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동아시아의 패러다임 변환과 제국 일본 논형학술총서 31
강상규 지음 / 논형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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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21세기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9.11 테러로 불길하게 개막한 새로운 밀레니엄의 출발 이후 우리는 어떠한 ‘거대한 변환’의 소용돌이 위에 떠있는 것은 아닌가.”

저자는 21세기의 불확실성과 19세기의 불확실성이 같은 이유였다고 말한다. 19세기와 20세기말의 공통점은 세계화였다.

세계화라면 보통 경제를 떠올린다. 세계정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세계가 하나의 문화로 묶인 것도 아니니 현실적으로 세계화는 경제현상이라 생각하는 것도 틀린 것은 아니다. 세계화의 교과서라 할 수 있는 ‘세계는 평평하다’도 경제현상으로 세계화를 다룬다.

그러나 세계화를 단순하게 경제현상으로 이해한다면 세계화가 어떻게 가능하고 세계화가 어떤 역학으로 작동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지난 30년간 세계화와 함께 가장 많이 말해진 것은 글로벌 스탠다드일 것이다. 세계화를 경제적으로 이해하더라도 세계시장이란 실체가 있어야 세계화가 가능하다. 세계시장이 가능하려면 그 시장에서 통용되는 규칙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거래가 가능하다. 그 규칙을 글로벌 스탠다드라 불렀다. 국경을 넘어 적용되는 규칙이 있다는 것은 세계화가 단순히 경제현상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느슨하더라도) 정치적 통합이 없다면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묶을 수 없다. 글로벌 스탠다드는 세계가 하나의 문명표준으로 묶인다는 의미이다.

19세기가 그런 시대였다. 19세기 동북아 3국의 경험을 이해하려면 세계화의 개념으로, 문명표준이란 시각으로 그 시대를 봐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19세기 동아시아의 경험을 ‘전근대에서 근대’로의 발전과정이라는 틀에서 단선적으러 이해해온 기존의 논의방식과는 달리 상이한 문명 간의 충돌과 패러다임 변환이라는 보다 복합적이고 상호구성적인 틀 위에서 검토”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게 봐야만 일본은 제국이 되고 중국과 한국은 식민지 또는 반식민지로 떨어졌는지 이해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19세기 흔히 서세동점으로 집약되는 거대한 변환의 과정이란 동아시아 지역에서 오랫동안 지속되어 오던 중화질서가 현실적으로 붕괴되고 서구의 국제질서로 재편되어가는 과정이었다. 한중일 동아시아 삼국은 이 과정에서 이른바 ‘예의 관념’에 의거한 중화질서로부터 ‘부국강병’과 ‘국가평등 관념’에 입각한 근대 국제질서로 동아시아 세계를 구성하는 패러다임의 변동을 겪어야 했다.”

그 과정은 말그대로 ‘문명의 충돌’이었고 ‘문명의 표준’이 바뀌는 ‘거대한 변환’이었다. 그런 과정이 쉽게 될리가 없었다. 수천년을 이어온 질서가 표준이 쉽게 바뀔 리가 없었다. 당하는 입장에선 하늘(천하)이 무너지는 일이었다.

중화질서의 “’무대’가 예의 관계에 입각한 ‘천하질서’에서 상위의 질서를 인정하지 않는 주권국가 간의 관계, 즉 ‘근대 국제질서’로 변화해 간 것을 지칭한다. 무정부적 속성을 지닌 새로운 무대 호나경에서는 덕치나 예치, 왕도정치, 사대자소와 같은 기존의 ‘연기’와는 다른 부국과 강병, 균세(세력균형)와 자강의 능력이 보다 중시되었고 이에 적응하지 못한 배우들은 무대 밖ㅇ,로 밀려났다.” 중국과 조선은 그 무대에서 밀려났고 일본은 그 무대에 남았다. 왜 그랬을까?

저자는 그 이유를 문명의 표준이란 관점에서 설명한다. 구체적으로 19세기 문명의 표준으로 떠오른 ‘만국공법’을 중국과 일본에서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그리고 만국공법이란 표준에 따라 자신이 자신의 정체성을 즉 국체를 어떻게 이해했는가를 검토하면서 적응과 부적응의 이유를 설명한다.

중화질서의 붕괴 또는 문명의 충돌은 아편전쟁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러나 중국의 입장에서 아편전쟁은 심각한 사건으로 인식되지 않았다. “아편전쟁이 영국한테는 국가의 전쟁이었으나 청국에게는 회민기의나 백련교도의 난과 같은 지방적인 사건이었다.” 당시 중국은 태평천국의 난이나 염군의 난 같은 내부문제가 아편전쟁 같은 외환을 압도했다.

청국 입장에서 불평등조약으로 양보하는 문제는 예전 중화질서에서처럼 오랑캐를 달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청은 서양의 여러 나라가 중국과의 조약을 통해 획득한 특권을 기본적으로 천자가 이적에게 베푼 은혜라고 간주하였기 때문에 어차피 일방적인 성격이 강할 수 밖에 없었고 오히려 상국인 중국의 편벽되지 않은 공정한 은혜를 반영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별다른 거부감없이 수용되었다.”

