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am Smith in Beijing : Lineages of the Twenty-First Century (Paperback)
조반니 아리기 지음 / Verso Books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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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90년대에 쓰여진 저자의 전작, ‘장기20세기’에 대한 속편이랄 수 있다. 10여년 사이 많은 것이 변했기 때문이다. 전작이 쓰여졌을 때 미국은 무너져가는 제국에서 불사조처럼 부활한 제국이었다. 그러나 이책이 쓰여진 시점에선 다시 죽을 날이 멀지 않은 제국이 분명해졌다.

전작은 제목은 패권국으로서 미국이 등장한 시대를 말한다. 스페인 제국, 네델란드, 영국이 패권국이 되었던 시대를 장기16세기, 장기17세기, 장기19세기라 부르는 것처럼 저자는 미국의 시대를 장기20세기라 부른 것이다.

다른 패권국들의 시대에 ‘장기’란 말이 붙은 이유는 그 나라들이 패권국이 된 시기는 그 시기이나 패권이 형성되어 간 것은 그보다 오래기 때문이다. 패권국은 사라지고 다시 태어나지만 그 과정은 서로 겹친다. 영국이 패권을 쥐게 되는 과정은 네델란드의 정점에서부터 만들어졌고 네델란드의 패권이 최종적으로 무너지기 전 이미 패권국의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다. 1890년대 belle epoque라 불린 에드워드 시대는 대영제국의 정점이었다. 그러나 그 정점은 회광반조와 같은 것으로 이전에 시작되었던 헤게모니의 약화원인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헤게모니의 붕괴는 예정된 것이었다. 미국의 헤게모니가 형성되어간 시절은 바로 대영제국의 정점에서부터였다. 이미 준비된 예비 패권국으로서 1차대전으로 영국의 헤게모니가 붕괴되자 바로 패권국이 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미국의 헤게모니를 설명하려면 20세기에 시선을 한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장기’란 말이 붙는다.

그 미국의 장기20세기가 어떻게 끝나가는지 그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것이 그 책에서 저자의 목표엿다. 헤게모니는 태어나고 죽는다. 미국 이전 영국의 제국이 그렇게 사라졌고 그 이전 네델란드가 그러했고 스페인 제국이 그러했다. 그러나 미국의 헤게모니가 사라지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미국 헤게모니의 죽음은 15세기 지중해에서 시작된 유럽 세계-체제의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유럽 세계-체제의 역사는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대서양에서 전 세계로 헤게모니의 범위가 확대된 과정이었다. 그리고 미국은 그 과정의 정점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헤게모니 이후 더 이상 유럽 문명이 세계의 헤게모니를 잡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의 헤게모니가 나고 죽는 사이클을 설명한다는 것은 15세기 지중해에서 시작된 세계-체제의 죽음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자의 ‘장기20세기’는 13세기 이탈리아 도시국가에서 시작된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역사부터 설명을 시작해 그 세계체제가 본 시간과 공간을 그려나간다. ‘장기20세기’는 유럽문명의 황혼에 바치는 송가라 할 수 있다.

그 책이 출간된 1994년 이후 달라진 것은 없다. 그책에서 저자는 미국이 Belle Epoque에 들어선 상태라고 진단했고 이책이 출간된 2007년까지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책이 나온 해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의 벨르 에포크는 끝났으며 패권국으로서 미국도 사라졌다. 그러면 왜 이책이 필요한가?

이책에서 저자는 ‘장기20세기’가 나온 이후 10여년 동안 미국의 패권이 어떻게 무너져가는가를 설명한다. 저자는 레이건 집권기부터 시작된 벨르 에포크 시기 미국의 세계지배를 domination without hegemony라 규정한다. 아들 부시의 군사주의를 보면 저자의 그런 규정이 무슨 의미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지배가 그렇듯이 헤게모니는 동의 위에 행사된다. 미국이 그리고 영국이 패권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은 힘이 세기 때문이었지만 그 힘으로 모두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은 세계의 모든 바다에서 제해권을 행사하면서 안전이란 공공재를 제공했다. 물론 영국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렇게 한 것이지만 자기 이익과 공익이 꼭 충돌할 이유는 없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베트남전쟁의 패배는 미국의 그 능력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고 미국의 헤게모니는 그때부터 무너지기 시작햇다.

그러나 미국만 그런 위기를 겪은 것은 아니다. 저자는 ‘장기20세기’에서 이전의 패권국들이 어떻게 패권을 잃었는가를 다루었고 그 메커니즘을 설명햇다.

그렇다면 왜 이책이 필요한가? 이론적인 문제이다. 이책이 헌정된 안드레 군더 프랑크가 제기한 문제때문이다.

저자의 이론적 입장은 세계체제론이다. 세계체제론의 선언서라 할 수 있는 월러스틴의 ‘근대세계체제’ 추천사에서 (세계체제론의 실질적인 아버지인) 브로델은 이렇게 말한다. “역사가들은 늘 유럽이 자기를 중심으로 세계경제를 구축해왔다는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잇었다.” 세계체제론은 지중해에서 시작된 세계체제가 500년동안 확장되어 전세계로 확대되었다 말한다. 그러나 프랑크는 리오리엔트에서 지중해에서 시작된 유럽의 세계-경제는 5000년전부터 있어왔던 세계경제의 일부였을 뿐이며 지난 500년은 유럽 세계체제가 그 세계경제의 패권을 장악하게 된 역사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프랑크가 리오리엔트에서 “규명하려는 사실의 하나는 유럽인이 무언가를 행하고 발언하기 훨씬 이전부터 계속되어 온 세계경제라는 것이 진작부터 있엇다는 것이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파생되는 두가지 논점이 있다. 하나는 아시아, 특히 중국과 인도, 나아가 동남아와 서아시아가 1800년 이전까지만 해도 유럽보다 더 활동적이엇고 또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컸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는 ‘역사가들은 늘 유럽이 자기를 중심으로 세계경제를 구축해왔다는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잇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닐 뿐더러 반역사적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유럽은 자기를 중심으로 세계경제를 구축하지 않았다. 유럽은 신대륙의 화폐로 아시아 열차에 오르는 승차권을 샀을 뿐”이고 그 다음엔 열차 전체를 사들였을 뿐이라고 프랑크는 말한다. (자세한 것은 리오리엔트를 직접보거나 이전에 쓴 리뷰의 요약을 보기 바란다)

이책은 프랑크의 의문에 대한 답이다. 프랑크가 세계체제론에 대해 지적하듯 저자의 전작 역시 유럽 세계체제보다 더 큰 세계경제는 고사하고 그 세계경제의 중심이엇던 아시아는 시야에 두지 않았다. 저자가 전작에서 13세기부터 시작하는 세계체제의 역사는 단지 세계체제의 자기확장의 역사일 뿐이며 세계체제론의 기본입장을 그대로 따랐다.

그러나 이책에서 저자는 프랑크가 ‘리오리엔트’에서 제기한 주장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프랑크는 세계경제의 중심이 중국에서 유럽으로 넘어간 시점을 19세기로 본다. 그 이유를 간단하게 정리하면 산업혁명 때문이라는 것이다. 산업혁명은 생산성 혁명이었고 산업혁명을 통해 생산성이 폭증한 유럽은 중국을 정점으로 하는 아시아를 압도하는 경쟁력을 갖게 되엇다는 것이다. 리오리엔트는 산업혁명이 왜 유럽에서 일어나고 중국에선 일어나지 않았는가에 대한 설명이다.

저자는 프랑크가 세계경제란 개념을 5000년 역사를 가진 지구 범위의 개념으로 재정의하는 것을받아들인다. 그리고 유럽 세계-경제는 그 세계경제의 하위체제일 뿐이었다는 것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세계경제의 중심이 중국에서 유럽으로 이동한 시점이 19세기라는 것도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 이동의 이유에 대해선 동의하지 않는다.

“The subordinate incorporation of East Asia within European system, and the eclipse of the region in world production were not due primarily to the competitive edge of Western vis-à-vis East Asian, especially Chinese, economic enterprise.”

아편전쟁으로 영국은 중국의 시장을 마음대로 누빌 수 있엇다. 그러나 포함으로 열린 시장은 전쟁 전과 다를 것이 없었다. 영국상인들은 여전히 중국인들에게 팔 것이 없었다. 예를 들어 당시 영국의 주력상품인 면직물은 중국제의 가격경쟁력을 이길 수 없었다. “Western products and businesses did triumph in a few industries. But outside of railways and mines, the China market generally spelled frustration for foreign merchants.”

