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의 역사 - 거래, 스파이, 거짓말, 그리고 진실
존 루이스 개디스 지음. 강규형 외 옮김 / 에코리브르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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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사 전문가로 유명한 이책의 저자는 서문에서 냉전 이후에 태어나 자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대학생을 위해 쉽게 읽힐 수 있는 냉전사를 쓸 필요를 느꼈다고 말한다. 그런 의도로 쓰인 이책은 실제 쉽고 재미있게 읽히도록 쓰여져 있다. 그리고 그 내용은 냉전의 정치심리사 정도가 맞을 것이다.

이책은 1945년 냉전이 시작된 이후 미국과 소련의 정치가들이 세계를 어떻게 이해했고 그 이해에 따라 어떤 결정을 내렸는가를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생각을 추적해가는 식으로 냉전의 역사를 기술한다. 45년동안 지속된 냉전의 역사를 지배한 감정은 ‘공포’였다.

이책은 조지 오웰이 1984을 쓴 1948년부터 시작한다. 조지 오웰은 그 작품에서 세계가 3개의 전체주의 국가로 나뉘어 영구적으로 전쟁을 계속하는 상황을 그렸다. 당시 그가 그린 세계의 구도는 미래의 세계로 받아들여졋고 평단의 높은 평을 받았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은 2차대전에서 이긴 루즈벨트, 처칠, 스탈린의 미래에 대한 견해이기도 햇다.

2차대전에서 2천만 이상의 피를 흘린 스탈린은 소련이 피의 대가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지상군 전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미국과 영국은 그런 소련의 생각을 알고 잇었고 공포를 느꼈다. 소련의 공포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스탈린은 동유럽을 자신의 권리라 생각하면서 접수햇지만 서유럽은 그렇게 접근하지 않았다. 기다리면 자연히 자신의 손에 서유럽이 떨어진다고 생각한 것이다.

맑스의 예언에 따르면 자본주의 국가는 자본의 탐욕 때문에 서로 전쟁을 할 수 밖에 없으니 서로 물으뜯으며 전쟁을 하게 내버려 두면 된다. 그리고 그 혼란의 와중에 서유럽에 공산주의 정부가 들어서기를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은 서로 전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럽에서 좌파의 위협은 현실적인 공포였다. 서유럽의 경제적 부흥을 가져온 마셜 플랜은 바로 그런 공포가 미국 정치가들에게 현실이엇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후 1950년대와 60년대 유럽의 황금기가 오면서 스탈린의 예측은 잘못되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리고 소련의 비극은 바로 스탈린이 그런 착각을 하도록 만든 그들이 ‘과학’이란 신앙을 가졌던 맑스주의에 대한 신뢰 때문이엇다고 저자는 말한다.

소련의 맑스주의자들은 이론을 현실에 맞춘 것이 아니라 현실을 이론에 맞춘 것이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보다 더 뛰어난 체제이기 때문에 자본주의보다 더 큰 번영을 가져올 것이라 믿었으며 더 큰 사회적 정치적 정의를 줄 것이라 믿었다.

스탈린 사후 후르시초프의 스탈린 격하는 스탈린의 전체주의가 맑스주의로부터의 일탈이란 선언이엇고 맑스주의는 전체주의 없이 가능하다는 믿음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이 비극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소련의 역사와 동구권 위성국들의 역사는 독재와 통제 없이 체제가 유지될 수 없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정치와 사회 그리고 경제를 통제하면서 맑스주의가 약속했던 어떤 정의도 실현되지 않았고 통제는 경제 비효율만 낳을뿐이라는 것을 보여줄 뿐이었다. ‘우리는 계속 이렇게 살 수 없다’는 고르바초프의 말은 당시 동구권 지도자들의 심리를 대변하는 말이엇다. 그리고 (그의 말인 것으로 기억하는) ‘시스템은 시스템의 운영자들이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잃을 때 무너진다’는 말대로 그렇게 소련은 무너졌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곧 이어 고르바초프가 권좌에서 물러나기 까지 양극체제를 지탱한 것은 핵무기에 의한 공포의 균형이었다. 핵이란 절대병기 앞에선 어떤 전쟁도 의미가 없다. 이런 부조리에선 전쟁을 피하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이다. 그리고 전쟁을 피하는 것은 현상태를 서로 인정하는 것으로만 가능하다.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의 정치가들은 바로 (핵전쟁이란) 공포의 포로였다고 이책은 말한다. 그런 심리를 상징하는 것이 MAD(Mutual Assured Destruction, 상호 확실한 파괴)라는 독트린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핵전쟁을 막으려면 서로 확실하게 파괴된다는 확신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그런 교리에 따라 미국과 소련은 핵무기에 대한 어떤 방어도 하지 않아야 했고 서로의 영토를 위성으로 감시하도록 허용해야만 했다. 상대에 의해 확실하게 파괴되도록 벌거벗어야만 한다는 Mad 즉 미친 상태가 냉정의 심리였다는 것이다. 그런 심리에서 미국과 소련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고 70년대의 데탕트는 그런 심리의 반영이었다는 것이다.

