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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의 역사 - 거래, 스파이, 거짓말, 그리고 진실
존 루이스 개디스 지음. 강규형 외 옮김 / 에코리브르 / 2010년 12월
평점 :
냉전사 전문가로 유명한 이책의 저자는 서문에서 냉전 이후에 태어나 자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대학생을 위해 쉽게 읽힐 수 있는 냉전사를 쓸 필요를 느꼈다고 말한다. 그런 의도로 쓰인 이책은 실제 쉽고 재미있게 읽히도록 쓰여져 있다. 그리고 그 내용은 냉전의 정치심리사 정도가 맞을 것이다.
이책은 1945년 냉전이 시작된 이후 미국과 소련의 정치가들이 세계를 어떻게 이해했고 그 이해에 따라 어떤 결정을 내렸는가를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생각을 추적해가는 식으로 냉전의 역사를 기술한다. 45년동안 지속된 냉전의 역사를 지배한 감정은 ‘공포’였다.
이책은 조지 오웰이 1984을 쓴 1948년부터 시작한다. 조지 오웰은 그 작품에서 세계가 3개의 전체주의 국가로 나뉘어 영구적으로 전쟁을 계속하는 상황을 그렸다. 당시 그가 그린 세계의 구도는 미래의 세계로 받아들여졋고 평단의 높은 평을 받았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은 2차대전에서 이긴 루즈벨트, 처칠, 스탈린의 미래에 대한 견해이기도 햇다.
2차대전에서 2천만 이상의 피를 흘린 스탈린은 소련이 피의 대가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지상군 전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미국과 영국은 그런 소련의 생각을 알고 잇었고 공포를 느꼈다. 소련의 공포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스탈린은 동유럽을 자신의 권리라 생각하면서 접수햇지만 서유럽은 그렇게 접근하지 않았다. 기다리면 자연히 자신의 손에 서유럽이 떨어진다고 생각한 것이다.
맑스의 예언에 따르면 자본주의 국가는 자본의 탐욕 때문에 서로 전쟁을 할 수 밖에 없으니 서로 물으뜯으며 전쟁을 하게 내버려 두면 된다. 그리고 그 혼란의 와중에 서유럽에 공산주의 정부가 들어서기를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은 서로 전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럽에서 좌파의 위협은 현실적인 공포였다. 서유럽의 경제적 부흥을 가져온 마셜 플랜은 바로 그런 공포가 미국 정치가들에게 현실이엇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후 1950년대와 60년대 유럽의 황금기가 오면서 스탈린의 예측은 잘못되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리고 소련의 비극은 바로 스탈린이 그런 착각을 하도록 만든 그들이 ‘과학’이란 신앙을 가졌던 맑스주의에 대한 신뢰 때문이엇다고 저자는 말한다.
소련의 맑스주의자들은 이론을 현실에 맞춘 것이 아니라 현실을 이론에 맞춘 것이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보다 더 뛰어난 체제이기 때문에 자본주의보다 더 큰 번영을 가져올 것이라 믿었으며 더 큰 사회적 정치적 정의를 줄 것이라 믿었다.
스탈린 사후 후르시초프의 스탈린 격하는 스탈린의 전체주의가 맑스주의로부터의 일탈이란 선언이엇고 맑스주의는 전체주의 없이 가능하다는 믿음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이 비극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소련의 역사와 동구권 위성국들의 역사는 독재와 통제 없이 체제가 유지될 수 없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정치와 사회 그리고 경제를 통제하면서 맑스주의가 약속했던 어떤 정의도 실현되지 않았고 통제는 경제 비효율만 낳을뿐이라는 것을 보여줄 뿐이었다. ‘우리는 계속 이렇게 살 수 없다’는 고르바초프의 말은 당시 동구권 지도자들의 심리를 대변하는 말이엇다. 그리고 (그의 말인 것으로 기억하는) ‘시스템은 시스템의 운영자들이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잃을 때 무너진다’는 말대로 그렇게 소련은 무너졌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곧 이어 고르바초프가 권좌에서 물러나기 까지 양극체제를 지탱한 것은 핵무기에 의한 공포의 균형이었다. 핵이란 절대병기 앞에선 어떤 전쟁도 의미가 없다. 이런 부조리에선 전쟁을 피하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이다. 그리고 전쟁을 피하는 것은 현상태를 서로 인정하는 것으로만 가능하다.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의 정치가들은 바로 (핵전쟁이란) 공포의 포로였다고 이책은 말한다. 그런 심리를 상징하는 것이 MAD(Mutual Assured Destruction, 상호 확실한 파괴)라는 독트린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핵전쟁을 막으려면 서로 확실하게 파괴된다는 확신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그런 교리에 따라 미국과 소련은 핵무기에 대한 어떤 방어도 하지 않아야 했고 서로의 영토를 위성으로 감시하도록 허용해야만 했다. 상대에 의해 확실하게 파괴되도록 벌거벗어야만 한다는 Mad 즉 미친 상태가 냉정의 심리였다는 것이다. 그런 심리에서 미국과 소련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고 70년대의 데탕트는 그런 심리의 반영이었다는 것이다.
서로에 대한 공포에서 두 나라가 자유롭지 못했던 것만큼 두나라는 동맹국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미국은 한국의 이승만이나 베트남 지도자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정권이 무너져 공산화될 수 있다는 위협만으로도 어쩔 수 없이 미국은 두나라를 지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정학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아무 의미가 없는 두 나라를 지키기 위해 무익한 전쟁에 말려들 수 밖에 없었다. 저자는 이를 강아지 꼬리가 강아지를 흔든 경우라 말한다. 냉전이란 대결구도 때문에 초강대국이 약소국에게 휘둘릴 수 밖에 없었고 생각만큼 강대국이라고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한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소련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아프카니스탄에 소련이 말려든 것 역시 앞마당을 상대에게 내줄 수 없다는 어쩔 수 없는 심리였다. 그러나 소련의 경우엔 좀 사정이 더 복잡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쿠바의 경우는 다르지만 앙골라나 에디오피아 같은 나라에 소련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었다. 그러나 계급혁명의 수출이란 현실감각이 아닌 이념적 강박관념으로부터 소련 지도자들은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이다. 냉전의 균형을 흔들지 않는 범위에서 가능한 이념적 충동을 추구하려는 욕구였다는 것이다.
저자는 냉전이 끝난 것을 1980년대에 등장한 지도자들 때문이엇다고 말한다. 레이건, 대처, 고르바초프, 덩샤오핑, 요한 바오로 2세가 그들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에 의문을 제기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공산주의가 불합리한 파탄난 이념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잇었다. 그리고 레이건과 고르바초프는 냉전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잇었고 그것을 끝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었다고 이책은 말한다. MAD 같은 전략이 어떻게 정상적인 상황이란 말인가?고 레이건은 의문을 던졌고 파탄난 이념이 계속 세계의 절반을 지배하는 것도 어떻게 당연한가라고 의문을 던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식이 현실을 다시 보게 하면서 냉전을 끝났다고 저자는 말한다.
평점 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