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치지 않는 비 - 제3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개정판 문학동네 청소년 17
오문세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헨델과 그레텔은 뿌려놓은 조약돌을 밟으며 집으로 돌아간다.

나는 하나하나 작가가 뿌려놓은 밑밥을  잡아가면서 막바지로 향해갔다,

처음엔 그저 그랬다. 문장도 나쁘진 않은데 자꾸 걸렸다. 쉽게 줄줄 읽혀지지 않았고 목에 턱턱 걸리면서 거칠고 서툴렀다. 뭔가 나쁘진 않는데 매끄럽게 넘어기는게 없었다.

괜히 골랐나 싶었다.

중간에 패스트푸드점에서 할머니를 만나는 장면에서 그만 책을 덮었다.

어쩌면 나는 청소년 문학이라는 것에서 어떤 재미나 커다란 스케일 혹은 요즘 아이들의 발랄한 무언가를 찾았었던 거 같다.

단언컨데.. 이 책에는 그런게 하나도 없다.

그냥 한 소년이 가출이 아닌 여행을 떠날 뿐이다.

왜 그런지 알 수 없고 도데체 어떤 배경인지 읽어도 잡히지 않는다. 다만 함께 동행하는 형에게 뭔가 비밀이 있구나 하는 감은 있다. (이런건 진부하진 않지만 이제 너무 쉽게 보인다.)

하지만 꾹 참고 다시 책을 읽으면서 나는 헨델과 그레텔이 뿌린 조약돌처럼 그렇게 이정표를 찾아서 하나씩 하나씩 보물을 주워가며 이야기의 끝을 향하고 있었다.

가출이 아닌 여행을 떠난 아이는 길에서 많은 사람을 만난다.

터프한 세상에서 노래를 부르고 싶어하는 노래에 재능이 없는 전직 의사도 만나고

거리의 부랑자도 만나고 산타클로스 할머니도 만나고 사연이 깊은 목사도 만난다,

그리고 여행의 중간목적정도 되는 예전의 여자친구 (여자인 친구)19번도 만나고 대장도 만나고 펜더도 만나고....

길을 떠난 아이는 여러 사람을 만나서 위악도 떨고 건방지게 굴기도 하고 다정하기도 하다.

그리고 어느날 문득 거울앞에서 인중에 돋아난 털을 발견하고 조심스럽게 면도기를 사용한다.

 

어쩌면 엄마가 마지막에 남긴 "괜찮다"는 말이 크게 목구멍에 걸리고 명치에 걸려서 그렇게 방황을 했었던가보다. 괜찮다는 말은 참 묘하다.

누군가가 괜찮다고 하면 그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위안이되기도 하지만 떄로는 비수가 되기도 한다. 너가 말한 그 세음절 "괜 찮 다"가 공중에서 나에게로 는 닿지 않을 때가 그렇다.

너는 괜찮지만 나는 도저히 괜찮을 수 없는 경우가 있는 법이다.

차라기 그말을 지하주차장에서 벽에 등응ㄹ 대고 웅크렸던 형이 들었더라면 죄의식이 덜했을까  또다른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소년은 생각하고 고민하지만 해결이 없어서 주먹을 쓰고 야구 배트를 쓰고 전학을 간다.

엄마의 그 세음절을 나중에 긴 여행끝에  소년에게 도달했다.

이젠 정말 괜찮다고...

정작 소년에게 괜찮다고 말해 주었으면 하는 이들은 아버지나 형은.. 모두 입을 닫고 있었고 소년이 그 세음절의 무게로 휘청거릴때 형수는 소년을 위로한다.

형보다 강하다고 견딜 수 있을 거라고...

 

책을 읽고 불현듯 드는 생각이 "우아한 거짓말"의 남학생판이네 였다.

뭐 비슷한 점이 없긴 하지만 가족중 누군가가 죽고 이후에 홀로 견뎌내야 한다는 것이 그렇다.

하긴 소년에게는  만지와는 다르게 두번의 죽음이 있얶고 다정하고 친구같은 엄마 대신 스스로를 못이겨내서 자식에게 무심했던 아버지가 있을 뿐이지만  큰 사건이후 그 이유를 홀로 찾아내고 견뎌야 한다는 점에서는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길을 떠나서 사람을 만나고 조금씩 드러나는 소년의 아픔이나 상실을 보면서 세상에서 잚어진 무게를 혼자 견뎌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게다가 비까지 내리는 상황이다.

비에 아예 흠뻑 젖어버리면 더 이상 젖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첨에 비를 보면 무조건 피하고 한방울이라도 튀는 걸 못견뎌하지만 이미 젖어버린 몸에서는 아무런 두려울 것이 없다.

언젠가 비는 그칠테고 사람들은 그런 것을 비라고 부르니까.

 

 

.

 

책장을 덮으면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게 된다.

처음부터 다시 꼼꼼히 읽으니 그제사 내가 무지하게 거칠다고 투덜거렸던 문장들이 다가왔다,

소년이 아프다고 할 수 없었던 말들 외롭다고 할 수 없었던 말들 두렵다고 할 수 없던 말들이 거칠고 단순하고 덤덤한 문장속에 숨어있었다.

그랬구나...

 

나는 쿨하다... 란 표현이 참 싫어졌다.

나는 상처받고 싶지 않아요.. 난 아프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 다가오지 마세요 날 건드리지 마세요 그냥 그만큼 거리에서 바라보기만 하세요.

나도 다가가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세상에서 도피하는 말 같아서 싫었다.

상처가 싫어서 더 단단한 껍질 속으로 들어가버리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또 더 나아가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더라도 그냥 아무렇지도 않고 여기고 말거라는  소심한 이기심까지 들어있는 말같아서..

차라리 뜨겁지 않더라도 뜨뜨미지건한 정도라도 온기를 가지는게 낫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냥 다가가고 거절당하고 상처받고 소독하고 주저않고 울고.. 그렇게 감정에 충실하고 촌스럽게 사는게 정말 사는게 아닐까.

소년의 삶이 쿨함에서 조금씩 온기를 가질거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말을 들어주고  망설이지만 대꾸해주는 것부터가 그 시작일 것이다.

 

청소년 소설이라기엔 벅찬 느낌이다.

하지만 한문장 한문장 읽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망설이게 만드는 무언가는 있다. 누구하나 허투로 나온 사람이 없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고지식하고 거칠지만 나름의 의미를 가진다는 점이 참 좋다.

꽤 괜찮은 작가를 알게 되어 기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