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스이카
하야시 미키 지음, 김은희 옮김 / 다산책방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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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가 어릴적만 해도 '왕따'란 말은 들어 본 적도 없었다. 친구들끼리 약간의 따돌림이야 있었지만 그것이 크게 문제 되진 않았다. 왕따란 말 대신 이지매가 일본에서는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은 뉴스를 통해 들은 적은 있었다. 그것이 우니라나로 넘어와 지금은 아이들을 자살에 이르게 만들었다.
그런 일로 자살까지 하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왕따는 어른들도 견디기 힘든 일이다. 그렇다고 자살만이 해결 방법이란 것도 절대 아니다. 그러나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게 된 아이들의 마음과 괴로움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나약하다거나 왕따를 당할만 하다는 식의 말을 하는 것은 결국 가해자와 다를바 없다.
왕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왕따를 당하지 않더라도 직.간접적으로 얽혀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직접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이와 무관심하는 이, 되려 자신이 왕따를 당할까 두려와 방조하는 이 등 대체적으로는 방조함으로써 가해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청소년문학에서 '자살'은 금기시 되어 온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어떤 책은 죽음이란 단어를 제목에 드러냈고 그 책이 내용상으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잠깐 이슈가 된 적이 있기는 했다. 그렇더라도 어떤 이류로든 청소년들의 자살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기에 불편하더라도 공론화하여 드러낼 필요는 있다.
그런데 왕따를 당하는 누구도 그것을 부모나 학교에 알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아이들은 혼자서 참는데까지 참아보고자 한다. 자기 때문에 부모가 속상해 하는 것을 원치 않을 뿐 아니라 실제로 부모나 교사가 도움이 되기는 커녕 더 가혹하게 가해자들이 압박해 올 거라는 두려움을 가지기 때문이다. 왕따를 당하면 자존감도 낮아지고 무력해지지만 스스로 왕따라고 말해야 한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어 했다.
괴롭지 않아서 참은 게 아니라 그것밖에 할 수 없어서 참았다는 아이들.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까.
태어나면서부터 경쟁이란 구도 속에 놓인 아이들은 왕따를 게임으로 여기며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 하는 사악한 괴물로 만들어버린다.
'학교에서도 공부만 강조하잖아. 우리는 다 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는데 공부가 제일 중요해, 좋은 학교에 가야 해. 좋은 직장을 잡아야 해. 하는 식으로 모두들 한 가지만 강요하잖아.' 81쪽

치카가 왕따를 당하는 것에 대해 그만하라는 한 마디 말 때문에 스이카는 왕따를 당한다. 이전에 치카가 당했던 것보다 훨씬 강도 높게. 그래서 우리들은 친구가 왕따를 당하더라도 침묵으로 동조하는 것이다. 치카까지도.
스이카는 죽음을 생각할 만큼 힘들었던 상황에서 눈 먼 유리에를 만나면서 위로를 받는다. 그러나 계속되는 요우꼬 패거리의 괴롭힘을 견딜 수 없었던 스이카는 학교에서 떨어진다.
다시 살아날 것을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 혼수상태에 빠진 스이카의 혼은 학교를 찾아가 자신을 괴롭혔던 친구들과 왕따의 징후를 알면서도 모른척 했던 교사, 또 자신 때문에 슬퍼하는 부모님과 유리에, 또 치카를 본다. 기자들이 학교에 진을 치지만 학교는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꺼려 커튼을 치고 접촉을 거부하고 아이들도 스이카가 떨어진 이유를 모른다고 한다. 그 와중에 요우꼬는 차라리 빨리 죽어버리지 하는 말을 서슴지 않고 뱉어낸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도대채 이 아이 속에 들어있는 괴물의 크기를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또다른 괴로움에 힘들었던 치카는 스이카가 왕따를 당했고 자신이 괴롭혔다고 용기내어 진실을 밝힌다.
야마이 씨의 기사로 인해 또다시 외톨이가 된 치카는 무조건 당하던 예전과는 달라진다.

그동안 자신은 쓸모없는 존재이며 자살시도를 후회하지 않았는데 자신의 죽음을 진정으로 슬퍼하는 이들을 보고 살고 싶다는 간절함을 보인다.
'너는 내게 정말 필요한 사람이야'라는 말이 신호탄이 된 듯 그 말이 듣고 싶어 죽지도 못하고 헤매고 다닌 것이 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스이카는 현대의학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떠난다.