그러나 1860년 영불연합군이 북경을 점령하고 황제가 도망가는 경신변란이 일어나면서 양이의 문제는 심각한 사안이 되었고 중국 최초의 외교전담기구인 총리아문이 만들어진다. 예부 관할의 조공관계에 포섭되지 않는, 천하질서에 포섭되지 않는, 중국 자신이 일개 국가에 불과한 무질서의 국제질서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질서의 규칙인 ‘만국공법’에 주목한다.

그러나 중국의 입장에서 만국공법은 적극적으로 수용되지 않았다. 그것은 단지 양이들과 대화를 하기 위한 지피지기의 전략적 차원에서 수용되엇고 참고문헌이요 실무지침서일 뿐이었다.

그에 비해 일본에선 “막말의 2대 베스트셀러는 뭐니뭐니해도 후쿠자와 유키치의 ‘서양사정’과 휘튼의 ‘만극공법’이었다.”

이 차이가 두 나라의 운명을 갈라놨다고 저자는 말한다.

중국의 입장에서 만국공법이 전제하는 ‘국가평등’에 근거한 주권국가의 개념은 받아들일 수 없엇다. 그것은 ‘제국으로서의 중화라는 정치적 관점에서 보면 중국적 세계질서의 해체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중화문명권에서 문명의 정수를 구현하며 문명 기준을 제공하던 화(華)의 입장에서 새로운 문명 기준인 유럽문명에 의해 스스로를 재편해야하는 이(夷)의 입장으로 전락하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천하질서의 논리는 화와 이의 구분에서 시작한다. “화와 이의 관계란 문명의 완전태와 결여태의 관계”였다. 서구의 국제질서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관계가 뒤집힌다는 의미엿고 화에서 이로 전락한다는 의미였으며 정체성의 근간이 흔들린다는 의미엿다. 왕조의 “흥망성쇠를 넘어서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사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중화질서에서 주변이었던 일본의 입장에선 중국보다 적응이 쉬웠다. 주변에 있었기에 일본의 화이관에서 화는 실체가 불분명했고 이로서 서양에 대한 관점은 중국보다 유연할 수 있었다. 일본은 “중국의 천하 개념에서 드러난 자기완결성’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입장에서 화이사상은 중국과 달리 “문화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 군사적 경향성이 현저했다. 지배층이 사무라이 집단이었으며 화이사상을 지탱한 문화적 기반이 상대적으로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아편전쟁이후 “양이(攘夷)로 대표되는 배외주의적 기운이 일본열도 구석구석까지 침투해 들어갓다.” 그러나 그 기운의 뿌리는 “화이라는 명분보다 이기느냐 지느냐 죽느냐 사느냐라는 긴박한 위기의식’이었다. 그들이 본 것은 “서양제국의 군사적 우월성”이었고 “그 저변에 놓인 서양의 과학기술을 섭취해서 국력을 충실히 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전략적 인식이”었다.

일본에겐 문화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군사적 생존의 문제였고 적응의 문제엿다. 그렇기에 만국공법을 읽는 것은 적응의 생존의 수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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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유토피아 자음과모음 하이브리드 총서 2
박해천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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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993년 처음 서울을 방문해 아파트단지의 거대함에 충격을 받은 이후, 나는 어떻게 이런 대단지 아파트가 양산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박사 논문의 주제로 삼기로 마음먹었다.” 프랑스인들에게 아파트는 부정적으로 보일 뿐이다. “그들에게 이 아파트단지들은 관리부실, 볼품없는 건축미, 저급한 생활환경을 연상테 한다. ‘대단지 아파트=도시문제 발생지역’이라는 단순도식은 서구도시의 상징체계 안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발레리 줄레조)

코 크고 파란 눈의 아가씨가 아파트에 대해 묻고 다닐 때 사람들은 당연한 것도 모르는 ‘순진한 외국인’이란 반응을 보였을 뿐이다.

사람은 많고 땅은 이리 좁은데 어디다 집을 짓자는 말인가? 위로 올릴 수 밖에. 살기 편하니 또 좀 좋은가? 아파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프랑스와 달리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전부일까?

“1970년, 정부 주도로 건설된 몇몇 소형 아파트단지는 20여군데였고 모두 강북에 위치했다. 당시 서울시에서 아파트는 전체 세대의 4%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 서울에는 아파트가 없는 지역이 없고 주택 수에서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5년 현재 52.&%로 상승했다.” (줄레조)

어떻게 이런 급팽창이 가능했는가? “1970년까지만 해도 한국인들에게 아파트는 그다지 각광받지 못햇다.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자주 망각한다. 땅이 좁고 사람이 많다고 해서 고층의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불가피한 것도 아니다. 협소한 영토에 인구밀도가 높은 네델란드나 벨기에에서는 도시로의 집중화가 대규모 주택단지 건설을 가져오지 않았다. 이들 나라에서 건설된 대규모 주택의 수는 영토가 훨씬 넓은 프랑스보다도 적다.” (줄레조)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줄레조가 던진 질문에 대해 이책의 저자는 문화적 헤게모니라 답한다. 프랑스나 미국에서 대규모 주택단지는 서민을 위한 주거공간으로 계획되었다. 그러나 한국에 처음 들어선 아파트의 포지셔닝은 중상류층 이상을 위한 공간이엇다.

