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재발견 - 과대평가와 과소평가 사이에서 제자리 찾기
이우광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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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SERI에 연재되었던 글들을 책으로 묶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일관된 주제가 없다. 단지 일본이란 주제로 글들을 묶은 것에 불과하다. 물론 이책의 글들은 2000년대 일본, 정확히는 헤이세이 불황 이후의 일본을 정치, 경제, 사회로 나누어 이전과 어떤 점이 달라졌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그 측면들이라는 것이 큰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디테일에 더 주목하고 있고 그 자체로 완결된 글들을 모은 것이기 때문에 이책을 요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1장에선 일본의 신세대들의 생각과 라이프스타일을 설명하는데 할애되었다면 2장은 장기불황기를 거치며 떠오른 새로운 경영자를 살펴보면서 일본의 경영철학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살펴보고 있고 뒤에선 좀더 전통적인 정치, 경제를 다룬다. 이것저것 다양한 내용을 한권으로 볼 수 잇다는 점이 이책의 장점이다. 그러나 하나의 리뷰로 그 내용들을 요약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러므로 여기선 이책의 경영전략에 관한 부분만 정리해본다.

“일본에서는 전통 게이샤들이 있는 유흥가를 하나마치라 한다.” 그러나 하나마치는 교토 밖에선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 이유는 교토 하나마치의 오차야 시스템 때문이다. 오차야는 게이샤의 가무와 요리를 즐기는 좌석을 제공하는 곳이다. 특이한 것은 교토의 “오차야에서는 게이샤나 요리사를 직접 거느리지 않고 전부 아웃소싱한다. 한국은 물론 도쿄나 오사카 등지의 요정이 게이샤와 요리사를 보유하는 것과는 다르다. 오늘날 요정은 쇠퇴하는 반면 하나마치가 번창하는 것은 그만큼 경쟁력 있는 시스템을 갖춘 덕분이 아닌가 싶다. 요정이 수직통합 시스템이라면 하나마치는 수평분업 시스템이다 그런데 이 분업은 고객에 대한 서비스를 극대화하기 위한 분해(unbundling) 시스템이다. 오차야의 경영자인 오카상은 손님에 대한 접객 서비스를 극대화하기 위해 게이샤와 요리 등 서비스의 모든 구성요소를 분해해 아웃소싱하고 이를 다시 조합하여 최고의 서비스를 창출한다. 따라서서 오카상이 얼마나 독창적인 감성으로 서비스를 코디네이트하느냐에 따라 사업의 성패가 달렸다. 게이샤가 소속된 오키야와 게이샤 그리고 요릿집은 오카상의 부름을 받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며 기능을 향상한다. 요컨데 분해의 장점이 발휘되는 시스템이다.”

80년대 일본식 경영을 말할 때 반드시 언급되던 케이레쓰 시스템 역시 이러한 논리로 운영되었다. 케이레쓰 시스템의 특징은 “장기적, 안정적 지속적 거래”이다. “단발성 거래라 이익이 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장기적 혹은 전체적으로 이익을 낼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래방식이다.” 이런 장기적, 안정적 거래는 신뢰를 전제로 하고 신뢰를 강화한다. “일본 기업들은 양자 간에 신뢰를 구축하는 것뿐 아니라 다자간 네트웤으로 신뢰관계를 구축하는 것도 특징이다. 협력회사, 자회사, 모회사 등 거대한 기업 계열 관계가 이에 해당한다. 기술이나 정보가 유출되지 않는다는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기술이나 신제품을 공동 개발하는 시스템이다. 이런 시스템이 바로 세계적 부품, 소재기업을 키워내는 배경이다.”

이런 시스템의 특징은 ‘제조현장을 통합하는 조직능력’이다. “여기서 통합이란 의미는 제조현장에서의 팀워크, 정보공유, 업무호흡, 미세한 조정, 까다로운 고객에 대한 대응, 장인 정신과 같이 정량화하기 어려운 요소들을 말한다. 일본 기업들은 조립 메이커, 부품업체. 소재업체간의 긴밀한 협력으로 통합을 이루어내는 조직 능력이 다른 나라의 기업보다 탁월하다. 일어에 스리아와세란 말이 있다. ‘서로 부딪치며 세밀하게 맞추어나간다’는 의미인데 표준화되거나 정해진 것이 아니라 세밀한 니즈나 용도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말한다. 일본이 강점을 갖는 부품, 소재, 장비는 대부분 이러한 통합형 제품이다. 한국이 일본에서 수입하는 제품이 대부분 그렇다.”

