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그림을 읽는 세 가지 원칙

1. 그림 크기에 따라, 대각선의 1 내지 1.5배 정도를 유지해서 거리를 두고 감상한다.

2. 우상(右上)에서 좌하(左下)로 감상한다.

3. 세부를 찬찬히 뜯어본다.


<책은 도끼다>에서 박웅현이 추천하여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1>을 사게 되었고, 1만 있으면 보기 그러하니 2도 샀다. 한동안 묵혀 두었다가 꺼내 읽었는데, 아, 이 분 참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애정이 지극한데다 문장력도 좋으시구나. 어라, 친정에 갔더니 <한국의 미 특강>이 있다. 내친 김에 위 1, 2를 읽고 <한국의 미 특강>까지 읽었다. 한 저자의 책을 이렇게 내리 읽은 건 오랜만이다. 이제 우리 옛 그림을 보게 되면 다른 눈으로 보게 될 것 같다. 이토록 아름답고 심오한 그림들이었다니.. 미처 몰랐소. 너무 관심이 없었구나, 해서 송구한 마음까지 든다.

<한국의 미 특강>은 제목 그대로 저자가 강의를 한 내용을 옮긴 것이어서 술술 잘 읽히고, 그림 하나하나에 대한 자세한 설명보다는 우리 전통 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자부심을 높여주는 내용이다. 이 책을 먼저 읽고 난 후 더 자세하게 그림에 관해 알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면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으로 넘어가면 될 것 같다.

저자가 쓴 다른 책 <단원 김홍도>가 궁금해서 어떤 책인지 훑어 보고 싶었는데 도서관에는 없었다.. 다음 기회에.



지금 우리 국민들, 대개 조선에 대한 인상이 안 좋죠? "엣날 고구려는 씩씩하고 멋있었는데 근세 조선은 사대주의에 빠져 망한, 쩨쩨했던 나라다"하고 마뜩찮게 여깁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지 않습니다! 저도 그렇게 배웠지만, 옛 그림을 공부하면서 다시 곰곰이 따져 보니, 아주 잘못된 생각이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조선은 519년 동안 계속된 나라였고,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큰 전쟁이 지난 다음에도 280년이나 더 지속되었습니다. 중국에선 280년 된 왕조조차 드뭅니다. 일제의 정체성停滯性 이론이라니, 원 세상에 시들시들한 채로 오백 년이나 지속되는 나라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한국의 미 특강>157쪽


요즘 역사 서술의 원칙은 근대사, 현대사로 올수록, 즉 우리 시대와 가까울수록 더 많이 상세하게 가르쳐야 한다는 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고대사는 아무리 자랑스러워도 좀 덜 가르쳐야 하고, 근대사는 아무리 본받을 것이 적어도 많이 가르쳐야 된다는 기계적인 생각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 혹시 문교부에 근무하고 계신 분이 있으면 그 점 재검토하시길 바랍니다. 조선시대는 세종대왕이며 영조, 정조 때에 배울 만한 훌륭한 사례가 많았는데 그 부분은 대충대충 가르치고, 나라 망하는 부분인 19세기말 20세기 쪽만 잔뜩 가르쳐서 열등감을 주면 우리 학생들은 도대체 무얼 배우고 느끼며, 무슨 자부심을 키우라는 겁니까?  -<한국의 미 특강> 164~165쪽


아침 일찍 임금이 일어나 깨끗이 씻고 옷차림을 갖추고 조정 일을 살피러 나와 가지고, 공손하니 빈 마음으로 여기 용상에 정좌를 하면 어떻게 됩니까? 천지인, 석 삼三 자를 그은 정중앙에 이렇게 올곧은 마음으로 똑바로 섰을 때, 즉 오늘도 백성들을 위해 바른 마음 하나로 반듯이 앉았을 때, 바로 임금 왕王 자가 그려집니다.  -<한국의 미 특강> 234쪽


섣달 눈이 처음 내리니 사랑스러워 손에 쥐고 싶습니다. 밝은 창가 고요한 책상에 앉아 향을 피우고 책을 보십니까? 딸아이 노는 양을 보십니까? 창가의 소나무에 채 녹지 않은 눈이 가지에 쌓였는데 그대를 생각하다가 그저 좋아서 웃습니다......

이것은 김홍도가 어느 겨울 누군가에게 적어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다.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1> 116쪽


어여쁜 여인이 꽃 아래에서 천 가지 가락으로 생황을 부나

운치 있는 선비가 술상 위에다 밀감 한 쌍을 올려놓았나

어지럽다 황금빛 베틀 북이여, 수양버들 물가를 오고 가더니

비안개 자욱하게 이끌어다가 봄 강에 고운 깁을 짜고 있구나

-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2> 66쪽, <마상청앵도>의 제시 번역


조선의 멸망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조선朝鮮'을 '이조李朝'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이조시대니, 이조백자니, 이조회화니 하는 표현이 바로 그것이다. (...) 흔히 이조는 '이씨 조선'의 준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조의 '조朝'는 조선을 가리키는 글자가 아니라, '왕조Dynasty'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나라를 일컫는 정식 명칭이 아니다. (...) 일본은 이조라는 단어를 새로 만들어서 우리에게 쓰도록 강요했다. 그 배경에는 일본이 빼앗은 것은 부덕했던 전주 이씨들의 왕권일 뿐, 옛 조선 백성들은 오히려 그들 통치 아래서 더 잘 살고 있다는 억지가 숨겨져 있다. (...) 조선시대에 우리나라를 가리키는 한자말은 '본조本朝'였다. 그러나 이제 대일본제국이 '우리나라'가 되었으니 본조는 사용을 금하고, 그 대신 조선을 가리킬 때는 '이조李朝', 즉 '이씨네 나라'라는 신조어를 쓰게 한 것이다. 물론 일본은 '조선'이라는 말 자체에도 지독한 경멸의 뜻을 더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조센징, 조센삐 같은 말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남이 내 이름을 나쁜 뜻으로 쓴다고 해서 멀쩡한 제 이름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Land of the Morning Calm 조선', 이것은 실상 전 세계에 유례가 드물었던 도덕 국가, 문화 국가의 국호였기 때문이다.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2> 200~2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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