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의 도마복음 이야기 1 - 이집트·이스라엘 초기기독교 성지순례기
김용옥(도올) 지음 / 통나무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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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기행문인 ‘달라이 라마와 도올의 만남 2’에서 저자는 미켈란젤로의 예수상과 간다라미술의 불상을 비교하면서 이런 말을 한다: “예수의 모습과 싯달타의 모습의 이러한 차이는 우리에게 중요한 관념의 차이를 나타내준다. 보다 신적인 예수는 우리에게 인간적으로 다가오는 반면, 보다 인간적인 싯달타는 우리에게 신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것은 기실 역사적으로 대승불교가 우리에게 끼친 해악 중의 하나다. 싯달타라는 인간이 증발되어 버린 것이다.”

붓다의 신적 이미지는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다. 싯달타가 붓다가 되었을 때 이미 그는 인간이라 보기 곤란했기 때문이다.

3권에서 달라이 라마는 해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해탈을 원하지 않습니다. 해탈이 마음의 모든 것의 완전한 종지이며 무라고 한다면 나는 그런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윤회가 더 좋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것보다 훨씬 더 재미있으니까요!”
“그럼 붓다는 재미없는 사람이겠네요?”
“ 그렇습니다. 붓다는 이미 다르마 자체입니다. 어떤 구체적 형상으로는 다시 구현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붓다의 깨달음에 있다. 붓다가 깨달은 것은 無我였다. 무아는 말 그대로 자아를 초월하는 것이며 항상 그렇게 있는 ‘나’란 인격은 없다는 말이다.

“복음서에는 예수의 제자들의 다채로운 초상이 그려져 있기 때문에 서양의 독자들은 초기 불교도에 대해서도 비슷한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아난다와 데바닷타는 빅쿠들의 무리 가운데 두르러졌지만 그들의 초상은 복음서의 생생한 성격 연구에 비하면 여전히 상징적이고 양식화되어 잇다. 심지어 붓다의 최고 제자들이라 할 수 있는 사리풋타와 목갈라나도 언뜻 보기에는 인격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무색무취의 인물들로 제시된다. 붓다와 아들의 관계에 대한 감동적인 삽화도 없더. 우리는 인물이 아니라 이미지만 얻게 된다.

붓다는 서구인들이 그들의 영웅에게서 높이 사는 독특한 자질이나 개성을 소멸시킴으로써 해방을 얻었다. 그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붓다와 빅쿠들은 잘 구별되지 않으며 빅쿠들 역시 모두 작은 붓다로 묘사되고 있다. 빅쿠들 역시 붓다와 마찬가지로 인격이 사라지며 따라서 개인으로서의 특성도 사라진다.

경전의 텍스트들은 빅쿠들의 마음속에 묻힌 비밀을 파헤치는 것을 거부하여 이런 익명성을 유지한다. 또 깨달음의 성취 이전에 그들에게 있었을 만한 성격상의 기벽도 드러내지 않는다. 여기서 예외적인 사람들이 데바닷타와 아난다라는 것은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 데바닷타는 자기중심주의로 가득한 사람이었다. 상냥한 아난다는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 서구인들이 이런 식의 인격 상실을 비난한다면 빅쿠들은 아마 자아의 포기는 닙바나라는 내적 평화를 얻기 위해 얼마든지 치를 수 잇는 대가라고 대답할 것이다. 닙바나는 자아에 갇혀 있는 사람은 얻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카렌 암스트롱, ‘스스로 깨어난 자 붓다’)

그렇기에 인격을 가진 보통 사람에게 깨달은 자란 (인간같지 않은) 신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런 싯달타의 형상이 신적으로 그려진다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 그러나 문제는 형상을 만든다는 자체이다.

아잔타 석굴 가이드가 “저보고 묻더군요. ‘소승과 대승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제가 머뭇거리고 있으니까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불상의 유무지요. 소승에는 불상이 없고 대승에는 불상이 있습니다.” (‘달라이 라마와 도올의 만남 3’)

“붓다를 사람의 형상으로 시각화할 때 그것은 불교의 무아론의 근본취지에 어긋날 뿐 아니라 붓다를 하나의 실체로서 신격화하고 우상숭배의 대상으로 전락할 위험성이 크다. 그러기 때문에 붓다는 제자들이 진리만에 의거하여 살 것이며 자기라는 인간의 형상에는 집착치 말 것을 당부한 것이다. 불상이란 1세기말경 대승운동이 태동되면서 생겨난 것이며 불교사에서 매우 이질적인 것이엇다.” (‘달라이 라마와 도올의 만남 2’)

“대승불교는 불상을 도입하면서부터 엄청난 대중운동으로 발전 도약하는데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기는 했지만 그러한 계기를 통해서 자멸의 길을 걸었다고도 말할 수 잇다. 즉 불교의 진면목은 무신론이었는데 불상을 도입하면서 오히려 유신론으로 전락해버렸다. 불상숭배를 중심으로 한 대승불교에 대한 일반재가신도들의 불교이해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믿고 천당에 가고자 하는 유일신관과 별 차이가 없은 모습이 되고 말았다.” (‘달라이 라마와 도올의 만남 3’)

저자는 기독교에서도 동일한 전락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그 전락을 이해하려면 먼저 기독교는 아시아의 종교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공관복음서가 말하는 예수의 생애는 사실이 아니라 신화로 읽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티머시 프레케와 피터 갠디는 ‘예수 미스터리야 명제’란 가설을 세웠다. 이들의 가설에 의하면 예수는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이 아니라 이집트, 지중해연안, 근동지역에 광범하게 유포되어 있었던 미스테리아 비교의 신화적 운동의 유대인적 버전 속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神人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는 역사적 실체가 아니라 신화운동의 한 가상적 주체이다. 이 가상적 주체야말로 우리 자신이 모두 그리스도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기능을 가지는 신화적 운동의 주체라는 것이다. 그것이 곧 미스터리야 비교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오시리스-디오니소스와 관련된 신화들의 골자를 간추려내면 곹 예수의 신화적 삶이 구성된다는 것이다.

1. 오시리스-디오니소스는 肉化된 신이며, 구세주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다.
2. 그의 아버지는 하나님이며 어머니는 인간동정녀이다.
3. 그는 3명의 양치기가 지켜보는 가운데 12월 25일 동굴이나 허름한 외양간에서 태어난다.
4. 그는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세례의식을 통하여 다시 태어날 수 잇는 기회를 준다.
5. 그는 결손식장에서 물을 술로 바꾸는 이적을 행한다.
6. 그가 나귀를 타고 읍내로 의기양양하게 입성할 때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그를 찬양한다.
7. 그는 세상의 죄를 대속하여 부활절 무렵에 죽는다.
8. 죽은 직후에는 지옥으로 떨어졌다가 사흘 후에는 죽은 자 가운데 일어나 광영 속에 하늘로 올라간다.
9. 그를 따른 자들은 그가 최후심판의 날에 심판관으로서 되돌아오기를 기다린다.
10. 그의 죽음과 부활은 그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 의식으로써 기념된다.
이것은 예수의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의 삶과 공통된 이집트, 근동지역 신화의 매우 보편적인 설화양식이다. 따라서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 이야기의 골력은 당대에 유행하고 있던 흔해빠진 이야기라는 것이다.”

미스테리아 가설은 예수의 부활과 동일한 구조의 신화가 “이집트에서는 오시리스, 희랍에서는 디오니수스, 소아시아에서는 아티스, 시리아에서는 아도니스, 이탈리아에서는 바카스, 페르시아에서는 미트라스”에서 반복된다는 것을 지적한다 “이 신인들은 모두 동일한 신화적 존재이며 이 신화는 기전원 3세기부터 이 지역에서 강력한 세력으로 등장하였다. 조셉 캠벨이 말한대로 이러한 신화들은 ‘동일한 해부학적 구조’를 갖는다” (‘달라이 라마와 도올의 만남 3’)

그러나 복음서 내러티브가 해부학적 구조를 공유하는 다른 신화들과 다른 점은 “뮈토스적 세계와 로고스적 세계를 혼융하는 기묘한 신념체계를 자신의 실존적 삶의 의미로서 받아들이게 만드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었다.”

