듄 1 - 제1부 듄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0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듄이란 작품에 대해 들은지는 10여년이 더 되었지만 읽어볼 마음을 내는데 또 그만큼 되었다. 지금까지 망설였던 것은 아마 할일도 많고 시간도 없는데 그런 소일거리에 시간을 쓸 수 있는가였을 것이다. 번역된 분량만 해도 300페이지짜리 18권이니 큰맘먹고 도전하는 각오가 아니면 손대기 힘든 작품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계절이 바뀌는 간절기가 되면 사람도 지치고 뭔가 다른 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싶어진다.

큰맘 먹고 잡은 이 시리즈의 첫권은 기대대로였다. SF 사상 최고의 걸작이란 평가에 걸맞는 책이었다. 어릴 때 SF를 읽어본 경험으로는 SF는 범작일 때 SF라는 장르 자체가 주는 매력이상이 되지 않는다. 북미와 유럽인들의 취향에 맞는 SF라는 장르는 한국으로 보면 무협이나 요즘 유행하는 판타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장르의 매력은 비현실성이다.

"사람은 30이 넘으면 소설을 읽지 않게돼. 현실이 더 복잡하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지." 지금에 와선 줄거리도 희미하지만 하일지의 데뷔작 '경마장 가는 길'에서 지금까지 기억나는 말이다. 어차피 종이장에 적는 어떤 것이든 현실을 그대로 담을 수는 없다. 한권의 책이 되려면 나름의 줄기가 있어야 되고 그 줄기가 만들어지려면 어쩔 수 없이 현실을 가지치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지치기된 현실은 더 이상 현실이 아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 현실을 알게 되면 현실을 담는다는데 의미를 두지 않게 되고 현실을 떠난 상상력을 즐기게 되는 것같다. 이 소설은 바로 그런 어른들을 위한 환상을 제공한다.

지금도 아들이 쓰고 잇는 분량을 제하고도 아버지 허버트가 쓴 6권, 번역으로 18권이 되는 이 시리즈의 도입부가 되는 이책은 바로 저자가 수십년에 걸쳐 만들어낸 환상의 세계를 처음 만나는 곳이다. 그리고 이책을 처음 열었을 때 우리 앞에 펼쳐지는 세계는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낯선 시공간이다. 지금으로부터 만년후의 우주로 뻗어나간 인류가 사는 세계는 지금과는 다르다. 아니 과거와 비슷하다.

공작이 있고 남작이 잇으며 서로 영지전을 하는 황제가 있는 세계. 귀족가문이 잇고 가신이 있으며 행성이 영지인 세계. 무기는 총과 칼이 공존하는 세계. 종교적인 도그마 때문에 인공지능은 전멸한 세계. 일은 기계가 아닌 사람의 손으로 해야 하는 세계. 그러나 은하계에 걸친 우주여행이 있고 행성규모의 기후조절이 가능한 세계. 유전자조작에 의해 특별한 능력을 부여하고 관리하는 세계. 여러가지가 시대착오적으로 섞여있어 기시감과 함께 흥미로운 이질감을 자아낸다.

그리고 그 낯설면서도 익숙한 그 세계로 들어가면서 독자는 저자가 이런 상상으로 만들어진 세계에 어쩔 수 없이 깔릴 수 밖에 없는 그 세계만의 용어들과 언어들을 만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단어들의 의미를 찾아 책뒤의 단어장을 계속 봐야 한다. 10년도 더 전에 끝난 외국어공부를 다시하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런 낯선 세계와 만나면서도 독자들에겐 그것이 기분좋은 흥미로운 낯섬으로 다가온다. 깊이있는 심리묘사 때문이다. 사람은 만년이 지나도 우주에 살아도 초능력을 가져도 예지능력을 가져도 어차피 사람이라는 것이다. 아니 인간은 인간만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1권만으로 이책이 그리는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 알수도 없고 평가할 수도 없다. 그러나 1권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이 시리즈가 상상력을 무기로 한 장르의 힘만이 아니라 가장 뛰어난 그 장르의 걸작들이 보여주는 힘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장르의 걸작들은 우리가 익숙하지 않은 배경에 우리의 사고를 밀어넣어 상상력이 주는 즐거움과 함께 그 세계에서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힘이 잇다.  그리고 1권에서 알 수 잇는 것은 이 시리즈가 그런 걸작이 갖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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