<미안해, 스이카>는 왕따의 괴롭힘을 상세히 서술하여 집단 따돌림이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른들도 직접 읽어보길 간곡히 부탁하고 있다.
정말 그랬다. 왕따는 학교라는 집단에서만 존재하는 걸로 인식했는데 직장에서의 집단 따돌림에 대한 뉴스를 방송을 통해 접했다. 병들어 가는 사회에 대한 경고에 너무 무덤덤한 것은 아닌지.
작고 소중한 변화를 이끌어가는 것은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다.
왕따의 현장에서사실상 앞으로 나가 용기를 내기는 무척 어렵다. 하지만 단 한 사람이라도 같은 편이 있다면 어렵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것에 힘을 얻지 않을까. 그 한 사람이 바로 내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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退会する時にも気をつけろ! 2011-06-14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여기서 굳이 마케팅을 법의 테두리 안에서라고 표현한것은 범법행위와는 구별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취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이란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연결하여 결국에는 소비자를 우리 사이트로 연결하여 상품을 파는 것, 그것이 바로 마케팅의 목적입니다.
 
안네의 일기 올 에이지 클래식
안네 프랑크 지음, 최지현 옮김 / 보물창고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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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은 적이 없더라도 <안네의 일기>에 대하여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그만큼 많이 알려진 책.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에 번역되어 전쟁이나 평화에 관한한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 하지 않을까.
독일의 반유대정책으로 많은 유대인들의 학살을 다룬 책이나 영화가 있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책이 바로 안네의 일기가 아닌가 싶다.
안네의 최후를 알기에 책을 넘길 수록, 남아 있는 쪽수가 적을수록 마음이 가라앉는다.
'죽은 후에도 기억되는 사람이고 싶어!' 라고 했던 안네의 말처럼 그녀가 죽은 후에도 굉장히 많은 사람들은 안네를 기억하고 있다.
최근 읽은 책에서 이원복 교수는 <안네의 일기>가 독일에 대한 반감을 의도적으로 포장하려는 네덜란드의 상술이 들어가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하더라도 안네의 일기 자체가 허구가 아닌이상 그 감동은 줄어 들지 않을 것이다.
차분한 느낌의 표지 가운데 박힌 안네의 사진은 여느 아이들과 다를바 없다. 그래서 더 가슴 시리다.
그 나이의 소녀가 겪는 사춘기의 감성과 좁은 공간인 은신처에 숨어 살며 한정된 사람들과의 부딪힘 등 마음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상대는 일기장 속 키티라는 가상의 존재였다. 감성이 풍부했던 안네는 '나만의 개성적인 안네'로서의 대접을 받고 싶어 했으나 은신처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그녀의 개성은 무시되기 일쑤였지만 이러한 갈등 속에서도 조금씩이나마 성장하는 안네의 모습을 본다.
꾸미지 않은 솔직함과 톡톡튀는 발랄함이 전쟁과 은신이라는 어둡고 답답한 현실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안네. 안네의 일기를 통해 청소년들이 그리고 우리 어들들이 전쟁의 참혹함과 왜 평화를 바라는가를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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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번이라도 뜨거웠을까?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9
베벌리 나이두 지음, 고은옥 옮김 / 내인생의책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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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내용과 상관없이 제목에 끌릴 때가 있다. 이 책의 제목처럼 넌 한 번이라도 뜨거웠냐고 물어오면 난  열정적인 삶을 산 적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기 때문에 입을 꼭 다물어야 한다. 무엇보다 '앞으로도' 라는 그 말이 아프고 한심하지만 그렇다고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반기를 들지도 못한다.
케냐를 포함한 아프리카의 역사는 미국사나 중국사 등에 비해 관심 밖이었다. 하지만 케냐의 마우마우 핏빛 투쟁을 알게 되면 분명 달라질 것이 틀림없다. 베벌리 나이두는 다른 책에서 나이지리아의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쓴 적이 있다. 작가가 이와 같은 소재의 책을 쓰는데에는 아파르트헤이트 정권 치하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나고 자랐던 까닭이다. 어떻게든 저항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작가로서 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표지엔 흑인과 백인 소년이 서로를 마주보고 있다. 흑인 소년의 강한 눈빛에서 분노가 읽힌다. 케냐의 마우마우 투쟁을 배경으로 한 이 책을 통해 불평등, 우정, 자유를 향한 뜨거움 등을 생각하게 한다.
수많은 역사를 되돌아보면 힘이나 정치적인 이유에 의하여 가려져있거나 잊혀진 수많은 역사들이 속속 면 위로 드러남을 마주하게 된다.이제껏 알지 못했던 것들, 지금도 여러 이유로 인해 은폐되거나 왜곡되는 역사가 얼마나 많을까 가슴이 시려온다. 진실 앞에 당당하지 못한 우리도 폭력의 가해자의 자리에 함께 심판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주방 토토인 흑인 소년 무고와 백인 농장주의 아들 매슈가 번갈아 가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둘은 상하 신분차이에도 불구하고 우정을 쌓아간다. 하지만 당시 1950년대의 상황은 키쿠유족이 백인들에게 빼앗긴 땅을 되찾고자 결성된 반백인 테러집단인 마우마우의 습격에 불안에 떨던 백인과 흑인 사이의 갈등이 팽배하던 때였다. 사건은 매슈와 그의 친구 랜스에 의해 농장에 불이 나자 브와나는 무고와 바바에게 총구를 겨누며 이들을 의심하게 된다. 매슈는 아버지에게 자신이 불을 냈다고 고백하지만 마우마우 색출에 혈안이 된 경관은 무고의 형이 관련되었다며 아버지를 강제수용소로 잡아 들인다. 이로써 무고와 매슈의 갈등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상처만 남는다.
'그들도 사람이고, 우리도 사람이다'라는 말이 처음부터 통 할리없다는 것을 책을 읽는 독자는 알 것이다. 어떻게 백인과 흑인이 같은 선상에 있을 수 있겠냔 말이다.
'지타우 형이 옳았어! 우리가 고통 받아도 와준구(다수의 백인을 지칭하는 스와힐리어)는 신경쓰지 않아. 그들에게 우리는 벌레야.'

