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am Smith in Beijing : Lineages of the Twenty-First Century (Paperback)
조반니 아리기 지음 / Verso Books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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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90년대에 쓰여진 저자의 전작, ‘장기20세기’에 대한 속편이랄 수 있다. 10여년 사이 많은 것이 변했기 때문이다. 전작이 쓰여졌을 때 미국은 무너져가는 제국에서 불사조처럼 부활한 제국이었다. 그러나 이책이 쓰여진 시점에선 다시 죽을 날이 멀지 않은 제국이 분명해졌다.

전작은 제목은 패권국으로서 미국이 등장한 시대를 말한다. 스페인 제국, 네델란드, 영국이 패권국이 되었던 시대를 장기16세기, 장기17세기, 장기19세기라 부르는 것처럼 저자는 미국의 시대를 장기20세기라 부른 것이다.

다른 패권국들의 시대에 ‘장기’란 말이 붙은 이유는 그 나라들이 패권국이 된 시기는 그 시기이나 패권이 형성되어 간 것은 그보다 오래기 때문이다. 패권국은 사라지고 다시 태어나지만 그 과정은 서로 겹친다. 영국이 패권을 쥐게 되는 과정은 네델란드의 정점에서부터 만들어졌고 네델란드의 패권이 최종적으로 무너지기 전 이미 패권국의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다. 1890년대 belle epoque라 불린 에드워드 시대는 대영제국의 정점이었다. 그러나 그 정점은 회광반조와 같은 것으로 이전에 시작되었던 헤게모니의 약화원인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헤게모니의 붕괴는 예정된 것이었다. 미국의 헤게모니가 형성되어간 시절은 바로 대영제국의 정점에서부터였다. 이미 준비된 예비 패권국으로서 1차대전으로 영국의 헤게모니가 붕괴되자 바로 패권국이 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미국의 헤게모니를 설명하려면 20세기에 시선을 한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장기’란 말이 붙는다.

그 미국의 장기20세기가 어떻게 끝나가는지 그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것이 그 책에서 저자의 목표엿다. 헤게모니는 태어나고 죽는다. 미국 이전 영국의 제국이 그렇게 사라졌고 그 이전 네델란드가 그러했고 스페인 제국이 그러했다. 그러나 미국의 헤게모니가 사라지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미국 헤게모니의 죽음은 15세기 지중해에서 시작된 유럽 세계-체제의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유럽 세계-체제의 역사는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대서양에서 전 세계로 헤게모니의 범위가 확대된 과정이었다. 그리고 미국은 그 과정의 정점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헤게모니 이후 더 이상 유럽 문명이 세계의 헤게모니를 잡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의 헤게모니가 나고 죽는 사이클을 설명한다는 것은 15세기 지중해에서 시작된 세계-체제의 죽음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자의 ‘장기20세기’는 13세기 이탈리아 도시국가에서 시작된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역사부터 설명을 시작해 그 세계체제가 본 시간과 공간을 그려나간다. ‘장기20세기’는 유럽문명의 황혼에 바치는 송가라 할 수 있다.

그 책이 출간된 1994년 이후 달라진 것은 없다. 그책에서 저자는 미국이 Belle Epoque에 들어선 상태라고 진단했고 이책이 출간된 2007년까지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책이 나온 해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의 벨르 에포크는 끝났으며 패권국으로서 미국도 사라졌다. 그러면 왜 이책이 필요한가?

이책에서 저자는 ‘장기20세기’가 나온 이후 10여년 동안 미국의 패권이 어떻게 무너져가는가를 설명한다. 저자는 레이건 집권기부터 시작된 벨르 에포크 시기 미국의 세계지배를 domination without hegemony라 규정한다. 아들 부시의 군사주의를 보면 저자의 그런 규정이 무슨 의미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지배가 그렇듯이 헤게모니는 동의 위에 행사된다. 미국이 그리고 영국이 패권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은 힘이 세기 때문이었지만 그 힘으로 모두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은 세계의 모든 바다에서 제해권을 행사하면서 안전이란 공공재를 제공했다. 물론 영국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렇게 한 것이지만 자기 이익과 공익이 꼭 충돌할 이유는 없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베트남전쟁의 패배는 미국의 그 능력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고 미국의 헤게모니는 그때부터 무너지기 시작햇다.

