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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팅 게임 (한글판 출간 10주년 기념 리커버 에디션)
엘렌 라스킨 지음, 이광찬 옮김 / 황금부엉이 / 2018년 12월
평점 :
『웨스팅 게임』은 1978년에 발표된 작품이며, 1979년 뉴베리상을 수상한 작품이라 한다. 금번 개정 2판의 새로운 옷을 입고 출간되었다. “백만장자의 상속자 16명이 펼치는 지적 추리게임”이란 선전문구가 눈에 띤다.
소설은 백만장자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아니 그 이전 백만장자의 집에 이웃한, 미시간 호숫가에 유리로 휘황찬란하게 지어진 5층 아파트 선셋 타워. 이곳에 여섯 가정(여기엔 1인가정도 포함된다.)이 입주하기 시작하면서 시작된다. 이들은 모두 한 사람의 부동산 중개인이 보낸 편지가 한 사람의 배달부에 의해 배달되어 선셋타워로 유인되며, 부동산 중개인의 회유에 결국엔 모두 선셋타워에 입주하게 된다. 이렇게 사건의 못자리는 잉태된다.
선셋타워 아파트 북쪽으로 가는 길 언덕엔 웨스팅 저택이 있다. 백만장자 웨스팅의 저택이지만, 지금은 비어 있는, 그래서 유령이 나오는 집이라는 소문이 나도는 곳. 그곳에 담력테스트(사실 담력테스트를 빙자한 용돈벌이를 위한 것이다.)를 위해 선셋타워의 입주가정 자녀 중 하나인 터틀 웩슬러(마음에 들지 않으면 누구든 걷어차는 13살 말괄량이 소녀)가 들어가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터틀이 웨스팅 저택에서 본 건 누군가의 시체, 그리고 누군가 그곳에 있다는 느낌.
그렇다. 누군가 죽었다. 어디론가 사라졌던 백만장자 웨스팅 씨가 저택에 돌아와 그날 죽었다(마침 그날 터틀이 저택에 들어갔던 것.). 웨스팅 씨는 죽기 전 유서를 남겼다. 그리고 그 유서는 16명의 유산상속자들 앞에서 공개된다. 16명의 유산상속자는 다름 아닌 선셋 타워와 관련 있는 사람들이다. 그곳 입주자와 자녀들, 그리고 선셋타워의 수위와 청소부 아주머니, 선셋타워로 우편배달 하는 우편배달부 등.
웨스팅 씨의 유서는 말한다. 자신은 살해되었다고. 그 범인을 밝혀야 한다고. 16명의 유산상속자들은 둘씩 짝을 이루어(이 짝 역시 웨스팅 씨가 유서에 정해놓았다.), 각자의 팀에게 주어진 단어 단서들을 가지고 범인을 밝혀내라고. 범인은 16명의 유산상속자 가운데 있는데, 범인을 밝혀내는 자가 “웨스팅 게임”의 승자가 되어 유산을 차지하게 될 것이란다.
각 팀에게는 먼저, 1만 달라가 지급되는데, 이 돈은 팀원 둘이 모두 함께 서명을 함으로 사용할 수 있고, 게임을 포기할 경우 반납해야 한다. 추후에 다시 한 번 1만 달러가 지급된다. 그러니 끝까지 게임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1등이 되어 유산을 상속받지 못하더라도 1만 달러는 상속받게 되는 셈이다.
이렇게 웨스팅 게임이 시작된다. 과연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소설을 읽어가면서, 16명의 상속자들, 그 여덟 팀이 가진 단서가 무엇일지 궁금하다. 아울러 이 단서들을 어떻게 조합해야 하는지도 궁리하게 되고. 무엇보다 최후의 승자가 누가 될지도 궁금하다. 그런데, 이에 못지않게 궁금한 것은 초대된 상속자 16명은 과연 웨스팅 씨와는 어떤 관계일까 하는 점이다. 서로 웨스팅 씨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 같은 이들 모두는 이런저런 모습으로 웨스팅 씨와 연관되어 있다. 그 관계가 무엇일지 역시 범인을 밝혀내 게임의 승자가 되는 것 못지않게 궁금하다.
16명의 게임 참여자가 등장하여 각자의 관점에서 소설이 진행되기에 솔직히 산만한 점이 없지 않다. 그런데, 이런 산만함 마저 웨스팅 게임이 복잡하고 어려운 게임이며, 알 수 없는 신비감이 서려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한 가지 요소가 되지 않나 싶다. 과연 웨스팅 씨를 살해한 범인은 누구인가? 정말 웨스팅 씨를 살해한 건 맞을까? 내가 감정이입해서 응원하는 등장인물이 승리하게 될까?
소설은 처음엔 다소 산만함이 있다. 하지만, 소설이 진행되는 가운데, 나도 모르는 사이 깊이 몰입하여 게임을 주시하게 된다. 과연 게임의 승자가 누가 될 것인지. 범인은 누구일지. 아님 게임을 어떤 식으로 풀어나가야 할지 이런저런 것들을 골몰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16명의 상속자들은 같은 아파트에 살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서로 얼굴을 맞대게 되는 이웃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진정한 이웃이라 하기엔 꺼려지는, 진정한 왕래는 없던 사이다. 이들들 입주자들은 직업도 각양각색이다. 재단사, 발명가, 비서, 의사, 판사, 학생(운동선수, 작가지망생, 말괄량이), 병자, 결혼예정자 등등 서로 위치도 입장도 다른 이들이 게임에 참여하는 가운데 누군가를 향해 마음을 열기도 하며, 각자에게 감춰진 상처가 치유되기도 한다. 실제적 질병이 치유되기도 하고. 이처럼, 웨스팅 게임을 통해 얻게 되는 진짜 유산은 사람이다. 그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공통분모만 있는 데면데면하는 관계가 아닌, 진정한 이웃 새로운 가족으로 나아가게 되는 새롭고 끈끈한 관계 형성이야말로 웨스팅 게임이 주는 진짜 유산이 아닐까?
뉴베리상을 수상한 어린이 대상 도서이지만, 성인이 읽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을 그런 미스터리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