후기를 보면 1960년 1월 비상사태가 해제되기까지 이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케냐 공화국이 탄생하고 초대 대통령이 선출된 것등을 간략하게나마 설명하고 있다. 마우마우가 40년간 공식 석상에서 언급할 수 없는 단체로 남아있었다는 사실 등이 매우 흥미로운 가운데 과거의 유령들을 부활시킬 수 있기까지의 참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음을 알게 한다.
그럼에도 요시야는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 불이 네 심장을 집어삼키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 알겠니?"
온몸으로 뜨거움에 타오르는 불길을 어떻게 막아낸단 말인가.....
케냐타 대통령 또한 "용서하십시오. 우리는 과거의 증오를 잊어야만 합니다. 복수가 아니라 다 함께 힘을 합쳐 화합을 이루어야만 합니다." 라고. 
이성적으로야 그렇게 말할 수 있지만 감정적으로 그게 과연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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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가디언 푸른도서관 44
백은영 지음 / 푸른책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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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의 여유도 없이 몰아치는 플롯이 작가의 이전 작품들보다 극대화된 상상력과 치밀함이 돋보였다. SF로 분류되는 판타지물들은 과학이 정복하지 못할 영역은 과연 있기는 할까 싶지만 궁극적으로는 보편적인 인간성 회복이라 할 사랑이나 용기와 같은 인간의 내면에 깊숙히 존재하는 감정은 과학이 건드리지 못하는 신성함의 공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시간과 시간 사이를 거슬러 이동하는 굉장히 흥미로울 소재로 책을 읽는 내내 숨숨막히게 했던 타임 가디언.
나 아닌 타인을 완벽히 이해 한다는 것은 이렇게나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하는가, 하는 좌절 아닌 좌절도 느끼게 했다. 더구나 혈연이라 할 가족 내에서 조차 이해의 과정이 너무나 험난했으니까. 아라가 자신의 아버지를 이해하기까지의 과정이 너무나 힘들지 않았던가.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어느 때보다 답답하게 느껴졌던 것은 현재 나와 아이의 관계의 틈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다 아무런 대책없이 그냥 기다려 주는 것인데 부모 입장에서는 참으로 막막하다. 더구나 책에서처럼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것이 불가능 하거니와 이제는 아이의 사춘기가 아니라 내 믿음의 두께가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할 한계에 다다랐다고나 할까...
타임 슬립이란 장치와 필연과 우연의 법칙 사이에서 펼쳐지는 모험은 꽤나 복잡하다. 완전 할리우드급 영화인데 내 머릿속은 국내 상영관에 머무르고 있는 것처럼 따라가기가 조금은 버거웠다. 
주인공 아라와 함께 한 조가 된 아이들은 타임오버된 어떤 물건을 찾아오라는 임무를 맡은 아라와 한 조가 된 아이들이 사실은 더 먼 미래에서 왔다는 반전 등은 역시 작가이 이전 작품에서처럼 시.공간을 넓게 사용하고 있었다. 의외의 소재와 재미와 독특함, 긴장감을 늦추지 않게 스토리를 끌어가는 힘이 대단하다.
판타지물이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편인데 백은영 작가의 작품을 한 번 접하면 장르에 대한 편견이 깨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기대되는 작가다.^^

결국 내가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다소 이해되지 않을 것 같은 결과가 도출된다. 그거였다...내 속에도 괴물과 천사가 자리하고 있고 내 아이에게도 그 두얼굴이 동시에 자리하고 있다. 그것이 어떤 쪽이 더 큰 영역을 차지하게 하느냐는 절대적으로 자신의 의지와 용기에 달렸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를 제대로 보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인정하는 용기를 가진다면 나도 내 아이와 벌어진 틈을 좁혀 나갈 수 있겠지. 그리고 모든 말과 행동을 이해 할 수 있겠지.