프랑크는 유럽의 패권은 산업혁명으로 얻게 된 경쟁력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산업혁명이유럽에 패권을 가져다 주었다는 주장엔 동의한다. 그러나 패권은 산업혁명으로 가능해진 군사력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아편전쟁 자체가 패권을 가져다 준 것이지 아편전쟁으로 시장을 열었기 때문이 아니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가능했던 이유는 나폴레옹 전쟁 때문이엇다. 1793년부터 1815년까지 지속된 이 전쟁으로 영국의 자본재산업이 탄생한다. “반실업상태의 빈민은 결코 대포나 그 밖의 값비싼 공산품을 사지 않는다. 그러나 수만명의 빈민을 육해군에 편성화고 군장비를 나눠준 결과, 유효수요가 개인소비재로부터” 정부지출로 넘어갔다. “대포시장이 확보되어 잇지 않았다면 낙후된 웨일스나 스코틀랜드에” 신식 코크스 고로를 설치할 사업가는 없다. “그들의 초기 판로는 육해군의 수요였다. 영국의 제철업이 1816~1820년 전후의 불황에 빠지게 된” 것은 당연했다. 전시수요 덕분에 제철업 뿐 아니라 무기류를 만드는 정밀기계 가공업, 중장비 산업 등이 발전했다. “그러나 정부의 전시지출은 또한 영국의 제철업자들에게 새로운 대형 용광로에서 훨ㅆ니 저렴하게 만들어낼 수 있게 된 제품의 새로운 수요처를 찾게 했고 장래의 산업발전을 위한 여건을 조성하기도 햇다.” 전시에 태어난 자본재산업 덕분에 “증기기관의 개량이 가능했고” 대량의 전시수요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규모의 경제에 도달한 자본재산업은 고품질저비용의 “좋은 조건으로 철도나 철선과 같은 결정적인 기술혁신이 일찌감치 실현될 수 있도록 했다.” (윌리엄 맥닐)

아편전쟁의 승리는 산업혁명의 승리였다. “1841년과 1842년의 아편전쟁에서 철갑을 두른 네메시스호의 기동력과 화력은 도저히 당해낼 수 없는 괴물처럼 청군을 손쉽게 소탕햇다.” 산업혁명으로 가능해진 “증기기관과 기계제 공구들은 유럽의 군사적 우위를 결정했다. 전장식 소총의 개량(뇌관, 선조 등)만 해도 무시무시한 것이엇다. 사격속도가 한결 빠른 후장식 소통은 더욱 큰 진보를 의미햇다. 그리고 개틀링 기관총과 맥심 기관총, 경대포는 구식 무기에 의존하는 원주민들의 저항력을 완전히 일소해버린 새로운 ‘화력혁명’을 마무리지었다. 게다가 증기추진식 군함의 등장은 이미 공해상에서 막강한 힘을 과시하던 유럽의 해군력이 니제르강, 인더스강, 양쯔강 같은 주요 수로를 통해 내륙까지 뻗을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했다. 화력의 격차는 유럽이 비유럽에 대해 50배에서 100나 되는 무력을 보유하고 있음을 의미했다.” (폴 케네디)

저자는 세계경제의 중심은 단순히 경제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말한다. 세계경제는 세계체제로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며 유럽으로 중심이 이동한 것은 헤게모니의 장악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서쪽으로 이동했던 헤게모니가 다시 동쪽으로 이동하는 것 역시 (장ㄱ20세기에서 다루어진) 헤게모니의 사이클로 볼 때 이해된다고 저자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산업혁명이 왜 유럽에서 일어났는가란 프랑크의 질문은 원점으로 돌아간다. 저자는 두세계-경제의 작동원리가 달랐기 때문이라 말한다. 구체적으로 시장경제와 자본주의의 차이라고 말한다.

“Trade and markets were more developed in East Asia in general, and in China particular, than in Europe, through the 18th century. The European and Chinese trajectories shared important features that were part of the Smithian dynamics of market-based growth supported by labor intensification in the advanced regions of China and Europe in the centuries preceding the industrial revolution.”

중국과 유럽이 공유한 the Smithian dynamics of market-based growth란 애덤 스미스가 말한 사회적 노동분업으로 생산성이 향상되고 생산성 향상에 따라 경제가 성장하는 것을 말한다. 스미스적 동학은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중개되는 노동분업에 의한 것이므로 생산성 향상과 경제 성장은 시장의 크기에 의해 제한된다. 그러나 경제성장에 따라 소득이 늘고 유효수요가 늘면 시장 자체가 커진다. 시장이 커지면 노동분업과 경제성장의 사이클이 확대재생산된다.

“Over time, however, this virtuous circle comes up against the limits imposed on the extent of the market by spatial scale and institutional setting of the process. When these limits are reached, the process enters a high-level equilibrium trap.”

중국은 고차균형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유럽은 산업혁명으로 고차균형의 함정을 벗어날 수 있엇다. 그 이유에 대한 프랑크의 논의를 요약하면 “In China, economic expansion created the labor surplus and capital shortage that underlie Smithian high-level equilibrium traps. In Europe, in contrast, economic expansion created labor shortage and s capital surplus. It was this opposite outcome that, according to Frank, after 1750 led to the Industrial Revolution.” (더 자세한 것은 리오리엔트를 직접 보거나 전에 그 책을 다룬 리뷰를 참고할 것)

다시 말해 중국과 영국의 운명을 가른 것 즉 Great Divergnence는 두 경제에서 노동과 자본의 상대가격이 달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중국에선 자본에 비해 노동이 쌌고 영국에선 자본에 비해 노동이 비쌌다. 그러므로 영국에선 노동을 절약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었고 자본집약적 발전경로, 즉 산업혁명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말이다.

영국이 산업혁명을 택했다면 중국은 요소시장의 가격에 따라 산업혁명과는 다른 발전경로, Industrious Revolution(스기하라 카오루)이 일어났다. 토지(와 자원)대 인구의 비가 악화되면서 자원제약에 반응하여 16세기부터 18세기 동아시아에선 노동집약적 기술과 노동흡수 제도가 발전한다.

Industrious Revolution “is a term first coined by the Japanese demographic historian Akira Hayami (速水融),[2] and accepted by other historians to help further explain the advent of the Industrial Revolution. Much of this theory deals with the spending behaviours of families in the period. It also deals with the production and consumption of goods.” (http://en.wikipedia.org/wiki/Industrious_Revolution)

그러나 스기하라는 Industrious Revolution을 산업혁명의 전단계가 아닌 그 자체의 논리를 가진 발전경로로 재해석한다. “as a market-based development that had no inherent developmental path opened up by Britain and carried to its ultimate destination by the United States. Against the traditional view that small-scale production lacks internal forces for economic improvement, Sugihara underscores important advantages of this institutional framework in comparison with the class-based, large-scale production that was becoming dominant in England.”

Industrious Revolution의 구체적인 모습은 가족단위(또는 마을단위)의 생산이다. 자원과 자본의 제약을 노동집약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자원과 자본을 대신하는 노동이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 “It mobilized human rather than non-humana resources”

영국의 산업혁명이 요구하는 노동자는 기계의 부품에 불과하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Industrious Revolution에선 “an ability to perform multiple tasks well, rather than specialization in a particular task, was preferred, and a will to cooperate with other members of the family rather than the furthering of individual talent was encouraged. Above all, it was important for every member of the family to try to fit into the work pattern of the farm, respond flexibly to extra or emerengency needs, sympathize with the problems relating to the management of production and anticipate and prevent potential problems.”

사람으로 자본을 대신하는 발전경로는 유럽의 충격 이후에도 동아시아의 특징이었다고 스기하라는 말한다. 노동의 유연성이 강조되는 토요타 생산 시스템은 그 좋은 예이다. 토요타 생산 시스템이 나오게 된 배경 역시 자본보다 노동이 저렴한 환경이엇다. 자본재를 수입할 돈도 없고 수요도 크지 않았던 전후 일본에서 규모의 경제를 전제하는 자본집약적인 대량생산시스템은 적합하지 않았다. 대안은 노동이 자본을 대신하는 것이었고 오늘날 우리가 아는 토요타 생산 시스템이다. (자세한 것은 다이이치 오노의 ‘Toyota Production System’을 보라)

중국의 산업화 역시 마찬가지이다. 중국의 “낮은 임금은 자본절약적 혁신을 가능하게 했다. 높은 생산성을 가진 미국공장들은 값비싼 자동화 시스템을 사용하지만 중국의 공장들은 이 과정을 뒤집어 생산과정에서 자본을 빼내고 노동이 더 큰 역할 을 하도록 재투입했다. 전형적으로 총 필요 자본의 1/3 정도가 줄어든다. 더 낮은 임금과 더 적은 자본의 결합은 대체로 ㄴ미국 공장 수중 이상의 자본수익을 올려준다.” (데이비드 하비)

유럽의 충격 이후 동아시아는 산업혁명을 받아들엿다. 그러나 자본과 자원은 부족하고 노동은 풍부한 동아시아의 발전경로는 Industrious Revolution과 산업혁명을 결합한 것이엇다. 스기하라는 “call this hybrid development path labor-intensive industrialization, because it absorbed and utilized labor more fully and depended less on the replacement of labor by machinery and capital that the Western path.”

