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숏 Big Short - 패닉 이후, 시장의 승리자들은 무엇을 보는가
마이클 루이스 지음, 이미정 옮김 / 비즈니스맵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이책의 제목에서 short는 short selling 즉 공도매를 말한다. 주식의 하락에 베팅하는 거래말이다. 그러나 이책으ㅢ 주인공들이 베팅한 것은 자잘한 주식종목이 아니라 시장 자체의 몰락이었다. 이책은 이번 금융위기 이전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 전체의 붕괴에 베팅한 헤지펀드들의 이야기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이 어떻게 세계경제를 무너트렸는가는 이제 상식에 속한다. 새로울 것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이책에 등장하는 헤지펀드들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의 몰락을 예견했다는 것을 빼면 이책의 내용은 새로울 것이 없다.

이책은 모기지 시장이 어떻게 채권시장의 주류가 되었고 서브프라임 시장이 다시 그 시장의 주류가 되는 과정을 다루면서 왜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의 붕괴가 세계금융시장을 무너트렸는가를 추적해간다. 그러나 그 내용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이책이 나왔을 당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저자는 이전에 쓴 책들에서 뻔한 것을 뻔하지 않게 만드는 재주가 잇다. 그 재주의 비결은 월 스트리트 내부의 시점에서 사건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요 몇 년간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한 책은 홍수처럼 쏟아졌다. 그중에는 뛰어난 책도 많았다. 그런 책들은 대개 두가지 관점을 갖는다. 첫째 부류는 경제학자들이 쓴 책으로 거시적 관점에서 위기를 분석한다. 둘째 부류는 위기의 진원지가 된 미국투자은행 관계자의 회고록 형식이거나 위기를 봉합하기 위해 분투한 정부기구 관계자의 회고록 같은 부류이다.

첫째 부류는 큰 그림을 그린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둘째 부류는 사건의 미시적 관점에서 구체성이 풍부하다는 장점이 있다.

일장일단이 있다. 그러나 위기의 속살을 들여다보기에는 부족하다. 이책은 두 부류의 빈 중간을 메워주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이전의 책들과 마찬가지로 위기에서 시장 즉 월 스트리트 전체가 어떻게 움직였는가를 시장참여자들의 구체적인 행적을 따라가며 서술한다. 추리소설을 읽는 것같다. 물론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 범인이 누구인지는 이미 다 알려져 있다. 그러나 왜 그런 결말이 났는지 범인이 왜 그인지 왜 그런 짓을 했는지는 그리 잘 알려진 것은 아니다. 이책은 추리소설처럼 사건을 파헤치면서 범죄의 현장을 재구성한다.

물론 이책이 그려내는 위기의 과정을 요점만 본다면 다른 책들과 다를 것은 없다. 추리소설의 줄거리를 알아봐야 작품의 재미를 느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다른 책들이 간과 또는 잘 모르기 때문에 보여주지 못했던 점이 하나 있다: 어떻게 월스트리트 투자은행들이 거대한 사기극을 꾸밀 수 있었는가?

사기의 요점은 쓰레기 채권을 비싸게 파는 것이었다. 모기지를 채권으로 포장해 파는 것은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문제가 없는 채권은 팔아봐야 그리 남는 것이 없다. 그러나 문제있는 채권을 문제가 없는 채권으로 둔갑시킬 수 있다면 거대한 이익이 만들어진다. “드러난 위험을 부정직하고 인위적인 방법으로 낮추어 트리플B등급으로 바꾸면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골드만삭스가 하는 일이엇다.” 위기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었다.

납을 금으로 보이게 하려면 먼저 아무도 그것이 납인지 알기 어렵게 만들어야 한다.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만이 서브프라임모기지채권의 투자 설명서를 읽을 수 있죠.” 골드만삭스는 투자자들과 신용등급평가기관들이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불투명하고 복잡한 증권을 창조햇다. 그것은 바로 서브프라임모기지 합성증권인 CDO 혹은 부채담보부증권이었다.

저자는 금융의 탈규제 명분으로 주장되었던 금융의 혁신이란 것이 실상은 이런 것이라 말한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1980년대에 주택저당채권의 본래 목적은 주택담보대출과 관련된 위험을 재분배하는 것이었다. 그 덕분에 채권시장 투자자들은 주택담보대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어서 주택소유자들이 지불하는 금리가 하락했다. 이러한 혁신의 목적은 간단히 말해서 금융시장을 보다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이엇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 반대의 목적을 위해 혁신을 꾀하는 사태가 벌어졋다. 시장을 복잡하게 만들어 위험을 숨기려 하는 것이엇다.”

월가 회사들은 문제가 있는 쓰레기 대출을 싸게 사들여 트리플B등급 트란셰란 이름을 붙이고 “채권 탑을 쌓았다. 그것이 바로 CDO엿다. 월가 회사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신용평가기관들이 부실한 대출 집합에 기초한 채권 더미를 받아서 그 중 80%에 트리플A등급을 부여하기 때문이었다. 월가 회사들은 그렇게 프리플A등급을 받은 채권들을 신용등급이 높은 증권에만 투자해야 하는 연금펀드와 보험회사 같은 투자자들에게 팔 수 있었다. 모두가 트리플A등급만 믿고 자신들이 안고 있는 위험을 무시한 것이었다.”

“월가의 대형회사들인 베어스턴스와 리먼브라더스, 골드만삭스, 씨티그룹, 그밖에 다른 회사들은 제조업체와 동일한 목적을 추구했다. 최대한 값싼 원자재-주택대출-로 최대한 비싼 최종상품-모기지채권-을 내놓는 것이엇다. 이때 최종상품의 가격은 무디스와 S&P로 선정된 등급에 좌우되엇다.”

