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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원자 - 세상만사를 명쾌하게 해명하는 사회 물리학의 세계
마크 뷰캐넌 지음, 김희봉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8월
평점 :
“인류의 역사를 이해할 수 없는 이유는 인간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따라 역사가 진행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개인의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몇십억 배 늘려보라. 그러면 역사에 단순한 법칙이 없다는 것이 놀랄 일이 아니다.”
저자의 전작인 ‘세상은 생각보다 단순하다’에 나오는 말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저자는 묻는다. 사람을 그리고 사람이 모여서 만든 사회를 다루는 학문인 사회과학은 과학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과학은 아니다. 과학의 기본인 예측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왜 예측을 할 수 없는가? 설명은 여러가지가 있다. 대표적인 설명은 자연과학의 대상은 단순하지만 사회는 복잡하기 때문이고 사회가 복잡한 것은 “사람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간 세상을 물리학이나 화학처럼 정밀하게 이해할수(그리고 예측할수) 없다고 보았다. 원자는 단순하고 사람은 그렇지 않다. 그걸로 이야기는 끝.”
그러나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복잡하기는 원자도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사람보다 더 복잡하고 종 잡을 수 없다.
“조지와 그레이시는 기나긴 우주혀행을 끝내고 드디어 지구로 귀환하여 오랜만에 휴식을 즐겼다. 이들은 술집에서 만나 우주여행에 관한 대화를 나누면서 지구의 포근함을 한껏 누릴 수 잇었다.조지는 바텐더에세 자신이 늘 마시건 파파야주스를 달라고 하면서 그레이시를 위해 토닉워터를 탄 보드카를 추가로 주문했다. 그런데 조지가 막 시가를 한 모금 빨아들이던 순간, 시가가 갑자기 사라졌다! 어디서도 시가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런 조지를 보고 놀란 그레이시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랬더니 조지가 앉아 있던 의자 뒤편의 카운터에 문제의 시가가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시가가 대체 왜 저지기 있지? 내 뒷머리를 뚫고 지나간 건가? 그러나 뒤통수에 구멍은 없었다.
조지는 유리잔에 담겨나온 파파야주스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거기에 떠 있는 얼음조각들이 마구 출렁대면서 서로 정신없이 부딪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레이시의 보드카 잔에 있는 얼음조각들은 더 격렬하게 난리를 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다음에 벌어진 일에 비하면 이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둘이 잔을 바라보는 사이에 얼음조각 하나가 유리잔의 옆면을 ‘빠져나와’ 바닥에 떨어졋다. 유리잔은 멀쩡했다.
조지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우주공간에 너무 오래 있었나봐. 이런 말도 안되는 환상이 보이다니…” 그들은 술집을 나왔다. 그런데 그들이 술집에서 나올 때 통과한 문은 사실 진짜 문이 아니라 견고한 벽에 문처럼 그려놓은 그림이었다.”(브라이언 그린)
이 해괴한 풍경은 양자역학이 연구하는 소립자의 세계를 의인화한 것이다. 에너지이면 물질이기도 한 소립자 세계에선 순간이동을 하거나 벽을 뚫고 지나가는 일은 일상사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파인만은 이렇게 말햇다. “상대성이론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전 세계에 12명뿐이라는 기사가 뉴스로 보도되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그 보도가 사실과 다르다고 믿는다.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논문을 세상에 발표하기 전에 그 내용을 이해하는 사람이 전 세계에 단 한 명뿐어었던 시절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논문이 공개되고 난 후에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상대성이론을 이해하고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12명은 분명 과소평가된 수치이다. 그러나 양자역학은 사정이 전혀 다르다. 나는 현재 이 세상에 양자역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잇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고 자신 잇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아무 문제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중요한 것은 물질을 이루는 부분들의 성질이 아니라 그것들의 조직과 패턴과 형태라는 것이 현대 물리학의 교훈이다.” 소립자들이 모여 만든 패턴에선 양자역학의 황당함이 아무 상관이 없다.
그렇다면 왜 인간의 세계는 달라야 하는가? 라고 저자는 묻는다. “사회과학의 기본 방향은 물리학과 비슷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먼저 사회적 원자의 특성을 이해하고 그다음에 많은 수의 원자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때 풍부한 집단적 패턴이 나타나는 방식을 배워야 한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사회과학 역시 그렇게 생각해왔다. 뒤르켐은 사회학의 대상은 개인이 아니라 말했다. 사회학의 대상은 3사람(triad)의 집단, 즉 사람들이 모여 만드는 패턴이 대상이란 말이다. 경제학 역시 마찬가지이다. 경제학의 대상은 시장이지 시장에 참여하는 개인이 아니다.