그러므로 스기하라는 동아시아 르네상스는 서구의 자본집약적이고 자원낭비적인 경로가 아닌 서구의 경로와 동아시아의 노동집약적이고 자원절약적인 경로의 혼합에 의한 것이라 말한다.

저자는 1950 이후 서구의 경로는 한계에 부딪혔고 서구의 방식을 배운 동아시아의 경로가 열매를 맺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두 발전경로의 차이가 산업혁명 이후 서구의 부상을 낳앗으며 그 경로가 한계에 부딪힌 결과 서구의 몰락과 동아시아 르네상스의 이유라 말한다.

저자는 Industrious Revolution을 스미스적 성장, non-capitalist market-based development라 말한다(이책 제목의 이유이다) 그에 비해 산업혁명은 슘페터적 또는 맑스적 성장으로 market-based capitalist development이라 말한다.

저자가 Industrious Revolution을 스미스적 성장이라 부르는 이유는 그 경로가 시장을 통한 사회적 노동분업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애덤 스미스에게 시장은 사회적 노동분업 자체엿다. 스미스는 중국을 ‘the natural progress of opulence’라 불렀다. 왜냐하면 중국에선 “the greater part of capital is, first, directed to agriculture, afterwards to manufactures, and last of all to foreign commerce.” 스미스가 중국의 발전경로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본 이유는 그것이 부가 국가 내에서 순환되어 국가 전체가 자연스럽게 성장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스미스는 네델란드를 unnatural and retrograde라 부른다. 자본의 투입이 중국과 역순이기 때문이다. 먼저 해외무역에 투자되고 그 다음 제조업, 마지막으로 농업에 투자된다.

“Capitals employed in agriculture and retail trade have the greatest positive impact because they must reside within the country, being confined almost to a precise spot, to the farm, and to the shop of the retailer. Capital employed in the whole trade, in contrast, seems to have no fixed or necessary residence anywhere, but may wonder about from place to place, according as it can either buy cheap or sell dear.”

자본이 국내에 투자된다면 그 나라 사람들의 고용과 소득을 늘리기 때문에 국익에 대한 자본의 효과는 최대가 된다고 스미스는 말한다.

그러나 스미스가 natural이라 부른 경로는 unnatural에 압도되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고차원평형의 문제이다.

시장, 즉 사회적 분업은 경제성장의 원천이다. 그러나 분업 자체로는 애덤 스미스가 stationary state 또는 고차원평형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회적 분업 자체는 사회의 프레임을 건드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프레임을 건드려 평형서 벗어나기 위해선 평형의 원인인 자본-노동-자원의 비율이 재조정되어야 한다. 스미스는 국가가 제도와 법을 바꿔 그 비율에 영향을 주는 방법으로 평형에서 벗어날 수 잇다고 제안했다.

애덤 스미스 시절의 동아시아와 유럽의 핵심지역은 모두 고차원평형의 함정에 빠져 있었다. 이후 두 지역의 reversal of fortune을 부른 것은 산업혁명이었고 산업혁명은 고차원평형을 깨는 것이엇다. 저자는 산업혁명이 가능했던 것은 유럽의 발전경로의 ‘unnatural’한 성격 때문이엇다고 말한다: “the key specificity of the European path, its extroversion, its embedding in the global market, and the ‘retrograde’ direction of its progression from foreign trade, to industry, to agriculture.”

“Smith’s ‘unnatural’ path differs from the ‘natural’, not because it has a larger number of capitalists(외향성, 해외무역, 역진성 등은 자본가들때문이다) but because capitalists have greater power to impose their class interest at the expense of the national interest.”

브로델의 말을 들어보자. “Capitalism only triumphs when it becomes identified with the state, when it is the state. In its first great phase, that of the Italian city-states of Venice, Genoa and Florence, power lay in the hands of the moneyed elite. In 17the century Holland the aristocracy of the Regents governed for the benefit and even according to the directives of the businessmen, merchants and money-lenders. Likewise, in England the Glorious Revolution of 1688 marked the accession fo business similar to that in Holland.”

저자가 유럽의 발전경로를 market-based capitalist development라 부르는 이유이다. 자본과 권력의 결합이 있을 때만 자본주의란 말을 쓸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동아시아는 평형의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지만 유럽이 빠져나올 수 잇었던 것은 이 자본주의의 동학 때문이엇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가 market-based capitalist development를 슘페터적(사회의 프레임에 창조적 파괴를 가할 수 있다는 의미로)이라 부르는 이유다.

권력과 자본 또는 국가와 자본가계급의 결합으로 태어난 자본주의 동학은 자본주의, 산업주의, 군사주의의 시너지라 저자는 말한다. 산업혁명은 그 구체적 결과엿다. 앞에서 보았듯이 산업혁명은 군사주의와 산업주의의 시너지로 태어났다. 그리고 산업혁명의 힘으로 전쟁의 산업화에 성공한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 될 수 있엇다. 제국의 또다른 힘은 금융력(자본주의)이엇다. 제국을 운영하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있었기에 제국의 해가 지지 않았고 제국의 해가 지지 않았기에 금융력 역시 커져갔다. 자본주의, 산업주의, 군사주의가 서로 positive feedback을 하는 동안 제국의 헤게모니는 확고하다. 영국이 세계경제의 헤게모니를 잡으면서 유럽은 세계경제의 중심이 될 수 잇엇다. 그러나 폴 케네디의 말마따나 제국이 overstretch될 때 즉 셋의 시너지가 negative feedback으로 돌아설 때 헤게모니는 무너진다.

영국의 헤게모니는 사라졌다. 그리고 우리는 얼마전 미국의 헤게모니 역시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그 이유를 저자는 시너지가 사라지는 것으로 설명한다.

그러면 왜 시너지가 positive에서 negative로 돌아서는가? 저자는 그 메커니즘을 전작인 장기20세기에서 이윤율 저하경향으로 설명한다. 이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2부에서 저자는 이라크전쟁이 일어나기까지 전후 미국의 역사를 개관하면서 전작의 논리를 적용한다. 논리적으로 ‘장기20세기’의 연장이라 볼 수 있으므로 책의 나머지에 대해선 차후 ‘장기20세기’ 리뷰에서 다룰 것이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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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반양장) - 간략한 역사
데이비드 하비 지음, 최병두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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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아래로부터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혁명은 위로부터도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신자유주의 혁명은 위로부터의 혁명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저자는 신자유주의 혁명을 “계급권력의 회복을 위한 프라젝트”라 정의한다. 그 혁명은 황금기의 종말에 대한 반응이었다. 2차대전 이후 닉슨 쇼크까지를 자본주의의 황금기로 보는 데는 좌건 우건 이견이 없다. 그러나 그 황금기가 왜 끝날 수 밖에 없었는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이책의 저자를 포함해 좌파에선 그 원인을 이윤율 저하경향 때문이라 보는데 대체로 이견이 없다. 문론 좌파에서도 이윤율 저하경향이 왜 나타났는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지만(그에 대해선 전에 리뷰한 ‘자본의 반격’과 브레너의 ‘Boom and Bubble’이 대표적이다) 저자는 그 원인보다 결과에만 관심이 있다. 원인이야 어쨌건 결과는 동일하고 신자유주의 혁명은 그 결과에 대한 반응이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혁명은 사회에 embedding된 자본을 disembedding하는 프라젝트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전후 “유럽에는 사회민주주의, 카톨릭 민주주의, 그리고 통제국가 등 다양한 국가들이 등장했다. 미국 자신은 자유민주주의 국가형태로 전환했다. 이런 다양한 국가형태들은 공히 완전고용, 경제성장, 그리고 시민들의 복지에 초점을 둬야 하며 국가권력은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할 경우 시장에 개입하거나 이를 대체했다. 경기순환을 완화하고 합리적으로 완전고용을 보장하기 위해 흔히 ‘케인즈적’이라 불리는 재정/통화정책들이 채택되었다. 국내평화와 안정의 보증으로 자본과 노동 간 ‘계급타협’이 주창되었다. 국가는 적극적으로 산업에 개입했고 다양한 복지체계들을 구축하여 임금의 사회적 표준을 설정했다. 이는 시장과정과 기업활동이 경제/산업 전략의 방법을 유도하는 사회적. 정치적 제약들과 규제환경의 그물에 의해 어떻게 둘러싸여 있는지 알려준다. 신자유주의적 프라젝트는 이런 제약들로부터 자본을 탈착근(disembedding)하는 것이다.”