신용평가회사를 속이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월가 회사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무디스에 입사하죠.’ 일곱 자리 연봉을 받는 사람들로 꽉찬 월가의 트레이딩 부서들은 다섯자리 연봉을 받는 멍청이들을 속여서 최악의 대출에 최고등급을 받아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아이비리그 출신답게 치밀하고도 효율적인 방법으로 일을 처리햇다.

신용평가기관들의 모델은 갖가지 기회를 낳았다. 누구보다 먼저 그 기회를 찾아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서브프라임모기지채권은 모두 무디스에서 부여한 등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었다. 트리플A등급 조각은 모두 동일한 가격에 거래되엇고 프리플B등급 조각도 모두 또 다른 동일한 가격에 거래되었다. 각각의 트리플B등급 조각이 확연하게 차이 났음에도 모두 일괄적인 가격에 거래된 것이다. 이처럼 등급이 잘못 부여된 채권들은 대부분 월가 회사들이 신용평가기관들을 속여서 얻어낸 것이었다.”

그러나 속여서 얻은 등급도 등급이었고 그 등급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라스베이거스에 갔을 때 업계 전체가 신용평가기관을 믿고 잇음을 알아차렸어요. 모두가 신용평가기관만 믿었죠.” 스티브가 말햇다. “신용평가기관 사람들은 모두 공무원 같았어요. 그들은 박봉에 시달렸어요. 영리한 사람들은 월가 회사로 떠나 예전에 근무했던 신용평가기관들은 교묘하게 조종하는데 일조할 수 ㅇㅆ죠. 무디스의 애널리스트가 되는 것이 애널리스트의 최고영예가 되어야 합니다. 무디스의 애널리스트는 애널리스트로서 이보다 더 높은 자리는 없어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해요. 그런데 실제로 그들의 지위는 바닥이엇죠! 골드만삭스가 GE의 증권을 좋게 평가한다고 해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아요. 그러나 무디스가 등급을 낮추면 그 여파가 엄청나죠. 그런데 왜 무디스 직원은 골드만삭스에서 일하고 싶어할까요?” 스티브가 말햇다.

그러나 아무리 신용등급을 속일 수 있더라도 CDO는 쓰레기다. 상환이 안될 것이니까. 그러나 상환이 안되더라도 그것을 누가 대신 갚아준다면 문제가 없다. 여기서 사기극의 봉이 하나 더 등장한다. AIG가 봉이 된다. AIG가 봉이 되지 않았다면 “새롭게 발생할 위험들은 숨을 곳이 없어서 은행 규제자들에게 완전히 노출되었을 것이다.”

AIG는 기업대출, 자동차대출이나 신용카드 매출채권 등에 대한 보험을 팔아왔었다. “마이클은 신용부도스왑CDS라는 상품을 발견했다. 신용부도스왑은 반기별 프리미엄 지불과 기한부 조건으로 기업 채권의 상환을 보장해주는 보험증권이엇다. 예컨대 매년 20만 달러를 지불하는 조건으로 GE의 채권 1억 달러를 보장해주는 10년 만기 CDS를 구매할 수 있다. 이 경우 신용부도스왑 구매자의 최대 손해액은 20만 달러씩 10년간 지불하는 200만 달러다.

GE가 10년 내 아무 때나 부도를 내고 채권보유자가 채권을 상환받지 못해도 CDS 구매자는 1억 달러를 상환받을 수 있다. 이것은 CDS 구매자가 1억 달러를 얻으면 CDS 판매자가 1억 달러를 잃는 제로섬 베팅이었다.”

AIG 관계자들은 “거의 10년 동안 다루어왔던 것과 기본저긍로 동일한 위험을 보장해주고 보험 프리미엄을 받는다고 생각햇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파크는 소비자대출에 대한 CDS 중에서 몇 퍼센트가 서브프라임모기지인지를 담당자에게 물어보았다. 런던의 위험분석가는 20%라고 추정했다. 그러나 ‘서브프라임모기지 비율이 95%에 달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죠.’”

“이제 그들은 사실상 세계 최대의 서브프라임채권 보유자가 되엇다.” “알고도 믿기 어려운 사실이었다. 일개 보험회사가 연간 몇 백 달러를 받고 200억 달러가 한순간에 사라질지도 모르는 엄청난 위험을 떠안았으니 말이다.”

도이체방크와 골드만삭스와의 회의에 참석햇던 AIG FP의 트레이더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라는 기계를 떠받치는 사상이나 분석이 얼마나 미미한지를 깨닫고 충격을 감추지 못햇다. 서브프라임모기지 거래는 주택가격이 일시에 하락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가정에 기초한 것이었다.” AIG는 더 이상 그와 같은 상품을 보장해주지 않기로 햇다. 그러나 트리플A등급의 다양화된 소비자대출로 포장된 트리플B등급 서브프라임모기지채권 500억달러 규모를 신나게 매수한 후였다.

