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 랜덤하우스 히가시노 게이고 문학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제법 읽은 편인데, 편지라는 작품은 여타 작품들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의 작품이다. 2003년 작품으로 2006년에 랜덤하우스코리아(현 알에이치코리아)에서 번역 출간된 작품으로 현재는 절판된 작품이다.

 

사실, 소개 글을 읽어보며, 읽기가 조금은 망설여지던 작품이다. 흥미진진하고 재미나게 읽는 미스터리가 아닌 마음을 무겁게 할 주제를 다룬 작품처럼 느껴졌기에 그랬다(이 책은 히가시노 게이고 책 가운데서는 독특하게도 미스터리소설이 아니다.). 집 앞 도서관에서 빌려봤는데, 역시 무겁다.

 

처음 시작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여타 소설처럼 미스터리 범죄소설의 분위기로 시작된다. 일자리를 잃은 형은 사랑하는 동생의 대학진학을 위해 어느 부잣집에 몰래 들어간다. 예상대로 돈뭉치를 챙기게 되지만, 없는 줄 알았던 집 주인 할머니에게 그만 들키게 되고. ‘도둑이야를 외치는 할머니를 저지하기 위해 엉겁결에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이렇게 형은 살인자가 되고, 동생은 살인자의 동생이란 낙인이 찍힌다. 주인공의 시련은 이렇게 시작된다.

 

살인자의 동생이란 낙인으로 인해, 일자리를 얻기도 쉽지 않고, 변변치 않은 일자리마저 형의 존재가 드러나면 그만 둬야만 한다. 사랑하는 여인과도 헤어져야만 했다. 좋아하는 노래도 포기해야만 했고. 이처럼 살인자의 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은 아무런 죄가 없음에도 차별과 부당한 대우를 받아야만 하는 주인공. 과연 이런 차별이 정당한가? 소설은 끊임없이 묻는다.

 

소설을 읽는 내내 주인공에 몰입해서일까? 작가가 차별과 부당한 대우로 인해 주인공이 힘겨워 하는 장면들을 그려낼 때면, 주인공을 향해 쏟아지는 차별과 부당한 대우, 부당한 시선들에 혐오감마저 느끼게 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작가는 이런 차별과 부당한 대우는 범죄자의 가족이 마땅히 겪어야만 하는 벌이라는 관점으로 이야기를 전개할 때에는 또한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 역시 귀가 얇다. 하지만, 이렇게 서로 다른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작가의 필력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물론, 작가는 무엇이 옳은지 답을 내리지는 않는다. 답은 독자의 몫이다. 그럼에도 범죄는 남겨진 가족의 사회성을 파괴한다는 것을 저자는 지루하리만치 반복하여 보여준다(특히, 이번 소설에서는 가해자의 가족에 초점을 맞춘다.). 죄의 무게가 얼마나 큰지를 말이다. 범죄자의 잘못된 선택과 행동은 피해자를 죽일뿐더러, 가해자 자신의 가족의 사회성마저 죽이고 만다. 이처럼 죄에 의한 형벌의 무게를 소설은 여러 각도에서 보여준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주로 정통본격추리소설이나 사회파추리소설로 나뉜다. 여기에 편지의 역자는 또 하나의 부류로 감동소설이 있다고 한다. 본서 편지는 이러한 감동소설에 속한다고 말한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과 같은 감동은 아니지만, 이 책 역시 마지막 부분에선 짧고 굵게 진한 감동을 전해주며 울컥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감동소설로 분류하기엔 망설여진다. 소설 편지는 작가가 미스터리 소설의 테두리를 벗어나, 죄와 그로인해 겪어야만 하는 형벌의 모습을 지긋지긋하리만치 계속해서 보여준다(감동에 초점이 있기보단 여기에 초점이 있다.).

 

범죄의 순간은 짧지만 그로 인해 짊어져야 할 속죄와 형벌의 무게는 길고 크기만 하다. 무엇보다 남겨진 가족이 겪어내야만 하는 차별과 편견의 시선은 견디기 어려운 형벌이다. 하지만, 이 역시 범죄를 선택한 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결국, 범죄는 피해자의 가족만 해체시키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의 가족 역시 해체시킴을 소설은 말한다. 비록 그러한 편견과 차별이 부당하게 여긴다 할지라도 말이다. 이게 범죄가 낳는 끔찍함이다.

 

비록 상상의 영역이라 할지라도 수많은 범죄를 만들어내고, 그 범죄 속에서 흥미를 찾는 작품들을 잉태하는 추리소설 작가가 범죄의 끔찍함을 지루하리만치 이야기하는 소설. 어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도 드는데, 그렇기에 히가시노 게이고를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꼭 읽어야 할 또 하나의 작품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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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18-06-05 2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히가시노 작품들에서 베스트중 하나입니다. 리뷰보니까 다시 읽고싶어지네요. 유난히 감정몰입이 심하던 작품으로 기억합니다😮

중동이 2018-06-05 23:23   좋아요 1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이 책 좋더라고요. 히가시노 작품 같지 않은, 어쩌면 작가가 작심하고 자신의 틀을 벗어버리려 쓴 것 같은 느낌도 들고요. 내용이 마음을 무겁게 하는 작품이긴 하지만, 추리적 장치가 없는데도 몰입하게 만들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