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 - 지금 미국을 다시 읽어야 할 이유 52
김광기 지음 / 동아시아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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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10년 8월 조지아주 애틀랜타 시 인근의 이스트포인트. 실직자를 위한 공공임대주택 신청서를 배부하는 날이엇다. 35도가 넘는 더위에도 3만명이 넘는 시민이 북새통을 이뤘다. 혹시라도 앞으로 나올 공간을 위해 단지 신청서만 배부하는데도 소동이 벌어졋다. 이날 62명이 부상했고 20명은 입원했다. “이날 신청서를 얻으려 모인 사람은 시 인구의 2/3가 넘는다. 신청서를 거머쥔 한 시민은 기쁨에 눈물을 흘렸다. 입주 당첨권도 아닌데 말이다. 그것만이 희망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살던 곳에서 쫓겨났거나 곧 쫓겨날 처지가 대부분이다.” 금융위기가 불거지고 미국의 노숙자는 30% 늘었다. 미국인 200명 가운데 1명이 노숙자이다.

미국은 중산층의 나라였다. 인구의 60% 이상이 중산층이엇고 “중산층이 두껍기에 너도 나도 기회만 닿으면 미국에서 살고 싶어아는 아메리칸 드림을 양산햇다. 그러나 그 명성은 이제 과거의 일이다.” 지난 한세대 동안 미국의 중산층은 녹아내렷다. “2009년 미국인의 61% ‘항상, 또는 늘’ 하루벌어 하루 살아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실직하면 바로 빈곤층으로 전락한다.” 임대주택 신청서가 유일한 희망이 된 이유이다. 하루하루 연명하며 “사는 이들이 2007년 43$%, 2008년 49%였는데 2009년에는 더욱 상승했다.” 미국인 대다수가 “벼랑 끝 생활을 하는” 것이다.

구직포기자는 제외하는 공식실업률이 아니라 실질적인 실업자를 모두 포함하는 U-6 실업률은 2009년 16.2%, 2010년 16.7였다. 게다가 “새직장을 얻었다 해도 절반 정도는 최저임금을 받는 단순 노동직임”에 불과하다. “40%가 넘는 미국인이 지금 최저임금을 받는 단순 서비스 직종에 종사한다.” 실업률이 높을 때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은 경력이 없는 청년들이다. “청년실업률은 53.4%로 2차대전 이래 최악이다.”

“워싱턴총영사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영어강사 취업을 위해 한국비자를 신청한 사람은 380명으로 이 가운데 68명이 미국의 100대 대학 안에 포함되는 명문대 출신이엇다. 하버드대와 뉴욕대, 듀크대, 등 일류대학 출신도 포함돼 있었다. 예전엔 아무리 번듯한 직장을 준다고 해도 한국행은 그들에겐 한 치도 고려할 가치가 없었다.” 그런데 상황이 변했다. “현재 미국의 처절한 경기 침체 때문이다. 경제위기는 실업률과 직결된다.”

그러다 보니 “2009년에 미국인 8명 가운데 1명이 먹을 것을 위해 정부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으며 그중 600만명이 수입이 없어 푸드 스탬프만으로 연명하고 있다.”

미국인에게 식량이란 고기이다. 최소한 미국에선 “먹을거리 그것도 육류 값이 무척 싸서 아무 지장없이 고기를 먹을 수 잇엇다.” 그러나 이젠 먹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먹지 않을 수는 없으니(고기를 먹지 않을 수는 없으니) “대신 스팸 소비가 늘었다. 스팸 제조회사의 주가는 연일 상종가다. 그나마 유사육류인 스팸으로라도 고기맛을 보는 사람은 다행이다. 그마저도 먹을 수 없는 사람은? 그래서 지금 미국인들은 닭을 키운다.

여기저기서 닭을 키우는 바람에 닭들이 시도때도 없이 울어대 참을 수 없는 소음을 자아내고 닭들이 싸우는 소리에 밤잠을 설치는 주민들의 민원이 제기되자 한 가구당 한마리만 키우는 조례가 발동된 곳도 있다. 2009년 9월 LA 시의회가 통과시킨 조례이다.

그런데 이런 추세에서 우리가 눈여겨볼 것이 있다. 가정에서 닭을 치는 것이 반드시 비용절감만은 아니다. 비용을 생각하면 병아리 사육은 그렇게 큰 경제적 이득은 아니다. 그럼 무엇 때문일까?

미국인은 지금 다른 것은 몰라도 총과 닭 그리고 씨앗을 사려고 안달이다. 그것들은 미국인들이 유사시에 의지할 최상의 방책이라 간주하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이 느끼는 심리적, 물질적 위기는 도를 넘어 최악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 닭을 키우는 것은 생존을 위한 자립심의 발로라는 상징적 의미이다. 여기서 자립심이란 어느 누구도 믿지 못하고 의지하지 않는 생존능력을 말한다. 닭을 키우는 것은 정상적인 사회의 그물망이 해체되고 타인의 도움을 유기적으로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택한 최후의 전략이다.

이런 위기감은 기분 나쁜 징조들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직장에서 쫓겨났고 살던 집에서도 쫓겨날 수 있으며 호주머니와 은행에 모아둔 돈도 없다. 이럴 때 나를 도와주고 지원해줄 국가도 빈털터리다. 내가 믿고 의지할 이는 어디에도 없다. 이제 내가 모든 것을 다 해야 한다. 비상식량부터 챙기자.”

“경제적인 실패는 사실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미국만이 가진 그리고 미국인만이 소유한 소중한 무엇이 사라져간다는 것이다.

유학시절 주유소에서 겪은 일이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아무리 지갑을 찾아도 찾을 수 없었다. 당황한 필자는 주유소 직원에게 시계와 운전면허증을 건네주며 사정햇다. 그리고 곧 가지고 오마했다. 그랬더니 주유소 직원이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면 시계와 면허증을 돌려주는 것이 아닌가. 나중에 지불하면 되고 이런 것은 필요없단다. 단골 주유소도 아니라 안면도 없었다. 그런데 필자를 믿어준 것이다.

그랫던 미국이다. 정직, 정의, 공평성을 바탕으로 신용이 미덕이 되는 신뢰사회가 미국의 자랑이엇고 힘이엇다.”

저자는 미국의 위기는 돈의 문제가 아니라 본다. “진정한 위기는 바로 신뢰 증발의 위기다.” 모르는 사람을 만날 수 밖에 없는 대규모 사회에서 남을 믿을 수 없다면 그 사회는 성립할 수 없다. 그러므로 어떤 사회이든 사회가 돌아가려면 신뢰가 있어야 한다. 저자는 사회적 신뢰를 두가지로 구분한다. 먼저 중국, 일본, 한국 사회의 신뢰는 “학연, 지연, 혈연 등으로 맺어지는 신뢰다. 그러한 기준으로 나누어지는 집단 구성원들끼리 지닌 신뢰다.” 그예로 저자는 한국 대학들의 자기대학 출신 교수(여기선 학부가 중요하다) 비율이 높은 것을 든다. 자기 대학 출신을 뽑는 것은 밥그릇 싸움이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그보다 큰 이유를 신뢰의 문제라 본다. “자기 대학 출신만 믿”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당파싸움도 마찬가지라 말한다. 지연, 학연으로 뭉쳐 밥그릇 싸움을 한 당파싸움이나 교수자리의 밥그릇 싸움이나 다를 것은 없다. “아담 셀리그만은” 이런 신뢰를 “확신(confidence)”라 말하며 저자가 미국 주유소에서 경험한 신뢰를 “신뢰(trust)라고 부르며 명확히 구분하다.”

확신의 전형적인 예는 일본의 ‘이에(家)’이다. 나카네 지에는 '우리'란 말의 의미는 두가지 원리에 의해 말들어진다고 말한다: 자격(attribute)와 場(frame).

자격은 혈연, 지연, 학연, 직업, 계급, 계층 등과 같은 개인이 가진 속성을 말하며 場은 공간적 테두리를 집단을 만드는 기준으로 삼는다는 말이다. 두가지 원리 모두 어느 사회에나 보편적이다. 그러나 두 기준이 동등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며 두 기준이 어느 정도로 섞이는가에 따라 사회를 구분할 수 있다고 나카네 지에는 말한다.

자격과 장의 두 기준으로 사회의 스펙트럼을 만들어보면 인도와 일본이 양극단에 있고 다른 사회들은 그 중간에 있다고 나카네 지에는 말한다. 인도의 카스트제도는 자격을 기준으로 한 집단구성의 전형적인 예이다.

"인도의 농촌에서는 친정집에 가서 장기간 머무를 수 있을 뿐 아니라, 수시로 형제가 방문을 하고 원조를 받기도 하며, 고부간의 싸움을 옆집에 들릴 정도로 크게 하여 그것을 듣고 같은 카스트에 있는 옆집의 시어머니나 며느리가 응원을 오기도 한다. 다른 마을에서 시집 온 며느리끼리 서로 도우며 사는 것은 일본의 여성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돈독한 것이어서 부러울 정도였다.. 이것은 며느리라는 같은 자격을 가진 사람들의 사회적 기능이 발휘되어 '이에'라는 테두리와 교착하면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반대로 '아이들 싸움에 부모가 나선다'는 식으로 완전히 반대의 경향이 존재한다." (나카네 지에)

일본에선 며느리나 카스트같은 자격은 시집을 오면 사라진다. 같은 공간에 살면서 경제적 공동체가 되면 일본에선 '우리'의 한 명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데릴사위제도는 이상할 것이 전혀 없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며느리는 고달프다. "일본에서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문제는 '이에' 안에서만 해결되어야 하는 것으로 학대받는 며느리는 자시의 친형제, 친척 내지는 주위 사람들에게서 원조를 받지 못하고 혼자서 고군분투하지 않으면 안된다. 시집을 갔으면 이전에 속했던 '이에'에선 탈퇴하고 다른 '이에'에 속하게 된 것이므로 다른 '이에'일 뿐인 친정사람들은 도와줄 이유도 없고 도와주려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필자가 주유소에서 경험한 신뢰는 확신과는 다르다. 이 신뢰는 ‘우리’란 말이 붙을 수 없는 사람에게도 주어진다. “낯선 이들끼리 일단 믿어주고 시작하는 신뢰를 말한다. 따라서 이 신뢰는 아슬아슬한 신뢰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는 이런 신뢰가 절실히 요구된다. 이런 사회에서는 과거 전통사회에서 보이던 끈끈한 집단이 더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설사 그런 것들이 존재할지라도 그들만 서로 위하면서 살기에는 세상이 너무나 넓어졌고 복잡해졋기 때문이다.

서양의 사회학자들은 동양사회를 저신뢰 사회, 즉 신뢰할 수 없는 사회로 규정했었다 맞는 말이다. 솔직하게 말하자 우리 사회가 이렇지 앟은가. 얼마나 연줄을 좋아하면 연줄의 대명사인 대학 간판을 따려고 젊은 시절을 그토록 허비하고 잇지 않은가.”

저자는 미국의 진정한 힘은 바로 신뢰엿다고 말한다. “필자가 걱정하는 바가 이것이다. 미국인들 사이의 믿음은 후자의 신뢰엿다. 학연, 혈연, 지연으로 끈끈하게 맺어지는 확신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 많은 인종과 민족을 바탕으로 하는 저마다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살 수 있었다. 그런데 그들 사이에 신뢰가 사라진다면 남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은 피부색, 말, 밥 먹는 문화도 각양각색이다. 아무런 연결고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는 곳에 과연 사회가 남아날까?”