“고대인은 신들이 하늘에 있다고 여겼지만 실제로 어느 신을 하늘에서 보았다면 아연실색했을 것이다. 시간 문제에서도 고대인이 하는 이야기를 액면 그래도 받아들여 헤파이스토스가 얼마전에 재혼을 했다거나 아테네가 근래에 몹시 늙엇다고 알려주면 그는 마찬가지로 아연해 앳으리라. 그러면서 신화의 시간과 일상의 시간 사이에는 그 자신이 보기에도 막연한 유추적 관계만이 존재할 뿐이라는 것을 그러나 일종의 정신적 혼수 상태에서 그 이질성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을 ‘현실화’시켰을 것이다.” (폴 벤느)

1세기의 헬레니즘 세계는 지금 우리와 그리 큰 차이가 없이 개명된 합리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과 우리를 가르는 것은 그들은 신화의 언어를 알아들었다는 것이다. 신화의 언어는 ‘믿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 언어가 말하는 내용이 사실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대부분의 근대 이전 문명에는 생각하고 말하고 배우는 두가지 인정된 방식이 있었다. 그리스인들은 이를 뮈토스와 로고스라고 불렀다. 둘 다 중요했고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우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둘 다 중요했고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우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둘은 상충관계가 아닌 상보관계로 각각의 고유한 기능이 있었고 둘을 뒤섞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엇다. 신화는 로고스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혼란스러운 세상을 창조적으로 살아가도록 돕는 기능을 했다. 신화가 신에 관한 이야기를 했는지는 몰라도 실은 로고스의 소관 밖에 잇는 인간적 곤경의 좀더 비극적이고 이해하기 힘든 측면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신화는 심리학의 원시적 형태로 일컬어져왔다. 신화가 실을 잡고 미궁을 빠져나가거나 지하세계로 내려가거나 괴물과 싸우는 영웅을 그렸다고 해서 그것을 사실에 근거한 이야기로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한 신화는 우리가 접근하기 어렵지만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알 수 없는 마음의 영역과 타협하도록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자기 마음 속의 미궁으로 들어가서 자기 안의 괴물들과 싸워야만 했다. 프로이트와 융이 인간정신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계획했을 때 본능적으로 주목한 것도 바로 이런 옛 신화엿다. 신화는 역사적 사건을 정확히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신화는 본래 행동을 위한 프로그램이었다. 신화는 우리가 올바른 영적 혹은 심리적 자세를 갖게 할 수는 있었지만 다음 단계로 나아가 신화의 ‘진실’을 만드는 일은 우리 손에 달려 있었다.” (카렌 암스트롱 “신을 위한 변론’)

붓다의 본생담이 그 좋은 예이다. “불교도들은 예나 지금이나 본생담의 이야기를 싯달타 전새으이 다양한 전기문학장르로 파악하지 그것을 역사적 사실로서 이야기하거나 강요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본생담의 주제는 매우 단순하다. 자기헌신이며 희생이며 자비며 사랑이다. 역사적 싯달타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거친 자비행을 통하여 해탈을 이룩할 수 있었나 하는 대승정신의 드라마틱 프리젠테이션인 것이다. 즉 자타카는 사실적 스토리로서의 역사성에 그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보시의 메시지를 구현하기 위한 신화적 선포로서 그 일차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와 도올의 만남 3’)

“예수의 전기도 자타카와도 같은 하나의 문학적 양식으로서 초대교회에 유행했던 하나의 현상이었”다. 그 현상의 의미는 죽음에서 드러나며 그 죽음의 의미는 당시 헬레니즘 문명에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었던 소크라테스의 죽음이었다. “소크라테스를 아주 이성적인 철학자로만 생각하며 그가 아테네의 청년들을 타락시켯다는 죄목으로 재판을 받고 사형에 처해지는 과정이나 예수가 바리새인의 율법을 거부하고 예루살렘성전을 뒤엎고 유대인의 왕으로서 혁명을 꾀하려 했다는 죄목으로 재판을 받고 사형에 처해지는 과정에 동일한 스토리의 구조가 있다는 것 그리고 소크라테스가 아테ㅐ네의 준법정신 때문에 사형을 달게 받은 것이 아니라 사후의 새로운 삶에 대한 종교적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도피할 수 있는 사형을 오히려 자초했다고 하는 그러한 과정이 예수의 스토리와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 (‘달라이 라마와 도올의 만남 3’)이다.

예수는 소크라테스와 달리 부활함으로서 죽음의 의미를 완성한다. “복음서 내러티브의 대전제는 이미 부활로 확정되어 있다. 부활하기 위해서는 죽어야 하며 죽기 위해서는 수난의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수난에 이르기 위해서는 체제를 뒤흔드는 많은 혁명적 언행을 해야 한다. 그 혁명적 언행 속에 또 우리의 인과적 상식을 뛰어넘는 이적이 점철되어 잇다.”

그런 내러티브의 의미는 무엇인가? “예수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바울의 말대로 우리의 삶과 무관한 객관적 물리적 사태로서 믿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죽음과 부활을 나의 실존적 고통의 심연에서 직접 체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죽고 내가 부활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하심을 얻었음이니라’ (롬 6:6~7) 죽어서 천당 가기 위해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복음의 주된 내용 속에 포함되어 잇지 않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사망의 몸에서 벗어나 의로운 삶을 살기 위한 끊임업없는 몸부림이다.”

그러므로 “죽음과 부활의 전제가 없는 예수는 예수가 아니다. 그러나 사실 그러한 예수는 예수가 아닌 그리스도인 것이다. 다시 말해 죽었다 부활한 예수로서 묘사된 예수가 바로 우리를 구원할 구세주로서의 그리스도라고 하는 초기 기독교인의 신상속의 예수일 뿐인 것이다. 그리스도는 분명 초대교회의 케리그마의 소산인 것이다. 선포 즉 케리그마의 대상이 되는 예수는 예수의 색신이 아닌 예수의 법신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법신과 색신을 분리하지 않으며 예수의 법신이 곧 색신이라 믿는다.”

이것이 문제라고, 원시기독교가 대승기독교로 전락한 이유라고 저자는 말한다. “예수에게 인성을 부여해야만 가현론의 픽션을 벗어날 수 잇다고 한다면 그 인성은 매우 정직한 보편적 인성이 되어야 한다. 예수는 부활의 예수가 될 수가 없다. 역사적 예수는 죽었다 다시 살아날 수는 없다. 예수에게 그러한 이적과 부활을 인정한다면 그것은 예수가 아닌 그리스도일 뿐이며 이성의 논의를 벗어나는 불합리한 신앙의 특수상황에 속해버릴 뿐이다. 부활의 예수는 기독론의 핵심이며 초대교회의 프로라간다이다. 기독론으로 예수에 접근한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신화운동의 ㅎ산 고리를 캐는 작업일 뿐이다. 죽음과 부활이라는 주제는 동서고금의 모든 신화의 전형적 양식이며 그것은 융이 말한 집단무의식의 한 아키타입일 뿐이다. 예수의 신성만을 고집하며 인성을 왜곡한다면 그러한 예수는 신화적 예수가 되고 말 뿐이다.

과연 그러한 신화적 요소를 배제하고 기독교는 기독교일 수 있는가? 나는 당당히 외친다: 오히려 기독교에서 그러한 신화적 요소를 배제할 때만이 기독교는 진정한 기독교가 된다! 이적과 부활이 없이도 예수는 예수일 수 잇다. 아니 그것이야말로 예수의 참모습이다.”

저자가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도마복음이 ‘또 다른 예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문헌비평에 따르면 도마복음은 바울의 서신들 그리고 공관복음보다 선행한다. 그리고 공관복음이 도마복음과 상당량을 공유하는 자료들을 비교하면 도마복음의 내용이 공관복음의 원형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잇다. 그리고 도마복음과 공관복음의 공통자료인 “Q자료 속의 예수에게는 탄생설화도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어떠한 이야기도 없다. 예수는 과연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견하고 산 사람이었을까? Q자료 속의 예수는 전혀 그러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것은 다름 아닌 공고나복음서의 사실이다. 따라서 최후의 만찬이니 하는 그럴싸한 드라마도 없다. 나의 피니 살이니 하는 죽음과 부활을 전제로 할 때만 의미를 갖는 그런 언어가 그림자도 없다. 자신의 이해에 있어서도 ‘하나님과 자신’을 아버지와 아들의 친근한 관계로 파악하는 언어는 있지만 아버지가 파견하여 천상(빛)에서 지상(어둠)으로 중생을 구원하기 위해 내려온 자라는 식의 그리스도(메시아)적 이해가 전무하다. 예수는 오직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했을 뿐이다. 천국은 천당이 아니다. 천국이란 하늘구름 위에 붕 떠 있는 어느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은 하나님의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새로운 질서가 지배하는 나라를 의미한다. 예수가 선포한 것은 로마의 지배나 율법의 지배나 바리새인 대제사장의 지배가 아닌 하나님의 직접적 무매개적 지배엿다. 그것은 이 땅위에서의 하나님의 지배였다.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이다.” 하늘에 구현된 그런 질서가 땅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는 요청이다. 바로 이 말씀의 주인공이 예수인 것이다. 역사적 예수의 실상인 것이다.”