“서브프라임시장은 두단계를 거쳤다. 첫단계에서는 AIG가 대부분의 시장붕괴위험을 떠안고 2005년말까지 명맥을 이어갔다. AIG가 태도를 바꾸었을 때 AIG FP의 트레이더들은 자신들의 결정으로 시장이 폐쇄될 것이라고 추측햇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월가는 이미 CDO를 이용해 부실한 트리플B등급 서브프라임채권을 위험없는 트리플A등급 채권으로 만들어 너무나 많은 돈을 벌었기 때문에 그일을 그만둘 수 없엇다ㅓ. 여러 회사에서 CDO 기계를 운영했던 사람들은 너무나 크나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음악이 흐르는 동안 춤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말처럼 돈이 나오는 동안 월스트리트는 멈출 수 없었던 것이다.
주식시장은 소액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법률과 규제로 통제되는 세계이다. 그러나 기관투자자들의 세계인 채권시장은 주식시장을 압도하는 규모인데도 규제를 피해왔다. “채권 트레이더들은 법망에 걸릴 염려 없이 내부정보를 이용할 수 있었다. 채권 테크니션들은 정부 듀제에 신경 쓸 필요없이 보다 더 복잡한 증권을 개발 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채권에서 파생되는 상품이 많은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채권시장의 불투명성과 복잡성은 월가의 대형 회사들에게 크나큰 이점이 되엇다. 채권부서들은 점차 월가 수익의 원천으로 성장했다. 채권시장에서는 아직도 고객들의 무지와 두려움을 이용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 한 이유였다.”

“채권이 주식을 위축시켰다. 주식시장은 채권시장에 비교했을 때 뾰루지처럼 성가신 존재엿다. 일류 채권회사 살로먼브러더스가 엄청난 수익을 올려 완전히 다른 산업을 창출한 것 같았던 1980년대 이후로 채권시장은 큰돈이 생겨나는 곳이 되었다.” 이후 20년 동안 채권시장은 월스트리트의 호황을 주도하면서 다른 모든 것을 압도했다.

“월가는 구시대적 사업의 수익이 점차 감소하자 구조화금융이라는 새로운 산업을 창조했다. 주식중개 수익과 그보다 훨씬 전통적인 채권중개 수익은 인터넷과의 경쟁으로 크게 감소햇다.” 그런데 서브프라임시장이란 손쉬운 먹이감이 생긴 것이다. 그렇게 “단 몇 년 사이에 서브프라임모기지시장은 월가의 수익과 고용을 좌우하는 강력한 원동력이 되었다.”

월스트리트의 입장에서 서브프라임 시장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엇고 굴러가야만 하는 시장이었으며 굴러가게 만들어야만 하는 시장이었다.

“월가는 신용도가 낮으면서도 대출을 하는 미국인들이 충분하지 않자 최종상품을 찾는 투자자들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러사는 스티브의 베팅을 이용해 더욱 많은 상품을 합성했다. ‘자격이 없는 대량의 채무자들에게 감당할 수도 없는 집을 살 돈을 빌려주는데서 만족하지 않았죠. 허깨비 같은 대출을 만들어내기 시작했어요. 100배나 많이 말이죠! 그래서 서브프라임대출보다 금융시스템의 손실이 훨씬 컸어요.’ 스티브가 말했다.”

“그때 옵션원은 엄청난 손실을 발표했다. 옵션원은 원래 위험을 떠안지 않아야 마땅했다. 그러나 채무자가 최초 불입금을 내지 못할 경우에는 월가가 대출을 옵션원에 되돌려준다는 조항이 있었다. ‘대체 어떤 사람이 최초불입금도 내지 못하죠?’ 대니가 말햇다. ‘최초 불입금도 집할 수 없는 없는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인간들은 대체 누굽니까?’ 스티브는 이렇게 말햇다.”

“월가 사람들이 서브프라임대출 문제가 미국 시민들의 거짓말과 재정적 무책임 때문에 발행햇다고 주장할 때마다 스티브는 이렇게 말했다. ‘뭐라고요? 미국인 전체가 어느날 아침에 일어나 대출신청서에 거짓정보를 기록할 것에요’라고 말했다고요? 맞습니다. 그들은 거짓말을 했죠. 그러나 거짓말을 하라고 지시받았기 때문에 거짓말을 한 겁니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시장은 마르지 않는 샘물일 수는 없었다. “(2005년 기준으로) 지난 3년동안 주택가격은 과거 30년 동안 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상승햇다. 주택가격은 아직 하락하지 않았지만 더 이상 상승하지 않고 있었다. 그럼에도 주택담보대출은 대출 첫해에 놀라운 속도로 부실해져 채무불이행율이 1%에서 4%로 상승했다. 주택을 사려고 대출을 받았다가 12개월 만에 채무불이행을 선언하는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2000년 이래로 자기 소유의 주택가격이 1%에서 5% 사이로 상승한 사람들의 채무불이행 확률이 10% 이상 상승한 사람들의 채무불이행 확률보다 거의 4배나 높았다. 수백만명에 달하는 미국인들이 주택가격이 상승하지 않을 경우 대출금을 갚지 못해 대출을 늘려야 한다는 소리였다.

주택가격 하락이라는 최악의 상황조차 필요없었다. 과거 몇 년동안 이어졌던 주택가격의 이례적인 상승세만 멈춰도 상당수의 미국인들은 대출금을 갚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리프만은 그 차트를 보고 또 보았다. 그조차도 그 차트의 수치에 충격을 받았다. ‘주택가격이 하락할 필요도 없잖아. 지금처럼 빠르게 상승하지만 않으면 돼.’

주택가격은 여전히 상승하고 있지만 채무불이행 비율은 4%에 육박하고 잇었다. 7%까지만 상승하면 저투자등급인 트리플B마이너스 채권은 휴지조각이 된다.

리프만은 서브프라임모기지채권에 대한 신용부도스왑을 보유해도 괜찮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신용부도스왑은 보험이 아니라 도박이었다. 리프만은 승산이 있음을 알자 이제는 공매도를 하고 싶었다.”