학계에 더 널리 쓰이는 말로 하자면 저자는 사회적 자본의 고갈을 언급한 것이다. 미국의 사회적 자본이 바닥났다는 지적은 퍼트넘의 ‘Bowling Alone’이란 책으로 대중화되엇다. “사회적 자본을 가진 네트웤의 특성은 그 속의 사람들이 반복적인 상호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회적 자본은 접촉의 스포츠와 같다. 하회적 자본을 가진 네트웤의 전형적인 예로서 주민모임, 자선단체, 종교단체, 스포츠팀, 사교클럽, 시민단체,동호인 모임, 볼링 리그 등이 있다. 회사와 직장 역시 중요한 사회적 자본의 원천이다.” (에릭 바인하커)

사회적 자본의 예로 많이 인용되는 퍼트넘의 이탈리아 남부 연구를 보자.퍼트넘은 남부 이탈리아의 푸글리아 지역 관공서 방문 경험을 이렇게 기술했다: “침침한 대기실에 몇몇 나태한 공무원들이 서성대고 있다. 그들은 하루에 한두 시간밖에 출근하지 않지만 민원인의 요구에 대응하지도 않는다. 자주 가는 민원인들은 건너편 사무실에 놓인 텅 빈 책상만 보게 된다. 이러한 지방 공무원을 일하도록 만들 수 없는 자신의 무능을 개탄한 시장은 다음과 같이 말하엿다. ‘그들은 편지에 회신하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는다.”

퍼트넘은 북 이탈리아 에밀리아 로마냐의 관청을 이렇게 소개했다: “유리벽으로 되어 있는 자방관청에 들어가는 것은 마치 현대식 첨단 기업을 방문하는 것과 같았다. 활달하고 예의바른 안내원이 방문자들을 사무실로 안내하였고 공무원들은 전산화된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하여 지역의 문제나 정책에 대해 잘 설명했다. 많은 분야에서 입법을 선도한 에밀리아 정부는 약속을 실천에 옮겼으며 정부정책의 효과는 수십개에 달하는 어린이 보육센터, 산업단지 공연장, 직업훈련원 등으로 설명된다.”

퍼트넘은 두 관청의 차이를 그 지역의 사회적 자본의 차이로 설명한다. 다시 말해 “대규모 협력을 실행할 수 없는 낮은 신뢰성”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탈리아 남부 사회는 극도로 원자화되어 있어 모든 협력적 노력이 가장 작은 사회적 단위인 가족에서만 이루어진다. 사촌 같은 친족과의 관계는 물론 때로는 성인이 된 형제자매와의 관계에서도 신뢰와 협력을 찾아볼 수 없다. 공동체 차원의 협력적 노력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밴필드는 이런 유형의 사회를 ‘무도덕한 가족주의’라고 부르고 그 기본 철학을 이렇게 정의했다. ‘핵가족이 단기적으로 얻을 수 잇는 물질적 이익을 최대한 얻어라.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럴 거라고 생각하라.’ 이것은 악당의 철학이다. 사회가 사회로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것을 사회라고 부르는 것조차 사태를 오도할 수있다. 그것은 사실 원자화된 핵가족의 집합체다.” (피터 터친)

그에 비해 “이탈리아 북부 사람들은 훤씬 많이 네트웍화되어 잇다. 합창단과 산악회, 문학 서클, 사냥 클럽 같은 시민들의 모임이 훨씬 촘촘하게 짜여잇다. 공적인 문제에 대한 관심과 공적인 원인에 대한 헌신도 같은 양상을 보인다.

시칠리아의 마치아와 자매 조직인 나폴리의 카모라는 늘 존재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북부에는 그와 비슷한 것이 없다. 마피아는 만연한 신뢰 부족에 대한 사회적 대응으로 생긴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 신뢰가 부족한 곳에는 보호에 대한 수요가 많다. 마피아는 보호를 젝5ㅗㅇ해주는 개인 사업가이다. 메초조르노에서는 절대 기업을 할 수없다. 잠재적 파트너도 기회만 있으면 속이려 들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애초에 그런 위험에 자신을 노출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마피아에 의존해 계약을 이행하도록 강제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마피아는 그런 역할을 했다.” (피터 터친)

그러나 북부 이탈리아에 사회적 자본이 풍부하다고 할 수는 없다. 이탈리아에서 “성공하는 기업은 일반적으로 가족이 소유하고 직원이 100명쯤 되고 밀라노나 볼로냐에 있다. 그런 기업들은 패션에서 정밀기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틈새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들이 어떤 국제시장에 뚫고 들어갈 수 없는 것은 규모의 이점을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북부에서도 중간규모의 집단에서만 협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피터 터친)

피터 터친은 그 원인을 로마제국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피터 터친은 서로마제국은 사회적 자본이 완전히 고갈된 상태에서 사회적 협력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에 멸망할 수 밖에 없었다고 본다. 로마제국의 멸망과 함께 사회적 자본의 “블랙홀이 로마제국의 핵심지역에서 발생했다. 제국이 붕괴된 두에 이탈리아 북부에는 6세기의 랑고바르드족을 비롯해 몇 차예나 게르만족이 밀려들었다. 이 이주민들은 아사비야(피터 터친이 사회적 자본 대신 쓰는 이븐 할둔의 용어)가 높은 사회에서 왔고 따라서 이들의 유입은 제국 때 생긴 남북의 차이를 더욱 강화햇다.”

퍼트넘은 ‘Bowling Alone’에서 미국의 상황이 이탈리아 남부를 닮아간다고 우려한다. “’우리는 갈수록 가족과 친구, 이웃, 사회조직으로부터 분리되었다. 사회조직은 학부모회든, 교회든, 레크레이션 클럽이든, 정당이든, 볼링연맹이든 마찬가지다.’ 30년전에는 지금보다 두 배는 자주 친구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햇다. ㅎ사회적 신ㄹ회도 감소하는 것같다. 분명히 워싱턴에 있는 정부를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계속 줄엇다. 1950년대에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70%에서 80%였는데 1990년대는 30%에서 40%였다. 미국사람들은 45%가 신문을 거의 또는 전혀 믿지 않아 20년 전의 16^에서 크게 증가햇다. 퍼트넘이 하고자 하는 말은 개인이 갈수록 고립된다는 것이다. 차에서도 혼자 잇고 일도 혼자 하고 이혼하고 형광등 불빛 아래서 혼자 볼링을 한다는 것이다. 분명히 이것은 어떤 사회에서나 위험이 임박했다는 신호다” (피터 터친)

퍼트넘과 후쿠야마는 상당히 복합적인 이유들을 들고 있다. 피터 터친은 그 이유들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불평등의 증가를 말한다.

퍼트넘과 후쿠야마는 미국의 사회적 자본이 고갈되기 시작한 시점을 1960년대로 말한다. 그리고 미국의 불평등 역시 “1960년대가 분기점이다. 그전에는 미국에서 불평등이 줄어들고 잇엇는데 그 뒤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2차대전이 끝나고 몇십년동안은 일반 노동자의 봉급과 CEO의 보수 사이에 큰 차이가 존재하지 않았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1970년부터 하위 20% 노동자의 봉급은 그대로여서 사실상 줄어들고 있다. 마태원리가 풀가동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물가상승률은 모든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다. 사려면 큰돈이 들어가는 많은 것들, 그중에서도 특히 집값과 교육비, 의료비는 훨씬 빠르게 증가했다.”

피터 터친은 제국의 붕괴를 사회적 자본(그의 용어로는 아사비야)의 고갈이 원인이라 말한다. 불평등이 증가하면서 제국이 만들어지도록 했던 사회적 협력이 사회적 경쟁으로 바뀌면서 집단협력을 가능하게 했던 조건들이 무너지면서 사회적 자본이 고갈되기 때문이라 말한다.

피터 터친은 미국의 학벌사회화를 그 예로 든다. “교육에서 나타나는 경향들이 특히 흥미로운 것은 그것이 엘리트증 내부의 경쟁을 가장 잘 말해주는 것 가운데 하나이기때문이다. 미국에서는 20세기에 대학에 진학하는 사람들의 수가 계속 증가햇다. 20세기 말에는 대학을 졸업하는 것만으로는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는 일자리 시장을 뚫고 들어가기에 충분하지 않아 박사 학위를 따는 대학 졸업자의 수가 늘어나기 시작햇다. 박사 학위 값은 박사 학위를 마치는데 걸리는 햇수로 치면 더욱 빠르게 증가햇다. 1967년부터 1995년까지 박사학위를 마치는 데 드는 평균 시간이 자연과학은 6년에서 8.4년으로 사회과학은 7.7년에서 10.5년으로 인문학은 12년, 교육학에서는 무려 19.9년이다.

이런 흐름들은 위기가 오고 있다는 분명한 신호이며 엘리트층 내부의 경쟁이 심해지고 잇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다. 성인들이 익숙한 수준의 안락한 생활을 유지하는 데 갈수록 더 많은 것이 요구되는 것이다.” (피터 터친)

조선후기의 당쟁은 엘리트 내부의 경쟁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잘 보여준다. 마찬가지 현상이 미국에서 나타난다고 저자는 말한다.

“미국의 유명 토크쇼 진행자, 앵커맨과 앵커우먼들의 학력을 보라.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곳 출신이 대다수이고 고졸, 중퇴자도 있다. 우리나라 같으면 죽었다 깨어나도 도저히 불가능한 이야기다. 그러나 그런 일이 가능한 곳이 미국이엇다. 우리처럼 번듯한 학교 간판 하나만 가지면 실제 능력 없이도 행세하는 나라가 아니엇다. 많이 배운 자나 못 배운자나 능력에 맞게 케이크를 적당히 나누어 가질 수 잇는 곳이 미국이엇다. 이런 풍토가 요즘 급격히 바뀌엇다. 나눠 먹을 케이크를 소수가독점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그 소수는 죄다 동부의 아이비리그 출신이라는 이야기가 돈다. 이런 와중에 나온 것이 학벌주의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또는 그런 곳으로 많이 보내는 명문고교에 보내기 위해 사교육을 시킨다는 것은 미국에서는 없던 풍경이다. 하지만 이것이 보인다는 것은 미국이 그만큼 달라졌음을 방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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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 전략 - 루이비통도 벤치마킹하는 럭셔리 브랜드 No.1 샤넬의 마케팅 비법
스기모토 가나 지음, 나가사와 신야 엮음, 이수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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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종의 본질이란 이건희 전회장이 좋아하던 말이다. 백화점의 본질은 무엇인가? 부동산업이다. 목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세를 놓는 것이 백화점업의 본질이다. 생명보험의 본질은 무엇인가? 아줌마 장사다. 보험 아줌마를 다루는 것이 이 업종의 본질이란 말이다.

원래 업종의 본질이란 말은 피터 드러커의 질문에서 나왔다. 컨설턴트로서 드러커는 이렇게 질문하길 좋아했다.

