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맨 - 원시의 뇌가 지배하는 리더십의 탄생과 진화
마크 판 퓌흐트 & 안자나 아후자 지음, 이수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학’이란 이름이 붙는 수많은 분야가 있다. 그중에는 과연 이게 학문의 대상이긴 한가 싶은 것이 많다. 행복학이라든가 대통령학 같은 것이 그런 것인데 이게 정말 학문일 수 있는가, 란 의문이 드는 것은 그 대상이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행복에는 실체가 있는가? 어찌어찌해서 행복이란 대상이 정의될 수 있더라도 행복이란 대상은 인과관계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인가? 이런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리더십도 그런 분야이다. 과연 이게 학문일 수 있는가란 질문에 부정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이책의 저자가 분류하는) 주요학파만 해도 10개(학자에 따라서는 이보다도 더많다)가 나온다. 당연히 학파마다 리더십에 대한 정의도 다르다. 말만 리더십이지 같은 대상을 가리키는지 조차 의심스럽다. 이러다 보니 리더십이란 말이 실체가 있기는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까지 들 지경이다.

따져보면 리더십이란 신생분야만 그런 것도 아니다. 인문사회과학이 다 그 모양이다: 두리뭉실, 애매모호.

그나마 역사가 짧디 짧은 리더십 분야는 더더욱 그렇다. 게다가 이게 실용적 분야이다 보니 그 피해는 경제학이 양산하는 그 많은 착각과 실패를 떠올리게 한다.

사내정치 또는 조직내 권력현상에 대한 권위자인 제프리 페퍼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다음으로 극복해야 할 장애물은 리더십에 관한 글들이다. 유명한 경영전문가들이 쓴 책이나 리더십을 주제로 한 대부분의 강의는 일단 요주의 대상으로 보고 경계해야 한다. 이런 이론들은 조직에서 살아남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 리더십 교육 내용을 봐도 마음의 나침반을 따르라, 진실해져라, 속내를 보여줘라, 함부로 나서지 말고 겸손하라, 억지나 행패를 부리지 말라는 등 근거 없는 처방으로 가득하다. 물론 누구나 자신의 목표를 추구하기보다 다른 사람의 행복에 먼저 마음을 쓰고 그들에게 늘 진지하고 겸손하고 성실하고 변함없이 관심을 가져준다면 이 세상은 훨씬 더 좋고 인간적인 곳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경영전문가들이 권력을 얻는 방법이라고 추천하는 주장들은 하나같이 문제가 있다. 권력을 향해 걸어가는 길은 그들이 제시하는 주장과는 별로 닮은 점이 없다.

리더십에 관한 많은 연구들은 세상은 공정하다고 가정한다. 그래서 어떤 리더나 조직이 성공하면 기계적으로 갖가지 긍정적인 자질과 행동을 그 개인이나 기업의 특성으로 간주한다. 일단 누군가 성공하면 좋은 리더가 되게 해준다는 긍정적인 특징에 관련된 내용만 선별적으로 기억하고 그런 특징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제프리 페퍼) 페퍼는 자칭 리더십 전문가들이 말하는 그런 긍정적인 특성과 현실에서 권력을 잡은 사람들은 다르다고 말한다. 그들이 보는 것은 이미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보여주기 위해 화장한 얼굴일 뿐이라는 것이다. “제 잘난 맛에 하는 소리”를 듣고 그대로 따라하는 순진한 앵무새라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리더십이란 개념이 제대로 정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책이 하려는 일이다.

거창하게 들릴 것이다. 사실 거창하다. 그것이 제대로만 된다면 노벨상감이다. 뭐 노벨상은 인문학에는 주어지지 않지만 말이다.

그러나 저자들은 그게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리더십은 그리고 그 짝인 팔로워십은 심리학적(더 정확히는 진화심리학적) 현상으로 분명한 메커니즘이 있기 때문이라 말한다.리더십은 뱀에 대한 공포나 비만의 원인과 마찬가지로 진화의 유산이라는 것이다.

“고열량 음식을 어디서나 싼 가격에 구할 수 있는 서구 사회에서 증가하는 비만을 생각해보라. 조상들의 시대에는 식량이 귀했으므로 식량이 확보되면 최대한 먹어두엇다.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조상들의 습성을 여전히 갖고 있는 우리는 기회가 될 때마다 지방과 당분이 많은 음식을 먹어치운다.”