시절이 좋을 때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나누어야 할 파이가 쪼그라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전후 안정조건의 하나는 상위 계급들의 경제적 힘이 제약되면서 경제적 파이의 훨씬 더 많은 몫을 노동자들이 갖게 하는 것이었다. 성장이 지속되는 동안에는 이런 제약이 문제되지 않았다. 파이는 계속 커져갔으므로 그 파이의 안정적인 몫을 챙기는 것으로 족했다. 그러나 1970년대 성장이 붕괴되어 실질이자율이 마이너스가 되고 매우 낮은 배당 및 이윤만을 받게 되면서 상위계급들은 위협을 느꼈다. 상위계급들은 파멸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단호하게 행동해야만 햇다.” 그리고 신자유주의는 그들의 혁명이었다.

혁명의 목적은 당연히 이윤율의 회복이었다. 방법은 여러가지이다. 그러나 가장 쉽고 분명한 방법은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몫을 줄이는 것이다. 저자식으로 말하자면 전후 복지국가에 embedding되어있던 자본을 disembedding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전후합의의 파기엿다. 상위계급으로의 “재분배효과와 사회적 불평등의 증가는 신자유주의화의 지속적 특징이었다.”

그러면 국가를 장악해야 햇다. “방법은 다양했다.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영향이 기업, 대중매체 그리고 시민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제도들-대학, 학교, 교회, 그리고 전문가단체 등-을 통해 유푀더었다. 하이에크가 1947년에 이미 예견했던 이러한 제도들을 통한 신자유주의적 사고들의 ‘긴 행군’ (기업에 의한 후원과 기금으로) 싱크탱크의 조직, 대중매체의 장악, 그리고 많은 지식인들의 신자유주의적 사고방식으로의 전향등은 신자유주의를 지지하는 여론을 형성했다. 이러한 운동은 그 이후 궁극적으로 국가권력을 장악하면서 공고해졌다.” (신자유주의의 지적/정치적 계보는 복잡하다. 이책에선 개요정도만 다루어진다. 미국의 신자유주의/신보수주의에 대해선 크루그만의 ‘미래를 말하다’가 쉽고 자세하게 다룬다. 영국의 경우엔 박지향의 대처평전인 ‘중간은 없다’가 볼만하다)

신자유주의자 혁명의 날자는 레이건과 대처가 국가를 장악한 해이다. 그러나 정치혁명으로서 신자유주의는 그보다 일찍 뉴욕에서 시작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자본주의적 재구조화와 탈산업화는 여러 해 동안 도시의 경제적 기반을 침식했으며 급속한 교외화는 중심 도시의 대부분을 빈곤상태로 방치햇다. 결과는 1960년대 동안 주변화된 주민들의 일부에 의한 사회적 불안, 즉 '도시 위기'로 알려진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1970년대 "경기후퇴가 진행되면서 뉴욕 시 예산의 수입과 지출 격차는 증가햇다(수년에 걸친 무분멸한 차입으로 부채규모는 상당히 컸다)." 처음엔 뉴욕 상업은행들도 적자를 메우는 것을 도왔지만 은행들도 한계에 부딪히고 채무연장을 거부하면서 뉴욕은 기술적 파산상태에 들어간다. '포드가 뉴욕시에게: 죽어라'란 헤드라인처럼 연방정부는 지원을 거부한다. 뉴욕시로선 자신의 힘으로 살아남아야 했다. 이때 시정부의 긴급구제를 맡은 뉴욕 은행가들에 의해 뉴욕시의 정책방향이 우회전을 한다. "공적 고용 및 교육, 공공보건, 교통 서비스 등의 임금동결과 인력 삭감으로 이어졌으며 수직자 부담금을 부과(뉴욕시립대에 처음으로 수업료 체계가 도입되었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출을 줄여야 하니 당연한 조치이긴 했다. 그러나 이전까지 뉴욕의 리버럴 정책기조가 이때부터 신자유주의화되어 고정된다. "수년 사이 뉴욕 노동계급이 일궈낸 많은 역사적 업적이 해체되었다. 도시의 사회적 인프라의 상당부분이 감축되었고 물리적 인프라(예로 지하철 체계)는 투자는 커녕 유지조차 어려울 정도로 퇴락했다. 그러나 뉴욕의 투자은행가들은 도시를 벗어나지 않았다. 이들은 자신의 의제 적합한 방식으로 도시를 재구조화활 기회를 포착했다. '좋은 경영분위기'의 창출이 우선이었다. 이는 경영을 위해서 적절한 인프라(특히 원격통신)의 건설에 공적자원을 사용함을 의미했으며 결국 자본주의적 기업을 위한 보조 및 조세유인책과 결합되엇다. 기업복지가 사람복지를 대체했다. 시정부는 사민주의적 기구라기보다는 기업주의적 기구로 변질되었다. 투자 자본을 위한 도시간 경쟁은 시정부를 공사파트너십을 통한 도시 거버넌스로 전환시켰다. 도시경영은 점차 폐쇄된 밀실에서 이뤄졌고 지방 거버넌스의 민주적, 대의적 요소들은 사라졌다.

뉴욕 재정위기관리는 1980년대 '레이건 정부에 의해 국내뿐 아니라 IMF를 통해 국제적으로도 신자유주의적 관행을 위한 길을 선도했다. 이는 금융기관들의 위원회 및 채권소유자들의 수익과 시민들의 복지가 대립하는 경우 전자에 특혜를 제공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정부역할이 구성원 대부분의 필요와 복지를 보살피기보다는 좋은 경영분위기를 창출함에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레이거노믹스는 뉴욕 시나리오를 확대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여기에 신자유주의의 모순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공식적으로 신자유주의의 세계에 국가의 자리는 없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강한 시장과 강한 국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들의 자유는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이론가들은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몹시 회의적이다. 다수결 원칙에 의한 통치는 개인적 권리와 헌정적 자유에 대한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된다. 민주주의는 사치스럽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전문가와 엘리트에 의한 통치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민주적이고 의회에 의한 의사결정보다도 행정적 지시체계나 사법적 결정에 의한 정부를 강력히 선호한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중앙은행과 같은 주요 기구들을 민주적 압력으로부터 격리하려 한다." 그 이유는 이들이 말하는 자유가 소유적 개인주의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소유적 개인주의의 이해관계는 공동체의 이익과 충돌한다. 그들이 말하는 자유는 그런 사적 이익을 마음대로 추구할 자유이다. 그런 자유와 공동체가 충돌해 "집단적 개입을 추구하는 사회운동에 봉착할 경우" 신자유주의의 자유를 지키려면 그런 운동을 억압할 국가가 필요하다. 그런 국가는 "반대를 진압하기 위해 설득, 선전 또는 필요하다면 적나라한 폭력을 사용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폴라니가 두려워했던 점이다. 즉 자유주의적 (확장하면 신자유주의적) 유토피아 프라젝트는 궁극적으로 권위주의에 의존함으로써 유지된다. 대중의 자유는 소수의 자유를 위해 제한될 것이다." 신자유주의에서 네오콘으로의 진화는 필연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신자유주의는 축적위기에 대한 해답으로 제시되었다. 그러면 그 해답으로서 신자유주의는 얼마나 성공적이었는가?

“병든 경제의 치유에 관한 모든 수사와는 달리 영국과 미국 모두 1980년대에 높은 수준의 경제적 업적을 달성하지 못함으로써 신자유주의가 자본가들의 기도에 대한 해답이 아님을 제시했다.

