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은 무너졌다
자크 사피르 지음, 박수현 옮김, 김병권 한국판 보론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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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다보스포럼의 화두는 ‘G-Zero’란 말이었다. G-제로란 “중국, 인도, 브라질, 러시아 같은 신흥국 세력이 날로 강해지며 국제사회의 세력이 점점 균등해지는 가운데 향후 10년 동안 뚜렷한 지도국이 없는 체제를 말한다.”

금융위기로 선진국 특히 미국의 리더십이 약화되면서 그 빈자리를 G20이 메웠다. 1,2회 G20 정상회담은 성공적이었다. 워낙 현실의 압력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회담은 실질적 내용이 없는 말잔치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 위기가 수그러든 이상 제 역할을 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현실적으로 G20을 대체할 마땅한 대안이 없다. 그렇다고 “기존에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했던 국가들은 현재 국내문제에 정신이 없어 글로벌 거버넌스를 할 여력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다보스포럼에서G-제로 이론을 주장한 블레머는 기존의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하던 국가들이 글로벌 리더십 부재가 2013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 후에는 글로벌 리더십은 지역적 리더십으로 나뉘어질 것이라 본다. “남미, 북미, 걸프 지역을 대표적인 예로 꼽았다. 그러나 그는 아시아의 경우 지역적 리더십을 발휘할 국가가 없다고 본다. 중국과 인도는 서로 갈등을 일으키고 일본은 리더십을 발휘할 의지가 없다.” (매경)

이 지경이 된 이유는 간단하다. 금융위기로 미국이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와 함께 미국의 방식은, 신자유주의라 불리던 모든 것은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는 마지막 결정타일 뿐이었다. 제국의 죽음은 10년 전 아시아 금융위기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20세기 마지막 10년이 시작되던 순간 미국은 정치, 경제, 문화, 군사 등 모든 차원에서 완전한 패권을 장악하는 듯 보였다. 미국은 한마디로 ‘지배 권력’의 모든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미국은 걸프전을 통해 압도적인 힘을 과시한 후에 더 이상 직접적인 무력에 의존하지 않고도 모두에게 영향을 줄 수 있었고 특히 자신의 명시적이고 암묵적인 표상체계와 담론을 강요함으로써 국제정치 공간에 헤게모니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당대에 싹텄던 희망에도 두려움에도 결코 부합하지 않았다. 오늘날 판단할 때 1990년대 초의 상황은 기만적인 신기루처럼 나타났다. 진정한 단절은 1997~1999년 국제금융위기였다.”

90년대 최고의 유행어였던 세계화는 “실제로는 두가지 과정의 결합이다.” 첫째는 ‘중국과 인도의 산업혁명’이라 불러야 할 것으로 자본주의가 전 세계로 확산되는 과정이었다. 둘째는 미국이 정의한 세계화로 데이비드 하비에 따르면 ‘신자유주의화’라 불러야 할 과정이다. 이 과정은 무역과 금융의 개방이라 요약된다.

무역과 금융의 “문호개방은 국제관계를 바라보는 미국적 시각의 근간을 이루는 개념이다. 1985년에서 1995년에 이르는 시기는 이러한 미국의 비전이 절정에 달한 시기다. 이 시기동안 자본 이동을 구속하는 제약들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또 자유무역의 중요성이 WTO 같은 국제기구들의 핵심의제로 등장한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그러나 미국이 주장한 문호개방의 핵심은 금융개방이엇다.

“신자유주의화는 모든 것들의 금융화를 의미했다. 이 점은 경제의 다른 모든 영역들과 국가잧이는 물론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금융의 장악을 심화시켰다. 이는 또한 세계적 교환관계에 가속적인 변동을 유발했다. 의심할바 없이 생산으로부터 금융의 세계로 권력이행이 있었다. 이제 제조능력에서의 이익이 필수적으로 1인당 소득의 증가를 의미하지 않게 된 반면, 금융서비스에의 집중은 분명 소득의 증가를 의미했다.” (데이비드 하비)

