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홀리데이 로맨스
찰스 디킨스 지음, 홍수연 옮김 / B612 / 2018년 8월
평점 :
찰스 디킨스의 실질적인 마지막 소설인 『홀리데이 로맨스』를 읽게 되었습니다(마지막 유작은 『로스트: 에드윈 드루드의 미스터리』이지만 마지막 결말이 완성되지 않은 미완의 작품이기에, 『홀리데이 로맨스』를 마지막 소설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대문호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타이틀이 더욱 기대감을 갖게 하며 묘한 설렘을 안고 책장을 펼쳤답니다.
짧은 단편 4편으로 이루어진 단행본. 전체 분량도 짧아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답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묘한 분위기에 부딪히게 됩니다. 어렵지 않은 내용임에도 묘하게 어렵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요? 개인적인 상황이 잠이 부족한 멍한 상태에서 읽었기 때문일까요? 결국 다시 한 번 읽게 되었답니다.
책이 어렵지 않으면서 어렵게 느껴진 이유가 있더라고요. 작가의 묘한 해학과 반어적 표현, 때론 반전의 상황 설정 등이 내용을 조금 어렵게 느끼게 만들고 있더라고요. 예를 들면, 결혼한 이야기를 하는데, 누가 방해하고, 이들을 갈라놓게 하고, 막 이런 내용이 나오거든요. 왜 그럴까 싶은데, 알고 보면, 이 결혼은 아이들의 결혼이랍니다. 아! 아이들 이야기구나 생각하면 내용이 어렵지 않게 이해가 되죠. 물론 이들의 결혼은 부모에게 허락은커녕, 부모 입장에선 콧방귀도 꾸지 않을 그런 결혼이죠. 아이들의 철없는 장난이라 치부하기 십상인 결혼이랍니다(이게 여전히 우리의 접근이겠죠.). 하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는 심각하답니다(이런 아이들의 심각함, 진지함을 우린 너무 쉽게 치부해버리진 않나 돌아보게 됩니다.).
마지막 이야기에서는 아예 어른과 아이가 뒤바뀐 나라를 보여주고요. 어른이라고 부르는 이들은 실제로는 아이들입니다. 그리고 아이라고 부르는 대상은 실제로는 어른이죠. 그런데, 이 나라의 아이들은 어른들의 돌봄을 받습니다. 문자적으로는 맞죠. 하지만, 소설 속 내용을 우리의 언어로 바꾸면, 어른들은 자기 멋대로 하면서 정작 아이들의 돌봄을 받는답니다.
아무튼 책은 네 편의 짧은 단편이 실려 있어요. 그리고 이 네 편의 단편은 모두 어린이들이 주인공입니다. 무엇보다 네 편의 단편을 통해 작가는 어른들의 행태를 꼬집기도 하고, 어른들이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을 촉구하기도 합니다. 아니 여전히 듣지 않은 어른들을 향해 작가는 아이들의 소리를 대신 외치고 있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린 아이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나 반성해 보게 됩니다. 어쩜, 나 역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어른들처럼 자기 멋대로 하면서 내 주장을 아이에게 주입시키고 아이들의 생각, 아이들의 입장은 모른 척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말입니다.
“우리는 마치 아이들인 척할 거예요. 마땅히 우리를 도와야 하는 데도 그러지 않으려 하고 우리를 나쁘게만 이해하는 그런 어른들이 아니라요.”
“우리는 기다릴 거예요-변함없이 마음을 다해-그리하여 시간이 변하고 변해 모든 게 우리를 돕고,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웃음거리로 만들지 않으며, 요정들이 돌아올 때까지요. 우리는 기다릴 거예요-변함없이 마음을 다해-그리하여 우리가 여든이 되고 아흔이 되고 백 살이 될 때까지. 그리하면 그때 요정이 우리에게 아이들을 보내겠죠. 그리고 그들이 그토록 가엾고 어여쁜 작은 생명체인 척한다면 우리가 기꺼이 그들을 도와야죠.”(30-1쪽)
어쩌면 오늘 나 역시 어른이라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에게 수많은 것들을 주장하고 강요함으로 아이들로 하여금 “여든이 되고 아흔이 되고 백 살이 될 때까지” 기다리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해보게 됩니다.
소설 속 대사나 내용 가운데는 오늘 우리 어른들 가슴을 뜨끔하게 할 그런 내용들이 참 많답니다. 두 번째 이야기인 「앨리스 레인버드가 쓴 사랑 이야기」에서 가난한 왕에게 요정이 하는 말도 괜스레 가슴을 뜨끔하게 만들더라고요.
“사람들이 말을 다 마치기 전에는 말허리를 자르지 말게. 당신 같은 어른들이 잘하는 짓이지. 당신도 이유는 없네. 거참 나를 질리게 하는군! 난 당신네 어른들의 온갖 이유에 진절머리가 난다네!”(43쪽)
나 역시 아이들의 말에 끝까지 들기보다는 아이들을 위한다는 명목 하에 아이들의 주장을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설득하고 묵살하곤 했다는 반성을 해보게 되고요.
마지막 이야기인 「네티 애시퍼드가 쓴 사랑 이야기」는 더욱 이런 내용이 많답니다. 어른인 내 마음을 뜨끔뜨끔하게 하는 내용들이 말입니다.
마지막 이야기는 아이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나라의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처음엔 ‘아~ 아이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나라를 꿈꾸는 거구나.’ 싶었죠. 그런데, 아닙니다. 이 나라는 현실의 어른을 ‘아이’라고 부르고, 현실의 아이를 ‘어른’이라고 부른답니다. 이 나라는 “어른들은 아이들의 말에 복종해야 하며 자신들의 생일을 제외하고는 똑바로 앉아 저녁 식사하는 것이 절대 허용되지 않는”다고 하네요(101쪽).
그러니 실제로는 아이들은 어른들의 말에 복종하는 나라랍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소설 속 아이들(현실의 어른)은 어른들(현실의 아이들)의 돌봄을 받는답니다.
아무튼 찰스 디킨스의 마지막 소설을 읽게 되었다는 마음에 뿌듯한 마음도 있는 반면, 아이들의 입장, 아이들의 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는 어른다운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반성도 하게 하는 책이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