물론 한국이라고 프랑스와 같은 부정적 인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파트가 “마치 단층 운동에 의한 지각의 융기처럼 솟아오르던 30여년전에도 부정과 부패의 악취를 풍기는 투기의 온상이라니, 사회 구성원의 공동체적 유대감을 해체하며 인간 소외를 가속화하는 끔찍한 벌집이라니, 비판의 화살들이 수북이 박혀 생매장의 말무덤을 만들지만” 아파트라는 “불도저는 막지 못한다.” 아파트는 “담론의 가상세계에선 언제나 패배하지만 물질의 현실세계에선 백전백승이다.” 비판의 무기를 휘두르는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 그것뿐이다. 무기의 비판은 그들이 아니라 아파트의 몫이다. 왜 이런 일이 몇십년동안 반복되는가? 저자의 물음이다. 그답은 욕망의 정점에 아파트가 있기 때문이다.

1962년 ‘단지 개념으로 건설된 한국 최초의 아파트 단지’였던 마포아파트는 ‘도시 중산층의 주거 모델’로 제안되었다. 아직 전근대적 생활방식이 지배적이었던 당시엔 아파트가 환영받지 못했다. 그러나 “서구식 가정행활을 꾸리려던 서울 토박이의 젊은 중산층들’이 이 아파트에 주목했고 “자유분방함을 선호하는 소설가, 화가, 영화감독, 연극인등 저명 예술가들의 이름이 마포아파트의 초기 입주자 목록에” 남는다. 그후 미국인들이 대거 입주하면서 이 아파트가 일반인들에게 주목을 받고 ‘일반 회사의 중견 간부급들도 이곳으로 옮겨오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파트의 “주거 모델로서의 타당성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했지만 주말만 되면 아파트의 집치레와 세간살이를 구경하려고 방문한 주변 친지들로 현관 문턱이 닳을 지경이었다. 그들에겐 아들과 손자가 거주하는 이 아파트가 박람회에 전시된 미래의 견본주택이나 다름없었다. 현대적 일상생활의 실험실이자 구경거리로서의 마포아파트,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대한주택공사 총재 장동운이 본래 의도했던 바였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대한주택공사는 마포아파트의 실험을 통해 아파트 보급의 타당성을 확인했고 본격적인 도입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저자는 마포아파트에서 그리고 이후 쏟아진 아파트에서 당시 정부가 의도했던 것은 ‘조국 근대화’의 생활측면, ‘생활의 혁명’이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그저 잘 먹고 잘 입는 것처럼 별다른 매력을 지니지 못한 현대화도 너무 추상적이어서 체감이 힘든 막연한 현대화도 아니었다. 그것은 구체적인 질감을 지닌 또 다른 현대화였다.” 그리고 그 현대화의 질감은 ‘선진 외국에서나 볼 수 있는 대중사회의 면모’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서울시 전체 가구의 아파트 보급률은 1972년에는 4%, 1977년에는 7%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수치를 무시할 수 있을만큼 아파트는 ‘현대적인 문화생활’의 상징으로 자리를 굳건히 다져갔다. ‘매일 저녁 우리를 찾아오는 기라성 같은 탤런트’, ‘부의 상징으로 꼽히는 사장’, ‘출세의 부러움을 사는 고급관리’, ‘서울 명문대의 교수’등 이른바 사회지도층 상당수가 아파트로의 이사를 서둘렀고 대중 산업사회의 인간소외에 비관적인 태도로 일관했던 문인들조차도 아파트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햇다.

1977년 대학생 500명을 상대로한 설문조사에서 아파트에서 신혼 살림을 차리겠다고 응답한 대학생이 81%에 달했다. 특히 여학생이 선호도는 91%에 달햇다.”

아파트가 부정할 수 없는 실세로 등극한 것은 강남개발부터였다. 강남개발의 설계자들이 염두에 둔 것은 “당시 새롭게 등장하던 인구통계적 집단이었다. 이후에 ‘신중산층’이라는 이름을 얻게 도리 그들은 1970년대 압축적인 경제성장의 인적 견인차이자 실질적 수혜자로 부상하던 ‘조국 근대화’의 자식들이엇다. 1940년애에 지방에서 태어나 이제 막 출세의 초입에 들어서려는 찰나에 있던 이들, 그들은 경제성장의 격랑으로 극대화된 사회적 이동성을 십분 활용해 정부 관료와 대기업 관리직, 고소득 전문직과 자영업자로 성공신화를 써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주로 출신대학의 인근지역이나 사대문 밖에 머물며 아직 서울의 구도심으로 진입할 만큼의 경제적 여력을 갖추지 못햇다. 그곳은 여전히 뜨내기들이 넘보기 힘든 토박이들의 거처였다.”