그러면 역사적 예수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저자는 견유학파의 현자에 가깝다고 말한다. 예수가 살았던 갈리리 지방은 “그 아이덴티티가 남방의 예루살렘을 포함한 유대지역보다는 비옥한 초승달지대의 개방적 선진문명에 더 근접해 있엇고 더 동화되어 잇었다. 당시 두로와 시돈의 찬란한 역사에 예루살렘을 비교한다는 것은 우리의 상식적 관념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다. 갈릴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예루살렘은 변방의 촌락에 지나지 않았다. 역사적 예수의 입장에서 이 도시들을 감지하는 느낌을 말한다면 주변의 고라신과 벳새다가 충청도의 작은 도시에 비유된다면 두로와 시돈은 뉴욕 맨해튼의 느낌이었다. 당시 지중해연안 최대의 도시였다. 최근의 스칼라십은 예수운동이 당대에 이미 페니키아문명권에 전파되었다는 사실을 당연한 것으로 숙지한다.” 예수 자신도 페니키아문명권과 같은 아람어를 사용했다.”

당시 헬레니즘 시대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한 것은 지식이 아닌 지혜였고 우주의 원질에 대한 통찰이기보다는 인생의 아타락시아의 체득이엇다. 아타락시아란 과도한 쾌락이나 고통 그 어느 것에 의하여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평정이었다. 그것은 도마복음에서 안식(rest)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욕망으로부터의 해탈이엇다. 이 해탈을 가장 철저하게 구현하려고 했던 사람들이 견유학파였다. 예수야말로 디오게네스의 제자엿다는 역사적 아이러니 또한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예수는 견유학퍼족 리얼리즘을 철저히 실천한 사람이었다. 예수는 그의 운동에 가담하는 제자들에게 돈을 담은 전대는 물론 지팡이나 가죽샌달도 그리고 속옷조차도 지니지 못하게 햇다. 지나치는 사람들과 문안인사조차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견유학파의 덕목은 최소한의 질박한 삶이엇고 모든 세속적 가치에 대한 절제였다. 예수가 비유를 잘 들기로 유명한데 견유학파의 사람들이야말로 비유의 천재엿다. 역사적 예수는 갈릴리의 견유였다.” (2권)

도마복음의 예수는 철저히 현자였다. 현자로서 예수는 종말론적 예수와는 거리가 멀다고 저자는 말한다. “예수공동체는 철저히 지혜담론의 공동체였으며 그 지혜담론적 성격이 후대에 내려오면서 점차 묵시담론적 틀 속에서 재해석되어 갔다. 묵시담론은 물론 기독론의 형성과 관련되며 그것은 유대국가의 멸망이라는 긴박한 현실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 교회는 종말론적 공동체의 성격을 띤다. 묵시담론은 선택된 자들의 폐쇄적 사유에서 기인되는 것이며 지혜담론에 어떤 긴장감과 긴박감을 부여한다.

불트만은 말한다: ‘종말론적 분위기라는 것은 기대나 계산이나 희망이나 염려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선민이라는 의식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선민의식은 선택된 자들과 선책되지 않은 자들의 분별을 초래한다. 그리고 이러한 분별은 선택된 자들은 하늘에 속하고 선택되지 않은 자들은 땅 즉 세계에 속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것은 곧바로 하늘은 빛이고 세계는 어둠이라는 이원적 사유로 연결된다. 여기에 플라톤적 사유가 결합되면 하늘이라는 이데아만이 실재하는 것이 되고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그림자며 실재하는 것이 아니며 멸절의 대상이 된다. 여기에 도덕적 이원론까지 더하면 선택된 자들만이 도덕적으로 선한 사람들이며 선택되지 못한 이 세계의 사람들은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악의 구현체가 된다. 그러니 이 세계는 멸절의 종말로 치닫지 않을 수 업6t다. 그것이 최후의 심판이다.

공관복음서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이 세대’라는 표현은 바로 이런 종말론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심층구조적 언이다. ‘이 세대가 왜 이렇게도 악할까? 이 세대가 기적을 구하지만 요나의 기적밖에는 따로 보여줄 것이 없다.’ (눅 11:29, 마 12:39 막 8:12)

그러나 예수는 유대인의 선민의식을 거부한 갈릴리 사람이엇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외치는 그에게는 철저한 인간평등사상이 있었다. 그리고 이 세계에 대한 저주 아닌 사랑을 가지고 있었다.이것이 바로 지혜담론의 핵심이다. 그리고 그것은 예수라는 역사적 인물의 핵심사상이었다. 묵시담론은 후대 기독교공동체의 성격에서 발생한 것이다. 예수는 오히려 묵시담론을 거부한 사상가엿다. 도마복음서에는 묵시담론이 없다. 이것이 바로 도마복음서의 성격이 Q복음서보다도 더 오리지널한 예수의 담론을 드러내고 있다고 추론케 만드는 한 근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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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재발견 - 과대평가와 과소평가 사이에서 제자리 찾기
이우광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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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SERI에 연재되었던 글들을 책으로 묶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일관된 주제가 없다. 단지 일본이란 주제로 글들을 묶은 것에 불과하다. 물론 이책의 글들은 2000년대 일본, 정확히는 헤이세이 불황 이후의 일본을 정치, 경제, 사회로 나누어 이전과 어떤 점이 달라졌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그 측면들이라는 것이 큰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디테일에 더 주목하고 있고 그 자체로 완결된 글들을 모은 것이기 때문에 이책을 요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1장에선 일본의 신세대들의 생각과 라이프스타일을 설명하는데 할애되었다면 2장은 장기불황기를 거치며 떠오른 새로운 경영자를 살펴보면서 일본의 경영철학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살펴보고 있고 뒤에선 좀더 전통적인 정치, 경제를 다룬다. 이것저것 다양한 내용을 한권으로 볼 수 잇다는 점이 이책의 장점이다. 그러나 하나의 리뷰로 그 내용들을 요약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러므로 여기선 이책의 경영전략에 관한 부분만 정리해본다.

“일본에서는 전통 게이샤들이 있는 유흥가를 하나마치라 한다.” 그러나 하나마치는 교토 밖에선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 이유는 교토 하나마치의 오차야 시스템 때문이다. 오차야는 게이샤의 가무와 요리를 즐기는 좌석을 제공하는 곳이다. 특이한 것은 교토의 “오차야에서는 게이샤나 요리사를 직접 거느리지 않고 전부 아웃소싱한다. 한국은 물론 도쿄나 오사카 등지의 요정이 게이샤와 요리사를 보유하는 것과는 다르다. 오늘날 요정은 쇠퇴하는 반면 하나마치가 번창하는 것은 그만큼 경쟁력 있는 시스템을 갖춘 덕분이 아닌가 싶다. 요정이 수직통합 시스템이라면 하나마치는 수평분업 시스템이다 그런데 이 분업은 고객에 대한 서비스를 극대화하기 위한 분해(unbundling) 시스템이다. 오차야의 경영자인 오카상은 손님에 대한 접객 서비스를 극대화하기 위해 게이샤와 요리 등 서비스의 모든 구성요소를 분해해 아웃소싱하고 이를 다시 조합하여 최고의 서비스를 창출한다. 따라서서 오카상이 얼마나 독창적인 감성으로 서비스를 코디네이트하느냐에 따라 사업의 성패가 달렸다. 게이샤가 소속된 오키야와 게이샤 그리고 요릿집은 오카상의 부름을 받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며 기능을 향상한다. 요컨데 분해의 장점이 발휘되는 시스템이다.”