또하나 과학의 발전에 따른 경고를 무시 하거나 지나치지 말 것!
가령 인간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안 된 GMO문제나(최소한 한 세대를 거쳐야 비로소 문제가 될 것이므로) 종묘종자, 캡슐과 같은 보존 장치를 통한 생명연장이나 유전자를 통한 번식 등은 생명윤리와도 직결되지만 환경이나 식량 등 그 범위가 다양하고 과연 과학의 발전이 만능도 아니고 가속화하는 것 만큼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돌이킬 수 없는 문제가 야기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에 대한 지나친 믿음이 발등을 찍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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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의 아이들 (양장) - 히로세 다카시 반핵평화소설, 개역개정판
히로세 다카시 지음, 육후연 옮김 / 프로메테우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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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이나 일본 원전 사고는 어쩌면 예고된 재앙일지도 모른다. 에너지 부족을 독점자본의 이익을 위해, 신이 창조한 세계를 파괴하려는 것이었으니까. 지구상에 존재하지 세슘과 같은 방사능 물질을 만들어 낸 것은 결론적으로 정치적인 것과 더불어 인간의 이기심과 자만 때문이었으리라. 
이 책이 사람들의 관심밖으로 묻혔을지도 모르는데 다시금 주목하는데는 일본 원전 사고가 사람들을 방사능 공포로 떨게 했기 때문이다. 이전부터 꾸준히 원전을 반대 해 왔어도 우리는 편리에 의해 그것을 무시해 왔다. 아니면 정치와 언론 플레이에 놀아나 대다수 국민들의 귀와 눈을 막아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전에 읽은 대다수의 책들은 원전의 유해성보다는 청정에너지이며 에너지 고갈에 대비한 최선의 방법이 바로 원전이라고 떠들어 대기 일쑤였다.
체르노빌 원전의 폭파가 있고 (구)소련은 폭발한 원자로 사태 수습이 원활히 잘 진행되고 있다거나 키예프에 죽음의 재인 방사능 낙진의 양이 엄청났음에도  '풍향이 바뀌었다'는 정부의 공식 발표가 뒤늦게 조작된 것임을 알게 되는 식이었으니까. 이런 거 익숙하지 않은가. 우리 정부는 저렇게 하지 않을거라고 과연 장담 할 수 있을까. 가까운 예로 일본 역시 그러했지 않은가.
소설 속 안드레이를 비롯한 100여명이 폭발한 원자로 뒷처리 결사대로 차출되어 가는 설정은 가슴이 뜨거웠다. 후쿠시마 원전에 최정예 특수부대가 투입된 뉴스가 떠올라 실제 사건과 겹쳐져 더 그랬다.
폭발한 원자로에서 새어나온 방사능 가스에 오염된 이온화 공기 입자가 인간이나 동물, 기타 자연에 피해를 어떻게 주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 끔찍함이 너무나 잘 전달된다. 다만 이반과 이네사가 느꼈을  공포가 덜 표현되었고 어린아이라고 하기엔 너무 냉철하고 어른스러웠다. 그렇지만 히로세 다카시가 의도했던 원전에 대한 경고 확실히 될 만한 반핵평화소설로 추천할 만하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사망이나 피해는 알려진 바 보다 훨씬 크고 희생자는 지금도 늘고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이 책의 이반과 이네사처럼 사고의 중심에 있었던 아이들이 어디로 데려갔는지 베일에 싸여 있고 이 아이들의 행방에 대해 알 수 없다는 것이 기막히다.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러웠을까.....그러나 앞으로도 제2, 제3의 원전 사고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원전은 안전하다고 말한다. 과연 안전하다고 확언할 수 있는가....일본에서 있었던 사고로 대지와 바다에 뿌리를 내릴 '죽음의 재'는 전 세계를 떠다니며 천사의 미소를 짓고 있는 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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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w0607 2011-05-02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읽고 갑니다 ^^ 이 글은 르포소설이라서 당시 실제 있었던 일을 취재하여 쓰여졌던 거라고 합니다. 그래서 결사대 차출 이야기도 설정이 아니라 실재라고 하지요. 당시 자료에 의하면 얼마나 위험한 작업인지 모르고 투입되었던 일부 사람들은 나중에 도망하려다가 군인들의 총에 맞아 죽었다고 하더군요. 이상희 시인의 말대로... 이 책의 내용이 어느 예민한 영혼이 상상으로 빚어낸 이야기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금은 원전에 대한 뉴스를 더 이상 내보내지도 않는군요... 정말 답답할 뿐입니다.

희망으로 2011-05-02 13:08   좋아요 0 | URL
왜 그동안 이렇게나 모르고 있었나 싶어요....원전 사건이 현재 진행형인데 지금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도 은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로 그 폐해성을 알리면 국민들이 불안해하고 동요할까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