“1. 당신의 고객은 누구인가?
2. 고객은 무엇을 가치있는 것으로 생각하는가?
이 두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오랜 토론을 한 후 드러커는 이렇게 질문한다.
3. 고객과의 관계에서 당신이 얻은 결과는 무엇인가?
4. 당신의 대 고객전략은 당신의 기업전략과 잘 부합하는가?” (엘리자베스 하스 에더샤임)

어떤 업종이든 어떤 사업이든 그 전략은 네가지 질문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 네가지 질문의 본질은 “당신의 고객은 누구인가?”란 질문이다. 나머지는 그 질문에서 파생된 것에 불과하다. 업종의 본질은 고객이 누구인가에서 정의된다. 그러면 럭셔리 또는 명품 업종의 본질은 무엇인가?

여성용 명품 브랜드의 포지셔닝을 그래프로 그려보자. Y축이 고객의 연령, X축이 여성화의 정도라면 가장 왼쪽의 꼭지점에 프라다가 자리잡고 중간에 루이비통, 구찌가 놓이고 우상단부터 샤넬, 디올, 이브생로랑이 자리잡는 삼각형이 그려진다.

프라다 역시 높은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여성화 정도가 가장 낮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보면 프라다의 업종의 본질이 확연히 드러난다. 편집장 미란다는 늘 박수갈채와 유명세를 몰고 다니는 매력적인 중년 여성으로 남성들 위에 군림하는 악마 같은 존재로 묘사된다. 그녀의 차갑고 도도한 모습에 남성들은 감히 접근할 엄두를 못낸다.” (량셴핑)

프라다의 포지셔닝은 LG와 손잡고 만든 프라다 핸드폰에도 나타난다. “심플한 디자인과 블랙의 색상으로 남성적인 이미지를 물씬 풍기는 이 핸드폰은 마치 업무용 컴퓨터 같은 단단한 모습을 하고 잇다. 영화의 미란다도 검은색 옷을 입고 프라다 핸드폰을 사용한다.

미란다를 닮아가는 자신을 견디기 힘들었던 안드레이는 좀처럼 손에서 놓지 않았던 프라다 핸드폰을 분수대에 버리고 그 자리를 떠난다. 이를 지켜보던 미란다는 안드레아에게 ‘받아들일 수 없다면 영원히 떠나라’고 말한다. 이 한마디가 바로 프라다 브랜드의 핵심이다. ‘좋으면 받아들이고 싫으면 말아라!’ 이것이 프라다가 100년이 넘도록 키워온 업종의 본질이자 브랜드의 정신이다.” (량셴핑)

삼각형의 전부를 차지할 수는 없다. 그 삼각형의 어딘가에 자리를 잡는(포지셔닝) 이상은 비현실적이다. 브랜드 구축이란 그 포지셔닝을 어디에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이며 업종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면 결코 시장의 정점에서 게임의 규칙을 만드는 기업이 될 수 없다.

그러면 샤넬의 고객은 누구인가? 럭셔리 마켓의 삼각형에서 샤넬은 프라다와 극단적으로 대비된다. 삼각형에서 프라다는 좌상단에 놓이는 반면 샤넬은 우상단을 차지한다. “샤넬의 경우 비교적 높은 연령과 여성화의 정도를 가진 고객을 대상으로 포지셔닝되어 잇다. 그래서 샤넬의 광고 모델은 우아하고 고귀한 이미지를 가진 원숙미가 넘치는 여성이다.” (량셴핑)

미란다가 프라다의 이미지를 체현한다면 샤넬의 이미지는 안나 카레리나이다.

"키티는 새빨개진 얼굴로 크라빈의 무릎에서 치맛자락을 잡아당기고는 약간 현기증을 느끼며 안나를 찾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안나는 여러 부인과 남자들에게 둘러싸인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엇다. 안나는 키티가 간절히 바라던 라일락 색 옷이 아닌 깊게 파인 검은 벨벳 드레스를 입었다. 그 드레스는 오래된 상아로 조각한 듯한 그녀의 풍만한 어깨와 가슴, 둥그스름한 팔, 작고 가느다란 손을 훤히 드러냈다. 그리고 드레스의 가장 자리에는 베네치아산 레이스가 박음질되어있었다. 장식 가발이 섞이지 않은 그녀의 검은 머리에는 삼색 팬지꽃을 엮은 작은 화환이 있었고 허리에 감은 검은 리본에도 하얀 레이스 사이에 똑같은 꽃으로 엮은 띠가 달려있었다. 그녀의 머리모양은 그다지 시선을 끌지않았다. 눈에 띄는 것이라고는 늘 그녀의 목덜미와 관자놀이에서 제멋대로 흘러내리는 곱슬머리의 작은 고리들뿐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그녀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했다. 칼로 조각한 듯한 단단한 목에는 진주목걸이가 걸려있었다."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에는 무도회 장면이 나온다. 이 무도회에서 여주인공 안나가 입은 드레스와 연적인 키티가 입은 드레스의 대비는 그 소설을 읽은 사람들의 머리에 강력한 이미지로 남는다.
키티는 ‘비상한 노력과 정성’ 을 들여 메이크업에서부터 헤어스타일까지 완벽하게 준비한다. 여러 가지 레이스와 장미꽃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장밋빛 드레스를 입고 머리에는 산더미처럼 높은 금빛 가발을 올리고 이파리가 두 장 붙어 있는 장미꽃을 꽂았다. 구두까지 장밋빛이어서 그녀는 온통 장밋빛이다.
안나는 장식이 고도로 절제된 단순한 디자인의 검은 드레스를 입는다. 머리는 가발 없이 뒤로 단출하게 묶고 목에는 진주 목걸이 하나만 걸었다. 톨스토이는 여주인공의 매력이 극대화되어야 하는 대목에서 가장 단순하고 소박한 검정 드레스를 입힘으로써 단순함의 위력을 과시한다. ‘안나의 매력의 진수는 그녀가 항상 화장이나 옷치장을 초월하고 있다는 점,그리고 화장이나 옷치장이 절대로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 이라는 것이다.
덕지덕지 장식을 단 키티와 심플한 블랙 드레스의 안나. 두 사람의 대비는 숨 막히게 강렬하다. 단순하고 소박한 드레스는 여주인공의 생생한 아름다움과 자연스럽게 결합하여 주위를 압도한다. (이상 박홍규의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에서 해당 부분의 요약)

톨스토이의 안나는 샤넬의 ‘리틀 블랙 드레스’를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다. “코코 샤넬이 탄생시킨 패션은 ‘남성에게 지배당하던 여성의 몸과 마음을 해방시켯다’라거나 ‘여성에게 옷을 통해 새로운 삶과 새로운 스타일을 제안했다.’”는 평가는 파멸해 가기 전의 안나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샤넬 자신도 그런 여성이었다. ‘자립한 여성’ 또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여성’이라 평해지는 그녀 자신이 샤넬이란 브랜드가 대표하는 여성상을 현실로 구현했다.

강인한 여성이 되고 싶다면 루이비통이나 프라다를 찾고 남자의 사랑스런 그녀가 되고 싶다면 안나수이와 함께 하고 우아한 원숙미를 풍기는 여성이 되고 싶다면 샤넬을 찾으면 된다. 샤넬의 본질은 그런 것이다.

그러나 이책은 그런 샤넬 브랜드의 포지셔닝에 관한 것이 아니다. 이책은 명품 브랜드로서 샤넬의 본질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저자가 이책에서 다루려는 것은 코코 샤넬과 그녀의 살아있는 화신이랄 수 있는 칼 라거펠트의 철학이 실제 제품으로 구현되고 유통될 수 있는가, 즉 브랜드가 아닌 기업으로서 샤넬의 시스템이다. 저자는 샤넬의 강점을 샤넬의 철학이 변치 않고 살아있다는 점, 그리고 그 철학을 현실화하는 시스템에서 찾는다.

100년이 가까운 기업이 창업자의 철학을 그대로 지키기는 말처럼 쉬운 일이다. 그 이유 중 하나를 저자는 샤넬의 특이한 지배구조에서 찾는다.

기업으로서, 럭셔리 비즈니스의 기업으로서 샤넬은 특이하다. “1990년대 이후 전 세계의 명품 시장은 혼란에 빠졌다. 자본력을 배경으로 하는 대형 그룹이 패권을 둘러싼 일류 브랜드 매수 접전을 펼치며 거대한 브랜드 복합기업으로 확대되기 시작한 것이다.

복합기업이란 자사 업무와 관련성이 없는 전혀 다른 업태의 기업을 반복적으로 매수, 합병하고 다각화해 만들어진 대형 그룹을 말한다. 보통 경영 통합이 같은 업태끼리 서로 사업내용을 보완하는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과 달리 복합기업은 여러 사업 부문에 재원을 분산하여 리스크 또한 분산하는 효과가 있다.

또한 브랜드력의 활용이나 판매 경로의 공유 등 다른 업종 간의 시너지로 그룹 전체를 활성화하는 이점도 있다. 특히 오트 쿠튀르 사업을 보유한 명품 브랜드의 육성과 운영에는 거액의 자금이 필요하므로” 이런 복합기업의 산하에 들어갈 때 상당한 이점을 누릴 수 있다. 이런 복합기업의 제국건설에는 막대한 자금이 동원되어야 한다. 그런 자금을 동원하기 위해선 당연히 주식공개를 해야 한다. 그러나 주식공개는 명품 브랜드에 치명적일 수 있다.

“복수의 주주가 있으면 실패하든 성공하든 다양한 시도에 대한 간섭을 피해갈 수 없으니 장기적인 관점으로 사업을 육성하기 어렵다. 그래서 단기적인 이익을 쫓다 독자성을 잃고 추락한 예도 많은데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다. 게다가 대중을 대상으로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보급판이나 라이선스 비즈니스도 난무하게 되어 브랜드 가치를 잃기 십상이다.”

그러나 샤넬은 창업 이래 기업공개를 한 일이 없다. 오너 가족의 자금력이 막강하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샤넬이란 브랜드의 강점을 이야기할 때 창업자 코코 샤넬의 선진성이나 디자이너 칼 라거펠드의 재능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기업의 독립 비상장 체제를 샤넬의 강점 중 하나로 꼽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기적인 관점을 가질 수 잇기 때문이며 그런 장기적인 시야에서 일관된 철학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명품 시장에 복합기업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독립계 기업이 있다. 샤넬도 그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독립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2009년 5월 말, 프랑스의 오트 쿠튀르 기업인 크리스찬 라크롸가 파산했다.” 1987년 LVMH의 후원을 받아 설립된 크리스찬 라크롸는 이후 단 한번도 흑자를 낸 적이 없었다. 에어 프랑스의 승무원 제복이나 TGV의 내장 디자인으로 잘 알려진 크리스찬 라크롸의 시련은 비록 프랑스를 대표하는 기업이라도 대형 그룹을 떠나 단독으로 경영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독립의 문제는 자원의 문제이다. 자금력이란 문제만이 아니라 복합기업에 속할 경우 자동으로 해결되는 경영자원이라든가 마케팅채널, 유통채널 등의 문제이다. 다시 말해 시스템의 문제가 더 크다 할 수 있다.

“개인이 경영하는 공방이 기술자나 설비 외에 현대 경영환경에 필요한 요소를 모두 갖추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생존하려면 이러한 요소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큰 기업에 매수되든지 아니면 어떻게든 자력으로 헤쳐나가든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그리 많지 않다.”

저자는 오너 일가의 막강한 자금력만이 샤넬이 강한 이유는 아니며 샤넬의 진정한 강점은 오랜 세월 동안 쌓아올린 시스템이라 말한다.