설계자들은 이들을 주목한다. “이들을 집장사 집들이 점령한 서울 변두리에 방치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공간 질서로 끌어들여 입신과 출세의 기회를 제공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먼저 이들을 위해선 역사, 관습, 제도들이 퇴적되어 봉건 질서의 악취를 풍기는 장소에서 벗어나야 했다. 설계자들은 한강 이남에 위치한 무색무취의 턴 빈 공간을 눈여겨보았다.”

강남은 주류로 성장해가는 베이비부머들과 함께 신도심으로 태어난다. 그리고 강남의 얼굴을 도배한 아파트의 요새는 그 주류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규정했다. 저자는 아파트가 정의한 것은 단순히 수세식 화장실과 중앙난방시설 같은 것만이 아니라 말한다.

아파트는 “감각의 생산양식을 구축해 거주자들이 특정한 시각성의 논리를 체화하도록 독려했고 일상성의 프로그램을 제공해 독특한 구별짓기의 인지적 알고리즘을 내면화하도록 만들었다. 아파트는 그들 내면의 윤곽을 주조하는 거푸집이엇다. 독특한 감각과 인지의 공간적 매트릭스로 인간 거주자들의 습속을 분절하면서 그 결과로 ‘신중산층’의 독특한 정체성을 생산해냈다. 비판자들의 생ㄱ각처럼 신중산층이 아파트를 쌓아올린 것이 아니다. 어느 시점에서부터인가 아파트가 그들을 빚어냇다. 그들의 욕망은 아파트의 피조물이엇다. 바로 이것이 아파트의 콘크리트 육신에 적재된 매혹의 실체다.”

거창하게 들린다. 그러나 저자의 말은 거창하지 않다. 저자는 욕망의 구체적인 대상들을 나열하면서 전혀 그말이 거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아파트 평형으로 사람의 신분이 결정되는 것, 아파트 거실에 놓이는 가구들과 인테리어의 변천사를 살펴보며 농업사회의 ‘촌스런’ 취향이 어떻게 아파트라는 모더니티의 공간에 맞춰 재조형되는가, 예를 들어 자개장이 사라지고 원목이 뜨는 미시사, 꽃무늬나 에이프릴과 같은 장식이 어떻게 아파트라는 공간에 의해 사라지고 재등장하게 되는가, TV의 외장이 원목장에서 검정 플라스틱으로 왜 바뀌게 되는가, 아파트 대단지가 소매유통망을 제조직하면서 어떻게 소비사회를 만들어가는가 등을 자세히 분석한다.

이책의 주제는 그리 특별한 것은 없다. 앞에서 인용한 발레리 줄레조의 책만 하더라도 마찬가지 질문에서 시작해 비슷한 답을 내린다. 그러나 다른 책들과 달리 이책은 아파트가 우리의 욕망을 어떻게 규정하는가란 재미있는 주제를 건드리고 있고 그 주제를 구체적이면서 재미있게 다룬다는 점에서 다른 책들과는 분명한 차별성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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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만한 팀 vs 독한 팀 - 팀워크를 망치는 온정주의를 경계하라!
브라이언 콜 밀러 지음, 조자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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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그레이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는 남녀가 각기 다른 언어로 소통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어떤 문제가 있을 때 남성들은 그 문제의 해법을 찾는 데 골몰해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감정적인 문제는 잘 살피지 못한다. 그러나 여성들은 자신의 문제를 드러내고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답을 찾거나 답을 탐색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충전한다. 남성들이 여성들을 ‘쓸데없이 수다스럽다’고 편훼하는 것도 이 같은 문제해결의 메커니즘을 몰라서다. 남성들은 어떻게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여성들은 상대방의 이해와 배려를 체감하며 상대와 더불어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안도감을 느낀다. 바로 이 같은 여성의 특징이 공감대 형성이라는 설득의 토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표창원)

남성과 여성의 사고방식이 다르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사고방식이 다르니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도 다르다. 뇌의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서로 다른 별에서 온 외계인이라 생각할 정도가 되었다.

그러면 사람만 그런가? 사람이 모여 만든 조직도 남성과 여성 둘 중 하나의 방식을 따른다.이책의 제목인 원만한 팀은 여성의 커뮤니케이션 논리를 따르고 독한 팀은 남성의 커뮤니케이션 논리를 따른다.

이책이 말하는 두 유형의 팀은 양극단이다. 자연은 극단을 싫어한다. 실재하는 것은 극단의사이 어딘가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조직의 현실은 둘중의 하나, 극단에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한쪽은 상처를 입을 수 잇는 진실로부터 자신과 타인을 보호하기 위해 지나칠 정도로 원만함을 강조하고 또 다른 한쪽은 지나칠 정도로 맹렬한 업무 수행을 강조한다.

원만한 팀에서는 어떤 문제가 발생해도 변죽만 울릴 뿐 아무도 나서서 진실을 말하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이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까 두려운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들이 정말 두려워하는 것은 그런 진실을 말햇을 때 상대방이 스스로를 옹호하거나 방어하는 상황인지도 모른다. 그러면 갈등 상황에 휩슬리게 되고 원치 않지만 거기에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허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냥 입다물고 뒤로 물러나 있는 것이 낫다.”