그렇게 서브프라임 시장이 사라졌을 때 “리먼브라더스는 사라졌고 메릴린치도 무너졌다.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텐리는 투자은행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투자은행가들은 이제 멸종됐다. ‘월가의 몰락은 정의의 심판이야.’ 스티브가 말햇다.”


평점 4.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회적 원자 - 세상만사를 명쾌하게 해명하는 사회 물리학의 세계
마크 뷰캐넌 지음, 김희봉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류의 역사를 이해할 수 없는 이유는 인간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따라 역사가 진행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개인의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몇십억 배 늘려보라. 그러면 역사에 단순한 법칙이 없다는 것이 놀랄 일이 아니다.”

저자의 전작인 ‘세상은 생각보다 단순하다’에 나오는 말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저자는 묻는다. 사람을 그리고 사람이 모여서 만든 사회를 다루는 학문인 사회과학은 과학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과학은 아니다. 과학의 기본인 예측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왜 예측을 할 수 없는가? 설명은 여러가지가 있다. 대표적인 설명은 자연과학의 대상은 단순하지만 사회는 복잡하기 때문이고 사회가 복잡한 것은 “사람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간 세상을 물리학이나 화학처럼 정밀하게 이해할수(그리고 예측할수) 없다고 보았다. 원자는 단순하고 사람은 그렇지 않다. 그걸로 이야기는 끝.”

그러나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복잡하기는 원자도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사람보다 더 복잡하고 종 잡을 수 없다.

“조지와 그레이시는 기나긴 우주혀행을 끝내고 드디어 지구로 귀환하여 오랜만에 휴식을 즐겼다. 이들은 술집에서 만나 우주여행에 관한 대화를 나누면서 지구의 포근함을 한껏 누릴 수 잇었다.조지는 바텐더에세 자신이 늘 마시건 파파야주스를 달라고 하면서 그레이시를 위해 토닉워터를 탄 보드카를 추가로 주문했다. 그런데 조지가 막 시가를 한 모금 빨아들이던 순간, 시가가 갑자기 사라졌다! 어디서도 시가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런 조지를 보고 놀란 그레이시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랬더니 조지가 앉아 있던 의자 뒤편의 카운터에 문제의 시가가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시가가 대체 왜 저지기 있지? 내 뒷머리를 뚫고 지나간 건가? 그러나 뒤통수에 구멍은 없었다.

조지는 유리잔에 담겨나온 파파야주스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거기에 떠 있는 얼음조각들이 마구 출렁대면서 서로 정신없이 부딪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레이시의 보드카 잔에 있는 얼음조각들은 더 격렬하게 난리를 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다음에 벌어진 일에 비하면 이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둘이 잔을 바라보는 사이에 얼음조각 하나가 유리잔의 옆면을 ‘빠져나와’ 바닥에 떨어졋다. 유리잔은 멀쩡했다.

조지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우주공간에 너무 오래 있었나봐. 이런 말도 안되는 환상이 보이다니…” 그들은 술집을 나왔다. 그런데 그들이 술집에서 나올 때 통과한 문은 사실 진짜 문이 아니라 견고한 벽에 문처럼 그려놓은 그림이었다.”(브라이언 그린)

이 해괴한 풍경은 양자역학이 연구하는 소립자의 세계를 의인화한 것이다. 에너지이면 물질이기도 한 소립자 세계에선 순간이동을 하거나 벽을 뚫고 지나가는 일은 일상사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파인만은 이렇게 말햇다. “상대성이론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전 세계에 12명뿐이라는 기사가 뉴스로 보도되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그 보도가 사실과 다르다고 믿는다.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논문을 세상에 발표하기 전에 그 내용을 이해하는 사람이 전 세계에 단 한 명뿐어었던 시절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논문이 공개되고 난 후에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상대성이론을 이해하고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12명은 분명 과소평가된 수치이다. 그러나 양자역학은 사정이 전혀 다르다. 나는 현재 이 세상에 양자역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잇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고 자신 잇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아무 문제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중요한 것은 물질을 이루는 부분들의 성질이 아니라 그것들의 조직과 패턴과 형태라는 것이 현대 물리학의 교훈이다.” 소립자들이 모여 만든 패턴에선 양자역학의 황당함이 아무 상관이 없다.

그렇다면 왜 인간의 세계는 달라야 하는가? 라고 저자는 묻는다. “사회과학의 기본 방향은 물리학과 비슷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먼저 사회적 원자의 특성을 이해하고 그다음에 많은 수의 원자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때 풍부한 집단적 패턴이 나타나는 방식을 배워야 한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사회과학 역시 그렇게 생각해왔다. 뒤르켐은 사회학의 대상은 개인이 아니라 말했다. 사회학의 대상은 3사람(triad)의 집단, 즉 사람들이 모여 만드는 패턴이 대상이란 말이다. 경제학 역시 마찬가지이다. 경제학의 대상은 시장이지 시장에 참여하는 개인이 아니다.

그러나 저자는 지금까지 사회과학은 방법론에서 틀렸다고 말한다. 특히 경제학이 그렇다고 저자는 본다. 과학은 복잡한 현실을 단순화하는 것이다.

“사람도 복잡하고 사회도 복잡하고 문화도 복잡하다. 보잘 것없는 수학 모형이 이런 것들을 설명한다는 것은 그럴듯하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이다. 아무리 복잡한 대상도 극단적으로 단순화한 모형으로 그 핵심을 짚을 수 잇음과 그 모형으로 실세계에 도달할 수 있음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하면 기적처럼 보일 것이다. 어쩜녀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적이 없으면 과학도 없다.