“일본을 대표하는 디자이너인 모리 하나에가 은퇴를 결심하고 파리로 떠나 샤넬에서 슈트를 만즌 적이 잇다. 그녀는 샤넬이 지닌 노하우를 다음과 같이 평가햇다. ‘샤넬에서 옷을 만들어보고 분업의 유용성에 깊이 탄복했다. 샤넬은 전통적으로 잘 정리돼 있었다. (내게는) 역사가 없기 때문에 노하우도 없다. 뭐든지 혼자 생각하고 시도해야 한다. 그래서 이토록 지치고 힘들었던 것디다. ‘ “

물론 파리는 명품 브랜드의 중심지이다. 명품 산업의 주변부인 일본에서 왔기에 그렇게 느끼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느낌은 핵심의 핵심에서 일하는 라거펠트도 예외가 아니다.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는 샤넬 외에도 펜디나 자기 브랜드인 ‘칼 라거필트’도 디자인하지만 오히려 가지 브랜드나 샤넬에 더 중점을 둔다. 루이비통의 마크 제이콥스, 디올의 갈리아노도 자기 브랜드를 가지고 잇지만 역시 그러하다. 지방시의 리카르도 티시는 자기 브랜드를 일시 중지하기도 햇다.

전통있는 기업은 부문별 인재의 기술력, 즉 하부구조 집합체를 보유하고 잇다.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된 하부구조가 봉제 단계에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디자이너의 개인 브랜드에는 재봉사 등의 하부구조가 충분하지 않으므로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대형 기업의 하부구조에 의지하고 싶을 때가 잇다. 이와 반대로 충분한 하부구조를 믿고 자유롭게 디자인하기도 한다. 샤넬에는 각각의 전문직에 최적화된 시스템이 갖춰져 있고 내분뿐 아니라 외부에도 지원해줄 집단을 보유하고 잇다. 이처럼 안팎으로 자사의 핵심 역량을 강화해줄 인재와 조직을 보유하고 잇다는 것이 샤넬의 능력이자 강점이다. 이처럼 메우기 어려운 하부구조의 격차를 디자이너 스스로 느낀다. 또한 이점이 오랜 역사를 지닌 노토 브랜드의 강점이다.”

오랜 역사는 자산이다. 그리고 오랜 역사가 주는 이점은 시스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역사 자체가 강점이 된다. “’이것을 보면 어떤 브랜드인지 한눈에 알 수 잇다’고 여겨지는 것이 바로 그 브랜드의 아이콘이다. 인지도라는 관점에서 생각하면 기업이나 브랜드의 처지에서는 아이콘이 많으면 많을수록 판매나 마케팅에서 유리한 자리를 확보할 수잇다. 특히 상품 그 자체의 기능이나 품질 외에도 브랜드 이미지가 구입 의사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치는 명품 브랜드 산업이라면 아이콘 창출 능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샤넬은 수많은 아이콘을 창출해 비즈니스로 연결하는데 성공햇다. 브랜드 비즈니스라는 관점에서 샤넬의 공적은 샤넬 슈트의 디자인, 카멜리아, 이미테이션 진주, 퀼팅, 바이컬러 슈즈, CC 마크,. 체인벨트, 향수에 붙은 5란 숫자, 사자자리를 상징하는 라이언 모티프 등 수많은 디자인 아이콘을 남긴 점을 들 수 잇다. 이만한 브랜드는 별로 없다.”

그런 아이콘들은 역사의 유산인 동시에 샤넬이란 브랜드가 성장해간 역사 자체이기도 하다. “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사장은 브랜드를 성공시키는데 필요한 특성으로 Timeless, Modern, 급성장, 고수익의 네가지 키워들르 꼽는다. 시대에 관계없이 통용되고 현대적인 느낌을 줄 수 잇는 상품을 창출하는데 성공한다면 스타 브랜드가 되어 기업에 높은 이익을 지속적으로 제공해줄 수 잇다. 이렇듯 스타 브랜드가 되기 위해선 전통이 필요하다. ‘시간을 뛰어넘는 가치’를 입히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오랜 역사는 동시에 부채가 될 수도 있다. “소비자는 명품 브랜드의 세계로 좀 더 쉽게 들어가고 싶어한다. 한편 공급자는 명품이랍시고 고압적인 태도만 취하다가는 매출에 지장이 생겨 방향전환을 꾀할 수 밖에 없다. 이런 두가지 필요가 맞아 떨어져 입문 아이템 시장은 빠른 속도로 확대되엇다. 이처럼 종래와 다른 시장을 개척하려면 새로운 고객층도 파악해야 하고 그와 동시에 일정한 수준도 유지하면서 양쪽 사이의 균형을 적절하게 조절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것이 문제이다.

성장은 고사하고라도 생존을 위해서라도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그러나 어디까지가 시장이어야 하는가? 이것이 문제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프라다와 샤넬의 고객은 다르다. 샤넬이 프라다 고객에게 다가가려 한다면 이도저도 아닌 엉뚱한 브랜드가 되어 기존의 고객도 잃어버린다. 그러므로 최선은 기존의 고객을 만족시키는, 자신의 철학을 지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고객도 변한다는 것이 문제이다. 쉽게 말해 혁신은 생존의 문제이다. 그러나 그 혁신은 전통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한번 확립된 브랜드의 인기와 가치는 쉽게 무너지지 않으며 고객의 지지와 선망을 모으는 요인이 된다. 그러나 아무리 강한 브랜드라 해도 그 지위에 만족한 채로 머물러 있으면 언젠가는 쇠퇴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고고한 브랜드 이미지를 오랜 역사 속에서 성공적으로 확립한 기업이라면 오히려 혁신을 일으키는 것이 이미지를 해치는 길일 수도 잇다. 그러면 기업 가치나 실적 저하로 연결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또한 일반적으로 관리 계층에 있는 사람은 나름의 경험이나 연령 때문에 과거를 과감하게 버리지 못해 대담하게 방향 전환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요컨대 명품 브랜드 뿐 아니라 어떤 기업이든 전통과 혁신을 양립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쉽지 않은 일을 해낸 것이 샤넬의 강점이라 저자는 말한다. “샤넬의 성공요인으로는 오랫동안 중시되고 지켜왔던 가치관을 일관성있게 유지하면서도 계속적인 혁신을 이루어냈다는 점을 들 수있다.” 칼 라거펠트가 좋은 예이다.

“샤넬에 처음 들어왔을 때 라거펠트는 이미 누구보다도 자세히 코코 샤넬과 샤넬 브랜드의역사를 숙지하고 있엇다. 그에 관해서 책을 쓸 수 있을 정도엿다. 그러나 풍부한 지식이 있었음에도 샤넬의 작품을 무작정 추종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얻은 모든 지식을 이용해 샤넬의 옛 스타일을 현대 생활에 접목시켰다. 실제로 칼은 늙은 샤넬을 소홀히 다뤘다. 결국 칼은 과거의 유산을 한번 버리고 과거를 관리하기보다 미래로 연결하는 방법을 택햇다. 결과적으로 이런 판단 덕분에 샤넬은 젊음과 권위를 소생시켜 현재의 번영을 누리게 되엇다”


브랜드를 쌓아올리는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브랜드의 품질을 유지하는 것 역시 오랜 시간과 헌신이 필요하다. “특히 브랜드에 대한 역사와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인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게다가 지금은 끊임없는 환경 변화 속에서도 고객의 지지를 지속적으로 얻기 위해 신속한 혁신 능력이 요구되는 시대다. 샤넬 같이 오랫동안 번영해온 노포 브랜드나 제조업체는 창업자의 철학이나 이념, 전통을 지키고 계승하면서도 변혁해야 할 부분은 대담하게 바꿔나가며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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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맨 - 원시의 뇌가 지배하는 리더십의 탄생과 진화
마크 판 퓌흐트 & 안자나 아후자 지음, 이수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학’이란 이름이 붙는 수많은 분야가 있다. 그중에는 과연 이게 학문의 대상이긴 한가 싶은 것이 많다. 행복학이라든가 대통령학 같은 것이 그런 것인데 이게 정말 학문일 수 있는가, 란 의문이 드는 것은 그 대상이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행복에는 실체가 있는가? 어찌어찌해서 행복이란 대상이 정의될 수 있더라도 행복이란 대상은 인과관계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인가? 이런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리더십도 그런 분야이다. 과연 이게 학문일 수 있는가란 질문에 부정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이책의 저자가 분류하는) 주요학파만 해도 10개(학자에 따라서는 이보다도 더많다)가 나온다. 당연히 학파마다 리더십에 대한 정의도 다르다. 말만 리더십이지 같은 대상을 가리키는지 조차 의심스럽다. 이러다 보니 리더십이란 말이 실체가 있기는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까지 들 지경이다.

따져보면 리더십이란 신생분야만 그런 것도 아니다. 인문사회과학이 다 그 모양이다: 두리뭉실, 애매모호.

그나마 역사가 짧디 짧은 리더십 분야는 더더욱 그렇다. 게다가 이게 실용적 분야이다 보니 그 피해는 경제학이 양산하는 그 많은 착각과 실패를 떠올리게 한다.

사내정치 또는 조직내 권력현상에 대한 권위자인 제프리 페퍼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다음으로 극복해야 할 장애물은 리더십에 관한 글들이다. 유명한 경영전문가들이 쓴 책이나 리더십을 주제로 한 대부분의 강의는 일단 요주의 대상으로 보고 경계해야 한다. 이런 이론들은 조직에서 살아남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 리더십 교육 내용을 봐도 마음의 나침반을 따르라, 진실해져라, 속내를 보여줘라, 함부로 나서지 말고 겸손하라, 억지나 행패를 부리지 말라는 등 근거 없는 처방으로 가득하다. 물론 누구나 자신의 목표를 추구하기보다 다른 사람의 행복에 먼저 마음을 쓰고 그들에게 늘 진지하고 겸손하고 성실하고 변함없이 관심을 가져준다면 이 세상은 훨씬 더 좋고 인간적인 곳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경영전문가들이 권력을 얻는 방법이라고 추천하는 주장들은 하나같이 문제가 있다. 권력을 향해 걸어가는 길은 그들이 제시하는 주장과는 별로 닮은 점이 없다.

리더십에 관한 많은 연구들은 세상은 공정하다고 가정한다. 그래서 어떤 리더나 조직이 성공하면 기계적으로 갖가지 긍정적인 자질과 행동을 그 개인이나 기업의 특성으로 간주한다. 일단 누군가 성공하면 좋은 리더가 되게 해준다는 긍정적인 특징에 관련된 내용만 선별적으로 기억하고 그런 특징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제프리 페퍼) 페퍼는 자칭 리더십 전문가들이 말하는 그런 긍정적인 특성과 현실에서 권력을 잡은 사람들은 다르다고 말한다. 그들이 보는 것은 이미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보여주기 위해 화장한 얼굴일 뿐이라는 것이다. “제 잘난 맛에 하는 소리”를 듣고 그대로 따라하는 순진한 앵무새라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리더십이란 개념이 제대로 정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책이 하려는 일이다.

거창하게 들릴 것이다. 사실 거창하다. 그것이 제대로만 된다면 노벨상감이다. 뭐 노벨상은 인문학에는 주어지지 않지만 말이다.

그러나 저자들은 그게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리더십은 그리고 그 짝인 팔로워십은 심리학적(더 정확히는 진화심리학적) 현상으로 분명한 메커니즘이 있기 때문이라 말한다.리더십은 뱀에 대한 공포나 비만의 원인과 마찬가지로 진화의 유산이라는 것이다.