80년대 일본식 경영을 말할 때 반드시 언급되던 케이레쓰 시스템 역시 이러한 논리로 운영되었다. 케이레쓰 시스템의 특징은 “장기적, 안정적 지속적 거래”이다. “단발성 거래라 이익이 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장기적 혹은 전체적으로 이익을 낼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래방식이다.” 이런 장기적, 안정적 거래는 신뢰를 전제로 하고 신뢰를 강화한다. “일본 기업들은 양자 간에 신뢰를 구축하는 것뿐 아니라 다자간 네트웤으로 신뢰관계를 구축하는 것도 특징이다. 협력회사, 자회사, 모회사 등 거대한 기업 계열 관계가 이에 해당한다. 기술이나 정보가 유출되지 않는다는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기술이나 신제품을 공동 개발하는 시스템이다. 이런 시스템이 바로 세계적 부품, 소재기업을 키워내는 배경이다.”

이런 시스템의 특징은 ‘제조현장을 통합하는 조직능력’이다. “여기서 통합이란 의미는 제조현장에서의 팀워크, 정보공유, 업무호흡, 미세한 조정, 까다로운 고객에 대한 대응, 장인 정신과 같이 정량화하기 어려운 요소들을 말한다. 일본 기업들은 조립 메이커, 부품업체. 소재업체간의 긴밀한 협력으로 통합을 이루어내는 조직 능력이 다른 나라의 기업보다 탁월하다. 일어에 스리아와세란 말이 있다. ‘서로 부딪치며 세밀하게 맞추어나간다’는 의미인데 표준화되거나 정해진 것이 아니라 세밀한 니즈나 용도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말한다. 일본이 강점을 갖는 부품, 소재, 장비는 대부분 이러한 통합형 제품이다. 한국이 일본에서 수입하는 제품이 대부분 그렇다.”

일본기업의 통합력은 스리아와세를 필요로 하는 장기적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물론 거래 기업간의 관계를 고정시킴으로써 비용이 발생할 수도 잇다. 최근 일본 기업들이 계열 구매를 시장 구매로 돌린 것도 비용절감을 위해서다.” 실제 일본기업들이 80년대부터 동남아, 중국으로 생산거점을 옮기고 아웃소싱을 확대한 것은 비용절감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부품, 소재 등 스리아와세가 필요한 제품에 자신의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일본기업들은 스리아와세가 가능한 일본내에선 수직통합을 그대로 유지하고 그럴 필요가 없는 범용부품에선 수평분업을 추구해 최적의 비용구조를 만들려 햇다.

그러나 통합력이란 장점은 단점이 되기도 한다. 저자는 일본이 따라잡힌 이유를 ‘이노베이션 딜레마’라 말한다. “D램을 예로 들어보자. 1980년대 D램의 주요 용도는 전화교환기나 대형 컴퓨터였다. 그래서 일본기업들은 고도의 기술로 고장이 잘 나지 않는 D램을 만들어 반도체 대국이 되었다. 이때 일본에는 고성능, 고품질 반도체를 만드는 기술 문화가 정착된다. 발주 업체에서도 보통 25년 정도를 보증하는 품질과 신뢰성을 요구했다. 문제는 D램의 수요가 전화교환기에서 PC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시장에서는 고품질보다 저가의 반도체를 요구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고품질 반도체를 만들려는 일본기업들의 기업문화는 변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D 램의 제조원가가 비싸져 경쟁력을 잃었다. 이런 현상은 D램뿐 아니라 액정이나 시스템LSI 등 전자산업의 여러분야에서 발생하고 있다.” 클레이튼이 지적한대로 스리아와세에 능한 일본기업은 기존고객의 니즈에 너무나 충실했기 때문에 새로운 수요에 맞출 수 없었다. 스리아와세는 고품질, 고성능에 유리하다. 그러다보면 “고객이 요구하는 것 이상의 고성능, 고품질 제품을 만들고 그 때문에 가격이 비싸져 고객들이 외면한다.” 물론 그런 시스템이 더 유리한 시장이 있다. 소위 명품 시장이다. 명품은 “기능 이상의 고가격에도 불구하고 비즈니스는 성립된다. 그런데 일본 기업들은 고품질 제품을 만들줄은 알아도 고가격으로 사주는 시장은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 제품에 맞는 고객을 창출하거나 아니면 고객이 요구하는 가격의 제품을 만들어 시장을 창출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실제 일본기업들은 그 논리를 따라 고급시장에 치중했다. 이번 금융위기에서 일본이 심각한 타격을 입은 이유이기도 하다. 금융위기로 수출시장이 타격을 받으면서 일본은 위기의 진앙인 미국보다 훨씬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그러나 문제는 “수출의존도가 일본보다 훨씬 높은 한국이나 중국 또는 독일보다도 일본이 훨씬 더 심각한 타격을 입은 것이다.” 그 이유는 “일본은 수출에서 차지하는 부가가치의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비교적 값이 싼 원재료를 수입해 높은 기술력으로 가공, 부가가치를 훨씬 높인 제품으로 수출하기 때문에 수출 감소로 인한 타격이 상당히 크다는 것이다. 일본의 소재, 부품, 장치 업체들의 경쟁력이 다른나라보다 높은 탓에 타격이 더욱 컸다.” 그리고 “고부가가치화를 위해 신흥국 시장보다 미국이나 EU 같은 고급 시장에 주력한 것도 큰 타격을 입은 이유 중 하나다. 물건을 싸게 만드는 데 별로 자신이 없는 일본기업들은 높은 기술력으로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을 고급시장에 수출하겠다는 전략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선진국 시장이 증발”해버렸다.

“이런 배경에서 최근 일본기업들의 전략이 크게 바뀌고 있다. 선진국 시장보다 신흥국 시장을 중시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볼륨존’을 중시하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 신훙국의 중산층 시장을 노리라는 이야기다. 이 전략으로 성공을 거둔 사례는 이미 유명해졋다. 혼다는 베트남 시장용 이륜차를 개발해 중국 제품을 몰아냈고 스즈키 자동차는 인도 시장에서 50% 가까운 점유율을 차지하고 잇다. 일본기업들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신흥국 시장용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잇다는 방증이다. 더욱이 ‘저가제품생산’이야말로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분야하는 주장도 제기되고 잇으니 기술적으로 앞선 일본기업들이 그런 제품을 생산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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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리더십 - 공유하고 소통하고 개방하라
쉘린 리 지음, 정지훈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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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년간 소셜미디어에 대한 서적이 쏟아졌었다. 그 내용은 둘 중 하나이다: 소셜미디어가 어떻게 사회를 바꿀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시장을 바꿀 것인가.

인터넷이 그러했듯이 소셜미디어도 세상을 바꾸어놓았다. 바뀐 세상에서 시장도 바뀌는 것은 당연하고 바뀐 시장에선 생존논리도 달라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논의는 거의 마케팅에 국한되었었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논의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이젠 상식이 되었고 다들 하는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상식의 결론은 대충 이렇게 정리된다(더 자세한 논의는 클라라 샤이의 ‘페이스북 시대’이 추천할만 하다).

영업의 경우 영업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페이스북이나 링크드인에서 먼저 확인할 수 있다, 상대방의 인맥을 먼저 확인하고 추천을 받아 영업을 더 쉽게 할 수 있다. 소셜미디어로 달라진 점이다. 이전의 영업에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소셜미디어는 영업을 더 쉽게 해주는 도구이다.

마찬가지 논리로 회사 자체를 영업한다고 할 수 있는 채용에서도 소셜미디어는 더 편리한 도구가 되어 준다.

그러나 마케팅은 영업과 채용과 달리 상당한 변화가 일어나고 잇다. 가령 광고의 경우 사용자들의 공개 프로필의 정보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이전의 인터넷 광고보다 더 정밀한 타겟팅이 가능해졌으며 입소문 마케팅도 현실적인 대안이 되었다.

마케팅도구로서 소셜미디어는 앞으로도 많은 발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상황은 대충 위와 같이 정리된다. 그러면 이것으로 끝이고 앞으로 지켜보기만 하면 되는가?

그렇지는 않다. 소셜미디어는 기업 밖만 바꾼 것이 아니라 기업 안도 바꾸어 놓았다. 예를 들어 ‘일터전쟁’의 저자들은 인사관리자의 입장에서 소셜미디어를 바라본다. 조직관리 측면에서 앞으로 주류가 될 밀레니엄 세대와 그 후 세대들의 입맛에 맞게 일터를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이 선호하는 직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천성이 되어버린 소셜미디어의 논리에 맞게 조직을 다시 짜야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방어적인 혁신이 아니다. “마케팅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고객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능력으로 재창조된 것처럼 인사부서도 이 시점을 제때 활용해 혁신과 변화를 도입할 수 있다.” (진 마이스터, 캐리 윌리어드) 그렇게 일터를 바꾸는 것은 동시에 인력부족에 대응하고 조직을 고도화되어가는 지식경제에 적응하고 효율성을 높이며 경쟁력을 갖추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저자들은 구체적으로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소셜 네트웤 기술에 맞춰 조직구조와 워크플로우를 재편해야 한다고 말한다. 소셜 미디어를 조직구조 안으로 가지고 온다는 것은 정보의 흐름이 유연해지면서 사내의 자원활용이 극대화되고 생산성이 증대된다는 말이며 유연한 조직이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기업의 리더십은 그런 변화에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가? 이책의 주제이다.