그러면 이런 팀이 제대로 굴러갈까? 어쨌든 굴러가기는 굴러간다. 그러나 풀파워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팀이 제대로 만들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팀은 4단계를 거쳐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팀의 목적이 정해지고 팀 내에서 팀원들이 자기 자리를 탐색하는 형성기, 팀의 업무방식에 대한 팀원들의 갈등이 일어나는 갈등기, 팀원들의 이견이 정리되고 팀의 방식이 안정되는 안정기, 팀원들이 서로에 대한 의존성이 높아져 상승작용으로 생산적인 팀이 되는 실행기.

그러나 원만한 팀은 갈등기를 벗어날 수 없다. 이견 자체가 없다는 듯 갈등 자체를 은폐하기 바쁘니 어떻게 안정기로 넘어가겠는가? 그러면 갈등을 남자들처럼 드러내면 어떨가? 그것도 나름대로 문제다.

맹렬한 팀은 “인간적인 문제는 뒷전인 채 오로지 업무에만 열중한다. 그리고 업무를 위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한다. 상대방의 기분 따위는 그들에게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맹렬한 팀의 구성원들은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을 가장 중요시한다. 어정쩡하게 넘어가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을 불쑥 내뱉고는 그 해결방법은 나 몰라라 한다. 맹렬한 팀의 특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상대방의 욕구보다 나의 욕구가 먼저다!’”

이래서는 영원한 갈등 상태일 뿐이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다. 원만한 팀이 현실에 있는 이유는 상대의 감정을 건드려선 팀의 신뢰가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안정기로 넘어갈 것인가? 저자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용기를 내 갈등을 드러내되 상대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두 팀 유형의 중용을 요구한다.

구체적으로 저자는 대담함의 4가지의 원칙을 말한다. 첫째 갈등을 드러내기 전에 먼저 상대방의 선의를 믿어야 한다고 말한다. “카르멘은 이런 의구심을 가질지 모른다. ‘그가 왜 그런 식으로 행동했을까?’ 그러나 그녀는 스콧에게서 그 사실을 확인할 때까지 일체의 판단을 보류한다. 그리고 스콧이 한 말을 뒤집는 명백한 증거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가 한 말을 그대로 믿어준다. 스콧이 어떤 행동을 했건 그것이 그 순간 그가 취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행동이었다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카르멘에게 업무를 업무를 더 많이 떠넘기거나 카르멘의 기분을 상하게 하려고 그런 것이 아니라 순수한 의도에서 한 행동이고 그 상황에서 최선을 선택을 한 것이라고 믿어준다는 말이다.”

첫째 원칙은 둘째 원칙을 위한 준비이다. 저자는 서로를 이어주는 가교를 만들라고 말한다. “자신이 주장하려는 내용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가교를 만들 수 있을만큼 상대방의 주장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잇는가? 잘 모른다면 알려고 노력해야 하고 알고 있다면 한 번 더 확인을 해야 한다. 우선 팀원들과 이야기를 할 때 그들이 하는 말을 잘 들어야 한다.” 말을 들으면서 항변하거나 반박하지 말고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으라고 말한다. 그리고 상대를 이해했드면 구체적으로 이런 식으로 말을 시작하라고 말하낟.

“당신은 업무 품질을 높이기 위해 프라젝트를 하나씩 추진하고 싶어하는 것 같군요. 하지만 이렇게 큰 프라젝트의 모든 진행 상황을 하나하나 살핀다는 것은 현실저긍로 불가능합니다. 물론 업무 품질에 관해서는 나도 당신과 같은 생각이에요. 나 역시 높은 수준의 품질을 원합니다. 그래서 이 시점에서 내 도움이 필요할지 모른다는 생각 들었어요. 이 프라젝트에 대한 내 의견을 말해도 되겠습니까?”

상대의 노력을 인정하고 상대의 입장을 이해한 다음 자신의 주장을 말하면 “스콧이 자신의 주장을 잠시 내려놓고 최소한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잇게 해주는 가교가 된다.”

그러나 원만한 팀은 이 단계에 갇혀 더 나아가지 못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들은 서로 같에 가교를 만들고는 그것을 자축한다. 그러나 그것을 사용할 생각은 않고 그냥 우러러보기만 한다.”

저자는 가교를 만들었으면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원칙 3 ‘당신이 생각하는 진실을 말하라’로. 여기서 필요한 것이 용기라고 저자는 말한다. “용기가 없으면 진실을 말할 수 없다.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그 사람이 동의하지 않거나 듣고 싶어 하지 않을 수 잇는 말을 내뱉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런 용기는 팀원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 그리고 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용기는 맹렬한 팀의 무신경함과는 다르다.

용기있게 진실을 말할 수 있는 비결은 “객관성이다. 모호한 말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 자세히 말할수록 더 나은 해결책이 나온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스콧, 당신은 프라젝트 계획을 완전히 세우지 않았습니다. 동시에 여러가지 일을 진행할 수도 있었는데 당신은 항상 한번에 하나씩 업무를 처리하려고 했습니다. 내게 도움을 요청할 일이나 기대하는 것에 대해 미리 알려주지도 않고 내 도움이 필요해지면 항상 당일이 되어서야 요청하는 식이었어요.”

