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 밟아 봤어? 스콜라 동시집 1
장영복 지음, 이나래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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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만, 동시는 힘이 있습니다. 때론 마음을 시원케 해주고. 때론 마음을 따스하게 덥혀주기도 합니다. 때론 잔잔한 미소를 짓게 만듭니다. 무엇보다 동시는 마음을 맑게 해주고 밝게 해줍니다. 어쩌면 동심 가득한 아이를 만나는 것처럼 말입니다.

 

여기 동시의 힘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또 한 권의 동시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장영복 시인의 똥 밟아 봤어?란 재미난 제목의 동시집입니다.

 

여러 동시들이 마음을 따스하게 덥혀주는데, 그 가운데 두 편을 옮겨 봅니다.

 

지난겨울 푹푹 눈 쌓였던 길에 / 나 발랑 넘어졌던 그 자리에 // 제비꽃이 / 제비꽃이 / 제비꽃이 // 웃네 // 여기서 꽈당, / 엉덩방아 찧던 나를 // 제비꽃이 / 제비꽃이 / 제비꽃이 // 보았나

<보았나> 전문

 

느림보 달팽이가 지고 다니는 건 / 짐이 아니야 / 숨바꼭질, / 숨바꼭질을 하고 싶어서야 // 어느 날 네가 술래가 되었다면 /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 / 열 번 외치고 / 눈 떴을 때, / 숨지 못한 달팽이를 보더라도 / 달팽이, 너 술래다 하지 말고 / 눈 한번 슬쩍 감자 // 느림보 달팽이는 그동안 / 술래밖에 못 했거든

<술래밖에 못 했어> 전문

 

어때요? 마음이 맑아지지 않나요? 괜스레 착한 마음이 솟아나지 않나요? 얼굴엔 흐뭇한 미소 한 자락 떠오르게 되고요.

  

  

<보았나>를 감상하면서는 웃음 짓게 되요. 어쩐지 순수해지는 느낌도 들고요. 발랑 넘어졌던 그 자리, 그 아픔의 자리, 쑥스럽고 창피한 그 자리에 환히 핀 제비꽃. 제비꽃이 웃는 건 지난겨울 내 우습던 모습을 봤기 때문이라니. 그런데, 그 창피한 자리에 핀 제비꽃이 어쩐지 창피함을 느끼게 하기 보다는 순수한 에너지를 느끼며 옆구리가 간질간질 기분 좋아지는 건 괜한 느낌일까요?

 

<술래밖에 못 했어> 역시 어쩐지 착해지는 느낌이 들고, 마음이 깨끗하게 정화되는 느낌도 들어요. 게다가 느림보 달팽이마저 술래잡기에서 소외되지 않고, 배려 받게 되는 예쁜 모습, 이상적인 세상도 엿볼 수 있고요. 그래서 나 역시 누군가를 보며 눈 한번 슬쩍 감는 여유를 가질 것도 같고요.

 

시인의 시들 가운데는, 누구나 한번쯤 경험했을 법한 일들을 멋진 동시로 탄생시킨 것들도 많더라고요. ‘나도 그랬지.’ 공감하게 되는 그런 사연들이 멋진 동시로 옷을 입고 있는 모습에 역시 시인은 다르구나 싶기도 했고요.

  

  

<어린이 열람실에 할아버지 앉아 계시네>란 시를 읽으며, 이번 여름 도서관에서 만난 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르더라고요. 저 역시 도서관에 앉아 계신 할아버지의 모습에 특별한 감정을 느꼈었거든요. 그런데, 시인은 저처럼 특별한 감정에서 그치지 않고 예쁜 동시로 그 감정을 붙잡아 놨더라고요. 그래서 동시를 통해 내가 느꼈던 그 특별한 감정을 다시 떠올릴 수 있게 해 줘 고맙다는 생각도 들고요.

 

<갈 길 간다>란 동시 역시 그렇답니다. 산책길에서 간혹 다람쥐나 청설모를 만나거든요. 그럼 둘 다 얼음이 되죠. 물론 언제나 다람쥐가 먼저 갈 길 가지만요. 그때의 감정이 오롯이 살아나는 것 같아 반갑기도 하고, 묘한 느낌이 들기도 했답니다.

 

<똥 밟아 봤어?>란 동시 역시 예전의 웃픈 사연들을 떠올리게 했고요. 예전엔 정말 길에 실례한 똥들이 많았거든요. 불과(?) 30여 년 전엔 그랬답니다. 친구와 함께 한껏 멋을 부리고 시내로 나가려던 차, 길에서 똥을 밟고 버스에 올랐던 웃픈 사연은 있을 수 없답니다.

 

한편 자연을 보는 시인의 눈은 역시 다르다 감탄케 하는 시들도 여럿 있어 부럽기도 하고, 괜스레 기를 죽이기도 하더라고요. 그 가운데 한 편을 옮겨봅니다.

   

 

자꾸만 / 비질을 / 한다 // 푸른 하늘에 / 흩어진 / 흰 구름 / 몇 조각 // 한옆으로 / 치우고 / 싶은가

<갈대> 전문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보며, 하늘을 빗질하는 갈대의 모습으로 노래할 수 있는 시인의 눈은 역시 멋지네요.

 

제목부터 재미난 동시집, 똥 밟아 봤어?, 마음이 어두워질 때마다 펼쳐 읽고 싶을 만큼, 좋은 동시집입니다. 또 하나의 좋은 동시집을 만난 행복한 시간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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