“고열량 음식을 어디서나 싼 가격에 구할 수 있는 서구 사회에서 증가하는 비만을 생각해보라. 조상들의 시대에는 식량이 귀했으므로 식량이 확보되면 최대한 먹어두엇다.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조상들의 습성을 여전히 갖고 있는 우리는 기회가 될 때마다 지방과 당분이 많은 음식을 먹어치운다.”

저자들은 스티븐 핑커의 말을 빌려 이를 진화의 헛점 또는 ‘부조화 가설’이라 부른다. “우리의 시련은 진화의 역사에서 우리가 가졌던 열망의 근원과 오늘날 우리가 정한 목표 사이의 부조화에서 비롯된다.”

또 다른 예는 뱀이나 거미에 대한 공포이다. “많은 사람들이 뱀, 거미, 전갈 같은 기어 다니는 동물에 대한 두려움, 심지어 극심한 공포까지 느낀다. 조상들의 환경에서 뱀과 거미는 흔히 마주치는 적이었다. 오지에 사는 수렵채집인 부족의 경우 지금도 뱀과 거미는 생존을 위협하는 적이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에서 뱀이나 거미에 물려 죽는 사람은 1년에 20명도 안되며 대개의 경우 희생자는 이 동물들의 주인이다. 우리는 거미가 우리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대개 본능적 두려움을 갖는다.”

저자들은 우리가 그렇게도 많은 무능하고 형편없는 리더를 뽑아왔고 뽑는 이유를 부조화라 정리한다.

“인간의 두뇌는 작고 평등한 구조의 공동체에 맞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조상들이 내렸던 것과 같은 종류의 본능적 판단을 내리곤 한다. 우리는 카리스마가 능력을 보증하는 상징물이라 여기고 카리스마 넘치는 사람을 따른다. 그러나 때때로 카리스마를 풍기는 외모 뒤에 멍청함이나 심지어 악한 성격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곤혹스러워한다. 우리는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정치가에게 표를 던지는데 그것은 우리 조상이 부족을 보호하고자 그런 사람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또 우리는 여성(부족사회에서 주로 집안을 돌보는 역할에 머물러 있었으므로)과 소수민족(우리는 본능적으로 자신과 비슷하지 않은 사람을 경계하므로)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오늘날 키, 나이, 몸무게, 인종, 성별이 특정한 직업이나 직위를 맡기 위한 자격 요건이 되어야 할 아무런 합리적 이유도 없다. 그런데도 사바나에서부터 갖게 된 본능 때문에 우리는 특정한 자리에 앉힐 최상의 적임자를 선택ㅎ는데 종종 실패하며 이는 많은 기업에 잘못된 경영자나 관리자가 들어앉는 결과로 이어진다.”

저자들은 리더십에 대한 자신의 이런 입장을 사바나 가설이라 한다. 다시 말해 우리의 리더십 메커니즘은 우리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아프리카 초원이란 환경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리더십이란 개념을 분명하게 정의하려면 ‘왜’란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 된 것은 집단을 이루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집단이 만들어지면 리더가 있는 것이 집단의 효율성을 높인다. 사냥을 하든 전쟁을 하든 집단을 목표로 이끌 자가 있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러면 왜 어떤 사람은 리더가 되려는 것일까? 집단 전체로선 리더가 있는 것이 좋다. 그러나 리더에게도 좋은가? 꼭 그렇지가 않다.

고릴라나 침팬지 같은 우리 친척들에게도 리더는 있다. 그런 리더들은 “싸움을 말리고 더 강한 라이벌에게서 약자들을 보호하는 등 중재자의 역할을 한다. 집단의 분열을 막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또한 이 알파메일은 종종 집단의 이동을 이끌고 포식동물이나 라이벌 집단 등의 외부위협으로부터 자신의 집단을 보호한다.” 그 보호는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경우도 흔하다. 이렇게 보면 “리더의 지위는 힘들고 보함 없는 일처럼 보인다. 그런데 알파가 굳이 리더의 역할을 맡는 이유는 무엇인가?”

답은 지위이다. 그리고 그 지위에 따라오는 특권때문이다. “진화의 최종 목적은 번식의 성공이고 그러려면 섹스를 해야 하고 섹스를 하려면 섹스 파트너의 눈길을 끌어야 하고 그러려면 지위가 높은 남자가 되어야 한다. 오늘날 지위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연봉이다. 따라서 진화 리더십 이론 덕분에 우리는 돈을 권력과 엮고 권력을 섹스와 엮을 수 있는 연결고리를 갖게 된다.” 저자들은 이것을 “연봉(salary)과 지위(status), 섹스의 머리 글자를 따서 3S”라 부른다.

대단한 특권이다. 그러나 모두가 그것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팔로워를 주저없이 선택한다. 안전하기 때문이다. “진화 리더십 이론의 기본 전제는 200만여년전 인류 역사가 시작될 때 녹록하지 않은 아프리카 사바나 환경에서는 수가 많은 편이 안전했다는 것이다. 팔로워십 인지능력을 소유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더 번성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인지능력은 필요할 때 어떤 사람이나 집단을 따르도록 부추기는 인련의 내장된 ‘만약 ~라면’ 규칙을 말한다. 이런 팔로워십 두뇌는 우리 조상들로 하여금 특정한 상황에서 누구를 따라야 하는지에 대해 신속하고 자동적인 결정을 내리게 해주었다. 예컨데 만약 배가 고프다면 최고의 사냥꾼을 따라야 한다. 만약 나의 집단이 공격을 받는다면 가장 힘센 사람을 따라야 한다.”

좀더 쉽게 말해보자. 왜 취직을 하는가? 돈을 벌기는 고용주가 더 버는 것이 당연한데 말이다? 주는 돈 보다 돈을 더 벌어주지 않는 직원을 계속 떠안고 있을 고용주는 없다. 그러면 왜 자신의 노동보다 더 적은 대가를 받으면서 남의 밑에 있는 서러움까지 당하며 버티는가? 답은 간단하다. 리스크의 문제이다. 고용주는 공짜로 차액을 가져가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그만큼 리스크를 떠안는 것이고 그 리스크는 의외로 크다. 사장들은 오히려 월급쟁이를 부러워한다. 자신도 꼬박꼬박 돈 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모든 손실은 고용주가 부담하지만 고용계약에 따라 월급을 주지 않으면 구속된다. 리더와 팔로워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바나에서 안전만을 생각한다면 얼룩말 같은 수준의 느슨한 집단을 만드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사냥이라든가 집단의 방어라든가 다음 야영지를 선택한다든가 집단 전체가 동원되는 목표가 있을 때 리더가 있는 집단은 효율이 높아진다. 리더는 있다는 것 자체로 집단을 뭉치게 하는 인간접착체이다. 그뿐만 아니라 리더는 불확실한 환경에서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사바나에서 리더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고 능력은 그에게 권위를 주었고 권위는 지위를 주었다. 인류학에서 그런 사람을 빅맨이라 한다.

“임시로 만들어진 집단이 어떤 특정작업(이를 테면 라디오 조립하기)을 완수하는 상황을 관찰한 실험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타난다. 서로를 알지 못하는 낯선 이들로 이루어진 집단에서도 사람들은 각자의 전문 기술을 재빨리 파악하고 문제문제해결에 가장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것 같은 사람을 따른다. 낯선 이들로 이루어진 집단도 대단히 발리 그리고 본능적으로 협동하여 구성원 모두에게 유익한 결과를 도출하는데 이는 분명히 팔로워십의 이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실험에서 관찰되는 “흥미로운 사실은 실질적으로 얻는 보상의 차원에서 리더는 팔로워들에 비해 적은 이익을 누리는 경향이 있엇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의 본능적 리더십이 섬김 리더십 성향을 띤다는 점을 시사한다.”

고인류학의 사례연구를 보면 서비스가 제시했던 밴드에서 군장사회를 거쳐 원시국가로 진화하는 선형적 진화는 매우 드물다. 마이클 만은 실제 역사를 검토해보면 빅맨 단계에서 군장사회(chiefdom)로 넘어갔다 다시 빅맨 단계로 후퇴하고 다시 군장으로 진화하는 evolution/devolution의 사이클이 관찰된다. 군장에서 원시국가, 문명으로 넘어가는 선형적 진화는 극히 드문 경우이며 우리가 아는 한 4개에서 6개가 전부엿다. 그리고 그렇게 진전되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이클 만은 권위에서 권력으로 넘어가는 것은 특정 지역의 특이한 조건이 있어야만 가능했다고 말한다.

그 이유를 이책의 저자들은 사바나에서 형성된 우리의 리더십/팔로워십은 근본적으로 민주주의를 지향했기 때문이라 말한다.

“원시부족사회에서 발견되는 중요한 공통점은 지정된 부족 리더나 공식적인 계급제가 없다는 점이다.” 물론 빅맨이라 불릴 수 잇는 특별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빅맨의 권위는 “전문기술이라는 매우 좁은 영역에 국한되어 있었다. 예컨데 최고의 사냥군은 사냥 지역을 선택하는 문제에서만 가장 뛰어난 전사는 전투에 관한 결정을 내릴 때만 가장 유능한 챡초 채집자는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문제에서만 최종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만약 이러한 개인들이 그 이상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혹은 집단을 지배하려 한다면 이는 중대한 죄로 여겨졌다.”

물론 우리는 영장류이고 우리 친척 고릴라나 침팬지처럼 권위가 아닌 권력을 가지려는 본능이 있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모습을 5분만 지켜보면 다른 친구들을 지배하고 장난감을 빼앗는 아이들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남의 지배를 거부하는 성향도 있다. 권위를 권력으로 업그레이드하려는 빅맨은 언제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성공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권력은 오래가지 않았다. 뒷담화를 한다거나 공개집회에서 집단으로 힘으로 리더의 횡포를 누른다거나(지금의 의회, 주주쵱회) 풍자를 한다거나(왕궁의 어릿광대), 그래도 안되면 리더를 추방하거나 암살하는 방법을 써왔다. 그래도 할 수 없으면 Vote by foot, 발로 하는 투표를 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것이다.

사바나에서 우리 조상들은 좋은 리더에 대한 이미지를 본능으로 갖게 되었다. 저자들은 이를 사바나 가설이라 부른다. “사바나 가설에 따름녀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사바나에서 공격자와 약탈자에게서 우리를 보호해줄 빅맨을 선택할 때와 유사한 기준으로 리더를 선택한다.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는 모든 특성(키, 연령, 남성다운 외모, 성별, 평판 등)은 리더들의 사바나 특성으로 간주할 수 잇다.

리더십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알아보기 위해 62개 문화권ㅇ르 연구한 결과 리더에 대한 사람드르이 인식에 놀랍게도 일관성이 있었다. 청렴(신뢰할 수 있어야 함), 관대함(아량을 베풀줄 알아야 함), 공정함(공명정대해야 함0, 외교적 수완(갈등을 잘 다뤄야 함), 결단력(합당한 판단을 내려야 함), 지성과 능력(집단이 좋은 성과를 내도록 기여해야 함), 비전(이상적인 미래를 그려야 함) 등이었다. 이러한 리더의 원형은 원시 부족사회에서 존경받던 빅맨에 대한 인식과 거의 일치한다.”