세계 전체의 성장률은 1960년대 3.5% 정도였으며 심지어 어려웠던 1970년대에도 단지 2.4%로 떨어진 정도엿다. 그러나 1980년대와 1990년대의 1.4%, 1.1%라는 성장률(그리고 200년 이래 거의 1%에 불과한 성장률)은 신자유주의화가 세계적인 성장을 촉진하는데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확실히 인플레이션은 낮아졌고 이자율도 떨어졌지만 이는 높은 실업률이라는 희생을 대가로 한 것이었다. 국가복지와 인프라 지출의 축소는 많은 사람들의 삶의 질을 악화시켰다. 전반적으로 저성장과 소득불균등 증가의 어색한 혼합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단지 동아시아와 동남아 그리고 최근 인도에서 신자유주의화가 약간의 긍정적인 성장 기록을 보였지만 이는 전적으로 신자유주의적이라고 할 수 없는 발전주의 국가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실패작인 신자유주의가 그 ‘자유’로 하려던 것은 무엇이었는가? 저자는 신자유주의의 숨은 의제는 성장이 아니라 분배엿다고 말한다. “신자유주의화의 본질적이고 주된 업적은 부와 소득의 창출보다는 재분배에 있었다.” 저자는 그 메커니즘을 ‘탈취에 의한 축적(accumulation by disposseion)’이라 부른다. 맑스가 말한 원시적 축적의 의미를 더 분명하게 드러내는 ‘탈취에 의한 축적’은 원시적 축적이 그랬듯이 강한 국가의 지지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신자유주의의 핵심의제 중 하나였던 민영화를 보자. “공적 자산이었던 것들의 법인호, 상품화, 민영화는 신자유주의 프라젝트의 징후적 양상이다. 이의 우선된 목적은 그간 이윤가능성의 산정에서 제외되었던 영역에서 자본축적을 위한 새로운 공간을 개발하려는 것이ㅏㄷ. 모든 종류의 공적사업들(물, 통신, 교통), 사회복지(공공주택, 교육, 보건의료, 연금), 공적기관들(대학, 연구실, 감옥) 그리고 심지어 전쟁(이라크에서 정규군과 함께 작전을 수행하는 민간 용병)도 민영화되었다.

그러나 탈취에 의한 축적의 본질은 민영화보다는 금융화에 있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워싱턴 콘센서스에서 민영화와 항상 짝을 이루었던 탈규제(또는 규제개혁)은 사실 금융의 탈규제가 핵심의제엿다. 경제의 세계화를 위해선 금융의 세계화가 따라야 한다고 주장햇지만 통계는 주장과는 다른 사실을 보여준다. 2001년 세계금융시장의 거래량은 연간 40조달러였다. 그러나 “국제무역과 생산적 투자 흐름을 지원하기 위해 필요한 액수는 8000억 달러”에 지나지 않앗다.

금융의 세계화를 가능하게 한 “탈규제는 금융 시스템을 투기, 강탈, 사기, 그리고 도둑질에 의한 재분배의 핵심으로 만들었다.” 90년대 이후 미국에서 금융부문의 “고용은 급격히 성장했다. 그러나 이점이 얼마나 생산적인가에 관해서는 심각한 문제들이 제기된다. 금융업의 많은 부분들은 단지 금융에 관한 것일뿐 다른 어떤 것도 아니다. 투기 이득만이 부단히 추구되엇고 이러한 이득은 각자가 수단을 가리지 않고 동원할 수 있는 권력이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실현 여부가 결정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까지 금융업은 미국에서 가장 이윤율이 높았다. 그 비결은 이제는 명백해졋듯이 투기였다. 그 투기가 어떻게 돈을 만들어냈는지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주식상장, 폰지형 사기, 인플레이션을 통한 구조적 자산 파기, 흡수합병과 취득을 통한 자산 박탈, 심지어 선진 자본주의국가에서도 전체 인구를 부채 노역자로 전락시키는 부채 부담 수준의 증대. 기업적 사기는 말할 것도 없고 신용과 주식 조작에 의한 자산 탈취 등은 자본주의 금융시스템의 핵심이 되엇다.

이른바 금융 및 통제기능을 하는 소위 글로벌시티들은 부와 특권의 장엄한 섬이 되었으며 이러한 운영이 가능한 장소를 제공하고자 고층건물이 치솟고 수백만 제곱피트의 사무공간이 건설된다. 이러한 고층건물들에서의 층 사이의 거래는 엄청난 부를 창출한다. 맨해튼, 도쿄, 런던, 파리, 프랑크푸르트, 홍콩 그리고 오늘날 상하이으 빠르게 변하는 스카이라인은 경이로울 지경이다.” 그 도시들이 경이로운 이유는 재분배 또는 탈취에 의한 축적의 열매이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탈취에 의한 축적의 가장 현란한 묘기는 위기의 관리와 조작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금융위기는 항상 자신의 자산을 온전히 유지하면서 신용을 창출할 수 잇는 위치에 잇는 사람들에게로 소유권과 권력의 이전을 유발한다. (1997-1998년) 아시아의 위기도 예외는 아니다. 서구와 일본 기업들이 큰 승자라는 점은 의심할 바 없다. 현저한 평가절하, IMF에 의해 강제된 금융자유화, 그리고 IMF가 촉진한 회복의 결합은 지난 50년간 평상시에 세계 모든 곳에서 일어난 자국 소유자로부터 외국인 소유자로의 가장 큰 자산이전보다도 더 컸으며 1980년대 라틴아메리카나 1994년 이후 멕시코에서 자국 소유자로부터 미국인 소유자에게 이전되었던 것을 왜소하게 만들 정도다. ‘침체기에 자산은 그들의 적법한 소유자에게로 되돌아간다’는 멜론의 말을 기억하게 된다.”

그러나 저자는 신자유주의 체제가 한계에 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저자는 그 예로 미국의 방대한 쌍둥이 적자는 “신자유주의가 자본축적의 미래를 보장하기 위한 실용적인 이론 지침으로서 수명을 다했다는 강력한 조짐이다.” 그 이유는 탈취에 의한 축적이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라 저자는 보는 것같다. 더 이상 뽑아낼 것이 마땅치 않은 단계에 달한 것이다. 그리고 저자가 이책을 이번 위기 이후에 썼다면 이번 위기를 신자유주의의 사망선고로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남은 것은 뒷처리뿐이라 덧붙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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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를 관리하라 - 최상의 리더십을 이끌어내는 탁월한 팔로워십의 법칙
브루스 툴간 지음, 박정민.임대열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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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거대 멀티미디어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수석 생산관리자는 ‘우리 회사에는 시스템적인 문제가 많아요’라고 이야기했다. ‘예를 들어 제 직속상사는 제 옆에 바짝 붙어 서서 제 부하직원들에게 지시를 합니다. 제가 이전에 말했던 내용과 다른 이야기를 할 때가 많죠. 정말 우리 회사는 너무나 혼란스러운 동네입니다. 그러면 제 부하직원들은 도대체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까요? 또 어떤 때는 생산과 관련된 이해관계자들이 동시에 여기저기서 저에게 전화와 이메일을 날려댑니다. 다른 부서의 부서장도 있고 스폰서나 광고주도 있지요. 온라인 저작물, 다른 채널, 영화, 본사, 잡지사의 담당자들도 모두들 연락을 합니다.’”

저자가 소령님이라 부르는 이 관리자는 현 직장에서 일하기 전에 육군에 있었다. 소령이 될때까지 군에서 일한 그녀에게 민간기업의 시스템은 이해불가의 혼돈이다.

“군대에서 나보다 계급이 높은 사람의 지시는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배웠어요, 어떤 상황에서도 누구에게 보고를 해야 하는지 명확했죠. 누가 내 지휘관인지도 분명했고요.” 물론 군대라고 모든 것이 분명한 것은 아니다. 일이란 어디나 불확실성이 있게 마련이고 서로 상충하는 요구들이 난무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적어도 군에선 명료한 조직도가 일의 우선순위를 결정해주었다.

그러나 질서정연한 조직에서 혼란스런 조직으로 옮겨온 그녀는 혼란에 먹히지 않았다. “소령님은 그 조직의 역사상 전설적인 인물로 알려진 사람이다. 매우 차분하고 냉정한 사람, 최고의 전문가,. 성공한 생산관리자로 평판이 자자하다.” 그런 평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혼란을 다스릴 전략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어떤 근무환경에서도 성공할 수 있는 열쇠는 작업패턴의 리듬을 익히는 것이라 할 수 잇죠. 물론 어떤 관리자는 부하직원 관리를 매우 잘해서 그들이 일을 하는데 원활하게 리듬을 탈 수 있게 해줍니다. 그런 관리자는 갑자기 일의 우선순위가 바뀌더라도 모든 사람들이 조화를 이루어 일을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게 도와주지요. 각 개인이 그에 맞춰 움직여나갈 악보를 가지고 있고 전체(가장 상위 직급부터 가장 하위직급까지)를 위한 체크리스트를 가지고 있어서 모두 함께 서로의 리듬에 맞춰 조윬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겁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관리자는 천연기념물이란 점이다. 관리자가 그 자리에 있는 이유는 관리를 잘해서가 아니다. 관리자로 승진하기 전에 실적이 좋았거나 사내정치를 잘했거나 다른 이유 때문이다. 대개 관리자는 관리능력을 쌓을 기회가 없이 그 자리에 앉게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관리자들의 꿈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 높은 성과를 내는 부하직원과 함께 일하”는 것이다. “이들은 그 어떤 지도나 지원을 받지 않아도 엄청난 양의 일을 매우 훌륭하고 빠르게 해낸다. 실수를 하는 경우는 없으며 상사에 대해 별 기대나 바람도 없다.” 이런 인재와 일하는 것은 관리자의 로망이다. “문제는 세상에 이런 부하직원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형편없는 관리자들은 이러한 환상 속의 직원이 존재하는 듯이 관리를 한다.”