그러나 미국만 그런 위기를 겪은 것은 아니다. 저자는 ‘장기20세기’에서 이전의 패권국들이 어떻게 패권을 잃었는가를 다루었고 그 메커니즘을 설명햇다.

그렇다면 왜 이책이 필요한가? 이론적인 문제이다. 이책이 헌정된 안드레 군더 프랑크가 제기한 문제때문이다.

저자의 이론적 입장은 세계체제론이다. 세계체제론의 선언서라 할 수 있는 월러스틴의 ‘근대세계체제’ 추천사에서 (세계체제론의 실질적인 아버지인) 브로델은 이렇게 말한다. “역사가들은 늘 유럽이 자기를 중심으로 세계경제를 구축해왔다는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잇었다.” 세계체제론은 지중해에서 시작된 세계체제가 500년동안 확장되어 전세계로 확대되었다 말한다. 그러나 프랑크는 리오리엔트에서 지중해에서 시작된 유럽의 세계-경제는 5000년전부터 있어왔던 세계경제의 일부였을 뿐이며 지난 500년은 유럽 세계체제가 그 세계경제의 패권을 장악하게 된 역사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프랑크가 리오리엔트에서 “규명하려는 사실의 하나는 유럽인이 무언가를 행하고 발언하기 훨씬 이전부터 계속되어 온 세계경제라는 것이 진작부터 있엇다는 것이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파생되는 두가지 논점이 있다. 하나는 아시아, 특히 중국과 인도, 나아가 동남아와 서아시아가 1800년 이전까지만 해도 유럽보다 더 활동적이엇고 또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컸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는 ‘역사가들은 늘 유럽이 자기를 중심으로 세계경제를 구축해왔다는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잇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닐 뿐더러 반역사적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유럽은 자기를 중심으로 세계경제를 구축하지 않았다. 유럽은 신대륙의 화폐로 아시아 열차에 오르는 승차권을 샀을 뿐”이고 그 다음엔 열차 전체를 사들였을 뿐이라고 프랑크는 말한다. (자세한 것은 리오리엔트를 직접보거나 이전에 쓴 리뷰의 요약을 보기 바란다)

이책은 프랑크의 의문에 대한 답이다. 프랑크가 세계체제론에 대해 지적하듯 저자의 전작 역시 유럽 세계체제보다 더 큰 세계경제는 고사하고 그 세계경제의 중심이엇던 아시아는 시야에 두지 않았다. 저자가 전작에서 13세기부터 시작하는 세계체제의 역사는 단지 세계체제의 자기확장의 역사일 뿐이며 세계체제론의 기본입장을 그대로 따랐다.

그러나 이책에서 저자는 프랑크가 ‘리오리엔트’에서 제기한 주장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프랑크는 세계경제의 중심이 중국에서 유럽으로 넘어간 시점을 19세기로 본다. 그 이유를 간단하게 정리하면 산업혁명 때문이라는 것이다. 산업혁명은 생산성 혁명이었고 산업혁명을 통해 생산성이 폭증한 유럽은 중국을 정점으로 하는 아시아를 압도하는 경쟁력을 갖게 되엇다는 것이다. 리오리엔트는 산업혁명이 왜 유럽에서 일어나고 중국에선 일어나지 않았는가에 대한 설명이다.

저자는 프랑크가 세계경제란 개념을 5000년 역사를 가진 지구 범위의 개념으로 재정의하는 것을받아들인다. 그리고 유럽 세계-경제는 그 세계경제의 하위체제일 뿐이었다는 것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세계경제의 중심이 중국에서 유럽으로 이동한 시점이 19세기라는 것도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 이동의 이유에 대해선 동의하지 않는다.

“The subordinate incorporation of East Asia within European system, and the eclipse of the region in world production were not due primarily to the competitive edge of Western vis-à-vis East Asian, especially Chinese, economic enterprise.”