저자들은 스티븐 핑커의 말을 빌려 이를 진화의 헛점 또는 ‘부조화 가설’이라 부른다. “우리의 시련은 진화의 역사에서 우리가 가졌던 열망의 근원과 오늘날 우리가 정한 목표 사이의 부조화에서 비롯된다.”

또 다른 예는 뱀이나 거미에 대한 공포이다. “많은 사람들이 뱀, 거미, 전갈 같은 기어 다니는 동물에 대한 두려움, 심지어 극심한 공포까지 느낀다. 조상들의 환경에서 뱀과 거미는 흔히 마주치는 적이었다. 오지에 사는 수렵채집인 부족의 경우 지금도 뱀과 거미는 생존을 위협하는 적이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에서 뱀이나 거미에 물려 죽는 사람은 1년에 20명도 안되며 대개의 경우 희생자는 이 동물들의 주인이다. 우리는 거미가 우리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대개 본능적 두려움을 갖는다.”

저자들은 우리가 그렇게도 많은 무능하고 형편없는 리더를 뽑아왔고 뽑는 이유를 부조화라 정리한다.

“인간의 두뇌는 작고 평등한 구조의 공동체에 맞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조상들이 내렸던 것과 같은 종류의 본능적 판단을 내리곤 한다. 우리는 카리스마가 능력을 보증하는 상징물이라 여기고 카리스마 넘치는 사람을 따른다. 그러나 때때로 카리스마를 풍기는 외모 뒤에 멍청함이나 심지어 악한 성격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곤혹스러워한다. 우리는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정치가에게 표를 던지는데 그것은 우리 조상이 부족을 보호하고자 그런 사람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또 우리는 여성(부족사회에서 주로 집안을 돌보는 역할에 머물러 있었으므로)과 소수민족(우리는 본능적으로 자신과 비슷하지 않은 사람을 경계하므로)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오늘날 키, 나이, 몸무게, 인종, 성별이 특정한 직업이나 직위를 맡기 위한 자격 요건이 되어야 할 아무런 합리적 이유도 없다. 그런데도 사바나에서부터 갖게 된 본능 때문에 우리는 특정한 자리에 앉힐 최상의 적임자를 선택ㅎ는데 종종 실패하며 이는 많은 기업에 잘못된 경영자나 관리자가 들어앉는 결과로 이어진다.”

저자들은 리더십에 대한 자신의 이런 입장을 사바나 가설이라 한다. 다시 말해 우리의 리더십 메커니즘은 우리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아프리카 초원이란 환경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리더십이란 개념을 분명하게 정의하려면 ‘왜’란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 된 것은 집단을 이루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집단이 만들어지면 리더가 있는 것이 집단의 효율성을 높인다. 사냥을 하든 전쟁을 하든 집단을 목표로 이끌 자가 있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러면 왜 어떤 사람은 리더가 되려는 것일까? 집단 전체로선 리더가 있는 것이 좋다. 그러나 리더에게도 좋은가? 꼭 그렇지가 않다.

고릴라나 침팬지 같은 우리 친척들에게도 리더는 있다. 그런 리더들은 “싸움을 말리고 더 강한 라이벌에게서 약자들을 보호하는 등 중재자의 역할을 한다. 집단의 분열을 막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또한 이 알파메일은 종종 집단의 이동을 이끌고 포식동물이나 라이벌 집단 등의 외부위협으로부터 자신의 집단을 보호한다.” 그 보호는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경우도 흔하다. 이렇게 보면 “리더의 지위는 힘들고 보함 없는 일처럼 보인다. 그런데 알파가 굳이 리더의 역할을 맡는 이유는 무엇인가?”

답은 지위이다. 그리고 그 지위에 따라오는 특권때문이다. “진화의 최종 목적은 번식의 성공이고 그러려면 섹스를 해야 하고 섹스를 하려면 섹스 파트너의 눈길을 끌어야 하고 그러려면 지위가 높은 남자가 되어야 한다. 오늘날 지위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연봉이다. 따라서 진화 리더십 이론 덕분에 우리는 돈을 권력과 엮고 권력을 섹스와 엮을 수 있는 연결고리를 갖게 된다.” 저자들은 이것을 “연봉(salary)과 지위(status), 섹스의 머리 글자를 따서 3S”라 부른다.