그 결과 저자가 ‘부실관리’라 부르는 현상이 조직에 만연한다. “그들은 일상적인 업무상황에서 제대로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업무 프로세스의 각 단계에서 (부하직원들에게) 어떤 것을 바라는지 이야기하지 않으며 필요한 자원들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부하들의 업무수행과정을 모니터하지 않으며 실수가 있을 때 피드백을 해주지 않고 좋은 성과를 올려도 인정해주지 않는다. 그들은 어떻게 관리를 해야 할지 모르기도 하고 관리를 하고 싶어하지도 않으며 심지어 관리를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의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부하가 아니다. 프라젝트의 목적이 무엇인지 왜 그것을 해야하는지, 언제까지 되어야 하는지 말해주지 않으면 부하는 짐작 밖에 할 수 없고 대개 그 짐작은 일을 망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부하가 알아서 필요한 예산을, 필요한 사람을 동원할 수 있기를 기대하지만 그러면 왜 보스가 필요한가? 일을 어찌어찌 해본다 해도 제대로 된 피드백을 주지 않으면 일이 큰그림과 맞아들어가는지 알 수가 없다. 어떻게 일을 끝내도 보상을 바랄 수 없다면 사기는 땅에 떨어진다.

그러므로 당신은 조직 안을 휘졌는 혼돈의 파도를 타고 자신의 진로를 개척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소령님의 말을 들어보자. “저는 이런 조언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이 어디에서 일하든 당신의 관리자가 당신을 잘 도와주든 그렇지 않든 간에 일이 가지고 있는 리듬에 집중하고 당신이 그 음악에서 담당하고 있는 역할을 열심히 익히세요. 그렇게 되면 어느 상황에서다로 어떻게 행동해야 정확하게 알게 될 겁니다. 미처 예상 못 했던 일이 일어나더라도 일의 리듬을 잘 익히고 있다면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저는 그걸 군대에서 배웠습니다. 그곳에서는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날 때가 바로 이제까지 배웠던 것을 총동원해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때라고 가르쳤거든요.” 구체적으로 리듬을 타는 방법을 소령은 표준업무진행 프로세스라 부른다. “가장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하는 상황이야말로 당신이 표준업무 프로세스가 가장 필요한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명확한 업무규정이나 표준업무 프로세스가 없는 곳에서 일한다면 반드시 표준업무체계를 만들 것을 권합니다. 스스로 활용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를 만드십시오. 즉 자신의 악보를 만드는 거죠. 일의 리듬을 이해할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 주위에 아무도 없다면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 되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소령의 조언은 재즈 음악가처럼 그때 그때의 변칙에 맞춰 연주할 수 잇는 능력, 즉흥연주의 능력을 가지란 말이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저자는 그 첫단계를 이책에서 말한다. 자신의 업무환경을 명확하게 구조화하라 저자는 말한다. 그 열쇠는 우선 상사를 관리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일이 떨어졌을 때 그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자원을 얻을 수 있는 원천은, 그 일을 제대로 해나가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일을 끝냈을 때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은 모두 상사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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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벳 - 세상을 바꾼 1천 번의 작은 실험
피터 심스 지음, 안진환 옮김 / 에코의서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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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말이다. 아무리 먼 길이라도 한 걸음 한 걸음으로 나누지 않으면 갈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 당연한 것을 잊어버린다. 이책은 그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보자고 한다.

사람들은 큰 성공 뒤에는 무언가 큰 것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이 너무나 거대하므로 그 성공은 거창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사람들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먼저 거창한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전에 내가 벤처 자본가로 일하면서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성공한 기업들은 처음부터 뛰어난 아이디어를 가지고 출발한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발견한다는 점이다.”

거대한 성공의 시작은 거의 보잘 것없고 사소했다. 다시 말하자면 성공은 백조다. 물위로는 한가하고 우아하게 보이지만 물밑에선 두발을 열심히 움직여야 한다. 에디슨이 1%의 영감과 99%의 땀이라 말한 것은 물 아래 두발을 말한 것이다.

“한 시간짜리 공연을 개발하고 완성하려면 최고의 코디디언초차 반년에서 1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한 회 분량의 완전한 레퍼토리를 짜는 과정을 보면 록은 수백 개의(수천까지는 아니더라도) 예비 아이디어를 시도해보고 그 가운데 소수만 엄선하여 실제 공연 무대에 올린다. 종종 예닐곱 개로 성공적인 농담을 만들어낸다. 독창적인 아이디어라는 것이 완벽한 형태를 갖춘 채 머릿 속에 치고 들어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성공을 향한 열의에 불타는 코미디언은 할 수 있는 한 매일 저녁 무대에 오르며 특히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는 단계일 때는 더욱더 그러하다. 그들은 매주 적어도 5회, 때로은 7회까지 무대에 올라 모든 요소와 표현들을 시험하며 구슬땀을 흘린다. 매일 반복적으로 말이다.”

일이란 것이 원래 그렇다. “만일 1만 가지의 방법을 시도했는데 모두 효과가 없다고 해도 나는 실패한 것이 아니다. 나는 실망하지 않는다. 한 가지 방식이 잘못된 것으로 밝혀질 때마다 나는 한 발짝 전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에디슨의 말이다.

학교에선 정답이 있지만 그러나 학교 밖에선 사지선다로 고를 수 있게 정리된 정답이란 희귀하다. 특히 새롭고 불확실한 것은 반드시 그렇다. 물론 모든 일이 그렇지는 않다. 잘 정리된 프로세스가 있고 업무 매뉴얼이 있는 일상의 업무는 확실성의 세계이다. 그러나 ‘뻔한’ 세상에서 한발짝만 벗어나도 세상에는 정답이 없다. 그 세상은 불확실성의 확실성이 지배한다. 그런 세상에서 정답은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지 준비된 것이 아니다.

이책은 그 정답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대해 말한다. 저자는 불확실성에 대한 유일한 방법으로 실험적 접근법을 말한다. 실험적 접근법의 핵심은 정답을 “발견하고 검증하고 개발하기 위해 작은 실험(little bets)을 반복하는” 것을 말한다. 실험적 접근법 또는 그 구체적인 실행인 리틀 벳은 “불확실성이 확실성을 대체할 때 또는 문제를 해결할 통찰력이나 경험, 전문성이 부족할 때 유리한 접근법이다.”

예를 들어 경영대학원에서 가르치는 것과 실제 기업가가 하는 방식을 비교해보자. 학교에선 요리를 이렇게 하라 가르친다. “요리사 메뉴를 선택하고 조리법을 결정한 뒤 재료를 구입하고 요리도구가 갖춰져 있는 주방에서 조리를 한다. 각 단계에서 할 일이 미리 정해져 있기 때문에 조리 과정을 순차적으로 계획할 수 있다. 즉 1단계가 끝나면 2단계가 시작되고 마침내 3단계에서 요리가 완성되는 식이다.” 교실에서 세상은 원인과 결과가 분명하고 세상은 선형적(linear)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교실 밖의 세상은 교실에서 가르치듯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는 선형적으로 돌아가는 곳이 아니다. 교실 밖의 요리사는 어떤 메뉴를 선택해야 할지도 모륵고 “어떤 재료를 사용할지도 모른 채 완전히 낯선 주방에 들어간다. 요리사는 찬장을 뒤져 재료를 찾아내고 그것들을 잘 조합하여 즉석에서 음식을 만들어내야 한다. 결과는 훌륭할 수도 잇지만 그 반대일 수도 잇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결과를 예측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기업가가 오류나 돌발 상황을 결코 피하여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때로 요리사가 임기응변을 통해 새로운 조리법을 찾아내듯이 기업가들은 새로운 상황에서 교훈을 얻으려 한다.”