아편전쟁으로 영국은 중국의 시장을 마음대로 누빌 수 있엇다. 그러나 포함으로 열린 시장은 전쟁 전과 다를 것이 없었다. 영국상인들은 여전히 중국인들에게 팔 것이 없었다. 예를 들어 당시 영국의 주력상품인 면직물은 중국제의 가격경쟁력을 이길 수 없었다. “Western products and businesses did triumph in a few industries. But outside of railways and mines, the China market generally spelled frustration for foreign merchants.”

프랑크는 유럽의 패권은 산업혁명으로 얻게 된 경쟁력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산업혁명이유럽에 패권을 가져다 주었다는 주장엔 동의한다. 그러나 패권은 산업혁명으로 가능해진 군사력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아편전쟁 자체가 패권을 가져다 준 것이지 아편전쟁으로 시장을 열었기 때문이 아니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가능했던 이유는 나폴레옹 전쟁 때문이엇다. 1793년부터 1815년까지 지속된 이 전쟁으로 영국의 자본재산업이 탄생한다. “반실업상태의 빈민은 결코 대포나 그 밖의 값비싼 공산품을 사지 않는다. 그러나 수만명의 빈민을 육해군에 편성화고 군장비를 나눠준 결과, 유효수요가 개인소비재로부터” 정부지출로 넘어갔다. “대포시장이 확보되어 잇지 않았다면 낙후된 웨일스나 스코틀랜드에” 신식 코크스 고로를 설치할 사업가는 없다. “그들의 초기 판로는 육해군의 수요였다. 영국의 제철업이 1816~1820년 전후의 불황에 빠지게 된” 것은 당연했다. 전시수요 덕분에 제철업 뿐 아니라 무기류를 만드는 정밀기계 가공업, 중장비 산업 등이 발전했다. “그러나 정부의 전시지출은 또한 영국의 제철업자들에게 새로운 대형 용광로에서 훨ㅆ니 저렴하게 만들어낼 수 있게 된 제품의 새로운 수요처를 찾게 했고 장래의 산업발전을 위한 여건을 조성하기도 햇다.” 전시에 태어난 자본재산업 덕분에 “증기기관의 개량이 가능했고” 대량의 전시수요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규모의 경제에 도달한 자본재산업은 고품질저비용의 “좋은 조건으로 철도나 철선과 같은 결정적인 기술혁신이 일찌감치 실현될 수 있도록 했다.” (윌리엄 맥닐)

아편전쟁의 승리는 산업혁명의 승리였다. “1841년과 1842년의 아편전쟁에서 철갑을 두른 네메시스호의 기동력과 화력은 도저히 당해낼 수 없는 괴물처럼 청군을 손쉽게 소탕햇다.” 산업혁명으로 가능해진 “증기기관과 기계제 공구들은 유럽의 군사적 우위를 결정했다. 전장식 소총의 개량(뇌관, 선조 등)만 해도 무시무시한 것이엇다. 사격속도가 한결 빠른 후장식 소통은 더욱 큰 진보를 의미햇다. 그리고 개틀링 기관총과 맥심 기관총, 경대포는 구식 무기에 의존하는 원주민들의 저항력을 완전히 일소해버린 새로운 ‘화력혁명’을 마무리지었다. 게다가 증기추진식 군함의 등장은 이미 공해상에서 막강한 힘을 과시하던 유럽의 해군력이 니제르강, 인더스강, 양쯔강 같은 주요 수로를 통해 내륙까지 뻗을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했다. 화력의 격차는 유럽이 비유럽에 대해 50배에서 100나 되는 무력을 보유하고 있음을 의미했다.” (폴 케네디)

저자는 세계경제의 중심은 단순히 경제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말한다. 세계경제는 세계체제로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며 유럽으로 중심이 이동한 것은 헤게모니의 장악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서쪽으로 이동했던 헤게모니가 다시 동쪽으로 이동하는 것 역시 (장ㄱ20세기에서 다루어진) 헤게모니의 사이클로 볼 때 이해된다고 저자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산업혁명이 왜 유럽에서 일어났는가란 프랑크의 질문은 원점으로 돌아간다. 저자는 두세계-경제의 작동원리가 달랐기 때문이라 말한다. 구체적으로 시장경제와 자본주의의 차이라고 말한다.