문제는 조상들의 사회와 우리의 사회가 다른 리더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바로 그 차이 때문에 우리는 리더십 실패를 겪고 있다고 저자는 본다. “만약 당신이 무능력함에 관해 연구하고자 한다면 기업체의 사무실을 연구 장소로 택해도 괜찮을 것이다. 경영자들 중 약 60~75%가 이상적인 리더의 모습에 훨신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에서는 직원들의 2/3 가 상사를 가장 큰 골칫거리로 꼽았는데 다른나라에서도 이 참담한 수치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조상들의 사바나와 우리의 메트로폴리스의 차이가 이런 실패의 원인 중 하나라고 저자들은 말하며 부조화 가설이라 말한다.

예를 들어 미국 대통령 선거에선 잘 생기고 키가 큰 사람이 단연 유리하다. 사바나에선 분명 그런 사람이 좋은 리더감이엇다. 신체적으로 건강하며 힘이 세다는 말이니까. 그러나 머리를 써야 되는 정치가에게 우리는 초원의 조건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본능이다. “선거 후보들의 사진을 본 어린아이들은 외모만 보고도 상당히 정확하게 숭자를 예상한다.” 신체적인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카리스마 있는 리더를 선호한다. 많아야 150명이 넘지 않는 사바나에선 개인적인 매력으로 인간자석 역할을 하는 그런 리더가 당연히 선호되었다. 그러나 지금도 그럴까?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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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
폴 크루그먼 지음, 예상환 외 옮김 / 현대경제연구원BOOKS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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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53년에 태어났다. 우리 세대는 미국에 태어난 것에 특별히 감사하지 않았다. 그러나 돌이켜 보니 그 시절이 미국 정치와 경제사상 찾아보기 힘든 잃어버린 낙원이었던 듯하다.

무엇보다 전후 미국은 중산층의 사회였다. 소득이 대폭 늘어난 수천만 미국인들이 도시 빈민가와 농촌의 가난에서 벗어나 자신의 집을 소유하고 전에 없이 안락한 삶을 누렸고 대다수 미국인들은 물질적으로 상당히 비슷한 수준의 풍요를 누렸다. 경제적으로 균등햇던 미국은 정치적으로도 중도노선을 지켰다. 초당적 제휴가 정말로 의미있던 시절이었다.

역사를 조금 아는 사람이라면 미국이 항상 이렇지는 않았다는 것을 안다. 오히려 미국은 빈부격차가 심하고 양당의 싸움으로 얼룩진 나라였다. 당시 우리는 미국이 성숙했기 때문에 두터운 ㅈ중산층이 뒷받침하는 상대적으로 평등하고 정치적으로 평온한 상태가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1980년대가 되자 중산층 중심과 중도노선의 청치가 미국사회 진화의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미국은 다시 이전처럼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양극화된 나라로 돌아갔다. 단지 돌아간 것에 그친 것이 아니었다. “불평등은 1920년대만큼이나 크며 정치적 양극화도 이렇게 심했던 적이 없다.”

이책은 왜 미국이 과거로 회귀했는가, 란 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이다. 저자는 그 이유를 경제학자답지 않게 정치라고 말한다. 전후 미국이 중산층 사회가 된 것도 그 중산층 사회가 와해된 것도 정치가 원인이었다고 말한다.

전후 미국의 중산층 사회는 “루즈밸트 행정부의 전시임금통제를 통해 몇 년이 채 안되는 기간 안에 만들어졌다.” 경제사에선 대공황에 빗대 이를 대압축(Great Compression)이라 부른다. 마찬가지로 1980년대 이후 불평등의 확대는 “시기적으로 정치적 양극화가 먼저 이루어졌고 경제적 불평등은 그 뒤를 따랐다는 것을 보여준다.”

두 시대를 만든 것은 모두 정치운동이엇다. 뉴딜이 그랬고 신보수주의(신자유주의를 포함한) 운동이 그랫다. 두 운동의 공통점은 이전 시대에 반발한 소수파의 운동이 시대의 흐름을 타고 주류가 되었고 시대를 바꾸었다는 것이다.

루즈벨트와 함께 백악관을 장악한 소수파가 바꾸려 했던 미국은 지금의 미국과 상당히 닮은 모습이었다다. “부시 집권시기의 눈으로 바라본 뉴딜 이전 미국의 정치경제는 마치 할아버지의 흑백사진을 보면서 자신과 많이 닮았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21세기 초의 미국처럼 뉴딜정책 이전의 미국에는 부와 권력의 불평등이 만연했다. 이름은 민주국가였으나 대다수 국민들을 대변하는 데 실패했다. 게다가 부유한 경제 엘리트들이 정계를 장악한 것도 지금과 같다. 뉴딜정책 이전의 시대는 소수가 지배하는 과두정치적 성향을 띠었다.” 저자는 그 시절을 장기 도금시대라 부른다. 19세기 후반을 말하는 도금시대처럼 뉴딜 이전 20세기의 미국도 “불평등과 부유한 엘리트 집단의 지배를 받는다는 점에서 그리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의 지속이다.”

당연히 그런 과두정치에 반대가 없을 수 없었다. 19세기말 인민주의운동이나 20세기초 윌슨과 테디 루즈벨트의 진보주의운동의 목표가 그러했다. 그러나 그들은 소수였고 미국을 바꿀 수 없었다. “현재와 마찬가지로 (주류인) 보수주의자들은 불평등 타파를 위해 무엇인가 하라는 요구에 항상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고 주장햇다. 즉 어떤 정책으로도 뚜렷한 변화를 느낄 정도로 국민소득을 노동자 가정으로 재분배할 수 없으며 설령 누군가 그렇게 하더라도 분명 경제를 망가뜨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공황은 소수의 손을 들어주었다. 소수파에겐 언제나 위기가 기회가 된다. “우연히 시기적으로 잘 맞아 떨이진 덕분에 그들은 유권자들의 보편적 보수주의를 극복할 수 있었다. 첫째 이유는 1929-33년의 대재난으로 부수 엘리트 집단과 그들의 이념에 대한 믿음이 산산조각 났기” 때문이다.

기회를 잡은 이전의 급진 소수파는 미국을 바꿔놓았다. “루즈벨트와 트루먼은 하증계급으로의 소득과 부의 재분배를 극적으로 성공시켜 미국을 이전보다 휠씬 평등한 사회로 만들었다. 그런데 이 재편성 즉 대압착으로 미국경제는 망가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향후 세대가 누릴 경기호황의 기반을 마련했다.”

중산층 사회를 만든 것은 분명 정치였다. 루즈벨트는 부자들에게 높은 세금을 매겨 소득을 재분배했고 노조를 보호해 노동자의 힘을 키웠다. 소득재분배와 노조의 힘은 중산층 사회의 원인이엇다.

뉴딜과 전쟁의 승리는 급진 소수파의 이념에 불과했던 것에 정당성을 주었고 그들의 정책으로 득을 본 계층을 지지자로 끌어들엿다. 광범위한 뉴딜 연합의 힘은 뉴딜 이전의 미국으로 돌아가려는 보수주의자들을 체념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제 미국은 뉴딜 이전으로 돌아갔다. “지금 우리는 두 번째 도금시대를 살고 있다. 전후 시대의 중산층 사회가 급격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다 이 지경이 되었는가? 저자가 이책에서 묻는 가장 큰 질문이다. 저자의 답은 뉴딜연합의 해체이다.

민주당의 뉴딜 연합은 “남부와 노조, 도시의 정치집단, 그리고 좌파지식인의 조합”이었다. 그러나 이 연합에서 남부가 이탈해 공화당의 거수기가 되면서 뉴딜연합은 무너졌고 공화당 지배가 시작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남부가 뉴딜연합을 버린 이유는 민주당이 주도한 민권운동 특히 인종차별철폐 때문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링컨의 당인 공화당은 남부에서 당연히 인기가 없었고 남부연합의 당이었던 민주당을 지지했다. 거기다 가난한 남부는 뉴딜정책의 가장 수혜자로서 당연히 뉴딜연합의 핵심이 되었다. 그러나 전후 경제적 불평등이 줄어들면서 “부의 재분배를 위한 정책은 더 이상 큰 이익을 주지 못했”다. 그런데 민주당이 민권문제를 특히 인종차별을 겨냥했을 때 남부는 뉴딜연합에서 이탈한다.

물론 남부만 민권운동에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 “1967년 닉슨은 오늘날 유명해진 논설 “미국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를 발표한다. 이 글은 미국의 모든 혼란을 요약하고 진보주의자들의 관용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주장했다. 1960년대 한창 떠돌던 말에 따르면 보수주의자는 과거 강도를 만난 경험이 있는 진보주의자였다. 미국인들이 법과 질서가 무너진다고 생각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실제로 그랬기 때문이다.” 민권운동이 일어났을 때 범죄율은 높아졌고 도시는 인종폭동으로 불타올랐다. “백인 유권자들에게 범죄와 폭동은 미국사회의 붕괴를 잘 드러내는 또 다른 지표와 합해졌다. 그 지표는 늘어나는 복지 의존도였다.”

공화당 소수파인 보수주의 진영에 속했던 레이건은 복지여왕이란 과장을 섞어 “복지정책에 신물난 백인 유권자들”을 대변하면서 1966년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당선되었다. 복지수혜자는 “1966년 10년전의 2배나 되엇고 1970년대 초 또다시 2배 증가햇다.”

미국인들을 불안하게 만든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히피로 대변되는 젊은이들의 반항도 문제엿다. “대항문화운동은 1964년경 일어났다. 바로 초기 베이붐세대가 대학에 들어가기 시작한 해였다. 청년이 된 베이비 붐 세대들은 그 어마어마한 숫자만으로도 상투적인 구세대의 문화를 깨뜨리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기술적인 발전도 있었다. 피임약 발명으로 이전 어느 때보다도 성적인 시도가 활발해졌다. 젊은이들의 반항으로 많은 미국인, 특히 레이건은 두려워하고 분노햇다.

미국 중산층에게 1960년대으 급변하는 사회규범은 큰 불안감을 조성햇다. 한편 국민들은 강도를 당할까 두려워했다. 실제로 위험해진 도시에서 강도사건이 많아졌다. 다른 한편으로 자신의 아이들이 이런 사회 기준에 동조하고 자극받아 낙오자가 될까 두려워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아이들이 느는 추세였다.”

저자는 보수주의자들이 주류로 등극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불안감을 이용했기 때문이라 말한다. 원래 보수주의자들이 원한 것은 뉴딜의 무효화, 즉 장기 도금시대로의 회귀엿다. 범죄, 인종문제, 사회규범은 그들의 핵심의제가 아니엇다. 그러나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권력을 잡아야 했고 문화적 반발은 좋은 기회였다. “어떻게 문화적 반발을 이용해야 할지 깨우친 공화당은 이후 반발 대상을 히피와 범죄에서 낙태와 동성간의 결혼으로 바꾸고 보수주의 운동을 일으켰다.”

원래 보수주의는 공화당에서도 급진소수파에 불과햇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공화당을 장악한 것일까? 돈의 위력이었다.

