에 후속편이 나올 예정이고, [인어공주]와 [Aladdin]의 론 클레멘츠 감독과 존 머스커 감독이 [공주와 개구리]를 들고 찾아 온단다. 9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번 페이퍼의 주제는 그 시절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작품 3편이다.
추억의 고전이라기보다는 초등학교 동창생을 연상케 하는 [꼬마 니꼴라] 시놉시스를 보니 니꼴라에게 동생이 생긴다는 설정으로 시작하는 모양이다. "동생이 생겼어요" 에피소드는 원작에 실제로 있는 내용이다. 물론 동생이 생긴 당사자는 니꼴라가 아닌 같은 반의 죠아심이었고, 이 에피소드의 백미는 형제가 있는 친구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부풀려서 죠아심을 겁주는 대목이다. 어린 시절엔 무척 공감하며 읽었지만, 지난번에 달님공주에게 재미 삼아 읽어 주었더니 표정이 제법 심각해 보였다.
골 때리는 장난꾸러기들의 활약상도 볼거리지만, 학교와 가정을 중심으로 그린 작품인 만큼 이 소설에는 맛깔나는 음식들이 유난히 많이 등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작품 속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대하새우, 별장에서 요리해 먹는 각종 채소들과 바베큐, 니꼴라가 가출했을 때 사먹은 에끌레르 과자, 안 주면 애들이 세상 끝난 것처럼 여기는 각종 디저트... 바게뜨 빵도 드물었던 그 시절 알쎄스뜨가 항상 달고 다니는 크로와상이 얼마나 먹어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지금 내가 소장하고 있는 꼬마 니꼴라 책에는 라면 국물이 조금씩 튄 자국이 있다. 머나먼 프랑스 음식들을 정 먹고 싶을 땐 라면으로 대리만족을 해 가며 읽었던 기억, 혹시 나 말고도 있을지 모르겠다.
돌아온 아톰, [아스트로 보이] 난 사실 아톰을 본 적은 없다. 내가 본 것은 [제트소년 마르스]라는 제목이었는데, 꽤 최근까지 아톰 하면 이 녀석이려니 생각해 왔었다. 그런데 오늘에야 찾아보니 전혀 다른 작품이란다. 아톰의 감독 데즈카 오사무의 또 다른 로봇 시리즈로 감독도 다른 사람이라고 한다. ...왜 속은 것 같은 기분이 들까?
아이랑 같이 보려면 꼼짝 없이 더빙판을 보아야 하는데, 목소리 더빙을 전문 성우진이 아닌 연예인들이 맡았단다. 유승호나 남지현의 팬이라면 반길지도 모르겠지만, 성우들의 숙련된 연기를 선호하는 나로서는 많이 아쉬운 기분이 든다. 참고로 아톰의 한국 성우를 네이버에서 검색해 보니 손정아라는 이름이 뜬다. 50년생에 엄연한 현역이신, 도우너의 그리운 목소리를 가진 분이시다. 옛날 그 느낌 그대로 손정아님이 아톰 연기를 하셨더라면 무척 기뻤을 테지만, 어느 작품이든 열의를 쏟는 유승호이니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사실 본심을 말하라면 아톰보단 텐마 박사 역의 조민기가 더 기대된다.
우리 딸이 꼭 보자는 [공주와 개구리] 까다로운 달님공주가 예고편만 보고 꼭 보자고 조르니 안 갈수도 없다. 나도 어렸을 적 공주라면 환장하게 좋아했지만, 어른이 되어서 애가 조르니 공주 나오는 책이나 만화를 찾기도 쉽지 않다. 덕분에 우리 집 아이는 엄마 어렸을 적 보던 인어공주와 알라딘까지 다 섭렵했다.