물리학을 ‘정밀’ 과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물리학자들은 방정식을 가지고 엄밀한 해만을 구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개념적으로 철학적으로 실용적으로 물리학의 강점은 언제나 어림짐작에 잇다 진짜로 중요하지 안ㅇㅎ은 사소한 것들을 무시하고 중요한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특수한 몇몇 경우를 제외하면 현실을 그렇게 심각하게 단순화하면서도 어떻게 그처럼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는지 우리는 진정으로 모른다. 우주는 쉽게 분해를 허용하는 듯하다. 세계는 의외로 아주 단순한 방식으로 조립되어 잇다.”

단순화는 과학의 핵심이다. 그러나 사회과학은 특히 경제학은 잘못된 단순화의 오류를 범하고 잇다고 그렇기 때문에 과학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경제학자들의 전통적인 아이디어, 우리는 모두 초이성적인 계산 기계여서 실수 없이 자기 이득을 위해 행동한다,는 생산적인 과학의 아이디어에 속하지 않는다. 이것은 완전히 비과학적인 방식이 인간 과학에 침입하는 데 성공했음을 보여주는 기념비하고 할 수 있다.”

저자는 경제학의 오류는 경제학의 대상인 시장의 원자가 되는 개인에 대한 잘못된 단순화에 있고 그 단순화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그 원자들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내는 패턴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결과 경제학이 그리는 세계에 대한 이미지는 잘못되엇다.

저자는 경제학이 개인에 대해 가정하는 이기적 합리성에 대해 길게 비판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선 심리학은 물론 다른 사회과학, 그리고 행동경제학에서 수많은 비판이 있었기 때문에 여기서 또 반복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경제학의 이기적 합리성이 비현실적이라고 비생산적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는 그것이 복잡계의 이미지를 수용할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경제학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은 인간사회를 평형계로 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물리학은 100년 동안 ‘평형’에만 주목햇다. 금속과 액정, 반도체에서 초유통체에 이르는 물질들의 성질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잇는 거의 모든 것들은 평형 이론에서 나온다. 양자 컴퓨터처럼 꽤 매혹적인 물리학의 응용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경제학 역시 평형에 주목해왔다. 경제학원론을 들었다면 가격이 균형으로 돌아간다, 경기순환이 균형상태로 복귀햇다 등의 설명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시장은 물론 인간사회는 “지각이나 인터넷처럼 끊임없이 진화하며 불변인 상태로 안정되는 법이 결코 없는 ‘비평형계’라고” 말한다.

“복잡계 과학의 주된 통찰 한 가지는 복잡한 비평형계에서 법칙에 가까운 패턴이 나오면 디테일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더 큰 그림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큰 그림은 사회의 원자인 개인들의 상호작용으로 어떻게 패턴이 ‘자기조직화’되며 그 패턴에 따라 어떻게 비평형계가 진화하는가에만 주목하는 것이다.

“역사에는 명백한 경향이나 단순한 순환 과정은 없는 것같다. 뉴턴 방정식 같은 몇 가지 방정식으로 역사를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사람들만 아니라 패턴에 주목했을 때 역사에 어떤 식별 가능한 과정이 있다면 그리고 그 자신만의 리듬과 특징이 잇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가 찾는 것이다.”

저자는 자연과학의 복잡계 이론의 설명방식을 이용해 어떻게 주식시장의 등락을 설명할 수 잇는가, 보스니아에서 벌어진 인종청소를 설명할 수 있는가, 80:20의 파레토 법칙으로 불리는 부의 불평등과 제국의 붕괴를 설명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평점 4.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 한반도 묵시록 - The Revelation
한호택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1956년 이승만 정권에 대항하던 민주당이 내세운 표어다. 당시 표어는 민중의 호응을 얻었고 집권당의 제지를 뚫고 수십만 인파가 구름처럼 한강 백사장에 모였다. 그 후 60년도 더 흐른 2019년 그 시절의 모습이 재현되고 있었다.”

“대형 방음기에 막혀 군중이 외치는 소리도 넘어오지 못햇다. 빈부, 남북, 좌우, 내국인과 외국인, 선과 악… 이분법은 컴퓨터 뿐만 아니라 세상을 가르는 기준이다.”

“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대한민국 영토가 보였다. 하늘에서 보기에도 부자동네와 가난한 동네는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부자동네가 산뜻한 파스텔 톤이라면 달동네는 황사가 덮여 우중충한 똥색으로 갈아앉아 있었다. 부자들은 발달한 보안기술을 이용해 자신들만의 견곻란 성을 쌓았고 그들이 만들어 배부한 표식이 없으면 누구도 그 안으로 들이지 않았다.”

“인공지능이 발달하자 사람이 하던 일이 손쉽게 기계로 대체됐다. 유휴인력이 남아돌아 먼지처럼 떠돌아 다녔지만 그들을 채용하려는 기업이 없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사하려는 사람들로 인해 학력 인플레가 본격화됐다. 이제 대졸자가 회사에 들어가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려웠다. 박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낙엽만큼 많았다.”

가난뱅이는 언제나 살기 힘들다. 그러나 그 도가 지나친 세상이 되었다. “환경오염과 그로 인해 이어진 물 부족은 세계적인 문제였다. 물 부족으로 식량 부족으로 이어졌고 빈민들은 오염된 물로 키운 유전자식품을 먹었다. 부자들은 위생적으로 처리된 유기농식품을 먹었다. 부자들의 한 끼 식사비용이 가난한 자들의 한 달 식사비용보다 많았다.”