“Trade and markets were more developed in East Asia in general, and in China particular, than in Europe, through the 18th century. The European and Chinese trajectories shared important features that were part of the Smithian dynamics of market-based growth supported by labor intensification in the advanced regions of China and Europe in the centuries preceding the industrial revolution.”

중국과 유럽이 공유한 the Smithian dynamics of market-based growth란 애덤 스미스가 말한 사회적 노동분업으로 생산성이 향상되고 생산성 향상에 따라 경제가 성장하는 것을 말한다. 스미스적 동학은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중개되는 노동분업에 의한 것이므로 생산성 향상과 경제 성장은 시장의 크기에 의해 제한된다. 그러나 경제성장에 따라 소득이 늘고 유효수요가 늘면 시장 자체가 커진다. 시장이 커지면 노동분업과 경제성장의 사이클이 확대재생산된다.

“Over time, however, this virtuous circle comes up against the limits imposed on the extent of the market by spatial scale and institutional setting of the process. When these limits are reached, the process enters a high-level equilibrium trap.”

중국은 고차균형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유럽은 산업혁명으로 고차균형의 함정을 벗어날 수 있엇다. 그 이유에 대한 프랑크의 논의를 요약하면 “In China, economic expansion created the labor surplus and capital shortage that underlie Smithian high-level equilibrium traps. In Europe, in contrast, economic expansion created labor shortage and s capital surplus. It was this opposite outcome that, according to Frank, after 1750 led to the Industrial Revolution.” (더 자세한 것은 리오리엔트를 직접 보거나 전에 그 책을 다룬 리뷰를 참고할 것)

다시 말해 중국과 영국의 운명을 가른 것 즉 Great Divergnence는 두 경제에서 노동과 자본의 상대가격이 달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중국에선 자본에 비해 노동이 쌌고 영국에선 자본에 비해 노동이 비쌌다. 그러므로 영국에선 노동을 절약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었고 자본집약적 발전경로, 즉 산업혁명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말이다.

영국이 산업혁명을 택했다면 중국은 요소시장의 가격에 따라 산업혁명과는 다른 발전경로, Industrious Revolution(스기하라 카오루)이 일어났다. 토지(와 자원)대 인구의 비가 악화되면서 자원제약에 반응하여 16세기부터 18세기 동아시아에선 노동집약적 기술과 노동흡수 제도가 발전한다.

Industrious Revolution “is a term first coined by the Japanese demographic historian Akira Hayami (速水融),[2] and accepted by other historians to help further explain the advent of the Industrial Revolution. Much of this theory deals with the spending behaviours of families in the period. It also deals with the production and consumption of goods.” (http://en.wikipedia.org/wiki/Industrious_Revolution)

그러나 스기하라는 Industrious Revolution을 산업혁명의 전단계가 아닌 그 자체의 논리를 가진 발전경로로 재해석한다. “as a market-based development that had no inherent developmental path opened up by Britain and carried to its ultimate destination by the United States. Against the traditional view that small-scale production lacks internal forces for economic improvement, Sugihara underscores important advantages of this institutional framework in comparison with the class-based, large-scale production that was becoming dominant in England.”

Industrious Revolution의 구체적인 모습은 가족단위(또는 마을단위)의 생산이다. 자원과 자본의 제약을 노동집약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자원과 자본을 대신하는 노동이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 “It mobilized human rather than non-humana resources”

영국의 산업혁명이 요구하는 노동자는 기계의 부품에 불과하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Industrious Revolution에선 “an ability to perform multiple tasks well, rather than specialization in a particular task, was preferred, and a will to cooperate with other members of the family rather than the furthering of individual talent was encouraged. Above all, it was important for every member of the family to try to fit into the work pattern of the farm, respond flexibly to extra or emerengency needs, sympathize with the problems relating to the management of production and anticipate and prevent potential problems.”