서로에 대한 공포에서 두 나라가 자유롭지 못했던 것만큼 두나라는 동맹국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미국은 한국의 이승만이나 베트남 지도자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정권이 무너져 공산화될 수 있다는 위협만으로도 어쩔 수 없이 미국은 두나라를 지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정학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아무 의미가 없는 두 나라를 지키기 위해 무익한 전쟁에 말려들 수 밖에 없었다. 저자는 이를 강아지 꼬리가 강아지를 흔든 경우라 말한다. 냉전이란 대결구도 때문에 초강대국이 약소국에게 휘둘릴 수 밖에 없었고 생각만큼 강대국이라고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한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소련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아프카니스탄에 소련이 말려든 것 역시 앞마당을 상대에게 내줄 수 없다는 어쩔 수 없는 심리였다. 그러나 소련의 경우엔 좀 사정이 더 복잡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쿠바의 경우는 다르지만 앙골라나 에디오피아 같은 나라에 소련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었다. 그러나 계급혁명의 수출이란 현실감각이 아닌 이념적 강박관념으로부터 소련 지도자들은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이다. 냉전의 균형을 흔들지 않는 범위에서 가능한 이념적 충동을 추구하려는 욕구였다는 것이다.

저자는 냉전이 끝난 것을 1980년대에 등장한 지도자들 때문이엇다고 말한다. 레이건, 대처, 고르바초프, 덩샤오핑, 요한 바오로 2세가 그들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에 의문을 제기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공산주의가 불합리한 파탄난 이념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잇었다. 그리고 레이건과 고르바초프는 냉전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잇었고 그것을 끝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었다고 이책은 말한다. MAD 같은 전략이 어떻게 정상적인 상황이란 말인가?고 레이건은 의문을 던졌고 파탄난 이념이 계속 세계의 절반을 지배하는 것도 어떻게 당연한가라고 의문을 던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식이 현실을 다시 보게 하면서 냉전을 끝났다고 저자는 말한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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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일본 대예측
노무라종합연구소 2015년 프로젝트 팀 지음, 정경진 옮김, 최창희 감수 / 매일경제신문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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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라 연구소의 보고서인 이책에서 앞으로 일본을 좌우할 핵심변수로 언급하는 것은 소자고령화이다. 출산율은 떨어지고 고령화는 높아지면서 노동인구가 빠르게 감소하는 것을 말하는 소자고령화를 일본의 미래를 결정하는 최대의 단일변수로 꼽고 있다.

일본의 인구는 2004년부터 절대치가 감소하기 시작했다(가구수도 2015년부터 줄어든다). 인구의 감소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경제의 생산과 소비를 이끄는 노동인구가 버블이 터진 1990년부터 정체되다 90년대 후반부터 감소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노동인구의 감소는 필연적으로 경제의 활력 저하로 이어진다. 경제전체의 소득이 줄면서 소비가 줄기 때문이다. 이책의 자료를 보면 2000년 이후 일본의 총수요 감소가 눈에 띄고 있다. 일본의 총수요는 LGERI의 보고서를 보면 매년 1% 이상 감소하고 있다.