저자는 상대를 판단하거나 비난하는 말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느다고 말한다. “그저 그녀가 알고 있는 사실만을 이야기하고 있다.그녀는 자신이 생각하는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진실은 가교 위에서만 전달될 수 있다.

“상대방의 순수한 의도를 믿어주고 상호 이해를 위해 적극적으로 가교도 만들고 당신이 생각하는 진실도 이야기했다.” 그러면 이제 무엇을 해야하는가? 대화를 해야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진실을 말한 것은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다. 해결책을 찾으려면 나의 진실과 ‘상대의’ 진실이 필요하다. 상대가 생각하는 진실을 찾는 대화를 하는 것이 마지막 원칙이다.

“카르멘은 이렇게 간단히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스콧, 당신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아니면 ‘나도 당신의 생각을 듣고 싶군요. 스콧.’ 그가 자신이 생각하는 진실을 말할 때 카르멘의 할 일은 그의 순수한 의도를 믿으며 그가 하는 말을 경청해주는 것이다.

원만한 팀이 이 단꼐이 도달하지 못하는 이유는 팀원들이 각자가 생각하는 진실을 공유하지 않고 뒤로 발을 빼기 때문이다. 또 맹렬한 팀은 구성원 모두가 자신의 주장만 이해해주길 바라기 때문에 여기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을 이해하고 나면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에 동의할 것이라고 단정짓는다.

그러나 대담한 팀은 자신의 생각을 포기하거나 자신의 주장만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호기심과 이해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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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8 1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Lulu 2011-04-19 16:32   좋아요 0 | URL
얼마만의 댓글인지 모르겠네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요즘 부동산 계통 책을 보지를 않아서 모르겠습니다 ^^; 지키기도 벅찬 시기라...

2011-04-20 1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숨겨진 심리학 - 최고의 프로파일러가 알려주는 설득과 협상의 비밀
표창원 지음 / 토네이도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영화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과거의 피의자 취조실은 공간과 환경이 심리에 미치는 영향을 잘 알 수 있다. 범인은 주로 차갑고 사무적인 느낌의 책상을 사이에 두고 경찰과 마주앉아 있다. 조명은 어둡고 피의자를 향해 있다. 심문을 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어두운 공간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어둠은 경찰을 위압적으로 보이게 하는 반면 표정은 감춰 피의자를 더욱 초조하게 만든다. 여기에 더해 낮은 실내온도와 외부소음 차단, 물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 등을 활용해 불안과 두려움을 가중시킨다. 범인 아니라 누구도 오랫동안 있고 싶지 않은 환경이다.”

은근한 고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은 그런 취조실은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불안과 두려움의 기제는 취조실에 활용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대부분의 피의자들은 인터뷰 룸에 들어와 카메라 장비를 보는 것만으로도 위축되낟. 특히 일면경은 거울 뒤쪽에서 누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지 알 수 없어 피의자의 물안을 가중한다. 거울 뒤에서 목격자나 피해자가 자신을 지목하고 있을 수도 잇다는 생각에 인터뷰 룸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불안과 두려움, 심리적 압박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런 심리학은 면담자 선정에도 활용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면담자는 피의자의 연령이나 연고지역, 취미 등에서 유사성을 갖고 잇는 인물을 투입하는 것이 공감대 형성이 쉽고 상대방의 얘기에 대한 이해도도 높다. 그러나 때로 역으로 상대의 수치심을 유발할 만한 어린 수사관을 면담자로 들여보내는 전략을 활용하기도 한다.” 바로 그런 전략의 희생자가 작고한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엇다고 저자는 말한다.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면담자와 상대하면서 ‘내가 대학 다닐 때 저 녀석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저런 놈 앞에서 머리 굴려가며 거짓말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이런 곳이 아니라면 눈도 마주칠 일 없는 신참내기를 상대하면서 “자신의 명예와 자존심을 지킬 수 없다는 판단이 큰 몫을 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물론 그런 전략은 자살을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수치심을 자극해 취조실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하는 심리처럼 그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려는 심리를 조장하려는 목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상대가 좋지 않았던 것이다.

경찰 프로파일러인 저자는 자신이 경찰 생활을 하면서 겪은 일들이나 경찰수사의 사례들을 소개하면서 경찰수사와 프로파일러들이 어떻게 심리학을 활용하는지를 보여준다. 그 사례들 중에는 정몽준 회장처럼 큰 이슈가 되었던 사건들도 많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물론 이책의 재미는 위에서 소개한 취조실의 심리학처럼 실제 경찰현장의 구체성이 풍부한 사례들과 그 사례들로 설명하는 심리학의 연결에 있다.

이책이 설명하려는 것은 설득이다. 프로파일러의 목적은 피의자를 설득해 자백을 얻어내는 것이다. 설득의 프로인 프로파일러가 어떻게 심리학을 응용하는지 보여주고 거기서 비즈니스 협상에 유용한 팁을 전하려는 것이 이책의 목표이다.

