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각사 - 20세기 일문학의 발견 8
미시마 유키오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1995년 3월
평점 :
품절


미(美)가 명백히 그곳에 존재하고 있다면, 나라는 존재는 미로부터 소외된 것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금각이 나에게 결코 하나의 관념은 아니었다. 산으로 막혀 있다고 해도, 보고 싶으면 직접 가서 볼 수 있는 하나의 물체였다. 미는 그처럼 손으로 만질 수도 있고 눈에도 확실히 비치는 하나의 물체였다. (pp26-27)  


나는 이리저리 각도를 바꾸어, 혹은 고개를 기울여 바라보았다. 아무런 감동도 일지 않았다. 그것은 낡고 거무튀튀하며 초라한 3층 건물에 지나지 않았다. 꼭대기의 봉황도, 까마귀가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아름답기는커녕 부조화하고 불안정한 느낌마저 들었다. 미라는 것은 이토록 아름답지 않은 것일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p29)

 

그토록 실망을 주었던 금각도, 야스오카에 돌아온 후 나날이 내 마음 속에서 다시 아름다움을 되살려, 어느덧, 보기 전보다도 훨씬 아름다운 금각이 되어 있었다. 어디가 아름답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몽상에 의하여 성장한 것이 일단 현실의 수정을 거쳐, 오히려 몽상을 자극하게 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미 나는 눈에 보이는 풍경이나 사물에서 금각의 환영을 좇지 않게 되었다. 금각은 점차로 깊숙히, 견고하게 실재하게끔 되었다. (p33)

 

나를 태워 죽일 불이 금각도 태워 없애 버리리라는 생각은 나를 거의 도취시켰다. 똑같은 재앙, 똑같은 불의 불길한 운명 아래에서 금각과 내가 사는 세계는 동일한 차원에 속하게 되었다. 나는 연약하고 보기 흉한 육체와 마찬가지로, 금각은 단단하면서도 불타기 쉬운 탄소의 육체를 지니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때로는, 도망치는 도둑이 고귀한 보석을 삼켜서 숨기듯이, 내 육체의 속, 내 조직 속에 금각을 숨겨 갖고 도망칠 수 있을 듯한 느낌이 들었다. (pp 50-51)

 

내 관심은, 나에게 주어진 난문은 미뿐이었다. 하지만 전쟁이 나에게 작용하여 암흑의 사상을 품게 만들었다고는 생각하지 않겠다. 미라는 것만을 골똘히 생각하면, 인간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암흑적인 사상에 자기도 모르게 직면하게 된다. 인간은 아마도 그렇게 만들어진 모양이다. (p52)

 

나의 삶에는 쓰루카와의 삶과 같은 확고한 상징성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러운 것은, 그가 나와 같은 독자성, 혹은 독자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는 의식을 추호도 갖지 않은 채 삶을 마쳤다는 점이었다. 그 독자성이야말로 삶의 상징성을, 즉 그의 인생이 다른 뭣인가의 비유일지도 모른다는 상징성을 박탈하고, 따라서 삶의 확대성과 연대감을 박탈하여, 항상 붙어다니는 고독을 낳게 하는 본원인 것이다. (p138)

 

미(美)라는 것은 마치 뭐라고 할까, 충치와도 같은 거야. 그건 혀에 닿아 신경 쓰이고 아프게하여,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지. 피투성이의 자그마한 갈색의 더러운 이빨을 자신의 손바닥에 올려놓고 보며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겠지. '이건가? 고작 이런 거였나? 나에게 통증을 주고 나를 끊임없이 그 존재 때문에 고민하게 만들며, 또한 나의 내부에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있던 것이, 지금은 죽어 버린 물질에 불과하군. 하지만 그것과 이것이 정말로 같은 것일까? 만약 이것이 원래 나의외부 존재였다면 어째서 무슨 인연으로 나의 내부와 연결되어 내 통증의 근원이 될 수 있었을까? 이놈이 존재하는 근거는 뭘까? 그 근거는 나의 내부에 있었을까? 아니면 그 자체에 있었을까? (p153)

 

나는 벌의 눈이 되어 보려고 하였다. …… 형태는 서서히 희박하여져, 무너질 듯, 떨며 전율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국화의 단정한 형태는 꿀벌의 욕망을 본떠서 만든 것이며, 그 아름다움 자체가 예감을 향하여 꽃피운 것이니까, 지금이야말로, 삶에 있어서 형태의 의미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형태야말로, 형태도 없이 유동하는 삶의 거푸집이며, 동시에, 형태도 없는 삶의 비상(飛翔)은, 이 세상의 모든 형태의 거푸집인 것이다. (p168)

 

