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공부하는 이유 - 일본 메이지대 괴짜 교수의 인생을 바꾸는 평생 공부법
사이토 다카시 지음, 오근영 옮김 / 걷는나무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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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스포츠 여왕이라고 회자되는 사람 중 하나. 전 여자 탁구 대표팀 감독인 현정화. 그녀는 한국 탁구계에서 유남규, 유승민과 더불어 전설로 통한다. 왜냐, 바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이기에.

 

 

다른 종목이면 그러려니한다. 하지만 그 종목이 탁구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스포츠 종목에는 절대 아성을 쌓은 국가들이 있다. 양궁하면, 대한민국인것처럼, 탁구하면 중국이다. 한국 양국은 세계양국계에서 독보적인 1위를 수성하고 있다. 양궁이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한번도 세계선수권과 올림픽 우승을 놓친적인 없다. 적어도 여자 양궁에서는.

 

 

마찬가지로 탁구는 세계 1위가 중국이다. 70~80년대 유럽과 일본세가 대항마로 반짝 했지만 80년대 중반부터 중국 독주가 시작되었다. 중국을 이기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세계선수권이나 올림픽에서 남녀 종목 대부분의 금메달을 중국 선수들이 독차지 해 왔다. 그 와중에 간간히 중국 독주를 막은 게 그나마 우리나라였다. 특히 중국 여자 탁구는 한국 여자 양궁에 비견될 만큼 극강으로 적수가 없었다.

 

 

이런 세계 최강 중국 탁구계에 덩야핑이라는 선수가 있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잘 모르지만 30대 중반 이후 사람들 중 덩야핑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 이유는 바로 현정화 때문이다. 현정화가 바로 이 덩야핑이라는 선수를 이기고 올림픽 금메달과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한 차례씩 땄기에.

 

 

당시 올림픽과 세계선수권과 같은 큰 대회에서 덩야핑을 이긴 유일한 선수가 현정화였다. 덩야핑은 세계탁구계에서 별명이 마녀로 통했다. 거의 무적이었다. 나가는 대회마다 모든 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선수가 바로 덩야핑이다. 그녀가 세계대회에서 받은 금메달 수만 18개이고, 국내외 대회에서 우승한 횟수는 무려 132회나 된다.

 

이런 선수 앞에서 현정화도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수 많은 작고 큰 대회에서 현정화는 덩야핑을 만났다. 하지만 맨날 졌다. 1세트라도 따면 다행이었다. 역대 전적이 아마도 내가 기억하기론 20여 패 정도 됐다. 딱 2번 이겼는데, 그게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결승 이었다.

 

 

개인적으로 탁구를 매우  즐겼기 때문에 당시 대부분의 큰 대회 영상은 녹화를 떠서 보곤 했다. 내가 생각한 덩야핑은 정말 있을 수 없는 선수였다. 150 센티도 안 되는 키에 상대를 압도하는 눈매와 높은 스카이서브는 당시 모든 선수를 두려움에 떨게했던 덩야핑만의 전매특허였다. 빠르기는 얼마나 빠른지 도저히 칠수 없는 코스로 공을 보내도 그녀는 단숨에 따라잡아 이겼다고 여긴 상대선수의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리곤 했다.

 

 

세계탁구를 평정하다시피 한 그 덩야핑도 부침을 겪었다. 키가 너무 작아서 중국에서도 세계적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해 중국 대표로 선발하기를 꺼렸다고. 하지만 무서운 스피드를 발판으로 자기만의 색깔로 무장하여 결국 중국 대표 선발전에서 1등으로 통과했다. 그렇게 하기까지 그녀가 흘러야했던 좌절과 노력은 아마도 당사자가 아니면 모를 것이다.

 

그리고 스포츠는 항상 결과로 보여지기에 그녀가 어떻게 노력했는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고, 오직 세계 최고라는 신화만 회자될 뿐이다. 모든 스포츠 스타가 마찬가지겠지만 그녀도 시간과 함께 추억으로 사라진지 오래다. 그녀의 이름은 간간히 탁구 중계에서나 들을 수 있을 뿐, 그녀가 현재 뭘 하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가 아시아의 인어 최윤희가 현재 뭘하는지 모르는 것처럼.