그러나 저자는 지금까지 사회과학은 방법론에서 틀렸다고 말한다. 특히 경제학이 그렇다고 저자는 본다. 과학은 복잡한 현실을 단순화하는 것이다.
“사람도 복잡하고 사회도 복잡하고 문화도 복잡하다. 보잘 것없는 수학 모형이 이런 것들을 설명한다는 것은 그럴듯하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이다. 아무리 복잡한 대상도 극단적으로 단순화한 모형으로 그 핵심을 짚을 수 잇음과 그 모형으로 실세계에 도달할 수 있음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하면 기적처럼 보일 것이다. 어쩜녀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적이 없으면 과학도 없다.
물리학을 ‘정밀’ 과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물리학자들은 방정식을 가지고 엄밀한 해만을 구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개념적으로 철학적으로 실용적으로 물리학의 강점은 언제나 어림짐작에 잇다 진짜로 중요하지 안ㅇㅎ은 사소한 것들을 무시하고 중요한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특수한 몇몇 경우를 제외하면 현실을 그렇게 심각하게 단순화하면서도 어떻게 그처럼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는지 우리는 진정으로 모른다. 우주는 쉽게 분해를 허용하는 듯하다. 세계는 의외로 아주 단순한 방식으로 조립되어 잇다.”
단순화는 과학의 핵심이다. 그러나 사회과학은 특히 경제학은 잘못된 단순화의 오류를 범하고 잇다고 그렇기 때문에 과학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경제학자들의 전통적인 아이디어, 우리는 모두 초이성적인 계산 기계여서 실수 없이 자기 이득을 위해 행동한다,는 생산적인 과학의 아이디어에 속하지 않는다. 이것은 완전히 비과학적인 방식이 인간 과학에 침입하는 데 성공했음을 보여주는 기념비하고 할 수 있다.”
저자는 경제학의 오류는 경제학의 대상인 시장의 원자가 되는 개인에 대한 잘못된 단순화에 있고 그 단순화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그 원자들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내는 패턴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결과 경제학이 그리는 세계에 대한 이미지는 잘못되엇다.
저자는 경제학이 개인에 대해 가정하는 이기적 합리성에 대해 길게 비판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선 심리학은 물론 다른 사회과학, 그리고 행동경제학에서 수많은 비판이 있었기 때문에 여기서 또 반복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경제학의 이기적 합리성이 비현실적이라고 비생산적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는 그것이 복잡계의 이미지를 수용할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경제학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은 인간사회를 평형계로 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물리학은 100년 동안 ‘평형’에만 주목햇다. 금속과 액정, 반도체에서 초유통체에 이르는 물질들의 성질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잇는 거의 모든 것들은 평형 이론에서 나온다. 양자 컴퓨터처럼 꽤 매혹적인 물리학의 응용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경제학 역시 평형에 주목해왔다. 경제학원론을 들었다면 가격이 균형으로 돌아간다, 경기순환이 균형상태로 복귀햇다 등의 설명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시장은 물론 인간사회는 “지각이나 인터넷처럼 끊임없이 진화하며 불변인 상태로 안정되는 법이 결코 없는 ‘비평형계’라고” 말한다.
“복잡계 과학의 주된 통찰 한 가지는 복잡한 비평형계에서 법칙에 가까운 패턴이 나오면 디테일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더 큰 그림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큰 그림은 사회의 원자인 개인들의 상호작용으로 어떻게 패턴이 ‘자기조직화’되며 그 패턴에 따라 어떻게 비평형계가 진화하는가에만 주목하는 것이다.
“역사에는 명백한 경향이나 단순한 순환 과정은 없는 것같다. 뉴턴 방정식 같은 몇 가지 방정식으로 역사를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사람들만 아니라 패턴에 주목했을 때 역사에 어떤 식별 가능한 과정이 있다면 그리고 그 자신만의 리듬과 특징이 잇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가 찾는 것이다.”
저자는 자연과학의 복잡계 이론의 설명방식을 이용해 어떻게 주식시장의 등락을 설명할 수 잇는가, 보스니아에서 벌어진 인종청소를 설명할 수 있는가, 80:20의 파레토 법칙으로 불리는 부의 불평등과 제국의 붕괴를 설명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평점 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