나는 소위 말하는 인어공주 세대는 아니지만, 내 동생 말에 따르면 어렸을 적 자기네 반 친구들은 모두 인어공주가 왕자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산 걸로 알고 있었단다. 개중에는 "인어공주가 왜 죽냐?" 하고 심각하게 반문한 친구도 있었다고 한다. 해석하기 좋아하는 어른들은 곧잘 디즈니 만화의 폐해라면서 인어공주가 죽은 것도 모르는 아이들을 두고 독서부족의 전형적인 사례로 몰아붙이기도 했었다. 이해찬 세대, 단군 이래 최저학력, 모두 우리 혹은 우리 후배들이 흔히 듣고 컸던 말들이다. 단군 이래 최저학력은 그나마 낫다. 그보다 한해 늦게 입학한 친구들의 별칭은 전체 문구는 그대로인 채 단군 이래에서 창세기 이래로 바뀌었다. 웃으면서 한편으로는 씁쓸해하던 그 시절, 지금 그 친구들이 고스란히 88만원 세대가 되어 있으니 이 일을 어쩌나.
Do you want something another?
학급문고 단골 친구, 루디거와 안나 21세기 피가 튀고 살점이 튀는 뱀파이어들의 행각에 비교하면 루디거와 안나는 너무 불쌍한착한 흡혈귀들이었다. 얘들이 언제 사람을 해친 적이 있나? 그저 착하고 곱기만 한 뱀파이어 어린이들, 그나마 안나는 어려서 피도 못 마시고 썩은 우유로 배를 채운다. 지금 찾아보니 옛날 문고판은 이제 보이지 않고 화면에 보이는 이 책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다. ...옛날 그 일러스트와 매치가 되시는지? 나의 루디거는 이렇지 않아를 외치는 분께는 인터넷을 찾아보시길 권한다. 찾다 보면 지경사 버전의 예전 일러스트를 만날 수 있다. 네이버를 찾아보니 어느 분이 친절하게 90년대 판본을 스캔해서 올려 놓으셨다. 반가운 마음에 알라딘에 주문을 넣으려고 했는데 이나마도 품절이란다. ...하긴 옛날에 다 봤는데 굳이 돈까지 주고 볼 건 없지만... 품절이란 두 글자가 야속하긴 마찬가지다.
팬티 스타킹 가슴뽕의 주인공, 아나스타샤 자기는 평범하다고 우기지만 이 친구도 알고 보면 엄친딸이다. 교수 아버지에 화가 어머니, 14살에 알바도 뛰고 남자친구도 있다. ...애들 세계에서 이 정도면 꽤 화려한 스펙 아닌가? (...)
현재 어디까지 출간이 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보다 몇 살 더 많은 사촌언니들 사이에서 이미 유행하고 있던 책이란다. 나 뿐만 아니라 내 친구들도 심심찮이 갖고 있던 책이었고 용돈을 받기 시작할 즈음엔 아예 내가 사 모았다. 아나스타샤의 그 수많은 삽질 중 압권은 단연 팬티 스타킹이다. 또래 친구 앞에서 파티 서빙하는 것이 창피해서 고민 끝에 엄마 브래지어에 스타킹을 넣고 나온 아나스타샤, 막상 친구 앞에서 점잖은 척하고 오되브르를 권하려니 쟁반 위에 음식과 함께 떡하니 스타킹 가슴이 얹혀져 있다. 오오, 스타킹으로 그게 되는구나! 하고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다가 그 순간 빵 터지고 말았다. 다행히 이 책은 품절이 아니다. 가격은 정가 7500원에 할인해서 6000원.
두말이 필요 없는 불후의 명작, 천사들의 합창 책제목으로 검색을 하다가 화들짝 놀랬다. 화면 가득한 시릴로의 압박(...) 어른들의 귀가시계 [모래시계]가 있었다면, 그보다 앞서 아이들의 귀가시계 [천사들의 합창]이 있었다. ...언제 한번 아역 배우들의 성장한 모습을 사진으로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중 마리아 호아키나가 참 예쁘게 컸던 걸로 기억한다. 어디 내가 꿍쳐둔 사진도 있을 텐데...(뒤적)
외화치고 남녀노소 즐겨보던 드라마로 이만한 작품도 없을 성싶다.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도 유난히 이 드라마를 좋아하셨다. 일하느라 바쁘신 부모님이 자리를 비운 사이 할머니와 동생, 나 셋이서 오붓하게 저녁 반찬을 차려 놓고 TV를 보던 기억, 이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그 시절 생각에 괜시리 코끝이 찡하다. 품절은 아니지만 가격이 꽤 세다. 정가 15000원에 할인해서 12000원.
|
다시 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