이책에선 수요감소를 가속하는 요인으로 확대가족을 꼽는다. 은퇴한 노인들이 자녀들 근처로 거주지를 옮기는 현상을 말한다. 동거를 하지는 않지만 육아와는 물론 기본적인 소비를 공유하는 방향으로 소비패턴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확대가족의 형성은 지방의 붕괴를 촉진할 것이라고 이책은 본다. 농촌의 고령화로 노인층이 인구의 3/4을 넘은 지자체까지 벌써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자녀들이 거주하는 대도시로 노인층까지 떠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지방을 떠나는 것은 노년층만이 아니라는 것이 더 심각하다고 이책은 말한다. 경제가 축소되면서 지방의 일자리가 줄고 일자리를 찾아 청장년층도 대도시로 이탈하면서 지방경제는 더욱 위축될 것이라고 이책은 본다. 이책은 고령화와 지방경제의 붕괴에 따라 주민을 도시로 소개하는 지자체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이렇듯 총수요의 감소는 경제의 축소로 이어지고 일단 축소하기 시작한 경제는 축소의 악순환에빠진다. 수요가 감소하니 기업활동이 위축되면서 고용이 준다. 정부의 세수도 감소하면서 천문학적인 재정적자와 노년층의 연금부담이라는 재정압박을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방법은 없는가? 이책은 제3의 개국을 이루어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 말한다. 90년대 이후 일본경제는 평균 1.1% 성장했지만 그 성장은 국내수요의 부족분을 수출로 매우면서 이루어진 것이다. 앞으로 일본이 살길은 지금보다 더 밖으로 향하는 나라가 되는 것이라 말한다.

일본은 수출대국이다. 그러나 일본의 경제성장은 수출보다 내수에 힘입은 것이었다. 일본의 내수시장은 1억이 넘는다. 1억 이상의 수요가 있다면 내수시장만으로도 규모가 충분하기 때문에 골치아프게 해외시장에 눈을 돌리지 않는 심리가 생긴다. 수출을 하는 기업들도 우선 일본시장을 겨냥해 물건을 만들고 그 다음 해외로 수출하는 방식이었다. 미국기업들이 내수시장에 사로잡힌 것과 마찬가지 현상이다. 그로 인해 일본에만 통하는 표준과 사고방식이 양산되는 갈라파고스 현상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경제가 축소될 때 더 이상 그런 식으로는 안된다. 이책은 이미 세계화되어있는 제조업은 물론 내수시장에만 의존하던 서비스, 교육, 농업과 같은 비제조업도 세계화되어야만 생존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지방에 대해서도 이책은 개방만이 세계화만이 살길이라 말한다. 도주제로 지자체 단위가 확대되는 것이 기회라는 것이다. 앞으로 중앙정부의 교부세는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지자체가 살아남으려면 자체적으로 생존해야만 하고 그러려면 지역 안에서 성장동력을 만들어야 한다. 그 수단은 지역의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지역에 있는 대학을 중심으로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중국의 성정부나 영국의 지자체들처럼 직접 세계와 상대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이라 말한다. 그외에도 관광자원을 개발한다든가 외국인을 수용한다든가 등 여러가지 방법을 언급한다.

이상이 이책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요 몇 년간 일본의 현안에 대한 서적이 많이 팔리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그들의 현재가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이책을 읽으면서 일본이란 단어를 한국이라 바꾸면 이책이 우리의 문제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현안에 대한 책이 이책뿐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책의 가치는 무엇인가? 일본경제에 관한 책들 중에서 이책이 특별하게 잘쓰인 것은 아니다. 책 자체가 보고서란 이름을 갖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그러나 노무라연구소라는 이름에 걸맞는 질을 가지고 잇다는 것이 이책의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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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미술의 해학 - 사찰의 구석구석
권중서 글.사진 / 불광출판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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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자이건 아니건 산을 가면 절을 들려보게 마련이다. 절터는 명당자리에 만들어지게 마련이라 명당터의 편안한 느낌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례 가본 절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오래된 기와집과 구분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책은 절에 가서 무엇을 읽어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책이다.

절의 건축양식은 고궁이나 양반가의 기와집과 별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절을 절이게 하는 것은 건축양식이 아니라 그 절을 장식하고 있는 미술이다.