소셜미디어는 우선 통제력의 상실로 다가온다. “소셜 테크놀로지는 사람들(고객)에게 힘을 실어주었을 뿐 아니라 직원들에게 새로운 협업 방법을 제공했고 그들의 일에 대해 공개적으로 불평할 수 있는 기회도 주었다. 전에는 전화나 이메일처럼 개인적으로 처리될 수 있었던 문제들이 이제는 공개적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물론 예전에도 사람들이 여러분의 회사나 조직 운영방식에 대해 뒤에서 떠드는 것을 통제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얼마전까지는 이런 뒷이야기는 그렇게 큰 공개적 파급력을 가지지는 않았다. 일에 대한 불만이 있다면 아마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불평을 했을 것이다. 과거에는 불평의 영향이 고작해야 가까운 지인들 정도에서 그쳣다는 말이다. 그러나 요즘은 회사에 대한 정보를 알고 싶다면 glassdoor.com에 방문하면 된다.”

통제란 정보의 통제이다. 그러나 소셜미디어는 정보를 더 이상 통제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통제를 포기하라고 저자는 말한다. 언제는 당신이 고객, 직원, 협력사를 통제하고 잇었는가? 그것은 환상일 뿐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여러분은 고객이 여러분의 제품을 사도록 강제할 수 없다. 여러분은 직원들이 회사의 특정 계획에 대해 지지하도록 만들 수 없는데 그들은 앞에 나서서 강한 반대는 하지 않지만 협조하지 않는 방식으로는 행동하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는 그것을 공개적으로 만들었을 뿐이다. “여러분은 통제하고 있지 않으며 이제껏 통제한 적도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까? 바로 욕구다. 개방하기 위해서는 통제의 욕구를 내려놓아야 한다.” 소셜미디어의 충격에 적응하고 살아남으려면 “통제를 포기하는 리더의 능력 바로 열린 사고방식”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통제를 포기하면 다른 통제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책의 제목의 이유이다.

사실 새로울 것은 없다. 경영학에서 수도 없이 말해져온 권한이양, 위임, 열린조직, 분산형 의사결정 등의 논의와 별 다를 것은 없다. 단지 그 환경이 달라졌고 그 필요성이 더 현실적이 되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리고 그 empowerment의 방향이 직원뿐 아니라 고객과 협력사와 같은 외부환경까지 확대된 상황이 다른 점이다. “기술은 이러한 종류의 공유를 조직 외부로 확장햇고 새로운 채널을 통한 업데이트와 고개 서비스 제공이 가능해졋다. 고객과 파트너는 더 많은 세부 내용을 더 자주 듣고 싶어한다.”

그러한 환경에서 요구되는 리더형을 저자는 오픈 리더라 한다. “오픈 리더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어떻게 모든 직원들과 목표를 공유하고 조직 내외부를 가리지 않고 광범위한 소통을 하느냐다. 오바마 캠페인은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을 한데 모음으로써 성공햇다. 같은 목표가 만들어진 뒤에는 핵심 가치들을 위해 모든 사람들이 참여했고 이러한 광범위한 참여가 오바마를 당선시켰다. 시스코의 CEO 존 챔버스도 이런 종류의 문제를 매일 직면해야 햇다. 비록 CEO일지라도 6만5000명이나 되는 직원들을 통제해 하나의 전략을 받아들이고 움직이게 할 수는 없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회사의 전략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이해해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새로운 전략 프로세스를 만든다. 그 핵심은 명확한 단어와 가치 그리고 목표를 정한 뒤 이를 통해 전략적인 토론을 유도하는 것이었다. 전략의 핵심은 협업이었다. 이를 통해 그는 시스코의 분산 의사결정구조를 현실화햇다. “목표를 공유하려면 신뢰가 필요합니다. 신뢰는 행동을 필요로 하지요 그렇다면 기술은 무엇을 할까요. 바로 행동을 외부에 노출합니다.”

전혀 새롭게 들리지 않는다. 단지 다른 것이라면 기술용어들 뿐이다.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웹 2.0 등등. 이책의 내용은 새롭지 않다. 새롭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것이다. 소셜미디어가 나왔을 때 인터넷에 대해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듯 전혀 다른 세상이 될 것처럼 호들갑들이엇다. 그러나 결론은 사람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차피 그 기술을 쓰는 사람이 같다면 그 기술은 지금의 확장일 뿐이다. 경영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이 모여 움직이는 조직도 마찬가지이다. 단지 그 도구가 추가되었을 뿐이다. 이책은 조직에 기술이 무엇을 더했는가를 말할 뿐이다. 그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 것이며 그 기술을 제대로 이용할 마인드셋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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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3 - 인도로 가는 길
김용옥(도올) 지음 / 통나무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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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인들에게 불교가 어필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달라이 라마가 도올에게 던진 질문이다.

유럽에서 기독교는 멸종 직전이다. 서구에서 기독교의 생명력은 그나마 미국에서 살아남았지만 “미국에서도 상류층이나 지식인이나 지도층보다는 흑인이나 소외된 보수세력의 지지기반 속에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과 같은 샤머니즘적 성향이 강렬한 제3세계나 기독교 전통을 새롭게 수용한 신생국가에서 오히려 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에서 개화된 상류층의 트레이드 마크가 기독교일 수는 있어도 불교이기는 어렵다. 그런데 미국사회에서는 오히려 하층부의 사람들은 햄버거나 스테이크를 잔뜩 먹고 뚱뚱하며 기독교의 영성에 사로잡혀 있는 반면, 개명한 상층부의 사람들은 비만형의 인간들이 별로 없고 채식주의자들이 많으며 불교도라는 트레이드 마크를 달고 일본 스시집에를 잘 간다.”

뉴욕 센트럴 파크에 달라이 라마가 나타나면 잔디밭을 “메우는 업숙한 수만의 군중은 75%가 대학원 졸업생들이라고 한다. 현재 미국 불교도의 60%가 박사며 의사며 변호사며 회사고위간부 등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달라이 라마는 묻는 것이다. 이에 대해 도올은 이렇게 말한다. “미국 사회의 인텔리겐챠들은 더 이상 기독교로부터 새로운 문명의 젖줄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 정신적 빈곤이 찾아오게 마련이고 여유로운 정상적 생활의 루틴을 가진 사람일수록 새로운 정신문화를 갈망한다.” 사람은 어쨌든 의미를 찾는 동물이고 그 의미를 영성이라 한다. 더 이상 기독교는 그 영성을 주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과학의 보편화이다.

현대인의 종교는 과학이라 말해진다. 그러나 과학은 삶의 의미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의미는 과학의 대상이 아니다.