“새로운 보수주의자라고 알려진 이들은 젊고 무모하며 언론을 잘 다루었다. 그들은 스스로 기존의 틀에 도전하는 아웃사이더라고 생각했다. 보수주의운동은 백인들의 반발과 공산주의에 대한 과대망상이라는 사람드르이 정서에 호소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을 발견함으로써 대중적인 기반을 다졌다. 기반을 다진 보수주의 운동은 1950년대에는 ‘새로운 보수주의’라는 보잘 것없는 정치적 주변세력에서 정치계가 신경써야 하는 막강한 세력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대중적 기반의 성장은 표를 모으는데 보탬이 되지 않았지만 돈줄 역할을 할 수 있었던 다른 종류의 기반을 다짐으로써 큰 도움을 받는다. 이는 바로 보수주의 운동에 열광적인 지지를 보낸 경제계엿다.”

복지국가의 부담은 실절적으로 거의 기업의 어깨에 떨어졌다. 유럽이나 일본에선 의료보험, 퇴직연금 등의 복지제도가 국가의 책임이었지만 미국에선 기업이 책임져야 했다. 지금과 달리 ‘외국기업과 경쟁할 필요가 없는 기업들은 추가로 발생하는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백화점 같은 중소기업 경영주 처지에서는 노조의 요구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이런 기업들은 외국기업과 경쟁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너무 작아서 노조가 신경 쓰지 않는 초소형 ㄱ5ㅣ업, 부부가 경영하는 영세상점 등과 경쟁해야 했다. 중소기업들은 노조의 커져만 가는 요구에 분개했고 심지어 위협적이라고 느끼기도 했다.

반노조주의자들은 경제계에서 첫 번째로 보수주의 운동의 경고한 지지기반이 되어주엇다. 1960년대부터 노조를 경멸하던 경영주들은 재정적으로 보수주의 운동을 확실하게 후원해으며 그들의 이런 노력은 보답을 받았다. 1970~80년대에는 경제계가 노조와 충돌하고 심지어 노조가 무너질 정도로 보수진영이 우세해져 임금 불균형과 정당 간 힘의 균형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보수주의 운동이 정치의 헤게모니를 잡은 것은 이 돈의 위력이었다. 기업의 후원은 정치에만 그치지 않고 지식인들에게도 뿌려졌다. “1970년대에는 보수주의 운동의 지식계층은 진보주의자들이 굼도 못 꿀 정도로 확고한 이념과 재정적 기반을 마련했다. 보수주의 지지기반에는 언론사들도 있었다.” 정치, 언론, 학계, 싱크탱크를 장악한 보수주의 운동은 “어떤 면에서 1920년대 말 결과적으로 뉴딜정책을 이끈 운동과 비슷한 입장에 처했다. 이념이 만들어졌고 조직도 갖추어졌고 지식인들의 기반도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권력을 얻기 위해 보수주의 위기상황이 필요했다.” 그 위기는 베트남과 이란의 위기였고 70년대 세계경제를 흔들었던 스태그플레이션이었다. “1970년대의 어두운 분위기 덕분에 보수주의 운동은 진보주의 정책이 모든 문제의 주범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더 강력해진 보수주의 운동은 곧 뉴딜정책의 성과를 뒤엎을 기회를 얻는다.” 이후 우리가 아는 지금의 미국이 등장했다.

"레이건은 보수주의 운동진영에서 나온 최초의 대통령이다. 레이건 이후 공화당은 더 극단주의로 흘렀다." 저자는 텍사스 공화당 지부의 강령이 보수주의 운동의 진실한 성향을 잘 나타내준다고 말한다: "주류, 담배, 화기 단속국, 의무감직, 환경보호국, 에너지부, 주택도시개발부, 보건복지부, 교육부, 상무부, 노동부는 기본적으로 폐지하고 그 외의 연방정부기관도 폐지를 고려한다. 또한 사회보장제도를 민영화하고 최저임금제를 폐지한다." 여기에 부유층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상속제 폐지도 있다. "소득에서 상위 10%에 속하는 부유층이 상속세의 90%를 낸다."

공화당이 이 정도로 극단화 된 이유는 무엇인가? "충성스러운 정치인에게 상을 주고 이의를 제기하는 정치인에게 벌을 주는 소수집단이 있으며 궁극적으로 이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서로 긴밀하게 연관된 조직들이 존재한다. 이런 조직들은 순종적인 정치인이 선거에 이길 수 있도록 충분한 자금을 대고 선거에서 질 경우 피난처를 제공하며 은퇴 후에도 벌이가 괜찮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준다. 또한 이런 조직들은 당의 노선을 따르는 정치인들에게 호의적인 기사를 내주는 반면 반대하는 정치인들을 공격했으며 보수주의 지식인과 운동가 집단을 든든히 뒷받침해주었다."

여기에 잡지와 월스트리트 저널, 워싱턴 타임스, 폭스 뉴스와 같은 매체도 장악했다. "마지막으로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로비스트와 정치인들 간의 유착관계가 있다. 보수주의 싱크탱크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기업로비 그룹은 보수주의 운동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위장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공화당 보수주의자들은 로비스트들까지 장악했고 "로비활동을 장악하게 되면서 공화당의 노선을 따르는 당원들이 갈 수 있는 일자리, 그것도 아주 보수가 좋은 자리가 많아졌기 때문에 공화당 안에서의 충성도는 더 높아졌다.

보수주의 운동과 연계된 조직들이 다양해짐으로써 공화당원들은 중도보다는 강성을 띠는 것이 훨씬 유리해졌다. 단지 선거에서 기부금을 받는 정도가 아니라 정치인 개개인의 재정이 달린 문제였다."

그 결과 "의회에 남아 있는 얼마 안 되는 공화당 중도파 의원들은 거의 다 레이건 대통령 이전에 처음으로 당선되었거나 아무리 늦어도 공화당 내에서 깅리치를 중심으로 한 극우파의 승리를 확정한 1994년 선거 이전에 당선된 의원들이다."

그러면 왜 보수연합은 권력을 잡을 수 있었는가? 이들의 정책은 명백하게 소수만을 위한 것이고 대다수는 피해를 본다. 더군다나 "여론조사에 따르면 공화당은 극우화되어 가고 있지만 국민들은 약간 좌경화되었다는 결과가 나온다. 그런데도 공화당은 계속 선거에서 승리하고 있다" 저자는 이 모든 것이 남부 백인들이 공화당을 뽑기 때문이라 말한다.

"남부지역일수록 흑인이 더 많을 수록 보수적이다. 인종이 이런 차이를 가져왔다는 결론을 부정하기 어렵다. 정말 알수 없는 것은 남부의 연방의원들이 공화당으로 돌아서는데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다. 공화당이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 것은 민주당이 남부 이외의 지역데서 의석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공화당이 남부에서 늘린 의원숫자는 민주당이 공화당에 넘긴 의회의석의 순손실분보다 더 컸다. 부시는 남부 백인들의 표가 없었다면 투표용지를 이용한 부정선거로도 백악관 입성은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유권자들은 극우화된 공화당을 외면했고 점차 민주당으로 표심이 옮겨갔다. 그렇지만 공화당은 대통령 선거에서 이리고 결국 의회까지 지배하게 되었다. 이는 공화당이 남부에서 이기기 위해 인종문제를 교묘히 이용했기 때문이다. 이것의 성공비결의 전부다."

물론 보수연합에 남부만 있을리는 없다. 보수주의 운동이 가치문제를 갖고 놀 수 있게 된 이후 기독교 근본주의자들도 그 연합에 들어갔고 공화당에서 그들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그러나 그들의 역할은 박빙의 승부일 때 캐스팅 보트를 휘두를 수 있다는 것 이상은 아니며 결정적인 것은 남부의 표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2006년 중간선거(그리고 이책이 나온 후 2008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한 것을 보수주의의 몰락이 멀지 않았다는 징조라 말한다.

"인구통계 변화를 분선한 결과 민주당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추세가 변하고 있다. 오랫동안 보수주의 운동의 성공에 필수적이었던 백인들의 반발심을 이용한 정치는 두가지 이유로 효력이 떨어지고 있다. 미국으ㅢ 백인들이 줄어들고 있고 백인들 중에서도 인종차별주의작 많이 줄어들고 있다.

여기서 백인이란 비라틴계 백인을 말한다. 1980년 6.4%에서 2000년 12.55로 급증한 라틴계 인구는 미국의 인종구성을 변화시킨 가장 큰 원인이다. 보수주의 운동은 흑인을 싫어하는 백인들에게 호소함으로써 성공할 수있었다. 그러나 이민자들에게도 적대적이지 않으면서 동시에 흑인에게 적대적이기는 어렵다. 그리고 급증하는 이민자들이 점점 정치세력화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 보수주의 운동의 일등공신이었던 인종문제는 점점 골칫거리가 될 것이다.

미국에서 보수주의 운동이 확산될 수 잇었던 가장 큰 이유는 과거 노예제도로 인해 인종 간의 긴장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긴장이 해소되거나 정확히 말해 공화당이 이를 이용하려 할 때 더 큰 정치적 희생을 치르게 한다면 미국은 복지정책과 소득불균형 완화 정책이 좀더 강한 다른 서방국가들과 점도 비슷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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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기술 - 조직에서 권력을 거머쥐기 위한 13가지 전략
제프리 페퍼 지음, 이경남 옮김 / 청림출판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이책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마키아벨리나 한비자가 말하는 것과 같은 내용을 말한다: 권력을 어떻게 잡고 권력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군주의 재난은 사람을 믿는 데서 비롯된다. 다른 사람을 믿으면 그에게 지배받게 된다. 신하는 군주와 골육의 친분을 맺고 잇는 것이 아니라 군주의 위세에 얽매어 어쩔 수 없이 섬기는 것이다. 따라서 신하된 자는 군주의 마음을 엿보고 살피느라 잠시도 쉬지 않는데 군주는 그 위에서 게으름을 피우며 교만하게 처신하니 이것이 세상에 군주를 협박하고 시해하는 일이 발생하는 까닭이다.”

한비자의 말이다. 한비자도 마키아벨리도 권력의 자리에선 아무도 믿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교만하게 되면 죽음에 이른다고 경고한다.

이책 역시 같은 경고를 한다. “힘이 막강하고 일이 잘 풀릴 때는 자신감이 지나쳐 주의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아랫사람들의 말을 잘 믿고 그들의 제안을 별다른 의심없이 받아들인다. 그러나 사람을 너무 잘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면 그 자체가 화근이 될 수 있다.”

권력자들이 원래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권력의 자리가 그를 그렇게 만들기 때문이다. 아첨에 관해 많은 경고들이 있어온 이유이다. 그러나 아첨이 사라지지 않고 번창하는 이유는 그 자리에선 누구든 아첨에 취약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책의 저자는 권력으로의 길은 우선 권력자와 가까워지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말한다. 그들의 눈에 띄어야 한다. 기억하지도 못하는 사람을 어떻게 임명할 것인가? 권력자에게 가까이 가는 방법은 우선 눈에 띄어야 하고 그의 신임을 얻어야 한다. 신임을 얻는 방법의 하나는 권력자의 자존심을 살려주는 것이다. “일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상사와의 관계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상사가 실수할 때 누가 그것을 지적했는지 그리고 상황이 어떻게 벌어졌는지 한번 되짚어보라. 실제로 권력자들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침’이다. 좋은 기분이 들면 자신의 영향력도 아울러 강화되기 때문에 아첨의 효과는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누구나 아첨에는 흔들린다. 아첨은 칭찬의 일종으로 선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력의 자리에 앉은 사람은 그 선물에 특히 취약하다. 그 자리가 그를 그렇게 만들기 때문이다.