저자는 그 교훈을 얻는 방법은 (HP의 공동창업자인 빌 휴렛이 말한) 리틀 벳이라 말한다. “HPrk 휴대용 전자계산기 시장을 개척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접근법 덕분이다. 1972년 HP의 첫번째 전자계산기인 HP-35가 나왔을 때만해도 공학용 전자계산기 시장은 존재하지 않았다. HP 계산기는 놀라운 기술을 적용하였을 뿐 아리나 호주머니에 쏙 들어갈 정도로 작았다. 그렇지만 값싼 계산자에 비하면 너무 비쌌다.” HP는 시장조사를 의뢰했다. 시장조사 결과는 ‘이건 안 팔릴겁니다’였다. “빌 휴렛은 동의할 수 없엇다. ‘천대만 제작해서 한번 상황을 보는게 어떨까?’ 그 정도면 감당할 수 있는 도박(리틀 벳)이었다. 마침내 5개월도 지나지 않아 HP는 하루에 천대를 판매하고도 제품이 부족해 간신히 수요를 맞출 수 있었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불확실하다. 될지 안될지 알 수 없다. 빌 휴렛의 리틀 벳은 “어느 정도의 이익을 기대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어느 정도의 손실을 감당할 수있느냐”를 묻는다(affordable loss principle). 그러다보면 실패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나는 오랫동안 서툰 실수를 연발하면서도 결코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믿는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성공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잇는 모든 방법을 시도하고 난 뒤에 남는 것은 성공할 수 밖에 없는 길뿐이기 때문이다. 기업가의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은 항상 가장 마지막에 찾아오는 듯하다. 일단 그때가 되면 모든 게 명백해보인다.” 리틀 벳은 그 명백한 순간을 위한 준비이다.

“에드 캣멀은 픽사의 창조적 프로세스에 대해 ‘개판에서 개판이 아닌 것으로 가는 과정’이라 묘사햇다. 영화에 대한 픽사의 아이디어는 개판에 가까운 스토리보드에서 출발해 개판이 아닌 수준에 이를 때까지 수천 수백가지의 문제 해결 과정을 거친다. 물론 단순히 실패하는 것이 핵심은 아니다. 핵심은 바로 실패를 통해 체계적인 학습을 거치는 데 있다. ‘우리는 불편해지는 것에 편해져야 합니다.’ 적은 비용을 들여 견본을 만들어보면 빠른 학습을 위한 신속한 실패가 가능해진다. ‘내가 구사한 전략은 언제나 같습니다. 가능한 한 빨리 잘못하는 거죠. 간단히 말하자면 일을 망쳣을 경우 그걸 곧바로 인정한다는 의미입니다. 실패하는 걸 두려워하지는 맙시다. 가급적 빨리 실패해서 해답을 얻는게 좋아요. 처음부터 일을 잘 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아주 빨리 신속하게 망칠 수는 있지요.”

요점은 아이디어에 너무 많은 자원을 들이지 않으면 잃는 것보다 배우는 것에 집중할 수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 과정을 “행동하기 위해 생각하기 보다는 생각할 수 있게 행동하는” 것이라 말한다. 다시 말해 연역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귀납적으로 행동하라는 말이다. 인간은 컴퓨터가 아니다. 컴퓨터는 쓰레기가 들어가면 쓰레기가 나온다 (GIGO) 그러나 인간은 쓰레기를 보물로 바꿀 수 잇다. 그 열쇠는 귀납적 행동에 있다. “딥 블루의 사례는 왜 우리가 연역보다 귀납을 선호하는지 그 이유를 보여준다. 연역은 단지 장기의 수처럼 매우 잘 정의된 문제에만 효과가 있다. 연역이 작동하려면 그 문제가 어떤 정보를 잃어버리거나 모호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연역은 추론을 하는데 매우 강력한 방법지만 본질적으로 차갑고 냉담하다. 귀납은 연역보다 잘못될 경향이 잇지만 보다 유연하고 우리가 흔히 부딪히는 불완전하고 모호한 정보 상황에서는 더 적합하다. 따라서 우리가 귀납 쪽으로 치우치게 되는 것은 진화론적으로 설득력이 있다.” 계획을 앞세우는 MBA 스타일은 경제학자들처럼 세상은 투명하게 모든 정보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완전 합리성은 우리가 100% 연역적이며 딥 블루처럼 언제나 명확하고 잘 정의된 그런 문제만 다룬다고 가정한다. 또한 우리는 학습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 우리가 완전하다면 무엇을 더 배울 필요가 있느냐는 말이다.” (에릭 바인하커)

리틀 벳은 실패를 전제한다. 그러나 그 실패는 배움의 수단이다. 그리고 우리는 실패에서 성공을 배운다. “크리스 록의 농담은 때때로 폭소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소리를 죽이고 킥킥거리는 웃음을 유발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로써 록은 자신이 좋은 농담거리가 될 테마를 발견했음을 알게된다. 이것이 바로 그가 후에 성공의 기반으로 삼을 수 있는 작은 성공이다. 작은 성공은 전진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불확실성의 한가운데를 높인 발판, 또는 구성재료와 같다. 그들은 표지(landmark)의 역할을 수행하며 우리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잇는지 확인시켜주거나 어떻게 방향을 바꿔야 할지 알려주는 전환점 역할을 한다. ‘일단 한 번의 작은 승리를 달성하게 되면 다시금 똑 같은 일을 부추기는 힘이 작용하기 시작한다.’”

작은 성공은 기세를 만든다. 그리고 기세를 타고 작은 승리가 누적되면서 큰 승리로의 길이 열린다. 큰 승리는 작은 실험에서 작은 승리의 누적에서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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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은 무너졌다
자크 사피르 지음, 박수현 옮김, 김병권 한국판 보론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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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다보스포럼의 화두는 ‘G-Zero’란 말이었다. G-제로란 “중국, 인도, 브라질, 러시아 같은 신흥국 세력이 날로 강해지며 국제사회의 세력이 점점 균등해지는 가운데 향후 10년 동안 뚜렷한 지도국이 없는 체제를 말한다.”

금융위기로 선진국 특히 미국의 리더십이 약화되면서 그 빈자리를 G20이 메웠다. 1,2회 G20 정상회담은 성공적이었다. 워낙 현실의 압력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회담은 실질적 내용이 없는 말잔치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 위기가 수그러든 이상 제 역할을 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현실적으로 G20을 대체할 마땅한 대안이 없다. 그렇다고 “기존에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했던 국가들은 현재 국내문제에 정신이 없어 글로벌 거버넌스를 할 여력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다보스포럼에서G-제로 이론을 주장한 블레머는 기존의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하던 국가들이 글로벌 리더십 부재가 2013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 후에는 글로벌 리더십은 지역적 리더십으로 나뉘어질 것이라 본다. “남미, 북미, 걸프 지역을 대표적인 예로 꼽았다. 그러나 그는 아시아의 경우 지역적 리더십을 발휘할 국가가 없다고 본다. 중국과 인도는 서로 갈등을 일으키고 일본은 리더십을 발휘할 의지가 없다.” (매경)

이 지경이 된 이유는 간단하다. 금융위기로 미국이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와 함께 미국의 방식은, 신자유주의라 불리던 모든 것은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는 마지막 결정타일 뿐이었다. 제국의 죽음은 10년 전 아시아 금융위기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20세기 마지막 10년이 시작되던 순간 미국은 정치, 경제, 문화, 군사 등 모든 차원에서 완전한 패권을 장악하는 듯 보였다. 미국은 한마디로 ‘지배 권력’의 모든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미국은 걸프전을 통해 압도적인 힘을 과시한 후에 더 이상 직접적인 무력에 의존하지 않고도 모두에게 영향을 줄 수 있었고 특히 자신의 명시적이고 암묵적인 표상체계와 담론을 강요함으로써 국제정치 공간에 헤게모니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당대에 싹텄던 희망에도 두려움에도 결코 부합하지 않았다. 오늘날 판단할 때 1990년대 초의 상황은 기만적인 신기루처럼 나타났다. 진정한 단절은 1997~1999년 국제금융위기였다.”

90년대 최고의 유행어였던 세계화는 “실제로는 두가지 과정의 결합이다.” 첫째는 ‘중국과 인도의 산업혁명’이라 불러야 할 것으로 자본주의가 전 세계로 확산되는 과정이었다. 둘째는 미국이 정의한 세계화로 데이비드 하비에 따르면 ‘신자유주의화’라 불러야 할 과정이다. 이 과정은 무역과 금융의 개방이라 요약된다.

무역과 금융의 “문호개방은 국제관계를 바라보는 미국적 시각의 근간을 이루는 개념이다. 1985년에서 1995년에 이르는 시기는 이러한 미국의 비전이 절정에 달한 시기다. 이 시기동안 자본 이동을 구속하는 제약들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또 자유무역의 중요성이 WTO 같은 국제기구들의 핵심의제로 등장한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그러나 미국이 주장한 문호개방의 핵심은 금융개방이엇다.

