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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알드 달의 무섭고 징그럽고 끔찍한 동물들 ㅣ 담푸스 어린이 7
로알드 달 지음, 퀸틴 블레이크 그림, 천미나 옮김 / 담푸스 / 2018년 5월
평점 :
타고난 이야기꾼인 로알드 달의 책을 만났습니다. 『로알드 달의 무섭고 징그럽고 끔찍한 동물들』이란 제목의 책입니다. 이 책 속엔 짧은 이야기들이 모여 있습니다. 이들 이야기의 공통점은 모두 동물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아니, 진짜 공통점은 따로 있습니다. 이들 동물들은 대부분 대단히 끔찍한 녀석들이라는 점입니다.
농부를 잡아먹은 똑똑한 돼지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자신을 기르는 부잣집 아들 로이와 로이의 고모를 잡아먹은 개미핥기 이야기, 아이들을 잡아먹는 무시무시한 악어 이야기 등등 여러 “무섭고 징그럽고 끔찍한 동물들”이 등장합니다.
책은 말합니다. “이야기는 참 좋은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참 좋은 이야기들이 때론 잔혹하고, 때론 끔찍하기만 하니 어쩌죠?
그런데, 이야기를 읽다보면, “무섭고 징그럽고 끔찍하고 어쩌면 잔혹한” 이야기들 안에 또 다른 반짝이는 내용들이 감춰져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농부를 잡아먹은 똑똑한 돼지 이야기 속에는 우리에게 ‘왜 사는가?’ 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똑똑한 돼지 역시 원래는 그냥 농부가 주는 먹이를 마음껏 먹고 살을 찌우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물론 똑똑한 돼지인 만큼 책은 열심히 읽었지만 말입니다. 그런 돼지가 어느 날 질문을 합니다. 자신이 왜 사는지 말입니다. 그랬더니, 자신의 존재이유가 보인 겁니다. 아니 어쩌면 이 존재이유는 자신을 사육하는 농부 입장에서의 존재이유일지도 모릅니다. 자신은 결국 농부에게 잡아먹히기 위해, 살을 제공하기 위해 살고 있었던 겁니다. 이런 자각이 농부에게 잡아먹히기 전 선수를 치는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존재이유가 없는 삶은 결국 먹고 싸고 자며 살을 찌운 후엔 잡아먹힐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 어쩐지 섬뜩하면서도,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과연 나의 존재이유는 무엇인지 말입니다.

개미핥기를 키웠던 버릇없는 부잣집 아들 로이 이야기 역시 우리를 돌아보게 만듭니다. 로이의 고모와 로이가 잡아먹히는 장면을 상상해본다면 너무나도 잔혹한 풍경입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읽으며, 잔혹하게 느껴지기보다는 오히려 묘한 통쾌함이 있는 이유는 뭘까요? 그건, 버릇없는 로이의 못된 모습에 있습니다. 무엇이든 자기가 원하는 것은 손에 넣을 수 있는 부잣집 아들 로이는 사실 못됐습니다. 어느 날 엄청 커다란 개미핥기를 갖고 싶다고 해서 구하게 된 커다란 개미핥기를 로이는 실상 학대하거든요. 배가 고프다는 개미핥기에게 어떤 먹이도 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개미핥기는 마땅히 개미를 먹어야 한다며 말이죠. 그렇다고 개미핥기가 개미를 잡아먹을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로이가 사는 곳은 개미 한 마리 없거든요. 그런데도 ‘개미핥기’라는 이름, 그 본질에 충실하라며 개미핥기를 굶기는 로이의 모습으로 인해 로이와 고모가 당하는 모습에 도리어 묘한 통쾌함을 느끼게 만듭니다.
어쩌면 로이의 문제가 아닐지 모릅니다. 어쩌면 나의 모습을 보며, 내가 잘못되는 모습에 누군가 묘한 통쾌함을 느낀다면, 난 잘못된 삶을 살아왔단 증거일 겁니다. 그러지 않아야 할텐데... 하는 선한 부담감도 가져 봅니다.

하늘을 나는 암소에게 똥 벼락을 맞은 사람 이야기 역시 이런 묘한 통쾌함을 느끼게 합니다. 이 사람은 하늘을 나는 암소에게 마구 비난하고 욕을 합니다. 암소가 어찌 하늘을 나느냐고, 하늘을 날고 있는 너 암소는 미친 게 분명하다는 의미겠죠. 그런 그에게 암소는 똥 벼락을 내리죠. 이런 순간이 통쾌해진다면, 동화 속 그 사람에게 분명 문제가 있다는 증거겠죠.
오늘 우리가 길을 가다 똥벼락을 맞았을 때, 주변의 시선이 어떤 표정일지가 두렵습니다. 통쾌해하고 고소해한다면, 그럼 잘못 살고 있다는 말일 테니 말입니다.
짧은 여러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제목 그대로 ‘무섭고 징그럽고 끔찍한 동물들’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 잔혹함을 넘어 전해 주는 반짝임 들을 발견하고 보게 될 때, 이 책은 비로소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