물론 금융화의 소득은 소수 국가의 소수의 손에 집중되었다. 아리기가 말하듯 신자유주의화의 시대는 미국의 Belle Epoque였다. 20세기의 벨르 에포크는 19세기 영국의 벨르 에포크처럼 금융화 덕분이었다. 클린턴 집권기 미국의 번영은 그 비결이 “미국이 세계의 다른 곳에서 금융 및 기업 운영(직접 투자 및 포트폴리오 투자)을 통해 자국으로 높은 수익률을 끌어들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같이 세계 여러 다른 곳들로부터의 공물(tribute) 흐름은 1990년대 미국에서 성취된 부의 상당 부분을 구성했다.” (데이비드 하비, 이에 대해 더 자세한 것은 전에 다룬 ‘자본의 반격’ 리뷰와 앞으로 다룰 리뷰 참조)

“1985-1998년 동안 미국의 이데올로기적 승리의 가장 큰 특징은 금융 자유화가 실제로는 개별 이해관계에 기여함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금융자유화를 잠재적인 공공재로 제시할 수 잇었다는 점에 잇다.”

그러나 1997-1999년의 금융위기는 금융자유화가 공공재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주었고 위기를 통제하지 못한 미국의 무능력을 보여주었다. “금융위기는 미국 헤게모니의 정당성을 뿌리째 뒤흔들었으며 1980년대 말 이후 정립된 이데올로기적 지배의 위기가 도래했다.

아시아를 시작으로 러시아를 거쳐 라틴 아메리카까지 확대되었던 금융위기의 원인은 미국의 권유에 따라 도입된 자유화 정책, 그중에서도 특히 금융 자유화 정책” 때문이엇다. “이 위기의 정치적 차원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오늘날 차베스나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의 성공도, 아르헨티나와 에콰도르 등 다른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에서 국가 주권 담론과 사회적 담론을 결합한 세력의 승리도 푸틴 대통령 집권 아래의 러시아 변화도 이해할 수 없다.

미 재무부가 모든 강력한 수단을 동원했지만 위기의 논리가 시스템 통제에 대한 모든 의지를압도햇다. 한 마디로 창조주가 피조물에 먹힌 셈이다.” 재앙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2000년에 터진 나스닥 위기와 인터넷 버블 붕괴는 신경제의 신화를 무너뜨렸다. 엔론과 월드컴 스캔들은 미국이 옹호하는 ‘거버넌스 모델’의 한계를 빠르게 보여주었다.”

“1999년부터 전개된 자유주의 이데올리기에 대한 비판도 바로 미국이 금융위기관리에서 보여준 무능력의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결과다. 금융위기로 인한 정치, 경제, 이데올로기적 결과들은 미국의” 헤게모니를 뿌리째 뒤흔들었다.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 담론이 갑작스럽게 신뢰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저자는 2000년대 세계경제를 정의하는 글로벌 불균형을 위기의 결과로 본다. 미국이 금융위기를 통제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아시아 국가들은 국제금융의 변덕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야 된다는 결론을 내렸고 “이를 위해 내수를 줄이고 극히 공격적인 무역정책을 감행했다.” 국제무역에서 아시아 국가들의 “‘약탈자적 전환’은 1999년과 2000년에 시작되었다. 진정한 국제무역 자유화는 각국이 합리적인 수준으로 내수를 확대하는 정책을 조정할 수있을 경우에만 가능하다. 만약 어떤 국가가 의도적으로 소비를 억제한다면 이 국가의 발전 전략은 해외시장에서 자국 상품의 시장점유율을 높일 수 밖에 없다. 또 여러 국가들이 동일한 방식으로 사고할 경우 그 결과는 이들 국가의 정책을 모방하지 않는 국가들에서 디플레이션과 고용 파괴로 나타난다.”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은 것은 미국이엇다고 저자는 말한다. “미국은 국제금융 자유화로 인해 다음과 같은 딜레마에 봉착하게 된다. 첫째 자신이 강제한 시스템의 조절국가임을 천명한 경우다. 이 경우 미국은 통화정책을 국내 정책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둘째 통화정책을 계속 국내 경제정책의 도구로 사용할 경우 미국은 시스템의 조절국가임을 천명할 수 없다. 따라서 미국은 자신이 만든 세계시스템의 운영을 우선시하고 국내통화정책을 조정변수로 만들든가, 통화정책의 자율성을 유지하면서 세계시스템을 국내정책의 조정변수로 만들어야 한다.” 아시아국가들이 약탈자로 돌변하면서 미국의 딜레마는 더욱 심화되었고 세계시스템의 “모순이 미국에 집중된다.