“신자유주의화는 모든 것들의 금융화를 의미했다. 이 점은 경제의 다른 모든 영역들과 국가잧이는 물론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금융의 장악을 심화시켰다. 이는 또한 세계적 교환관계에 가속적인 변동을 유발했다. 의심할바 없이 생산으로부터 금융의 세계로 권력이행이 있었다. 이제 제조능력에서의 이익이 필수적으로 1인당 소득의 증가를 의미하지 않게 된 반면, 금융서비스에의 집중은 분명 소득의 증가를 의미했다.” (데이비드 하비)

물론 금융화의 소득은 소수 국가의 소수의 손에 집중되었다. 아리기가 말하듯 신자유주의화의 시대는 미국의 Belle Epoque였다. 20세기의 벨르 에포크는 19세기 영국의 벨르 에포크처럼 금융화 덕분이었다. 클린턴 집권기 미국의 번영은 그 비결이 “미국이 세계의 다른 곳에서 금융 및 기업 운영(직접 투자 및 포트폴리오 투자)을 통해 자국으로 높은 수익률을 끌어들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같이 세계 여러 다른 곳들로부터의 공물(tribute) 흐름은 1990년대 미국에서 성취된 부의 상당 부분을 구성했다.” (데이비드 하비, 이에 대해 더 자세한 것은 전에 다룬 ‘자본의 반격’ 리뷰와 앞으로 다룰 리뷰 참조)

“1985-1998년 동안 미국의 이데올로기적 승리의 가장 큰 특징은 금융 자유화가 실제로는 개별 이해관계에 기여함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금융자유화를 잠재적인 공공재로 제시할 수 잇었다는 점에 잇다.”

그러나 1997-1999년의 금융위기는 금융자유화가 공공재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주었고 위기를 통제하지 못한 미국의 무능력을 보여주었다. “금융위기는 미국 헤게모니의 정당성을 뿌리째 뒤흔들었으며 1980년대 말 이후 정립된 이데올로기적 지배의 위기가 도래했다.

아시아를 시작으로 러시아를 거쳐 라틴 아메리카까지 확대되었던 금융위기의 원인은 미국의 권유에 따라 도입된 자유화 정책, 그중에서도 특히 금융 자유화 정책” 때문이엇다. “이 위기의 정치적 차원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오늘날 차베스나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의 성공도, 아르헨티나와 에콰도르 등 다른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에서 국가 주권 담론과 사회적 담론을 결합한 세력의 승리도 푸틴 대통령 집권 아래의 러시아 변화도 이해할 수 없다.

미 재무부가 모든 강력한 수단을 동원했지만 위기의 논리가 시스템 통제에 대한 모든 의지를압도햇다. 한 마디로 창조주가 피조물에 먹힌 셈이다.” 재앙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2000년에 터진 나스닥 위기와 인터넷 버블 붕괴는 신경제의 신화를 무너뜨렸다. 엔론과 월드컴 스캔들은 미국이 옹호하는 ‘거버넌스 모델’의 한계를 빠르게 보여주었다.”

“1999년부터 전개된 자유주의 이데올리기에 대한 비판도 바로 미국이 금융위기관리에서 보여준 무능력의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결과다. 금융위기로 인한 정치, 경제, 이데올로기적 결과들은 미국의” 헤게모니를 뿌리째 뒤흔들었다.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 담론이 갑작스럽게 신뢰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저자는 2000년대 세계경제를 정의하는 글로벌 불균형을 위기의 결과로 본다. 미국이 금융위기를 통제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아시아 국가들은 국제금융의 변덕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야 된다는 결론을 내렸고 “이를 위해 내수를 줄이고 극히 공격적인 무역정책을 감행했다.” 국제무역에서 아시아 국가들의 “‘약탈자적 전환’은 1999년과 2000년에 시작되었다. 진정한 국제무역 자유화는 각국이 합리적인 수준으로 내수를 확대하는 정책을 조정할 수있을 경우에만 가능하다. 만약 어떤 국가가 의도적으로 소비를 억제한다면 이 국가의 발전 전략은 해외시장에서 자국 상품의 시장점유율을 높일 수 밖에 없다. 또 여러 국가들이 동일한 방식으로 사고할 경우 그 결과는 이들 국가의 정책을 모방하지 않는 국가들에서 디플레이션과 고용 파괴로 나타난다.”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은 것은 미국이엇다고 저자는 말한다. “미국은 국제금융 자유화로 인해 다음과 같은 딜레마에 봉착하게 된다. 첫째 자신이 강제한 시스템의 조절국가임을 천명한 경우다. 이 경우 미국은 통화정책을 국내 정책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둘째 통화정책을 계속 국내 경제정책의 도구로 사용할 경우 미국은 시스템의 조절국가임을 천명할 수 없다. 따라서 미국은 자신이 만든 세계시스템의 운영을 우선시하고 국내통화정책을 조정변수로 만들든가, 통화정책의 자율성을 유지하면서 세계시스템을 국내정책의 조정변수로 만들어야 한다.” 아시아국가들이 약탈자로 돌변하면서 미국의 딜레마는 더욱 심화되었고 세계시스템의 “모순이 미국에 집중된다.

미국은 전세계적 문호개방이라는 정치적 행위와 이 정치적 행위의 결과를 홀로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의 부재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에 부딪차게 되었다. 일극적 세계절서를 추구하는 동시에 일극적 세계경영을 위해 다극적인 협력을 기대할 수는 없으며 전세계의 문호개방을 추구하는 동시에 그로 인해 발생하는 자본, 금융, 상품 플로우를 안정화시키지 않을 수는 없다. 이 같은 모순은 재정 약화뿐 아니라 이제 무역 약화가 결합된 형태로 드러나고 있다.미국의 지도자들은 정치적 이유로 미국경제의 실제 효율성이 지탱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경제활동을 유지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는 경성권력과 연성권력을 모두 보유할 수 잇는 강대국이 스스로를 표현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런데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가 갑작스럽게 붕괴한 것이다.” 담론의 위기는 치명적이다. “담론의 상실은 미디어가 그야말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 세계에서 군사적 패배만큼이나 중요한 패배”이기 때문이다.” 헤게모니의 위기에 맞서 “미국은 군사력 즉 경성권력을 동원할 수 잇는 능력을 다시 한번 과시함으로써 자국의 헤게모니를 재천명하고자 했다. 미국은 이미 1991년 걸프전을 통해 이를 만천하에 과시한 바 있다. 이 같은 미국정책의 재군사화는 1999년 코소보 사태에서 2003년 이라크 전쟁까지 계속된다.”

미국이 재군사화란 옵션을 택한 것은 미국의 세계에 인식이 크게 바뀌엇기 때문이기도 하다. “1998년 위기 직후 미국을 사로잡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혼란은 파키스탄과 인도의 핵실험을 계기로 더욱 악화되었다. 미국이 비교적 가깝다고 생각했던 국가들마저 미국의 통제를 벗어나 독자적인 전략을 추구한다는 것을 보여주엇다. 미국의 세계에 대한 인식이 크게 변하게 된다. 외부 세계를 미국이라는 성지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으로 감작스럽게 인식하게 된 것이다. 즉 1990년대의 자신만만함이 막연한 두려움의 감정으로 변했다. 지배 국가에 대한 도전과 지배 국가의 대응 과정은 과격화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 막연한 두려움은 9/11로 분명한 두려움으로 바뀐다. 그러나 테러와의 전쟁 이후 미국의 과격화는 “단순히 조지 부시 대통력을 비롯한 지도층의 신보수주의 이테올로기만의 산물은 아니다. 부시의 백악관 입성은 이 동학의 원인이라기보다 징후에 가까웠으며 기폭제라기보다 동학의 현시라고 볼 수 잇다. 그런데 이러한 군사력으로의 회귀는 정치적 군사적 이유로 인해 실패한 회귀엿다.” 그 결과는 국제무대에 중국과 인도를 신흥강국으로 올려놓았고 러시아의 부활을 이끌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미국은 군사력의 약화와 정치적 고립이라는 상황에 봉착했으며 미국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다.”

그러면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저자는 다보스 포럼에서 논의된 G-Zero에 동의한다. 여전히 미국은 최강이다. 그러나 제국으로서의 미국은 끝났다. 그리고 “미래는 일극적 제국의 시기가 될 수 없다.” 미국의 헤게모니는 무너졋지만 미국을 대신할 국가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미국은 자신의 해결책을 강제할만큼 강력하지는 않지만 다른 대안적 해법들의 등장을 막을 만큼은 강하다. 미국의 딜레마는 발생 단계에 있는 질서의 위기 그 자체다. 즉 구질서는 사라졋지만 신질서가 탄생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래는 “외관상으로도 다극적 동거의 시기가 되지도 않을 것이다. 다가올 미래는 분쟁과 혼란의 시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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