사람으로 자본을 대신하는 발전경로는 유럽의 충격 이후에도 동아시아의 특징이었다고 스기하라는 말한다. 노동의 유연성이 강조되는 토요타 생산 시스템은 그 좋은 예이다. 토요타 생산 시스템이 나오게 된 배경 역시 자본보다 노동이 저렴한 환경이엇다. 자본재를 수입할 돈도 없고 수요도 크지 않았던 전후 일본에서 규모의 경제를 전제하는 자본집약적인 대량생산시스템은 적합하지 않았다. 대안은 노동이 자본을 대신하는 것이었고 오늘날 우리가 아는 토요타 생산 시스템이다. (자세한 것은 다이이치 오노의 ‘Toyota Production System’을 보라)

중국의 산업화 역시 마찬가지이다. 중국의 “낮은 임금은 자본절약적 혁신을 가능하게 했다. 높은 생산성을 가진 미국공장들은 값비싼 자동화 시스템을 사용하지만 중국의 공장들은 이 과정을 뒤집어 생산과정에서 자본을 빼내고 노동이 더 큰 역할 을 하도록 재투입했다. 전형적으로 총 필요 자본의 1/3 정도가 줄어든다. 더 낮은 임금과 더 적은 자본의 결합은 대체로 ㄴ미국 공장 수중 이상의 자본수익을 올려준다.” (데이비드 하비)

유럽의 충격 이후 동아시아는 산업혁명을 받아들엿다. 그러나 자본과 자원은 부족하고 노동은 풍부한 동아시아의 발전경로는 Industrious Revolution과 산업혁명을 결합한 것이엇다. 스기하라는 “call this hybrid development path labor-intensive industrialization, because it absorbed and utilized labor more fully and depended less on the replacement of labor by machinery and capital that the Western path.”

그러므로 스기하라는 동아시아 르네상스는 서구의 자본집약적이고 자원낭비적인 경로가 아닌 서구의 경로와 동아시아의 노동집약적이고 자원절약적인 경로의 혼합에 의한 것이라 말한다.

저자는 1950 이후 서구의 경로는 한계에 부딪혔고 서구의 방식을 배운 동아시아의 경로가 열매를 맺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두 발전경로의 차이가 산업혁명 이후 서구의 부상을 낳앗으며 그 경로가 한계에 부딪힌 결과 서구의 몰락과 동아시아 르네상스의 이유라 말한다.

저자는 Industrious Revolution을 스미스적 성장, non-capitalist market-based development라 말한다(이책 제목의 이유이다) 그에 비해 산업혁명은 슘페터적 또는 맑스적 성장으로 market-based capitalist development이라 말한다.

저자가 Industrious Revolution을 스미스적 성장이라 부르는 이유는 그 경로가 시장을 통한 사회적 노동분업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애덤 스미스에게 시장은 사회적 노동분업 자체엿다. 스미스는 중국을 ‘the natural progress of opulence’라 불렀다. 왜냐하면 중국에선 “the greater part of capital is, first, directed to agriculture, afterwards to manufactures, and last of all to foreign commerce.” 스미스가 중국의 발전경로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본 이유는 그것이 부가 국가 내에서 순환되어 국가 전체가 자연스럽게 성장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스미스는 네델란드를 unnatural and retrograde라 부른다. 자본의 투입이 중국과 역순이기 때문이다. 먼저 해외무역에 투자되고 그 다음 제조업, 마지막으로 농업에 투자된다.

“Capitals employed in agriculture and retail trade have the greatest positive impact because they must reside within the country, being confined almost to a precise spot, to the farm, and to the shop of the retailer. Capital employed in the whole trade, in contrast, seems to have no fixed or necessary residence anywhere, but may wonder about from place to place, according as it can either buy cheap or sell dear.”

자본이 국내에 투자된다면 그 나라 사람들의 고용과 소득을 늘리기 때문에 국익에 대한 자본의 효과는 최대가 된다고 스미스는 말한다.