맥락은 다르지만 이책 다른 부분에서 언급되는 중국의 상황이 과학으로 인한 의미의 공허와 유사한 예이다. 달라이 라마는 중국의 진정한 문제를 문화와 도덕이라 말한다. “그것은 중국문명의 총체적 위기상황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중국공산당은 맑스주의에 대한 완벽한 믿음의 기초 위에서 완벽하게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신념에 불타있었습니다. 더 이상 유교적, 불교적, 도교적 가치가 새로운 사회건설에 타당성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난 50여년동안 계급투쟁만을 가르쳤고 전통적 가치의 타도를 가르쳤습니다. 그들이 가르친 것은 ‘증오’였습니다. 전통적 仁의 가치, 서로의 인간성을 존중할 줄 알며 약한 자를 도와줄 줄 아는 마음씨, 온유와 사랑, 양보와 희생, 이런 것들이 갑자기 무용지물이 되고 악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우리가 홍위병과 같은 어린애들 장난의 파괴적 광대짓을 보면 얼마나 그 가치전도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지구상의 공산주의의 모든 실험, 무계급사회의 건설은 하나의 춘몽이었다는 사실이 너무도 여실하게 입증되었습니다. 이데올로기의 목표 그 자체가 현실성이 없는 것이라면 그 이데올로기의 정당성 그 자체가 의미를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중국은 갑자기 모든 가치관을 잃어버렷다. 문제는 “아시아에서 자유라는 가치의 최대의 의미는 저는 전통문화의 보존과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어떻게 살려나가느냐 하는 문제와 관련된 창조적 혼돈이라 생각합니다. 중국은 여태까지 그러한 창조적 혼돈이 허용되지 않는 50여년 세월을 살아왔기 때문에 생긴 정신적 공백을 메꿀 길이 없습니다. 그러한 정신적 공백 때문에 범죄, 마약, 이기주의, 물질만능주의, 관료들의 부패, 도덕적 해이, 이러한 문화의 총체적 위기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서구의 문제는 과학혁명의 충격으로 기독교가 무력화되었다는 것이다. 도덕을 정당화해주는 종교가 무력화되면서 중국처럼 정신적 공백이 생긴 것이다. 과학은 도덕을 정당화해주지 못한다. 그러나 “근세과학은 인류에게 무신론과 상식에 대한 무한한 신념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초월적인 창조주에로의 복속을 거부하게 되었다. 기독교로부터 불교에로의 세계사적 전환은 바로 이러한 과학의 보편화란 정신적 토양을 전제로 해서 이루어지는 사건이다. 다시 말해 싯달타의 정신혁명은 2500년후에나 세계 기독교가 성취해놓은 과학문명의 새로운 정신적 토대를 계기로 겨우 드러나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과학과 호환되는 종교는 기독교가 아니라 불교이기 때문이다. “무신론자들에게는 무신론의 종교가 필요하다. 무신론 자체가 과학이라는 인과세계의 신념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영성을 부여할 수 있는 유일한 종교이기 때문에 21세기 인류사의 정신적 패러다임 쉬프트가 불교를 통해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

“That’s right” 달라이 라마의 말이다. “불교는 신이 없이도 인간에게 무한한 영성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불교는 엄연한 종교입니다.”

불교의 교리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緣起이다.

“시공간 밖에서 일어나는 사태는 연기론에서는 인정이 안됩니까?”
“인정될 수 없습니다.”
“연기는 과학입니까?”
“그렇습니다. 불교는 과학입니다.”
“불교는 마음의 과학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불교는 심리학이라고 해도 좋겠군요.”
“심리학이라 말 못할 것이 아무 것도 없지요. 불교는 심리학입니다.”

달라이 라마의 답변은 단호하고 간결하다.

“과학적 진리도 상대적 진리일 뿐입니다. 성하께서는 절대적 진리가 잇다고 생각하십니까?”
“절대적 진리는 없습니다. 물론 불경에 보면 절대적이고 영원한 진리 이 따위 말들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불타의 깨달음이 연기인 한 절대적인 진리는 없습니다.”

불교에는 기독교처럼 절대진리를 선포하는 교리가 없다. “마치 절대적 진리가 없으면 살 수 없는 것처럼 그리고 이 우주에는 절대적인 그 무엇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공포감이나 중압감의 포로가 되어버립니다. 이것이 기독교 일신론 사유가 지어낸 서구적 발상의 일대오류라 생각합니다.” 연기론을 확장한 空은 이러한 사유를 절대를 실체로 만든 유아론이라 말한다.

불교에서 절대적인 것은 없기에 지혜와 지식은 같이 가야만 한다. “저는 감정과 본능에 치우친 신앙심과 자비심은 오래갈 수 없다는 것을 누누이 역설해왔습니다. 궁극적으로 감정과 이성은 인간에게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의식쳬게의 소산이며 영적 수행에 지성의 역할은 너무도 중요한 것이비낟. 그리고 물론 지혜와 지식은 이분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혜를 증가시키지 않는 지식은 결코 지식이라 부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이런 말을 한다. “지식이 곧 지혜라는 신념은 나의 체험적 소산이며 그러한 생각에는 동요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불교는 현상적 일원론입니까?”
“물론입니다. 모든 일원론은 현상론일 수 밖에 없습니다. 서양철학의 한계는 현상 그 자체를 무시하고 들어간다는데 있습니다. 이것또한 기독교와 관련된 사유체계가 파생시킨 뿌리 깊은 오류이지요. 우리가 살고 잇는 현상은 허깨비 같은 것이며 가치없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뿌리깊은 경시가 모든 오류를 파생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일원론은 현상적 일원론밖에는 성립할 수 없습니다. 불교의 핵심은 不二입니다.”

명쾌하다.

“불교를 심리학이라 하셨는데 그 심리학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입니까?”
“마음의 평화입니다.”

여기서부터 달라이 라마와 도올의 논쟁이 시작된다. 마음의 평화는 열반을 쉽게 말해준 것이다. 문제는 윤회이다.

“”열반이 마음의 상태라 하신다면 우리가 열반적정의 마음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면 번뇌도 곧 보리가 되는 것이르므로 윤회도 사라져 버릴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마음의 상태에 이르든지 그 마음의 상태가 윤회하는 것입니다. 윤회하는 것은 마음입니다.”
달라이 라마는 윤회를 사라지게 하는 것은 해탈이라 구분한다. 그러면서 “윤회는 사실입니다.”고 선언한다. 그러면서 장시간에 걸쳐 불교교리사에 등장하는 윤회에 대한 복잡한 논쟁이 둘 사이에 재연된다.

도올의 마지막 질문은 깨달음에 관한 것이다. “성하 당신은 정말 깨달으셨습니까? 정말 깨달으셨다면 그것을 저에게 전달해 주실 수 있습니까?” 모두 궁금해할 질문이다.

“지금 내 몸은 예순하고도 일곱해가 된 몸입니다. 그런데 나의 정신, 나의 생각은 항상 맑고 깨끗합니다. 저는 자라나면서 어느 순간엔가 空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갑자기 세계가 넓어지더군요. 뭔가 이 우주와 인생에 대해 조금 알듯햇습니다. 그러면서 시야가 넓어지고 공이라는 진리는 내가 살아가는 데 매우 유용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물 전제를 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자비를 깨달았습니다. 깨달음을 물으신다면 이 공과 자비를 통해 무엇인가 조금 이 우주와 인생에 대해 통찰을 얻었다는 것, 그런 것으 말씀드릴 수 있을 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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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침체의 교훈 - 재정 정책 VS 금융 정책
리처드 C. 쿠 지음, 김석중 옮김 / 더난출판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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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Japan bashing, Japan nothing, Japan passing. 지난 한세대 동안의 미국 일본학을 요약한 말이다. 일본이 세계를 지배할 것처럼 보였던 80년대는 ‘Japan as No.1’과 함께 시작되었다. 지금이나 그때나 미국은 헤게모니의 침식을 경험하고 있었고 지금 중국 때리기(China bashing)를 하는 것처럼 일본을 찬양하는 동시에 공격하는 것이 당시 분위기였다.

그러나 90년대 헤이세이 불황과 함께 잃어버린 10년은 분위기를 바꿔버린다. 그렇게 잘나가던 일본이 어이없게 무력한 모습을 보였고 그것도 너무도 오랫동안 비틀거렸다. 미국의 분위기는 일본은 아무것도 아냐(Japan nothing)으로 바뀐다. 그리고 그런 관심마저 시들었을 때 일본에 대해선 무관심 밖에 남은 것이 없었다(Japan passing).

일본에 대한 무관심으로 분위기가 바뀌기 전 그렇게 잘 나가던 나라가 왜 이렇게 무기력하냐 그 이유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잇었다. 물론 일본이 무기력한 직접적인 이유는 거품 붕괴 이후 헤이세이 불황이었다. 문제는 그 불황이 왜 이다지도 오래 가냐였다.

설명은 많앗다. 정관재계의 Iron triangle로 대변되는 일본 정치경제의 폐쇄성이 문제라는 논의부터 규제를 남발하는 국가개입이 말썽이라는 논의 일본 성장모델이 시대에 적응을 못했다는 논의 등 수많은 말들이 쏟아졌다. 말이 많으면 말의 질도 올라가기 마련이라 그러한 논의의 정점을 장식한 것이 Two Japan 이론이다.

헤이세이 불황은 분명 거시경제의 문제이다. 그러나 그 불황이 이다지도 오래가는 이유는 거시적인 문제로 돌리기엔 석연치가 않았고 일본경제의 미시적 기초가 잘못되었다는 논의로 이어진다.

Two Japan 이론은 일본경제가 겉보기보다 취약하다는 논의로 시작한다. 건강한 경제라면, 경쟁력있는 경제라면 생산성이 높고 생산성이 높으면 이윤율이 높아야 한다. 그러나 미국, 독일과 비교했을 때 일본의 특징은 저생산성과 저이윤율이다.