일본기업의 통합력은 스리아와세를 필요로 하는 장기적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물론 거래 기업간의 관계를 고정시킴으로써 비용이 발생할 수도 잇다. 최근 일본 기업들이 계열 구매를 시장 구매로 돌린 것도 비용절감을 위해서다.” 실제 일본기업들이 80년대부터 동남아, 중국으로 생산거점을 옮기고 아웃소싱을 확대한 것은 비용절감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부품, 소재 등 스리아와세가 필요한 제품에 자신의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일본기업들은 스리아와세가 가능한 일본내에선 수직통합을 그대로 유지하고 그럴 필요가 없는 범용부품에선 수평분업을 추구해 최적의 비용구조를 만들려 햇다.

그러나 통합력이란 장점은 단점이 되기도 한다. 저자는 일본이 따라잡힌 이유를 ‘이노베이션 딜레마’라 말한다. “D램을 예로 들어보자. 1980년대 D램의 주요 용도는 전화교환기나 대형 컴퓨터였다. 그래서 일본기업들은 고도의 기술로 고장이 잘 나지 않는 D램을 만들어 반도체 대국이 되었다. 이때 일본에는 고성능, 고품질 반도체를 만드는 기술 문화가 정착된다. 발주 업체에서도 보통 25년 정도를 보증하는 품질과 신뢰성을 요구했다. 문제는 D램의 수요가 전화교환기에서 PC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시장에서는 고품질보다 저가의 반도체를 요구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고품질 반도체를 만들려는 일본기업들의 기업문화는 변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D 램의 제조원가가 비싸져 경쟁력을 잃었다. 이런 현상은 D램뿐 아니라 액정이나 시스템LSI 등 전자산업의 여러분야에서 발생하고 있다.” 클레이튼이 지적한대로 스리아와세에 능한 일본기업은 기존고객의 니즈에 너무나 충실했기 때문에 새로운 수요에 맞출 수 없었다. 스리아와세는 고품질, 고성능에 유리하다. 그러다보면 “고객이 요구하는 것 이상의 고성능, 고품질 제품을 만들고 그 때문에 가격이 비싸져 고객들이 외면한다.” 물론 그런 시스템이 더 유리한 시장이 있다. 소위 명품 시장이다. 명품은 “기능 이상의 고가격에도 불구하고 비즈니스는 성립된다. 그런데 일본 기업들은 고품질 제품을 만들줄은 알아도 고가격으로 사주는 시장은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 제품에 맞는 고객을 창출하거나 아니면 고객이 요구하는 가격의 제품을 만들어 시장을 창출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실제 일본기업들은 그 논리를 따라 고급시장에 치중했다. 이번 금융위기에서 일본이 심각한 타격을 입은 이유이기도 하다. 금융위기로 수출시장이 타격을 받으면서 일본은 위기의 진앙인 미국보다 훨씬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그러나 문제는 “수출의존도가 일본보다 훨씬 높은 한국이나 중국 또는 독일보다도 일본이 훨씬 더 심각한 타격을 입은 것이다.” 그 이유는 “일본은 수출에서 차지하는 부가가치의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비교적 값이 싼 원재료를 수입해 높은 기술력으로 가공, 부가가치를 훨씬 높인 제품으로 수출하기 때문에 수출 감소로 인한 타격이 상당히 크다는 것이다. 일본의 소재, 부품, 장치 업체들의 경쟁력이 다른나라보다 높은 탓에 타격이 더욱 컸다.” 그리고 “고부가가치화를 위해 신흥국 시장보다 미국이나 EU 같은 고급 시장에 주력한 것도 큰 타격을 입은 이유 중 하나다. 물건을 싸게 만드는 데 별로 자신이 없는 일본기업들은 높은 기술력으로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을 고급시장에 수출하겠다는 전략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선진국 시장이 증발”해버렸다.

“이런 배경에서 최근 일본기업들의 전략이 크게 바뀌고 있다. 선진국 시장보다 신흥국 시장을 중시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볼륨존’을 중시하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 신훙국의 중산층 시장을 노리라는 이야기다. 이 전략으로 성공을 거둔 사례는 이미 유명해졋다. 혼다는 베트남 시장용 이륜차를 개발해 중국 제품을 몰아냈고 스즈키 자동차는 인도 시장에서 50% 가까운 점유율을 차지하고 잇다. 일본기업들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신흥국 시장용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잇다는 방증이다. 더욱이 ‘저가제품생산’이야말로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분야하는 주장도 제기되고 잇으니 기술적으로 앞선 일본기업들이 그런 제품을 생산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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