대단한 특권이다. 그러나 모두가 그것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팔로워를 주저없이 선택한다. 안전하기 때문이다. “진화 리더십 이론의 기본 전제는 200만여년전 인류 역사가 시작될 때 녹록하지 않은 아프리카 사바나 환경에서는 수가 많은 편이 안전했다는 것이다. 팔로워십 인지능력을 소유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더 번성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인지능력은 필요할 때 어떤 사람이나 집단을 따르도록 부추기는 인련의 내장된 ‘만약 ~라면’ 규칙을 말한다. 이런 팔로워십 두뇌는 우리 조상들로 하여금 특정한 상황에서 누구를 따라야 하는지에 대해 신속하고 자동적인 결정을 내리게 해주었다. 예컨데 만약 배가 고프다면 최고의 사냥꾼을 따라야 한다. 만약 나의 집단이 공격을 받는다면 가장 힘센 사람을 따라야 한다.”

좀더 쉽게 말해보자. 왜 취직을 하는가? 돈을 벌기는 고용주가 더 버는 것이 당연한데 말이다? 주는 돈 보다 돈을 더 벌어주지 않는 직원을 계속 떠안고 있을 고용주는 없다. 그러면 왜 자신의 노동보다 더 적은 대가를 받으면서 남의 밑에 있는 서러움까지 당하며 버티는가? 답은 간단하다. 리스크의 문제이다. 고용주는 공짜로 차액을 가져가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그만큼 리스크를 떠안는 것이고 그 리스크는 의외로 크다. 사장들은 오히려 월급쟁이를 부러워한다. 자신도 꼬박꼬박 돈 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모든 손실은 고용주가 부담하지만 고용계약에 따라 월급을 주지 않으면 구속된다. 리더와 팔로워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바나에서 안전만을 생각한다면 얼룩말 같은 수준의 느슨한 집단을 만드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사냥이라든가 집단의 방어라든가 다음 야영지를 선택한다든가 집단 전체가 동원되는 목표가 있을 때 리더가 있는 집단은 효율이 높아진다. 리더는 있다는 것 자체로 집단을 뭉치게 하는 인간접착체이다. 그뿐만 아니라 리더는 불확실한 환경에서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사바나에서 리더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고 능력은 그에게 권위를 주었고 권위는 지위를 주었다. 인류학에서 그런 사람을 빅맨이라 한다.

“임시로 만들어진 집단이 어떤 특정작업(이를 테면 라디오 조립하기)을 완수하는 상황을 관찰한 실험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타난다. 서로를 알지 못하는 낯선 이들로 이루어진 집단에서도 사람들은 각자의 전문 기술을 재빨리 파악하고 문제문제해결에 가장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것 같은 사람을 따른다. 낯선 이들로 이루어진 집단도 대단히 발리 그리고 본능적으로 협동하여 구성원 모두에게 유익한 결과를 도출하는데 이는 분명히 팔로워십의 이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실험에서 관찰되는 “흥미로운 사실은 실질적으로 얻는 보상의 차원에서 리더는 팔로워들에 비해 적은 이익을 누리는 경향이 있엇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의 본능적 리더십이 섬김 리더십 성향을 띤다는 점을 시사한다.”

고인류학의 사례연구를 보면 서비스가 제시했던 밴드에서 군장사회를 거쳐 원시국가로 진화하는 선형적 진화는 매우 드물다. 마이클 만은 실제 역사를 검토해보면 빅맨 단계에서 군장사회(chiefdom)로 넘어갔다 다시 빅맨 단계로 후퇴하고 다시 군장으로 진화하는 evolution/devolution의 사이클이 관찰된다. 군장에서 원시국가, 문명으로 넘어가는 선형적 진화는 극히 드문 경우이며 우리가 아는 한 4개에서 6개가 전부엿다. 그리고 그렇게 진전되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이클 만은 권위에서 권력으로 넘어가는 것은 특정 지역의 특이한 조건이 있어야만 가능했다고 말한다.