그러나 몇 년 전 쏟아졋던 설득과 협상 서적들 위에 이책이 갖는 가치는 재미에 있다. 사실 저자가 비즈니스 협상에 대해 조언하는 내용은 간략하고 그리 큰 참고가 되지 않는다. 위에서 소개한 취조실의 심리학을 비즈니스 협상에 응용한 저자의 설명은 상대와 격이 맞게 하라. 불안을 느끼는 장소를 택하지 마라 정도에 그친다. 저자가 비즈니스 협상을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짐작된다.

그러나 그런 문제를 떠나서 구체적인 경찰업무를 읽는 것만으로도 그 재미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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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아탈리 더 나은 미래 - 살아있는 석학 자크 아탈리의 10년 후 세계 경제 대예측
자크 아탈리 지음, 양진성 옮김 / 청림출판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는 사실 끝난 것이 아니다. 단지 폭탄의 심지를 더 길게 이어 붙였을 뿐이다. 이번 위기의 핵심은 거의 모든 금융위기가 그렇듯 부채이다. 위기의 해소는 부채의 해소여야 한다. 이번 위기는 부채를 사적영역에서 공적영역으로 옮기면서 진정되었다. 부채는 사라지지 않았고 폭탄은 해체되지 않았다.

문제는 폭탄을 떠안은 공공부문이 부채를 감당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위기의 진원인 G8 국가들의 공공부채는 위기 이전부터 심각했다. 이번 위기로 떠안은 부채는 공공부채의 리스크를 몇단계 증폭시켯다.

무언가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국가파산이 기다린다. ‘설마~ 나라가 파산하랴?’ “채무국은 항상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수많은 빚을 진 국가의 지도자들은 항상 최악의 상황이 예고되어도 그런 일은 실제로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금리도 올라가지 않을 것이라 여긴다. 또 자신이 언제나 적당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잇으며 국가의 파산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 확신한다. ‘그런 일은, 나에게는, 지금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여긴다.”

그러나 국가의 파산은 드문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는 국가 부채로 인한 어려움에 이미 익숙하다. 역사적으로 6번이나 파산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부채가 매출액의 5년치에 해당하는 규모라면, 연간 손실이 매출액의 5배이고 연간 대출액이 매출액 규모를 넘어선다면 이 기업에 투자한 개인 투자자는 어떻게 행동할까? 서둘러 자금을 회수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프랑스의 현실이 바로 이렇다.”

프랑스가 특별한 것은 아니다. 저자는 이책의 앞 부분 반을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국가파산의 역사를 쓰는 데 할애한다. ‘모든 시대를 통틀어 자국이 파산할 것이라 예측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ㅓ나 실제로 역사 속 대부분 국가가 적어도 한번은 파산했다. 1800년에서 2009년 사이에 일어난 대외 부채 파산이 250건, 대내 부채 파산이 68건이었다. 게다가 각각의 파산은 서로 긴밀히 연결된다. 16세기부터 18세기 말 사이에 프랑스는 8번, 스페인은 6번 파산했다. 라틴아메리카는 126번, 아프리카에서는 63번이나 국가 파산이 일어났다.”

빚은 개인이 지건 기업이 지건 나라가 지건 다 같은 빚이다. 빚은 갚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다. 공공부채의 차이는 그 규모가 크다는 것 이외에는 없다. 단지 차이라면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공공부채는 현 세대가 다음 세대에 발행한 채권이다. 부채는 항상 다음 세대가 어떤 방식으로든 치르게 되어 있다. 공공부채는 주로 현재 세대에 필요한 지출을 미래 세대의 돈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그 빚을 떠안아야 할 미래세대가 많다면 부채는 갚을 수 있다. “미국처럼 외국인에 개방적인 나라에서는 부채 부담이 훨씬 가볍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물론 공공부채 역시 그 자체로 악은 아니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공공부채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선이 되기도 하고 악이 되기도 한다. 공공부채가 기업의 부채처럼 돈을 버는 자본으로 투자된다면 그 부채는 선이다. 미래세대의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교육, 연구개발에 투자되거나 국가의 자산가치를 높이는 인프라, 의료 또는 방어전쟁에 투자된다면 그 부채는 정당하다. 문제는 부자나라들의 예산구조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 정부는 GDP의 17%는 국가 지출에 26%는 사회보장 지출에 할애한다. 또 행정 구역별 지출에 10%를 할애하며 공공 투자는 GDP의 18%를 차지한다. 조세수입과 사회보장 기금 수입은 GDP의 45% 수준이며 지출은 55%이다. 그 차액은 적자다.” 프랑스를 포함한 부자나라들의 예산을 들여다 보면 이번 위기의 원인이었던 부채와 다를 것이 없다. 적은 수입으로 현재 생활수준을 지탱할 수 없으니 빚을 내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든 가계든 “매년 대출금 총액이 15개월치 수입과 20개월치 지출과 맞먹는다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개인이나 기업과 달리 국가의 부채에 대한 명확한 이론은 없다. 공공부채가 GDP의 90%에 가까워지면 경제성장이 둔화된다거나 이자지출이 예산의 반이 넘으면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거나 몇가지 통계적 추정은 있지만 “적자와 부채의 적절한 수준이 있다고 확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심지어 역사적으로 시장은 모든 이론에서 예측한 수준보다 훨씬 높은 부채 수준을 쉽게 출자했다. 그리고 GDP의 250%에 달하는 부채도 잘 감당해내는 국가가 있는가 하면 어떤 국가는 20%밖에 안되는 국가 부채 때문에 파산한다.” 국가 부채에 관한한 어떤 경제학도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믿음, 시장이 그 국가를 신뢰하느냐이다. 위기는 시장의 신뢰를 잃어버리면서 시작된다. 그것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 신뢰가 없어지는 날 최악의 시나리오는 현실이 될 것이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서는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부채 대비 국내 저축 비율이 늘어나는 반면에 일본과 유럽, 미국 정부는 은행 위기를 일시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금융기관에 통제권을 넘겨주고 많은 자금을 투여했음에도 펀더멘털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유럽뿐 아니라 다른 수많은 국가의 공공 부채 또한 폭발할 만한 수준에 다다랐다. 2010년 G20 회원국 중 부국들은 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이 평균 80%인 반면 신흥국들은 평균 40% 밖에 되지 않았다. 이 상태가 변화없이 계속 이어진다면 부국들의 부채비율은 2차대전 직후의 수준과 같아질 것이다.”