미국은 전세계적 문호개방이라는 정치적 행위와 이 정치적 행위의 결과를 홀로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의 부재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에 부딪차게 되었다. 일극적 세계절서를 추구하는 동시에 일극적 세계경영을 위해 다극적인 협력을 기대할 수는 없으며 전세계의 문호개방을 추구하는 동시에 그로 인해 발생하는 자본, 금융, 상품 플로우를 안정화시키지 않을 수는 없다. 이 같은 모순은 재정 약화뿐 아니라 이제 무역 약화가 결합된 형태로 드러나고 있다.미국의 지도자들은 정치적 이유로 미국경제의 실제 효율성이 지탱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경제활동을 유지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는 경성권력과 연성권력을 모두 보유할 수 잇는 강대국이 스스로를 표현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런데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가 갑작스럽게 붕괴한 것이다.” 담론의 위기는 치명적이다. “담론의 상실은 미디어가 그야말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 세계에서 군사적 패배만큼이나 중요한 패배”이기 때문이다.” 헤게모니의 위기에 맞서 “미국은 군사력 즉 경성권력을 동원할 수 잇는 능력을 다시 한번 과시함으로써 자국의 헤게모니를 재천명하고자 했다. 미국은 이미 1991년 걸프전을 통해 이를 만천하에 과시한 바 있다. 이 같은 미국정책의 재군사화는 1999년 코소보 사태에서 2003년 이라크 전쟁까지 계속된다.”

미국이 재군사화란 옵션을 택한 것은 미국의 세계에 인식이 크게 바뀌엇기 때문이기도 하다. “1998년 위기 직후 미국을 사로잡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혼란은 파키스탄과 인도의 핵실험을 계기로 더욱 악화되었다. 미국이 비교적 가깝다고 생각했던 국가들마저 미국의 통제를 벗어나 독자적인 전략을 추구한다는 것을 보여주엇다. 미국의 세계에 대한 인식이 크게 변하게 된다. 외부 세계를 미국이라는 성지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으로 감작스럽게 인식하게 된 것이다. 즉 1990년대의 자신만만함이 막연한 두려움의 감정으로 변했다. 지배 국가에 대한 도전과 지배 국가의 대응 과정은 과격화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 막연한 두려움은 9/11로 분명한 두려움으로 바뀐다. 그러나 테러와의 전쟁 이후 미국의 과격화는 “단순히 조지 부시 대통력을 비롯한 지도층의 신보수주의 이테올로기만의 산물은 아니다. 부시의 백악관 입성은 이 동학의 원인이라기보다 징후에 가까웠으며 기폭제라기보다 동학의 현시라고 볼 수 잇다. 그런데 이러한 군사력으로의 회귀는 정치적 군사적 이유로 인해 실패한 회귀엿다.” 그 결과는 국제무대에 중국과 인도를 신흥강국으로 올려놓았고 러시아의 부활을 이끌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미국은 군사력의 약화와 정치적 고립이라는 상황에 봉착했으며 미국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다.”

그러면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저자는 다보스 포럼에서 논의된 G-Zero에 동의한다. 여전히 미국은 최강이다. 그러나 제국으로서의 미국은 끝났다. 그리고 “미래는 일극적 제국의 시기가 될 수 없다.” 미국의 헤게모니는 무너졋지만 미국을 대신할 국가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미국은 자신의 해결책을 강제할만큼 강력하지는 않지만 다른 대안적 해법들의 등장을 막을 만큼은 강하다. 미국의 딜레마는 발생 단계에 있는 질서의 위기 그 자체다. 즉 구질서는 사라졋지만 신질서가 탄생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래는 “외관상으로도 다극적 동거의 시기가 되지도 않을 것이다. 다가올 미래는 분쟁과 혼란의 시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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