이 소설이 배경으로 하는 얼마 남지 않은 미래의 한국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포보스라는 테러집단이다. 모든 테러집단들이 그렇듯이 이들은 현실을 부정하는 이상을 꿈꾼다. 포보스란 집단이 꾸는 꿈은 ‘사람들이 원하는 국가를 만들어 그 국가를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다.’

부모를 선택할 수 없듯이 자신의 고향을 조국을 선택할 수는 없다. 그저 우연히 거기에 태어날 뿐이다. “이 땅이 싫으면 그 사람이 떠나면 된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 이 땅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에게는 이 땅에 살 권리가 있어. 문제는 땅이 아니라 국민을 만족시키지도 못하면서 다른 선택도 못하게 하는 정치체제야.” 포보스는 그것을 불합리라 부르며 사람들에게 선택할 자유를 주려 한다.

사람이 만든 다른 모든 것처럼 국가 역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제 그 국가가 오히려 사람을 죽이고 있다고 포보스는 말한다.

“작년에 한국에서 생활고를 비관해 자살하거나 굶어 죽은 사람이 몇 명인지 아십니까? 테러로 죽은 사람의 백 배가 넘습니다. 이런 법질서를 지켜야 합니까? 왜요? 전 세계의 11억 인구가 비만인데 이와 비슷한 숫자의 사람들이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왜 잘못된 세계, 잘못된 국가, 잘못된 정책은 바로 잡으려 하지 않고 그런 부조리를 뜯어 고치려는 조직을 없애려 합니까?”

“인터넷의 발달로 직접 선거가 가능한 세상이 됐고 정보의 공유로 권력의 독점도 막을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기업이 만든 물건을 일방적으로 구입하던 소비자들이 지금은 자신에게 맞는 맞춤형 제품을 요구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그런데 왜 국가는 그러면 안되는가? 이들의 질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선택의 자유를 줄 것인가? 세계를 도시국가로 나누면 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앞으로 국민이 국가를 선택할 수 있게 되고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국가로 몰려갈 것입니다. 왜 그 나라에 태어났다는 한 가지 이유로 온갖 부조리를 감수하며 그 나라 국민으로 죽어야 합니까? 포보스연합이 아니더라도 굳이 국가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국가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자유도시가 계속 늘어날 것입니다.”

“지금은 이민이 쉽게 허용되지 않지만 국가가 많아지면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이민도 원활해져. 최종목표는 마을 단위의 국가를 만들어 노자의 소국과민을 실현하는 거야. 백만 개 정도의 국가를 만들면 과거의 국가개념은 사라지게 될거야.”

그러나 지금의 국가제도가 만들어진 것은 다른 국가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한 최저의 규모를 만든 결과이다. 이들의 비전은 신선하면서 매력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실적일까?

이 소설의 설정에 따르면 어느 정도 현실성이 있다. 이들은 다국적기업을 장악해 재력을 갖추고 그 재력을 기반으로 첨단군사기술과 핵으로 무장한다.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있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전략을 짜고 그 전략에 따라 일어나는 사건이 이 소설의 내용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과연 그들의 꿈이 현실적일까? 작가도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같다. 이들의 꿈은 결국 실현되지 않는다.

저자는 그 이유를 사랑으로 제시한다. 사랑 앞에 무력해지면서 그들의 꿈이 무너지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이란 은유는 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왜 아이를 낳으려 하지? 어차피 그 아이는 지금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될텐데”
“그럼 너는 왜 도시국가를 만들려고 하는 거야?”
“지금 국가체제보다는 나으니까. 도시국가가 세워진다고 인간의 고통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아. 환경은 갈수록 나빠지고 자원도 고갈돼 갈 거야.”

너무 이성적이다. 그들의 이상은 그렇게 차가운 논리의 구축물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이렇게 작가는 암시한다.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만들고 지켜야 할 게 있어.”
“그게 뭔데?”
“가족”

가족을 만들고 지키는 것처럼 국가 역시 손익계산만으로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저자가 이 소설에서 내리지 못하는 결론은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만 모르는 5년 후 한국경제 - 세계경제 전쟁에서의 생존전략
조명진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리뷰를 쓰는 날 보도를 보면 11월 연평도 공격에 대해 UN 안보리에서 어떤 합의도 나오지 않았다는 기사가 보인다.

미국과 유럽국가들은 북한을 규탄하는 안을 제출했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반대해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번 만이 아니라 천안함 사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저자는 이런 상황을 신양극체제라는 말로 정리한다.

냉전이 끝난 후 미국 주도의 1극체제에서 친미성향의 NATO+태평양 동맹국들의 네트웤과 중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상하이협력기구(SCO)를 양극으로 하는 구도로 국제질서가 재편되었다는 것이다.

양대세력은 냉전시절과 마찬가지로 세계의 지정학적 요충지를 놓고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발칸의 보스니아 사태를 시작으로 아프카니스탄, 중동, 아프리카에서 양대 세력의 이해관계가 충동해왔다. 냉전시절에 이어 신양극체제에서도 한반도는 두 세력의 각축장이다.

그러면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미묘하다. 냉전시대와 달리 이번의 양극체제에서 한국은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편들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군사적으로 한국은 PATO(친미조약기구)에 속한다. 그러나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더 가까워져 있다. 정치와 경제가 모두 친미진영에 속했던 냉전시절과는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노무현 정부 시절 친중주의자들의 주장처럼 미국은 지는 해이니 중국에 붙으면 될까? 그것이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미국의 헤게모니가 예전같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번 경제위기로 미국의 저무는 속도는 가속도가 붙었다. 그러나 냉전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지금의 신양극체제도 1.5 체제라는 것이 문제이다. 소련도 그랫고 지금의 중국과 러시아도 친미 서방진영의 반쪽에 불과할 뿐이다.

