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었다.
날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더할 나위 없이 상쾌하고 맑고, 아름다운이란 형용사가 제격인 그런, 계절이었지.
(생각해 보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나는 계절 중에 5월을 제일로 치겠다. 6월의 신부라는 관용어가 있을 정도로 6월이 뭐 긍정적이고 활기찬 에너지의 의미로 대접받고 있지만, 기후변화에 가속도가 붙은 최근의 날씨를 감안할 때, 이제 6월은 여름 축에 넣어야 맞을 듯하다. 허니 계절의 여왕은 단연 5월!
이런 5월엔,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좀이 쑤실 만하다.
그래서 나는, 지금 섬에 와 있다.꺄오! 그리고 오래 전 5월에 떠난 여행을 반추하고 있다.)
무작정 떠나 온 여행이었지만, 그리 나쁘지 않다. 아직 너무 좋아 할 만큼 뭐 새롤 것은 없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득시글대는 관광단지 쪽이 아니라 한적한 조그만 마을이라 마음에 든다.
비엔나에서 외곽으로 우리로 치자면, 분당 신도시 정도되는 동네로 차를 타고 한 3,40분 정도 가면 언니네 집이 나왔다. 수베르트가세였나..이름이 영, 기억에 없지만, 암튼 한적하고 깔끔하고, 정돈된 그런 유럽의 주택가였다.
그때 가져간 책들이 스탕달의 이탈리아 미술편력. 유럽음악산책,소설로는 오페라의 유령과 개선문이었던 것 같다....그 책들은 언니네 두고 왔다.
5월의 여행은 어쩐지 항상, 비엔나가 떠오르고, 아주 꼬마였던 조카와 깔깔거리며 웃던 내 모습하며, 늘 핸디폰을 주시하며 누군가로부터 걸려올 전화를 기다리곤 하던 지금보다 훨씬 어렸던 나와, 뭔가 낌새를 눈치챘지만 묻지 않았던 언니와 형부,의 어떤 배려로 이어진다.
비엔나의 느리고 한가하던 오후와 트람바이, 언니가 싸주던 머핀과 바나나를 담은 런치박스.
기억은 구체적인 어떤 사물들과 닿을 때에라야 제 몫을 하는 걸까?
사소한 오해가 불러일으킨 간격이 세월과 침묵과 해명을 허용하지 않는 완고함과 결합하여 너무 큰 벽을 만든다.
다시 그 도시에 가서, 언니와 하얀 카페에서 비엔나의 명물 커피와 케익을 나눠 먹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고, 하얗고 길쭉한 유럽인들 사이에 움푹 들어간 서로를 사진찍어주며 깔깔거릴 수 있는 때가 오기를,,,,언니가 사랑했던 이야기와 내가 사랑했던 이야기, 그리고 남아있는 나날들에 대한 희망을 주억거릴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