서양의 중세에도 그랬지만 동양에서도 미술의 발전은 종교화에서 시작되었다. 문맹이기 마련인 신자들에게 경전을 들이대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 그렇다면 만국 공통어인 그림으로 설명하는 것이 좋은 대안이 된다.

불교 역시 마찬가지 이유에서 미술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그렇게 발전한 미술은 건물을 치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교리를 신자들에게 설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름의 의미론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이책의 목적은 그 의미론을 알려주는 것이다.

불교미술의 역사나 그 의미에 대해선 다양한 책들이 있다. 그러나 이책의 특이함은 한국사찰에만 있는 나름의 의미론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한국불교미술의 의미론을 이책의 저자는 해학 또는 유머라고 요약한다.

용은 불교미술에 자주 등장하는 동물이다. 용은 위엄있는 동물이고 그렇게 인식되어 있다. 그러나 사찰에 그려진 용은 그렇게만 표현되지는 않았다고 이책은 말한다. 장중하고 위엄있는 용의 모습도 그려지지만 개구리에게 깔려 버둥거리는 용도 그려지고 잠자리보다 작으면서 나는 용이다고 뽐내는 불균형의 대치구도로 용을 희화한 경우도 이책은 소개한다.

근엄하기만 해서는 가까워질 수 없다. 근엄함을 무너트리는 유머가 끼어들 때 빈틈이 생기고 이해할 수 있으며 애착이 가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책이 말하는 해학은 그런  장치이며 불교에 대한 대중의 이해였다.

이책의 내용은 위와 같이 정리된다. 이책은 불교미술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책 곳곳에 컬러 사진들로 장식이 되어 있으며 그 그림들을 따라가다보면 무심코 별 의미를 두지 않고 지나쳤던 절의 구석구석을 다시 보는 눈을 키워준다. 절을 갈 일이 있다면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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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사람 - 다시 쓰는 경제위기의 역사
애미티 슐래스, 위선주 / 리더스북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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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에서 루즈벨트 대통령은 미국에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아낸 사람으로 평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책의 저자는 루즈벨트는 혁명을 막아낸 것이 아니라 혁명을 일으키려 했다고 말한다.

1차대전 이전의 세계는 지금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세계화가 진행되었었다. 철도와 증기선, 전신, 전화로 세계가 연결되면서 교통과 통신의 비용은 획기적으로 낮아졌고 빨라졌다.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묶이면서 지난 한세대동안 우리가 보아온 것처럼 그 시절의 세계화도 상상할 수 없었던 부를 낳았고 세계는 번영했다.

그러나 지금의 세계화가 그렇듯이 그 시절의 세계화 역시 양극화라는 문제를 키웠고 우리가 느끼고 있듯이 사회의 대다수가 ‘잊혀진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 결과 1차대전 직전 독일과 영국에서 사민당과 노동당이 집권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복지국가 모델을 실험하는 체제내 개혁이 있었고 1차대전 후에는 소련이 성립되고 헝가리를 비롯한 중유럽에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고 독일에선 스파르타쿠스 반란이 일어났다.

광란의 20년대로 불리게 된 1920년대의 번영은 그러한 계급갈등을 잊혀지게 했다. 그러나 1929년 대공황이 시작되면서 다시 계급갈등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보통 우리가 뉴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계급갈등이 혁명으로 바뀌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루즈벨트가 생각한 뉴딜은 계급투쟁을 막기 위한 양보가 아니라 바로 계급투쟁이었다고 말한다.

대공황 이전에 대다수이면서 발언권이 없었던 노동자와 농민이 잊혀진 사람이었다면 루즈벨트가 집권한 1930년대에 잊혀진 사람은 자본가였고 부자들이었다는 것이다. 루즈벨트는 돈이 많다는 것 자체가 죄라는 식으로 부자들을 공격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달리 뉴딜은 구호에 불과했다. 뉴딜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는 애매모호했다. 지금 우리가 아는 상식은 뉴딜을 케인즈주의의 실행이었다고 알고 잇지만 실제 역사를 보면 르즈벨트는 적자재정을 혐오하는 사람이엇다. 적자재정은 정부의 책임과 신뢰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불황이 장기화된다는 것은 케인즈가 말하지 않아도 당시 이해되고잇던 논리엿다. 루즈벨트의 전임자인 후버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면 어디서 수요를 만들 것인가? 소비자의 주머니를 채우면 된다. 월급을 많이 주면 된다고 생각한 후버는 불황인데도 기업들이 노동자에게 임금을 인상해주도록 강제했다. 그러나 불황에 월급을 많이 주면 회사의 이익이 줄어든다. 그리고 경쟁을 할 수 없게 되고 가격을 내릴 수도 없게 된다. 소비자는 높은 가격을 지불하게 되면서 소비는 늘지 않는다. 간단한 논리이다. 그리고 그 단순한 논리에 따라 많은 회사들이 파산했다. 그러나 후버와 루즈벨트는 그 논리를 이해하지 못했다.