200%가 넘었던 당시의 부채에서 벗어나 번영을 구가할 수 있었던 것은 경제가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세 수입 감소와 경기 부양책, 고도 성장력을 회복할 수 없다는 것’이 공공부채의 증가원인이었다.

“BIS에 따르면 공공부채는 2020년에 영국에서 GDP의 200%를 넘어설 것이며 벨기에와 프랑스, 아일랜드,. 그리스, 이탈리아에서는 150%를 웃돌 것이다. 2020년에 미국의 연방 부채는 GDP의 150%에 이를 것이다. 현 금리수준으로 생각할 때 이자 부담만 조세 수입의 25%에 달한다.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2050년에는 선진국의 부채비율은 GDP의 무려 250%에 달하게 된다. 파산하지 않고는 이런 상황은 분명히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런 추세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위기는 파산 이전에 닥칠 것이라 저자는 말한다. “유럽연합은 파산을 늦추고자 모든 방책을 동원할 것이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대상인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한 인플레이션은 세계화와 경기침체로 조심스럽게 억눌렸지만 이제 서서히 고개를 들고 부채의 가치를 떨어트릴 것이다. 단 그와 동시에 금융자산과 고정수입의 가치도 줄어든다. 공공부채에 출자한 유럽 예금자들은 파산할 것이며 이들과 함께 어떤 성격의 자산이든 총액이 얼마든 간에 금융자산보유자들도 같은 운명을 겪게 된다.

독일과 네델란드처럼 유로존을 떠나고 싶어하는 금융안정성이 가장 높은 국가가 아니라면 위협에 그대로 노출될 수 밖에 없다. 이처럼 안정적인 국가들이 재무상태가 부실한 국가들의 운명에 자국통화가 연관되는 것을 거부하면서 유로의 존재 자체를 문제 삼을 수 잇다. 이렇게 되면 다시 보호주의가 고개를 들것이며 유럽연합이 쌓아온 모든 것에 대해 회의가 제기됨녀서 유럽 전체에 극심한 경기침체로 이어질 것이다. 유럽의 민주주의가 그 혼란 속에서 무사히 살아남는 것은 불가능하다.”

유럽이 무너지면 미국도 무사할 수 없다. “유럽을 강타한 경기침체와 뒤이어 발생한 위기는 미국의 경제성장을 늦출 것이고 그 결과 조세 수입이 줄어들고 지출이 증가할 것이다. 그러면 이미 공식적으로 이미 11조 달러가 넘어선 미국의 공공부채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늘어날 것이다.” 파산을 피하기 위해 세금을 올리고 돈을 찍어내도 “경기가 회복되지 않으면 미국은 인플레이션으로 파산하고 말 것이다.”

유럽과 미국이 무너지면 아시아의 차례다> “경기침체가 전 세계경제로 퍼져 나가고 아시아 국가들까지 마구 뒤흔드는 것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아시아 국가들은 특히 정치적 안정을 위해 강력한 경제성장이 필요하다.” 그러나 역사 속의 채권자들이 채무자의 희생양이 되었듯 아시아 역시 유럽과 미국의 파산에 말려들어가 공멸을 피할 수 없다고 저자는 본다. 그리고 더 최악은 전쟁이 될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방법은 간단하다. 씀씀이를 줄이고 수입을 늘리는 것. “세금인상, 지출 축소, 높은 경제성장률, 금리 인하, 인플레이션, 전쟁, 외부의 도움, 그리고 파산이다. 이 모든 방법이 여태까지 이용되었고 앞으르도 이용될 것이다. 이 밖의 다른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 8가지 방법을 실행할 것인가는 다른 문제이다. 저자는 이책의 마지막 1/4에서 구체적인 정책제안을 다룬다. 저자는 유럽 차원의 재정통합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공공차입을 유럽연합차원으로 통합하고 재정집행에 대한 권한 역시 마찬가지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세계적인 차원에서도 케인스가 제안했던 방코르를 실행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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