조지프 나이에 따르면 국제세계의 헤게모니는 3차원 입체 체스판과 같다. 1층은 군사력의 차원이다. 2층은 경제력, 3층은 문화적 영향력의 소프트 파워의 차원이다. 헤게모니란 아래층을 기초로 위층의 체스판을 지배하는 게임의 결과로 얻어진다.

그 결과 얻어지는 헤게모니는 무력이란 벌거벗은 힘( naked power)으로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헤게모니란 말대신 내비 파워(Navi-power, 방향을 알려주는 Navigation power)란 말을 쓴다.

미국의 헤게모니가 저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과 러시아의 실력은 지역패권국이라면 모를까 세계의 패권국이 되기에는 턱도 없다.

저자는 그 이유를 신뢰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라 말한다. 신뢰는 3차원 체스판에서 3차원의 게임이다. 그러나 3차원의 체스판에 뛰어들려면 1차원과 2차원을 지배해야 한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의 실력은 어느 차원도 지배할 실력이 되지 않는다.

특히 2차원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경제력의 핵심은 금융 지배력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논할 가치도 없고 중국도 금융강국이 되기에는 턱도 없다고 저자는 본다.

요 몇 년 동안 중국에서 나온 경제서적들을 보면 금융강국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 그 이유는 피해의식이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의 원인을 유대인 자본의 화교자본에 대한 견제에서 시작되었다고 중국인들은 생각한다. 홍콩이 반환된 다음 날 태국에서 위기가 시작되었고 그 위기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은 동남아의 화교자본이었다. 그 이후로도 유대 자본의 중화경제권에 대한 견제는 계속되고 있다고 중국인들은 생각한다. 이런 논지의 대표적인 서적이 ‘화폐전쟁’이다. 화폐전쟁의 저자는 일본이 몰락한 이유를 화폐전쟁에서 졌기 때문이라 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중국이 일본처럼 몰락하지 않으려면 금융대국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나온 ‘자본의 전략’은 “중국이 제조 대국에 이어 무역 대국이 되었고 이제는 금융 대국을 향해 가고 있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한가? 저자는 회의적이다.

저자는 금융대국은 신용 위에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중국이 외국 기업의 상해 증시 상장을 허용하면서 금융 개방화 정책을 펴는 것은 금융산업의 주요 부분인 증시를 키우는 데는 일조하지만 금융의 허브가 되기 위한 기본적인 요소인 국가 신용도와 정치의 안정성은 장기적 접근이 필요하다. 돈만 모여든다고 금융 허브가 되는 것이 아니다.”

“2010년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은행은 중국농업은행이다. 그러나 금융 강국이 되기 위한 조건은 증시 거래 규모와 은행의 수익만이 아니다. 중국이 금융대국으로 가기 위한 조건 중 하나는 세계적인 보험회사의 운영이다.

보험회사를 믿고 만일을 대비해 돈을 맡기는 것은 신뢰의 표현이며 신용이 없으면 성립될 수 없는 거래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중국은 과연 그만한 신용이 있는가?’” 그다지 긍정적인 답이 나오지는 않는다. 중국인들 스스로 믿지 않는 것을 누가 믿겠는가?

“현재 중국에는 1조 위안 이상의 부호가 5만 5000명에 달란다. 이 중 많은 부호들은 해외이민을 생각 중에 있는데 2009년 미국 투자이민은 전년대비 2배가 넘었다. 대부분의 부자들이 해외이민을 선택하는 이유로는 ‘자녀교육’, ‘안전감(중국 내 투자환경의 잦은 변화와 부에 대한 원죄’ 추궁문제로 신변 안전에 대한 불안감 고조), ‘선진 생활환경 추구’라고 한다. 이는 중국인들 스스로 자국에 대한 신뢰가 낮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국제무대에서 헤게모니를 잡기 위해서는 군사력에 앞서 미국과 EU처럼 기축통화로 공인받을만한 화폐가 있어야 한다. 달러와 유로화에 대한 신용은 바로 조직적으로 짜인 신뢰할 수 있는 금융시스템이다.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한 제조업이 지속 성장 가능한 경제 그리고 신용할 수 있는 금융시스템의 구축이 바로 달러와 유로를 받쳐주기에 가능한 것이다. 중국은 자본, 노동력, 기술력만 있으면 헤게모니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역설적인 것은 아시아와 아랍 그리고 러시아의 거부들은 그들의 자산을 미국이나 유럽계 은행에 맡겨야 안심한다. 중국이 아무리 많은 외화를 보유해도, 중국이 최고의 공산품을 만들어도 세계인들이 생각하는 중국의 신용도가 공고해지지 않으면 금융 패권은 요원하다. 중국이 금융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자국의 자본을 해외에 투자하는 지금의 패턴이나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성 자본의 유입에서 탈피해 타국의 개인자본이 중국의 보험상품을 사고 중국이 운영하는 신용카드를 세계인이 사용할 때 가능한 것이다.

통제불능으로 넘쳐나는 달러로 세계 금융시스템이 균형을 잃었기 때문에 신양극체제가 태어났다. 그리고 달러의 종말도 멀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서구의 금융 패권은 계속될 수 밖에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트렌드 코리아 2011
김난도 외 지음 / 미래의창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이책이 그리는 내년 소비자의 모습은 정신분열증이다. 저자들은 내년의 트렌드를 Two Rabbits, 두 마리 토끼로 요약한다. 동시에 잡을 수 없는 것을 동시에 잡으려 한다는 말이다.