저자는 루즈벨트의 뉴딜의 본질은 유효수요을 늘린다는 케인즈주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한다. 루즈벨트가 하려고 했던 것은 정부와 민간부문이 경쟁하는 것이었고 민간부문을 정부가 대신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루즈벨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델은 당시 소련에서 실험되고 잇었던 집산주의 모델, 정부가 생산을 계획, 통제하는 모델이었다. 루즈벨트의 브레인들은 20년대에 소련시찰단에 참가했던 좌파지식인들이었고 그 브레인들과 루즈벨트의 생각은 비슷했다고 저자는 암시한다.

그 예로 저자는 불황에서도 성장세를 이어가면서 경기회복을 주도할 수 있었던 전력산업(유틸리티)과 루즈벨트의 전쟁을 예로 든다. 널리 알려진 TVA 계획에 따라 만들어진 댐은 수력발전으로 전기를 생산했다. TVA는 민간전력회사와 경쟁관계에 뛰어들었고 결국 민간업체를 공격해 그들을 흡수한다.

그리고 온갖 종류의 반시장적인 규제가 쏟아져 나왔다. 가령 이책에 소개된 가금류 시장에 대한 규제를 예로 들면 디플레를 막는다는 명목으로 가격경쟁을 제한하면서 중소상인들이 경쟁력을 잃어 파산하도록 몰아갔고 임금을 인상하도록 압박하면서 고용을 줄이도록 몰아갔다.

결국 그러한 반시장적인 정책은 기업의 활동을 제약하면서 불황을 장기화했다.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세수가 줄 수 밖에 없었다. 부족한 세수를 늘리기 위해 세율이 올라가 회사 수익의 3/4을 가져갔다. 기업의 이익은 리스크에 대한 보상이다. 그런데 실패하면 손해는 자기 몫이고 성공하면 자기 몫은 1/4 밖에 안된다면 누가 의욕이 나겠는가?

당연히 투자가 줄었다. 자본의 파업이 시작된 것이다. 루즈벨트는 더 황당한 조치를 내놓는다. 기업의 내부유보금에 대해 78%의 세금을 거두어 세수를 늘리기로 한 것이다. 기업이 가지고 있는 돈을 빼앗으면 직원 월급은 어떻게 줄것이며 투자는 어떻게 하는가? 당연히 기업활동은 위축되엇고 고용은 늘지 않았다 오히려 악화되었다.

1930년대 미국인들은 20년대의 번영을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버렸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리고 그 책임은 루즈벨트가 부자들에 대해 벌인 내전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미국을 구한 것은 나라 밖의 전쟁인 2차대전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나라 밖에 전쟁을 하면서 나라 안에서 전쟁을 하고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10년가까이 불황을 장기화하면서 뉴딜에 대한 지지는 바닥을 기고 있었기 때문에 루즈벨트로서도 자신의 전쟁을 끝낼 때가 되기도 했던 것이다.

이상이 이책의 논지를 요약해본 것이다. 사실 저자의 논지는 엉뚱한 것은 아니다. 케인즈주의가 정당성을 상실한 70년대부터 뉴딜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었고 저자의 논지와 같은 주장이 제기되어 왔었다. 뉴딜은 대공황에서 미국을 구한 것이 아니라 대공황을 더 장기화하고 악화시켰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원인은 뉴딜의 반시장적인 개입주의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이책은 그러한 주장을 이어받고 있다. 새삼스러울 것은 없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책의 가치는 왜 그런 반시장적인 개입주의가 나오게 되었는가?란 질문에 대한 답에 있다. 저자는 20년대 미국에서 별종으로 취급되며 소외되었던 좌파지식인들의 계보를 추적하면서 그들이 루즈벨트의 브레인트러스트로 들어가 어떻게 정책을 생각했고 어떻게 정책을 내놓았는가를 추적한다.