“권력은 접근을 부르고 금기를 줄인다. 처음에는 힘 있는 사람도 사람도 자신이 누리는 특별대우가 그들이 앉아있는 자리와 그들이 장악한 자원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고 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생각은 희미해지고 자신이 잘나서 그렇게 되엇다고 생각하게 되낟. 권력은 과신과 위험한 상황, 다른 사람에 대한 무감각, 고정과념을 낳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권력자는 사람들을 자기만족을 위한 수단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힘있는 자리는 오만을 부르고 “지나친 자신감과 무감각은 권력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 자신감이 지나치면 알력과 불화로 문제가 생겼을 때 반대편의 요구에 관심을 기울일 수 없기 때문이다. 권력자들은 자신이나 조직의 목적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권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는다. 권좌에 앉아 있으면 그렇지 않은 사람의 입장에서 사태를 바라보기가 어렵다.” 그러다보면 권력자에 대한 반대자들이 동맹을 만들고 그렇지 않더라도 그의 자리를 넘보는 야심가들이 그의 눈을 가려 마침내 그를 쓰러트릴 것이다.

권력은 마약과 같아 권력을 쥔 사람을 취하게 하고 그의 눈을 가리며 머리를 마비시켜 제 무덤을파게 한다. 권력은 언제나 그래왔기에 권력을 유지하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는 동과 서, 고와 금이 다르지 않다. 어차피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이책이 그리는 권력자의 모습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저자는 그 이런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지 않지만 그건 실제 힘있는 엘리트들 대다수의 진실이기도 하다.

“성공을 거둔 사람들을 분석하면 우리가 보통 정서적으로 안정됐다고하는 개념과는 어울리지 않는 공통의 특징이 나타난다. 슈퍼클래스는 평범한 사람들보다 더 공통적으로 정신병리학적 특징을 갖고 있다. 종종 성공을 거두지 못한 사람들은 일종의 노이로제 때문에 성공의 문턱에서 좌절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정신병리학적 특징을 이용해 성공을 거머줜다. 그들은 글자 그대로 심한 스트레스와 높은 수익을 안겨주는 업무로 인해 뇌에서 만들어지는 엔도르핀에 중독된다. 한 국가나 기업, 군대, 교회를 다스리는 일은 일종의 극한 운동이며 날마다 중대한 이해관계가 걸린 상황에 직면하다보면 매일 엔도르핀이 생기고 점점 더 엔도르핀에 의지하게 된다. 따라서 정치인이 하던 일을 그만두면 종종 우울증에 빠지는데 그러한 우울증은 금단현상처럼 보일 뿐 아니라 실제로 금단현상이다.

워싱턴 정계에는 ‘미국 대통령으로서 성공할 수 잇는 특징’은 사실 ‘미국 대통령에게서 보고 싶지 않은 특징’이라는 통념이 있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 많은 시간을 들여 아주 집중해야 한다. 즉 맹목적으로 야심을 가져야 한다. 평범한 존재로서의 모습은 버려야 한다. 부모와 배우자 역할을 제대로 하면서 평생동안 끈질기게 선거운동을 벌이기는 어렵다. 그리고 통치에 필요한 지식보다는 정략을 우선시해야 하며 사생활의 많은 부분을 포기하고 비열하고 정치적인 동기를 띤 마녀사냥을 벌리고 그보다 더한 일도 척척할 수 있을 각오로 대통령 자리를 원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힘 있는 자리에 오르려는 사람에게서는 확실히 자아도취적인 모습이 나타나며 강박관념과 대중으로부터 얻는 피드백에 중독된 모습 또한 나타난다. 그들은 성공에만 눈이 먼 특이하고 불완전한 개인들이다.

슈퍼클래스의 일원이 되고 싶다면 꼭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그것은 아주 지독히 슈퍼클래스가 되길 바라야 한다’는 것이다. 나무나도 간절히 바라기 때문에 미칠 정도가 되어야 한다.” (데이비드 로스코프)

그러나 권력은 미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물론 지위와 능력이 있는 사람은 (앤디 그로브 식으로 말하면) '미친' 놈이다. 'Only the paranoids suvive' 어느 분야든 정상에 남는 자는 그 목표에 미쳐야 한다. 그 목표를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가 충분한 사람만 정상에 오른다. 맑스의 신조처럼 “남이 뭐라 건 네 갈길을 가라.” 그런 각오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착함'과는 거리가 멀다.

“남편감으로 어떤 사람이 좋으냐는 질문에 대해 여성들은 문화와 관계없이 무엇보다도 친철함과 공감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이와 동시에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능력도 상당히 중시한다. 그러나 친절함과 공감은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능력과 충돌한다. 여성들이 이 두개의 서로 엇갈리는 가치를 어떻게 관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현실적인 문제다. 여성에게 화려한 삶을 가져다줄 수 있는 사람은 그런 삶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대니얼 네틀)

이책의 저자가 그리는 권력자들의 모습 역시 별 다르지 않다. 그러나 저자는 거기에 대해선 말을 아끼고 권력을 잡기 위해 희생해야 할 것에 대해 더 많은 말을 한다.

“공짜 점심은 없다.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른다. 권력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하려거든 정말 무엇을 위한 노력인지 그리고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권력을 손에 넣은 사람들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른 사람들이다.

권력을 잡고 유지하려면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권력을 얻고자 한다면 개인적인 생활은 포기해야 한다. 구너력과 지위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취미도 즐기고 친구나 가족과 시간을 보내며 개인적인 관계를 이어가기는 어렵다. 특히 여성은 더욱더 그렇다.

유명 신발 회사에서 매우 활동적이고 뛰어난 능력으로 인정받는 41세의 한 여성 중간관리자는 2009년 현재 그 회사의 고위직 여성 100명 중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결혼 생활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햇다. 고위직 여성 중에는 그녀처럼 독신이 많았고 결혼한 사람도 대부분 아이가 없었다. 그녀는 자신도 진정한 의미의 개인 생활은 없다고 말했다.

대형 정유회사의 중국 직영점을 운영하는 한 여성 중간관리자는 결혼도 하고 아이들도 잇지만 남편이 일을 하지 않는다. 힐러리 클린턴처럼 성공한 남편을 가진 강하고 성공한 여성들이 있긴 하지만 그런 커플은 어디까지나 예외에 불과하다. 나는 많은 전문직 여성들의 입에서 나도 ‘아내가 필요하다’는 말을 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다. 사회에서 자신의 꿈을 실현하려면 집에서 도와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 재능있느 두 사람이 힘을 합쳐 더 많은 시간과 자원을 하나의 직업에 집중하면 그만큼 성공의 확률이 높아진다.

간단히 말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다. 38년 동안 미국영화협회를 이끌었던 잭 발렌티도 마찬가지엿다. 그는 평생 가족과 떨어져 지내며 야망을 추구한 세월이 ‘우울한 행로’였다고 탄식하면서 80대에 들어섰어도 여전히 바쁜 스케줄에 쫓기듯 움직이며 자식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고 안타까워 했다.”

그런 길을 가려면 즐겨야 한다. "억만장자들의 기본적인 특징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부의 추구를 즐긴다는 것이다. 상을 받는 것보다 이겼다는 만족감 그 자체가 그들을 보통의 슈퍼리치의 대열로 이끈 원동력이다. 자수성가한 억만장자들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에 무관심하다. 그들 중 많은 사람은 사는 모습이 소박하다. 샘 월튼과 워렌 버핏은 자신들의 막대한 재력으로 사치스러운 토지를 사들이는 것을 거절한 사람들이다. 로스 페로와 필 얀슈츠는 그리 비싸지 않은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 만족했으며 해마다 최신 모델을 찾지도 않는다. 다른 슈퍼리치들도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면서 그들의 물질적 욕망을 쫓기보다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노력햇다." (마틴 프리드슨)

당신은 미칠 수 있는가? 즐길 수 있는가? 간절히 원하는가? 그렇다면 이책은 당신을 도와줄 것이다.

이책의 내용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새로울 것이 없다. 이미 2천년도 더 전에 쓰여진 한비자에도 500년도 전 마키아벨리도 말한 내용들이 반복될 뿐이다. 그리고 얼마 전에 유행한 ‘권력의 법칙’도 대동소이하다.

그러나 이책의 가치는 현실감에 잇다. 한비자와 마키아벨리의 이야기는 어딘가 다른 세상의 일처럼 들린다. 그 독자가 이미 권력을 쥔 왕이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런 비현실감은 ‘권력의 법칙’ 역시 마찬가지이다. 권력의 법칙은 수많은 일화들을 모아 놓은 편집이다. 책상머리 편집서란 말인데 물론 흔한 자기계발서들과는 격이 다르다. 그러나 그책의 문제는 비현실감에 있다. 아둥바둥 하루를 넘기기 위해 발버둥 치는 보통사람들에겐 별로 와닿지 않는 거창한 일화들이란 점에서 한비자나 마키아벨리와 별 다를 것이 없다. 더군다나 권력의 법칙은 57법칙이란 영어원제가 말하듯 나열식이다. 내용들을 모아서 생각하면 어떤 줄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잘한 테크닉을 그러모았다는 인상이 강하게 남는다.

그러나 이책은 그렇지 않다. 이책은 우선 직장에서 어떻게 권력의 길에 오를 수 잇는가를 설명한다. 어떻게 권력자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권력을 쥐려면 첫출발을 어떤 부서에서 시작해야 하며 직장 내에서 자원을 통제할 수 있는 네트웤의 게이트 키퍼가 되는 방법,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구축하는 방법 그리고 적대자들과 어떻게 파워게임을 하는가에 대한 방법 그리고 권력의 자리에 올랐을 때 어떻게 권력을 유지할 것인가 등 이책의 내용이다. 물론 이런 디테일은 위에서 말한 책들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이책의 장점은 직장이란 환경을 무대로 한다는 현실감이며 권력의 길을 시작부터 끝까지 서술하는 체계에 있다.

그러면 이책은 ‘미친’ 사람들만을 위한 것인가? 저자는 ‘불행’하게도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저자가 전작인 ‘권력의 경영’에서 자세히 다루듯 사내정치는 조직의 생리이다. 현실이 그렇기 때문에 파워게임은 선택이 아닌 어쩔 수 없는 필수이다.

물론 사내정치는 바람직하지 않다. 얼마전 구글에 매수된 모토롤라는 사내정치 때문에 몰락했다. “정치적 술수가 만연한 직장에서는 직업만족도나 직원들의 사기나 조직 참여도가 떨어지고 이직 희망도 높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이다. “그러므로 권력으로 가는 길을 닦기 위해 들이는 당신의 노력이 당신을 고용한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줄것인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는 당신을 걱정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파트너나 동업자가 있다면 그들도 역시 마찬가이다. 그들은 틀림없이 당신이 어떤 쓸모가 있는가를 먼저 생각한다. 그리고 더 이상 사용가치가 없어지면 언제든 당신을 내쫏을 수 있다. 당신은 당신 자시만 걱정하라. 그렇게 하기 위해 할 수 잇는 조치만 취하면 된다. 언제 왜 쫓겨나는지도 모르고 혼자 힘으로 직장에서 진로를 헤쳐가야 한다면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잇는 수단은 다 사용하는 것이 당연한 대응일 것이다. 그 수단에는 권력과 영향력을 확대해가는 기술과 개념을 습득하는 일도 포함된다.” 그리고 이책은 그 좋은 출발점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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