그 이유를 이책의 저자들은 사바나에서 형성된 우리의 리더십/팔로워십은 근본적으로 민주주의를 지향했기 때문이라 말한다.

“원시부족사회에서 발견되는 중요한 공통점은 지정된 부족 리더나 공식적인 계급제가 없다는 점이다.” 물론 빅맨이라 불릴 수 잇는 특별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빅맨의 권위는 “전문기술이라는 매우 좁은 영역에 국한되어 있었다. 예컨데 최고의 사냥군은 사냥 지역을 선택하는 문제에서만 가장 뛰어난 전사는 전투에 관한 결정을 내릴 때만 가장 유능한 챡초 채집자는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문제에서만 최종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만약 이러한 개인들이 그 이상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혹은 집단을 지배하려 한다면 이는 중대한 죄로 여겨졌다.”

물론 우리는 영장류이고 우리 친척 고릴라나 침팬지처럼 권위가 아닌 권력을 가지려는 본능이 있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모습을 5분만 지켜보면 다른 친구들을 지배하고 장난감을 빼앗는 아이들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남의 지배를 거부하는 성향도 있다. 권위를 권력으로 업그레이드하려는 빅맨은 언제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성공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권력은 오래가지 않았다. 뒷담화를 한다거나 공개집회에서 집단으로 힘으로 리더의 횡포를 누른다거나(지금의 의회, 주주쵱회) 풍자를 한다거나(왕궁의 어릿광대), 그래도 안되면 리더를 추방하거나 암살하는 방법을 써왔다. 그래도 할 수 없으면 Vote by foot, 발로 하는 투표를 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것이다.

사바나에서 우리 조상들은 좋은 리더에 대한 이미지를 본능으로 갖게 되었다. 저자들은 이를 사바나 가설이라 부른다. “사바나 가설에 따름녀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사바나에서 공격자와 약탈자에게서 우리를 보호해줄 빅맨을 선택할 때와 유사한 기준으로 리더를 선택한다.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는 모든 특성(키, 연령, 남성다운 외모, 성별, 평판 등)은 리더들의 사바나 특성으로 간주할 수 잇다.

리더십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알아보기 위해 62개 문화권ㅇ르 연구한 결과 리더에 대한 사람드르이 인식에 놀랍게도 일관성이 있었다. 청렴(신뢰할 수 있어야 함), 관대함(아량을 베풀줄 알아야 함), 공정함(공명정대해야 함0, 외교적 수완(갈등을 잘 다뤄야 함), 결단력(합당한 판단을 내려야 함), 지성과 능력(집단이 좋은 성과를 내도록 기여해야 함), 비전(이상적인 미래를 그려야 함) 등이었다. 이러한 리더의 원형은 원시 부족사회에서 존경받던 빅맨에 대한 인식과 거의 일치한다.”

문제는 조상들의 사회와 우리의 사회가 다른 리더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바로 그 차이 때문에 우리는 리더십 실패를 겪고 있다고 저자는 본다. “만약 당신이 무능력함에 관해 연구하고자 한다면 기업체의 사무실을 연구 장소로 택해도 괜찮을 것이다. 경영자들 중 약 60~75%가 이상적인 리더의 모습에 훨신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에서는 직원들의 2/3 가 상사를 가장 큰 골칫거리로 꼽았는데 다른나라에서도 이 참담한 수치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조상들의 사바나와 우리의 메트로폴리스의 차이가 이런 실패의 원인 중 하나라고 저자들은 말하며 부조화 가설이라 말한다.

예를 들어 미국 대통령 선거에선 잘 생기고 키가 큰 사람이 단연 유리하다. 사바나에선 분명 그런 사람이 좋은 리더감이엇다. 신체적으로 건강하며 힘이 세다는 말이니까. 그러나 머리를 써야 되는 정치가에게 우리는 초원의 조건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본능이다. “선거 후보들의 사진을 본 어린아이들은 외모만 보고도 상당히 정확하게 숭자를 예상한다.” 신체적인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카리스마 있는 리더를 선호한다. 많아야 150명이 넘지 않는 사바나에선 개인적인 매력으로 인간자석 역할을 하는 그런 리더가 당연히 선호되었다. 그러나 지금도 그럴까?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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