이에 대해 크루그먼은 아시아 금융위기 직전에 아시아의 기적은 생산성 증가가 아니라 노동과 자본의 투입을 늘리는 식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말한 적이 있다.

Two Japan 이론은 크루그먼과는 다른 설명을 한다. 일본경제의 저생산성과 저이윤율은 평균의 문제라는 것이다. 고도의 경쟁력을 갖춘 수출부문과 평균을 갉아먹는 비참하게 경쟁력 없는 내수부문의 두개의 일본이 있다는 말이다. 일본의 높은 물가는 생산성이 낮은 내수부문 때문이다. 당연히 이것은 수출부문의 경쟁력을 갉아먹으며 수출부문이 벌어들이는 이윤을 내수부문으로 이전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세계화 시대에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더 이상 이런 시스템으론 버틸 수 없게되었다는 것이 Two Japan 이론의 요지이다 (이 이론의 대표적인 저술로는 Richard Katz의 ‘Japan the System that Soured’와 마이클 포터의 ‘Can Japan Compete?’를 보라)

저자는 Two Japan 이론에 동의한다. “오늘날 일본은 대기업, 특히 해외로 진출한 기업들의 경우 선전하고 있는 반면에 소규모 사업체나 가계는 겨우 생존하는데 그치는 상황이다. 지역에 따른 불균형도 발생햇다. 대기업이 집중되어 잇는 도쿄나 나고야 같은 도시 지역은 부의 전성기를 누리고 잇는 반면, 소규모 사업체가 대세를 이루는 지역경제는 무릎을 꿇기 직전이다. 이런 불균형의 뿌리에는 세계화, 그중에서도 특히 중국과 인도의 부상이 자리잡고 있다. 이론적으로 중국과 인도의 부상이 모든 선진 경제에 유사한 효과를 나타내야 하지만 일본이 특히 큰 타격을 입은 것같다. 그 이유는 일본은 이번이 추격을 당한 첫번째 경험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시스템은 이러한 도전에 대응할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잇지 않은 상태엿다.”

그에 비해 다른 선진경제는 이미 60년대 중반부터 그런 충격을 겪어보았다. 바로 일본의 부상이 던진 충격이었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현재 1970년대 미국과 동일한 입장에 처하게 됐다. 다수의 제조업 관련 일자리는 이미 중국으로 이전됐고 일본은 1994년 이해 지속적으로 중국에 대해 무역적자 상태를 겪고 있다. 일본은 국제적으로 활약하고 잇는 대기업과 이러한 기업들이 기반을 둔 도시지역은 지속적으로 유리한 경제적 조건을 갖고 잇지만 이들의 성공이 더 이상 지방에 위치한 소규모 사업체들에 연결되지 않는 상황에 직면했다. 대신 이윤이 중국과 다른 해외생산기지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세계화의 충격은 헤이세이 불황과는 관계가 없다고 말한다. 일본이 세계화의 충격을 이겨낼 수 잇는가는 심각한 도전이지만 헤이세이 불황은 두개의 일본 모두에게 무차별한 충격을 주었고 그 불황의 이유 역시 세계화의 충격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저자는 본다.

저자는 헤이세이 불황이 장기화된 이유는 아주 간단한 숫자게임 때문이었다. 말한다. 장부상의 숫자말이다.

“기업의 부채가 자산을 초과하면 기술적으로는 파산한다. 그러나 일본에서 진행된 것은 보통 의미의 파산이 아니었다. 일본기업들의 제품 개발과 마케팅, 그리고 기술이라는 핵심 역량은 양호했고 기업들은 매해 이익을 내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거품이 터지면서 자산가격이 폭락햇고 결과적으로 장부상의 자산도 폭락했다는 것이다. “대차대조표의 거대한 구멍 탓에 이들 기업은 대부분 순자산이 마이너스 상태엿다.” 분명 돈을 벌고 잇는데도 장부상으로는 갑자기 자산보다 부채가 많아진 파산 상태가 된 것이다.

이럴 때 기업들은 장부상의 숫자를 맞추어 기술적 파산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회사 회부 사람들이 대차대조표상의 문제를 발견하면 그들의 신용등급에 심각한 영향을 줄 것이 분명하므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 언론매체에서 그 회사가 엄밀히 말해 지급불능 상태에 있다는 보도가 나가면 문제의 기업은 다음 날 당장 엄청난 혼란에 빠질 것이다. 은행은 여신의 물꼬를 막을 테고 공급업체들은 어음이나 외상 구매를 거절하고 현금결제를 요구할 것이다. 이로써 기업의 생존은 위험에 빠진다. 그러므로 기업에게는 채무를 조용히 갚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이때부터 기업은 경제학 교과서가 말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종이 되어 버린다. 교과서는 기업의 행위는 이윤극대화를 대전제로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기술적 파산 상태에 몰린 기업의 궁극적 목표는 이윤이 아니라 부채를 갚는 것이 된다.

일본기업들은 건강한 현금흐름을 이용해 부채를 갚아나갔다. 개별 기업으로는 합리적이고 당연한 행동이다. 그러나 모든 기업이 그렇게 행동할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헤이세이 거품이 터졌을 때 주식과 부동산, “두 부류의 자산에서 발생한 국부 손실만 1500조 엔으로 전례가 없을 정도다. 이것은 일본의 개인 금융 자산 전체와 동일한 액수다. 이 수치는 3년간의 일본 국내총생산에 상당하는 액수이기도 하다. 쉽게 말해 하락한 자산 가격이 3년간의 GDP를 소멸시켜버린 것이다. 이것은 경제 전체에 무시무시한 영향력을 발휘햇다.”

자산은 사라지고 빚만 남은 “민간 부분은 모두 채무를 상환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 경제 전반이 구성의 오류를 경험하게 된다. 구성의 오류란 어떤 사람(기업)에게는 적절한 행동이 모든 사람(기업)에게 적용될 때는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야기한다는 의ㅁ다. 일본경제는 지난 15년 동안 이러한 오류로 고통을 겪었다.”

구성의 오류는 역승수효과를 통해 작동한다. 1000엔을 번 가계가 900엔을 소비하고 100엔을 저축한다고 하자. 900엔은 누군가의 소득이 되어 경제의 수요가 된다. 저축된 100엔은 대출되어 역시 수요가 된다. 그러나 100엔을 대출할 누군가가 없을 때가 문제다. 기업들은 장부상의 구멍을 메우기 위해 더 이상 부채를 늘리는데는 관심이 없다. 대출수요가 사라진 것이다. 대출수요가 없는 상태에선 아무리 금리를 낮춰도 수요는 살아나지 않는다. 제로금리에서도 수요는 살아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100엔은 그냥 은행에 남아 놀게 되고 총수요는 그 100엔만큼 줄어든다. 그렇다면 1000엔에서 900엔만 유효수요가 되고 경제는 수축해 소득은 900엔으로 줄어든다. 여기서 10%를 저축한다면 또 과정은 반복되어 총수요는 801엔, 729엔으로 감소한다.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이 상태로 놓아두면 이러한 경제수축과정은 민간부문이 더 이상 돈을 저축할 수 없을 때까지 계속된다.”

디플레이션은 안 그래도 낮아진 자산가격을 또 낮추어 기업의 장부에 난 구멍이 더 커진다. 기업이 갚아야 할 자산과 부채의 차이는 더 벌어져 기업의 채무상환압력은 더 높아진다. “결과적으로 경제는 매년 가계의 저축과 기업의 순부채상환액의 합계에 상당하는 수요을 잃게 된다. 계속되는 총수요의 하락세는 경제를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으로 밀어넣는다.”