가격은 싸야 되지만 질도 높아야 한다.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만 프라이버시도 지켜져야 한다. 여가가 많아야 하지만 그렇게 주어진 여가시간엔 평소보다 더 바쁘다. DIY를 외치며 스스로 하겠다고 하며 그만한 전문지식을 쌓지만 터무니 없는 돈을 주면서도 전문가의 손길을 원한다.

저자가 말하는 소비자의 모습이다. 사실 그렇게 낯선 모습은 아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악몽 같은 일상이 되어버린지 오랜 모습일 뿐이다. 저자들이 전망하는 내년 트렌드 하나 하나는 책소개에 이미 나와 있으므로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세부사항들은 이미 다른 경영서적에 많이 반복되어 온 것이기 때문에 굳이 여기서 반복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보다는 왜 그런 트렌드가 나타나는가를 이해하는 것이 더 생산적일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면 왜 이런 모습이 나타나는 것일까? 저자들은 거기에 대해 말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저자들이 올해 트렌드를 전망했던 것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같다.

저자들이 전망했던 올해 트렌드 역시 내년 트렌드에 대한 전망처럼 여러가지이다. 그러나 올해 트렌드 처럼 일정한 경향성이 있었다. 그 경향성은 개인주의 정도로 요약될 수 있다.

동성애, 성적묘사, 폭력성, 막말 등 대중매체의 금기가 사라져가는 것은 사회를 묶어주는 문화의 접합력이 약해지는 것을 말한다.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던 공통의 사회적 코드가 무너져 가면서 개인이 우주의 중심이 되어 간다. 저자는 ‘소비자는 나르시스트’란 말로 그런 경향을 요약한다.

“최근 가요계를 휩쓴 신세대 아이돌 그룹의 가사는 하나같이 자신을 자랑하기에 바쁘다. 이제 겸양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 그동안 우리 우리 대중가요가 이별의 아픔, 헌신적 사랑, 삶의 애환 등의 ‘겸손한’ 주제로 일관했던 점을 상기한다면 놀라운 변화다.

그렇다면 이러한 가사의 범람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들 아이돌 그룹은 트렌드를 잡아내고 그것을 문화상품으로 만들어내는 데 탁월한 감각을 보여주는 기획사의 작품이다. 그들이 내놓은 곡에 공통적인 주제가 이렇게 반복적으로 등장한다면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닐 것이다.

히트곡의 가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는 ‘당당하고 자기애가 강한 세대’의 자신감이다. 그들의 히트곡은 모두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 있게 자기를 표현하고 싶어하는 신세대 소비자의 욕망을 충족시키고 잇다. 바꿔 말하면 자기애로 똘똘 뭉친 나르시스트 소비자들이 이런 당찬 가사에 환호는 것이다.”

그런 나르시스트들은 SNS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데 과감하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남을 의식하지 않고 당당하게 말한다. 자신을 표현하는데 돈을 주저없이 쓴다.

“나르시스트 소비자가 늘어나는 것은 이들이 ‘개인’으로 자라난 첫 세대이기 때문이다. 형제가 적어 어릴 때부터 방을 혼자 썼고 성인이 돼서도 원룸을 선호한다. MP3 플레이어, 핸드폰, PMP 등 개인화된 기기로 무장하고 온라인 게임을 하며 혼자 논다. ‘자기’가 세상의 중심일 수 밖에 없다. 또한 이들은 소비문화의 세례를 받은 행운아들이다.”

이런 소비자를 만족시키기는 어렵다. 더군다나 공급이 수요를 만성적으로 초과하는 시장에서 그들을 쫓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그러나 그들은 파고 들 틈이 많다. 그들의 나르시즘은 연약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당당한 세대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사상 최악의 취업난을 맞고 잇다. 한껏 높아진 자존심을 채워주기에는 결코 호락호할하지 않은 기성사회의 높은 벽, 그 아래에서 젊은이들은 셀프-홀릭 상품으로 무너진 자존심을 달래고자 한다. 그래서 물과 기름 같아 보이는 아이돌 그룹의 자기도취와 가수 장기하가 읊조리는 ‘루저 문화’는 서로 묘하게 닿아 잇다.”

그들의 자기애는 현실에선 깨져나가는 연약한 유리벽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스타에 열광한다. 현실에선 가짜일 수 밖에 없는 그들의 자기애와 달리 스타는 현실에서 진짜이기 때문이다. 스타들이 무엇을 입고 어디를 다니며 무엇을 하는지에 그렇게 관심이 많은 이유이다.

현실 앞에서 부서져 나갈 수 밖에 없는 그들의 자기애가 비현실적이듯 그들이 사랑하고 드러내고 싶어하는 자신 역시 얄팍한 언제든지 깨져나가는 진짜이면서 가짜일 뿐이다.

“왜 소비자들은 이렇게 자신의 소소한 일상까지도 올리고 공유하고 싶어할까? 이는 일차적으로 개인 소비자들이 거대한 시장경제체제에서 소외되어 가는 과정에 느끼는 상실감과 좌절감을 다른 사람과의 공유와 공감을 통해 해소하려는 의도라고 해석할 수 있다. 소소한 일상을 고유하며 자신과 비슷한 상황과 처지에 있는 타인들을 만나면서 상실감을 달래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온라인을 통한 인간관계는 개방성을 통해 확장되어 간다. 그러나 실제 현실에서의 인간관계도 그만큼 진전되고 잇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온라인의 인간관계는 실제의 인간관계보다 깊이도 강도도 약하다. 그렇기에 깨지기도 쉽다. 그런데도 그런 관계에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답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