세계는 상대성 속에 내버려져, 시간만이 움직이고 있었다. 영원의, 절대적인 금각이 출현하여, 내 눈이 그 금각의 눈으로 변할 때 세계는 이처럼 변모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변모한 세계에서는 금각만이 형태를 유지하고 미를 점유하며, 그 밖의 것들은 흙먼지로 만들어 버린다는 사실을. (p168-169)

 

모름지기 생명이 있는 것들은 금각처럼 엄밀한 일회성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인간은 자연의 온갖 속성의 일부를 담당하여, 대체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것을 전파하고, 번식시키는 존재에 불과하였다. 살인이 대상의 일회성을 멸망시키기 위한 행위라면, 살인이란 영원한 오산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하여 금각과 인간 존재와는 더욱더 명확한 대비를 보여, 한편으로는 인간의 멸망하기 쉬운 모습에서 오히려 영생의 환상이 떠오르고, 금각의 불괴(不壞)의 아름다움에서 오히려 멸망의 가능성이 느껴졌다. 인간처럼 필멸하는 것들은 결코 근절되지 않는다. (pp204-205)

 

그 종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눈을 내 것으로 만들고, 또한 그 종말을 부여하는 결단이 내 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 자유의 근거였다. 그토록 당돌하게 생겨난 상념이라고는 하지만 금각을 불태운다는 생각은 새로 맞춘 옷처럼 정말로 내 몸에 꼭 맞았다. 태어날 때부터 나는 그것을 목표로 삼고 있었던 듯이 여겨졌다. …… 금각이 소년의 눈에 더없이 아름답게 보였다는 그 자체에, 이윽고 내가 방화자가 될 모든 이유가 갖추어져 있었다. (pp211-212)

 

“남들이 보는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나와, 어느 쪽이 오래 지속될까요?”
“어느 쪽이건 곧 멈추지. 무리하게 결심하고 지속시켜도, 언젠가는 멈추게 되니. 기차가 달리는 동안, 승객은 멈추고 있지. 기차가 멈추면, 승객들은 거기서부터 걸어야만 돼. 달리는 것도 멈추고, 숨도 멈추지. 죽음은 최후의 휴식이라고 하지만, 그것도,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거든.” (p257)

 

하나하나의 ‘여기에는 존재하지 않는’ 미의 예감이, 소위 금각의 주제를 이루었다. 이러한 예감은, 허무의 징조였던 것이다. 허무가 이러한 미를 만든 것이다. 그렇기에 미의 이러한 세부적인 미완성에는, 저절로 허무의 예감이 포함되어, 가느다란 나무로 만든 섬세한 이 건축은 영락(瓔珞)이 바람에 흔들리듯이, 허무의 예감에 떨고 있었다. (p265)

 

가시와기가 말한 것도 아마도 사실인 듯하다. 세계를 바꾸는 것은 행위가 아니라 인식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최대한으로 행위를 모방하려는 인식도 있다. 내 인식은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그리고 행위를 완전히 무효로 만드는 것도 이런 종류의 인식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의 오랫동안의 주도면밀한 준비는 ‘오로지 행위를 하지 않아도 좋다’는 최후의 인식 때문이 아니었을까? 잘 보아두기 바란다. 이제 행위는 나에게 있어서 일종의 잉여물에 불과하다. (pp266-267)

 

나무 사이로 수많은 불꽃이 날리어, 금각 위의 하늘은 금가루를 뿌린 듯하다.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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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9-02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꼭 챙겨 읽어줘야 한다고 해서 읽었어요.
근데 전 일본 문학이 제 취향이 아닌지,
남들이 말하는 꼭 챙겨 읽어줘야 할만한 의의를 생각해 볼 수 없었다는~ㅠ.ㅠ

암튼, 님의 서재에서 보니 새롭네요~^^

yamoo 2011-09-02 17:00   좋아요 0 | URL
저두 일본 문학은 제 취향이 아니라서 멀리하고 있긴 한데요...
이 책은 모 회사 대표께서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니 꼭 읽어보라고 신신당부해서 읽었습니다. 전화로도 읽었는지 확인사살을....--;;

읽어보니, 왜 탐미주의의 최고봉이라는 찬사가 나왔는지 알겠더군요. 남대문 화재시에 읽어서 더더욱 느낌이 강렬했습니다. 특히 인물들이 금각의 서사구조를 완벽히 떠받치고 있어 미학적으로도 매우 뛰어났다고 자평하고 있습니다만..ㅎㅎ

흠...가만보니, 양철님은 웬만한 고전작품은 대부분 섭렵하신 듯합니다. 신간 위주의 리뷰 말고 고전 리뷰도 올려주세요...전 나무꾼님의 고전리뷰를 엄청 고대하는 1인이랍니다...계속, 고대 중~~~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