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2월 1주
생각해 보면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만났다. 이제 결혼 5주년째를 맞아 가고 있으니 그와 내가 주고받은 영화들도 그 수를 더해 가는 중이다. 우리는 서로의 취향이 대충 비슷하다는 데는 동의했지만, 정작 보고 싶은 걸 골라 보라고 하면 우리 둘이 택하는 영화가 조금씩 엇나가는 경우가 많다. 나는 폭탄 뻥뻥 터지는 블록버스터를 선호하는 반면에 남편 취향은 약간 섬세한 편이다. 언젠가 한번 남편이 나한테 "아내가 결혼했다"를 보자고 한 적이 있다. 글쎄, 영화 볼 시간이 없네. 하고 둘러대면서 속으로 미안, 취향이 아니야. 이렇게 덧붙였다. 물론 그 때는 논문 준비다 취업 대비다 해서 영화 보러 다닐 짬도 없었거니와 우리 둘 다 그럴 만한 마음의 여유도 없던 때였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바빴던 시절 남편이 난데 없이 영화를 권했던 이유는 이를테면 까칠해진 내 속을 자기가 좀 달래 보겠노라, 하는 생각이 아니었나 한다. 으음, 생각해 보니 좀 기특하다.
From him to me 들어는 봤니? 모건 부부
지난 번에 [공주와 개구리]보러 갔더니 남편이 나에게 팜플렛을 쥐어 주며 언제 한번 같이 보잰다. 잠깐 흟어 보니 로맨틱 코미디 영화란다. ...으음, 로맨틱 코미디라... 생각해 보니 [노팅힐] 이후로 로맨스 장르는 거의 손대 본 적이 없다. 고등학교 때 친구가 같이 보재서 강변 CGV에서 같이 봤는데, 친구한텐 미안하지만 지루해서 죽을 뻔했었다. 휴 그랜트, 무슨 남자가 이렇게 밍숭맹숭하게 생길 수가 있어? 이게 그날의 솔직한 감상이다. 하다 못해 남자가 조금만 더 잘생겼더라면, 친구가 영화 재밌지 않았냐고 재잘거리던 와중에 나 혼자 구시렁거리던 게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로맨스는 끊었는데 남편이 보자니... 끄으응... 주말에 짬내서 한번 보기나 할까.
................................가만. 그러고 보니, 이 영화 주연이 휴 그랜트잖아? (반전이다!)
From me to him 공자-춘추전국시대
나더러 고르라면 당근 이거, 폭탄 뻥뻥 터지고 사람 치고 박는 게 딱 내 취향이다. 거기다 주윤발 형님이 주연이시니 그냥 넘어가기엔 너무 섭하다. 제작진은 와호장룡과 적벽대전을 담당한 그 팀이란다. 와호장룡은 나에게 "이안 감독의 숙제"라는 특이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작품이다. 장쯔이가 절벽으로 뛰어드는 장면, 그 장면이 도저히 이해가 안가서 몇번이고 다시 돌려 봤다. 다 봤는데 뭔가 하나도 모르고 넘어간 듯한 찜찜함, 한번 봐서는 모르고 좀 더 돌려 봐서야 아 그게 이 소리구나, 하고 이해할 수 있는 영화는 이안 감독의 주특기다. [색,계] 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도 나 혼자만 한숨을 짓고 있었다. 감독님, 또 숙제예요? 신기한 건 그 숙제들이 불쾌하지 않고 오히려 기대된다는 거다. "숙제의 추억"을 생각하며 남편한테 이거 한번 보자고 하면... 내가 보자면 그는 기꺼이 같이 가줄 거다.
And we are the one 퍼시잭슨과 번개도둑
요 한달 영화 보러 바쁘게 뛰어다니면서 시작 전 광고로 수없이 접한 [퍼시잭슨과 번개도둑], 제목은 좀 생소하지만 광고 지겹게 때리다 보면 "대체 그게 뭔데?" 싶은 게 사람 맘이다. 생각해 보니 남편 취업한 건 좋은데 부부간의 시간이 없다. 취업하기 전에는 "제발 돈 좀 벌어와라"가 입버릇이었건만, 정작 돈 벌어오는 요즘은 "좀 덜 벌어와도 되는데?" 하면서 은근히 찔러 주기도 해 보고 싶은 마음. 인간의 마음이란 이렇게 간사한 거다. 그렇다고 우리 여보씨 연봉이 높은 것도 아니다. 올해만 힘내라 남편. 나도 취업해서 당신 호강 시켜줄게!(?!)
오늘의 반전] 마누라는 보고 싶은 영화를 차곡차곡 쌓아 놓고 있는데, 정작 남편은 회식 가서 늦게 온다는 사실. 언제 오냐고 문자 날리니 "좀잇다간다"는 멋없는 대답만 돌아왔다. 온, 얼마나 퍼마셨는지 맞춤법까지 틀렸다. 백수는 이제 올해로 졸업하자고 둘이서 굳게굳게 다짐하다시피 했는데, 왜 괜시리 마음이 허전한 걸까? 이런 날은 둘이 손잡고 영화관 갔다 오는 게 좋은데... 다이어트 중이지만 난 팝콘하고 콜라도 좋아하는데... 밤길 걸어 오는 것도 운치 있어서 좋은데... 쳇.
하지만 감상과 현실은 별개. 회식이고 환영회고 다 좋은데, 자꾸 이러면 회사에 전화 걸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