헤이세이 불황의 메커니즘은 이런 디플레이션이엇으며 1929년 미국의 대공황도 마찬가지였다고 즉 두 불황 모두 대차대조표 침체(balance sheet recession)엿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공황과 헤이세이 불황이 같은 종류의 침체엿다고 생각하지 못햇다. 왜 그랫을까? 일본의 침체가 덜 심각햇기 때문이다. “일본의 대침체와 미국의 대공황의 차이는 GDP의 20%에 이르는 기업 수요의 감소와 1500조엔의 국부손실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GDP(명목, 실질 모두)가 거품이 최고조일 때의 수준을 유지했다는 데 잇다. 이러한 상황은 미국이 대공황 때 경험한 것과 같은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으로 경제를 몰아넣어야 마땅한데도 일본의 GDP는 최고점에 남아잇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답은 정부의 차입이엇다고 저자는 말한다. 기업이 빌려가지 않는 저축을 정부가 적자재정으로 흡수해 총수요를 유지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러한 유형의 경기 부양책으로 대응하지 않았더라면 GDP는 고점 대비 1/2이나 1/3 수준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그것도 낙관적으로 평가했을 때 말이다. 미국의 경우 대공황 기간 자산가격 하락으로 자산가치가 1929년 한해의 GNP만큼 추락해 GNP가 46%나 줄어들었다. 그리고 일본은 그보다 더 심각해지기 쉬운 상황이엇다.정부의 조치가 대참사 시나리오가 실현되는 것을 막았다. 1500조엔의 국부손실과 GDP의 20%에 상당하는 기업수요의 하락에도 불구하고 거품경제 정점 이상의 수준으로 GDP가 유지된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다. 재정부약책을 시행함으로써 정부는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생활수준이 심각하게 하락하는 것을 막는데 성공햇다. 이러한 의미에서 일본의 재정부양책은 인류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경제정책 중 하나라고 주장할만하다.”

대출수요가 사라진 대차대조표 침체에선 통화정책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오직 재정정책만이 유효하다. 실제로 일본은 헤이세이 불황 내내 제로금리엿지만 자금수요는 없었다.

유동성 함정의 실제는 대출수요의 소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자금 공급자가 채권보다 현금을 선호해서 유동성 함정이 일어나는게 아니란 말이다.

통화정책은 무용지물이고 재정정책만 유효할 때 명심해야 할 것은 “이 같은 침체기에 시기상조의 재정건전화만큼 위험한 조치는 없다”는 점이라고 저자는 경고한다. 1937년 미국, 1997년 일본에서 일어난 회복세의 역전은 모두 때이른 재정건전화 때문이엇고 결국 경제를 붕괴시킴으로써 세입을 무너트려 오히려 적자를 더 키웠을 뿐이며 불황의 기간을 배가시켰을 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세수는 늘어나는 대신 감소햇고 재정적자는 급격하게 증가햇다. 이 조치들은 1999회계연도에 적자를 15조엔 줄이기는커녕 38조엔으로 늘렸다. 이것은 대차대조표 침체 기간에 정부가 재정건전화를 추구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주는 아주 좋은, 그러나 대단히 서글픈 사례다. 이로 인해 일본경제는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졌”다. 같은 소규모로 2001년 고이즈미 내각에서 반복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대차대조표 침체는 일본이나 대공황기 미국에서만 찾을 수 잇는 것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닷컴버블이 터졌을 때 미국과 독일에서도 대차대조표 침체가 일어났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더 최근의 예가 주택거품이 터진 미국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대차대조표 침체는 기업들의 채무상환이 끝나야만 끝난다고 저자는 말한다. 21세기 들어 일본의 경기가 살아난 것은 “기업들이 마침내 채무를 상환하는 움직임을 중지하고 10여년만에 다시 돈을 빌기기 시작햇기 때문이다. 기업의 순부채 상환액은 2004년 줄어들기 시작했고 2005년 말에는 제로 수준으로 떨어졌다. 기업이 마침내 그들의 대차대조표에서 거품의 잔해를 모두 걷어낸 것이다. 기업들은 다시 자금을 차입하기 시작햇는데 이는 15년간의 침체기 이후 역사적인 전환점이 나타났음을 의미한다.”

문제는 부채 때문에 혼줄이 난 사람들은 부채에 대한 반감, ‘부채거부 신드롬’을 갖는게 문제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반감 때문에 닷컴버블 이후 미국의 금리가 낮을 수 밖에 없엇다고 저자는 말한다. “2000년 IT 거품이 붕괴된 후 미국기업들은 대차대조표를 깨끗하게 정리한 후에도 차입을 거부햇다. 2004년 그린스펀은 기업이 경기순환 사이클상 마땅히 예상되는 것만큼 대출을 받지 않는 이윻에 대한 궁금증을 공공연히 드러냇다. 기업의 차입기피는 장기금리를 낮은 수준에 머무르게 했고 2003년부터는 종종 명목경제성장률보다 낮게 유지시켰다. 이러한 낮은 장기금리는 미국의 주택거품을 2년 더 연장시켰고 지금 세계 금융시장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잇는 서브프라임 사태의 씨앗을 뿌렸다.”

대차대조표 침체를 겪은 후 금리가 다시 오르는데는 부채를 갚느라 고생한 사람들이 퇴직하거나 죽을 때까지라고 저자는 말한다. “장단기 금리가 거품 이전의 1920년대 수준인 평균 4.1%를 회복하는데 1959년까지 30년이 걸렷다.” 낮은 금리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현재 일본에서 나타난 세수와 가계저축 회복이 민간부문의 대출수요증가를 초과해 경제에 브레이크로 작동하지 않을지 우려해야 한다. 최근의 낮은 장기금리와 약한 국내수요는 이러한 상황이 이미 전개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저자는 거품의 전과 후로 나누어보면 하나의 사이클을 읽을 수 잇다고 본다. 거품붕괴후 빚의 무서움을 경험한 사람들은 부채거부 신드롬에 헤어나지 못한다. 한세대 정도 후 그 사람들이 퇴장하고 신드롬이 사라지면 다시 차입에 적극적이 되고 자금수요가 살아난다. 이때부터 통화정책이 효과가 있게 되고 정부의 자금수요는 자금수요가 없었던 거품 이후와 달리 민간부문의 차입과 경쟁을 하게 되면서 민간의 투자를 밀어내는 구축효과가 나타난다. 다시 작은 정부가 유행하고 통화정책이 재정정책의 대안으로 제시된다. 민간부문의 활기와 자신감은 지나쳐 거품이 만들어진다. 이런 사이클이 한바퀴를 도는데 60년이 걸린다고 저자는 보고 두 국면으로 나눠 음양 사이클이라 부른다.

“양국면에서는 민간부문의 대차대조표가 튼튼하고 기업들은 이윤극대롸흘 목표로 한다. 이러한 경제상황에서는 정부가 작고 개입을 적게 할수록 경제에 좋다. 또한 기업들이 미래지향적인 태도를 가져 자금에 대한 강한 욕구를 보이기 때문에 통화정책이 고도의 효력을 발휘한다. 반면 재정정책의 경우 민간투자를 구축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피해야 한다. 기업의 이윤극대화에 근거를 둔 문헌상의 모든 경제이론은 암묵적으로 경제가 양 국면에 있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음 국면에서는 이런 상황이 역전된다. 이 국면에서는 자산가격이 하락해 대차대조표에 손상을 입게되고 따라서 부채를 최소화하여 재정적 건강을 향상시키는데 초점을 맞추게 된다. 많은 기업들이 동시에 부채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므로 구성의 오류가 발생하고 경제는 불황이라고 부르는 수축균형상태로 향한다.

이 국면에서는 재정정책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또한 이국면에서는 민간부문이 투자할 돈을 빌리는 대신 부채를 갚기 때문에 구축현상이 발생할 위험이 없다.”

저자는 서브프라임 사태는 음국면에서 자금수요가 없기 때문에 일어난 소규모 거품이엇다고 말한다. “자금을 전통적인 기업 차입자에게 맡길 수 없는 자금 관리자들이 다른 곳에서 일반적이지 않은 투자 기회를 찾을 수 밖에 없었다. 2004년에서 2006년에 걸쳐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차입자들에게 자금이 막대하게 흘러들어가고 현재까지도 석유 같은 원자재에 자금이 유입되고 잇는 것이 바로 이런 현상의 d이다. 소규모 거품으로 인한 문제는 기업 차입자들이 자금조달 활동을 재개할 때까지는 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저자는 지금이 사이클에서 음인지 양인지를 구분하지 않으면 재앙이 일어난다고 말한다. 지금은 음국면에 들어섰는데 통화주의와 같은 양국면 정책을 밀어붙이면 대공황 초기와 같은 재앙이 일어난다. 일본의 장기침체가 필요 이상으로 길어진 것도 그런 혼선때문이엇다고 저자는 본다. 그리고 50-60년대 케인즈주의자들이 저지른 실수는 양국면에 음의 정책을 썼기 때문이라 말한다. “초래된 결과는 참담했다. 자원배분은 왜곡됐고 인플레이션은 가속화됐으며 금리는 상승했고 성장은 정체를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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