그러나 스미스가 natural이라 부른 경로는 unnatural에 압도되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고차원평형의 문제이다.

시장, 즉 사회적 분업은 경제성장의 원천이다. 그러나 분업 자체로는 애덤 스미스가 stationary state 또는 고차원평형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회적 분업 자체는 사회의 프레임을 건드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프레임을 건드려 평형서 벗어나기 위해선 평형의 원인인 자본-노동-자원의 비율이 재조정되어야 한다. 스미스는 국가가 제도와 법을 바꿔 그 비율에 영향을 주는 방법으로 평형에서 벗어날 수 잇다고 제안했다.

애덤 스미스 시절의 동아시아와 유럽의 핵심지역은 모두 고차원평형의 함정에 빠져 있었다. 이후 두 지역의 reversal of fortune을 부른 것은 산업혁명이었고 산업혁명은 고차원평형을 깨는 것이엇다. 저자는 산업혁명이 가능했던 것은 유럽의 발전경로의 ‘unnatural’한 성격 때문이엇다고 말한다: “the key specificity of the European path, its extroversion, its embedding in the global market, and the ‘retrograde’ direction of its progression from foreign trade, to industry, to agriculture.”

“Smith’s ‘unnatural’ path differs from the ‘natural’, not because it has a larger number of capitalists(외향성, 해외무역, 역진성 등은 자본가들때문이다) but because capitalists have greater power to impose their class interest at the expense of the national interest.”

브로델의 말을 들어보자. “Capitalism only triumphs when it becomes identified with the state, when it is the state. In its first great phase, that of the Italian city-states of Venice, Genoa and Florence, power lay in the hands of the moneyed elite. In 17the century Holland the aristocracy of the Regents governed for the benefit and even according to the directives of the businessmen, merchants and money-lenders. Likewise, in England the Glorious Revolution of 1688 marked the accession fo business similar to that in Holland.”

저자가 유럽의 발전경로를 market-based capitalist development라 부르는 이유이다. 자본과 권력의 결합이 있을 때만 자본주의란 말을 쓸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동아시아는 평형의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지만 유럽이 빠져나올 수 잇었던 것은 이 자본주의의 동학 때문이엇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가 market-based capitalist development를 슘페터적(사회의 프레임에 창조적 파괴를 가할 수 있다는 의미로)이라 부르는 이유다.

권력과 자본 또는 국가와 자본가계급의 결합으로 태어난 자본주의 동학은 자본주의, 산업주의, 군사주의의 시너지라 저자는 말한다. 산업혁명은 그 구체적 결과엿다. 앞에서 보았듯이 산업혁명은 군사주의와 산업주의의 시너지로 태어났다. 그리고 산업혁명의 힘으로 전쟁의 산업화에 성공한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 될 수 있엇다. 제국의 또다른 힘은 금융력(자본주의)이엇다. 제국을 운영하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있었기에 제국의 해가 지지 않았고 제국의 해가 지지 않았기에 금융력 역시 커져갔다. 자본주의, 산업주의, 군사주의가 서로 positive feedback을 하는 동안 제국의 헤게모니는 확고하다. 영국이 세계경제의 헤게모니를 잡으면서 유럽은 세계경제의 중심이 될 수 잇엇다. 그러나 폴 케네디의 말마따나 제국이 overstretch될 때 즉 셋의 시너지가 negative feedback으로 돌아설 때 헤게모니는 무너진다.

영국의 헤게모니는 사라졌다. 그리고 우리는 얼마전 미국의 헤게모니 역시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그 이유를 저자는 시너지가 사라지는 것으로 설명한다.

그러면 왜 시너지가 positive에서 negative로 돌아서는가? 저자는 그 메커니즘을 전작인 장기20세기에서 이윤율 저하경향으로 설명한다. 이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2부에서 저자는 이라크전쟁이 일어나기까지 전후 미국의 역사를 개관하면서 전작의 논리를 적용한다. 논리적으로 ‘장기20세기’의 연장이라 볼 수 있으므로 책의 나머지에 대해선 차후 ‘장기20세기’ 리뷰에서 다룰 것이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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