 

그런데, 그녀의 근황이 소개된 책이 있어 내 관심을 끌었다. 스포츠와 관련된 책이 아닌 공부에 관한 책이라서 매우 신선했다. 일본의 괴짜 교수로 널리 알려진 사이토 다카시의 <내가 공부하는 이유>(걷는 나무, 2014)라는 신간에서 였다. 한 달 사이에 6쇄나 찍었다. 읽어 보니 좋은 내용이 참 많았다. 자게서로 분류될 수 있는 책인데도 불구하고 저자의 박식함과 독특한 이력이 개성과 맞물려 알찬 내용들이 줄줄 쏟아진다. 무엇보다 권위적이고 고리타분하지 않아 좋다.

 

그가 이 책에서 소개하는 덩야핑의 근황은 한마디로 압권이었다.

 

나는 신문에서 그녀의 소식을 다시 접했다. 그녀가 영국의 켐브리지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는 소식이었다. 어린 시절 탁구 연습만하느라 제대로 공부할 시간도 없었을 텐데, 어떻게 켐브리지에서 박사학위를 딸 수 있었던 것일까? 그녀는 운동을 그만둔 뒤 중국 칭화대에 특기자로 입학했다고 한다. 그 당시 알파벳도 제대로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영어와는 거리가 멀었는데, 지독한 노력 끝에 졸업을 하고 영국으로 유학까지 떠난 것이다. 그녀는 켐브리지대학 800년 역사상 세계 정상급 운동선수 출신으로는 최초로 박사 학위를 받은 인물이 됐다. (p216)

 

켐브리지 800년 역사상 엘리트 운동선수 출신으로 최초의 경제학 박사. 이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서 공부좀 한다는 사람들도 따기 어렵다는 영국 켐브리지 경제학 박사 학위를 운동만 한사람이 땄다?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나따위가 가늠할 수조차 없다.

 

중국에서도 나처럼 많이 놀란 사람이 많았나 보다. 그래서 한 기자가 지커닷컴[인민일보 계열 검색엔진] 총경리(CEO)로 변신한 그녀에게 "탁구와 박사 학위, 그리고 비즈니스 가운데 무엇이 가장 쉽고, 무엇이 가장 어려운 일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고 한다.

 

"세상에서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안 되는 일도 없다." (p217)

 

 

역시 탁구 마녀다운 답변이다. 안 되는 일도 없지만 불가능한 것 같은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노력, 그 지속적인 노력이 그녀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저자가 평생 공부로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자세인듯하다. 그래서 마지막 장에 이 에피소드로 대미를 장식한 것 같다.

 

 

사실 이 책에는 평생 공부로서 득이 되는 말들과 사례들이 꽤 많다. 책을 읽으면서 줄도 많이 쳤다. 특히 다음과 같은 부분에서는 멈춰서 음미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만의 개성, 바꿔 말하면 누구와도 대체할 수 없는 나만의 강점을 갖는다는 것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강력한 무기를 하나 얻는 것과 같다. 누구도 회사에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로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렇게 살다가는 오래 버틸 수도 없다. 하지만 평생 공부를 하다 보면 오랜 시간 공부가 내 안에 쌓여서 누군가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지식 세계, 나만의 아우라가 생긴다. 그게 바로 긴 인생을 살아야 하는 우리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요소가 아닐까. (p107)

 

하지만 덩야핑의 사례만큼 강렬한 에피소드는 없는 듯하다. 6페이지에 걸쳐 있는 덩야핑 에피소드를 읽는 것만으로도 책값은 하는 책이다.

 

 

 

[덧글]

저자의 관심 스펙트럼이 넓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라도 자신이 자극받을 수 있는 에피소드를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분명히 자게서로 분류될 수 있는 책이지만 결코 식상하지 않고 가볍지 않다. 더군다나 평생 인문학자로 살아온 교수가 인생의 선배로서 들려주는 자기체험적인 글이기에 솔직함과 학자로서의 아우라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좋은 책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몇 자 적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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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4-10-21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어제 교보가서 이 책이 들어가는 입구에 싸여 있어 보니, 벌써 12쇄...ㅎㄷㄷ
예상을 깨고 선전하는 중..ㅎ

카알벨루치 2018-07-11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덩야핑 대단하네요! 우아~공부하는중이라 다카시의 이 책은 내가 읽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아 도서관에 어제 반납했었는데. 배울게 없는 책은 없네요!

young026 2019-06-03 0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정화는 덩야핑에게는 이긴 적이 없습니다. 올림픽 우승(단식은 아니고 복식)은 덩야핑이 국제무대 데뷔하기 전이었고 93년 세계선수권 우승은 덩야핑이 초반 탈락했을 때였죠. 결승 상대는 88년 올림픽 단식우승자였던 천징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