그들은 소련이란 선례를 따라 하려 했다고 이책은 말한다. 집단농장과 같은 실험을 한 것이 좋은 예이다. 그러나 소련에서 공산주의 실험 자체가 그렇듯이 선례가 없는 일이었기에 좌충우돌할 수 밖에 없었고 몽상가들의 어설픈 장난에 불과하게 된 과정과 결과들은 이책은 보여준다.

모든 혁명이 그렇듯이 뉴딜 역시 어설픈 이상에서 시작했기에 현실과 충돌해 좌절할 수 밖에 없었다고 이책의 저자는 말하는 것이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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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베트남 - 베트남 투자시장에 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강문경 지음 / 비즈니스맵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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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책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베트남에 투자하려는 사람을 위한 입문서이다.

손안에 들어오는 핸드북 사이즈의 이책에는 베트남의 증시역사부터 시작해 계좌개설하는 법, 주거래 증권사, 은행을 선택하는 법, 주식의 종류, 채권투자에 관한 기초지식, 산업구성과 추천종목 등 베트남 투자에 대해 알아야할 기초적인 지식들을 전하는 것이 목적이다.

기초적인 지식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이책에는 시장에 대한 깊이있는 분석은 찾기가 힘들다. 그러나 깊이있는 분석을 쓰고 싶어도 쓰기가 힘들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베트남의 증시역사 자체가 너무도 짧고 시시각각으로 상전벽해로 변하고 있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이책에 따르면 베트남에 증시가 개장된 것은 2000년부터이며 본격적으로 시장이 활성화되고 외국인들이 투자하기 시작한 것은 2006년부터이다. 그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지수가 1000을 넘어설 정도까지 올라갔다. 대단히 역동적인 시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시장의 역동성만 보고 투자하기에는 조심스러운 것이 베트남 시장으로 보인다. 이책에 따르면 베트남 경제의 특징은 청장년층의 인구비중이 높기 때문에 앞으로 장기적인 성장성은 무한하다. 그리고 이체 막 초기단계를 넘어 성장단계로 진입한 경제이기 때문에 얼마나 더 성장할지는 알 수없다.

그러나 그런 성장전망이 너무 일찍 반영되어 있는 것이 문제이다. 이책에 따르면 베트남 주가는 지나치게 고평가되어있다. PER이 수백에 이르니 말이다. 거기다 경제규모는 한국의 1/10에 불과하고 그 작은 규모에서도 주가총액의 규모는 또 1/10이다. 보통 선진국과 한국의 경우 주식시장의 규모가 GDP의 1배는 넘는 것이 보통이니 얼마나 작은지 알 수 있다.

경제 자체가 연 8% 이상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미래는 밝다. 그러나 인플레가 높고 이자율이 10%대로 높으며 환율이 불안정하기에 불안정성이 높다. 게다가 베트남 증시를 움직이는 손은 여유돈을 가지고 있는 소수들이기 때문에 규모 자체가 작고 한국인들과 기질이 비슷하게 냄비성 기질이기 때문에 증시의 진폭이 크다. 전체적으로 베트남의 분위기는 한국의 70년대에 2000년대를 섞어놓은 것같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외에도 이책에서 읽을 수 있는 내용은 여러가지이다. 성장기의 경제이기 때문에 철강, 시멘트, 전력과 같은 인프라 산업이 유망하고 산유국이며 고무산지인 만큼 원자재주도 유망하다는 것과 같은 내용이다.

그러나 이책에서 중심을 두어야 할 것은 베트남 경제와 증시 전체에 대한 이미지를 잡는 것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책의 내용은 얕다. 그러나 베트남 투자에 관한 책 자체가 많지 않고 올해 나온 책은 더더군다나 적다는 점에서 그리고 다른 대안이 있더라도 이책보다 내용이 좋기는 힘들다는 점에서 이책 이외에는 뚜렷한 대안은 없을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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