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나의 눈부신 친구 나폴리 4부작 1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자도서관이라는 유용한 존재를 알게 된 후

 첫 책으로 <모든 요일의 여행>(김민철 저)을 읽고(마음에 드는 문장들이 꽤 있어 리뷰를 쓰기 위해 대출기한을 연장해 두었었는데 '유효기간이 경과되었다'면서 책이 열리지 않는다.. 뭐지),

 두번째 책으로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혜민 저)을 골랐으나

 한 꼭지 읽은 후 "우와, 내 취향 전혀 아니야!" 하며 반납하고,

 다시 고른 책이 나폴리4부작 중 1부에 해당한다는 <나의 눈부신 친구>였다.

 

 '나폴리4부작'이라는 시리즈명에서 알 수 있듯이 이탈리아 나폴리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로,

화자인 레누(엘리나 그레코)와 그녀의 친구 릴라(라파엘라 체룰로) 사이의 우정과  두 소녀의 성장과정을 담고 있다. 1부인 이 책에서는 유년기와 청소년기(레누의 고등학교 시절까지)를 다루었고, 2부인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에서는 청년기를 다룬다고 한다. 이 책이 66세가 된 레누가 릴라의 아들로부터 그녀가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 사건에서부터 시작되는 걸 생각하면, 이 시리즈는 두 소녀의 거의 일평생을 서술하고 있는 셈이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레누와 릴라라는 두 소녀의 캐릭터가 매우 뚜렷하고 그러면서도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조금씩 변화해가는 모습이 섬세하게 그려져 독자가 자연스럽게 그 흐름을 따라갈 수 있다는 점이다. 언뜻 보면 릴라는 유감없이 천재성을 드러내는 비범한 소녀이고 레누는 똑똑한 편이기는 하지만 평범한 축에 속하는 소녀로, 두 사람의 관계는 대등하지 않아 보인다(<데미안>이 떠오르기도 한다). 레누는 늘 릴라를 의식하고 릴라를 좇고 싶어하며 그녀로부터 정신 깊은 곳까지 영향을 받는 반면, 릴라는 레누를 개의치 않고 자신의 뜻대로만 사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는 화자가 레누여서 더욱 그렇게 보일 뿐, 자세히 살펴보면 릴라에게도 레누의 존재가 중요하다는 것이 드러난다. 소설 후반부에서 '너는 나의 눈부신 친구'라고 말하는 사람은 레누가 아니라 릴라다.

 

 또한 작가는 이 두 소녀의 성장담에서 한 마을에서 복작대며 살아가는 가족과 이웃들에 관해 묘사하는 데 많은 노력을 쏟는다. 이탈리아 이름이 익숙치 않고 비슷비슷한 이름들이 있어 많이 헷갈릴까 걱정했으나, 의외로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누가 누구인지 파악이 되어 '등장인물 소개'란을 되짚어 봐야 할 일이 거의 없었다. 작가의 인물 묘사가 그만큼 생생하다는 증거다.

 

 성장담 뒤에 숨겨져 있는 역사적 비극도 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를 배경으로 하며, 산업화 과정에서 '검은 돈'으로 부자가 된 사람들과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빈부 격차가 점점 심해지는 모습이 관찰된다.

 마을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대립의 양상은 크게 구세대(전쟁을 경험한 세대)와 신세대(종전 후의 세대) 사이의 갈등, 부유층과 빈곤층 사이의 갈등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구세대는 그 시대의 악을 대표하는 듯한 '돈 아킬레'라는 인물을 무조건적으로 증오하고 그 증오는 신세대에게도 이어지지만, 돈 아킬레를 살해한 사람의 자녀들과 돈 아킬레의 자녀들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짐으로써 과거를 잊고 앞으로 나아가는 듯 보인다. 한편 부유층을 대표하는 솔라라 집안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감정과 태도는 더 복합적인데, 그들을 비난하고 꺼려했던 사람들도 결국 그 부에 편승하고픈 욕구를 감추지 못한다.

 또한 구세대는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고, 남성이 아무렇지 않게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사소한 다툼이 큰 폭력으로 나아가는 마을의 전근대적 모습을 대표하는 것 같기도 하다. 신세대 중 일부는 그러한 구세대의 관습을 그대로 물려받은 반면, 레누를 비롯한 일부 신세대들은 고등교육을 받으면서 '점잖은' '신사적인' '문화적인' 지성인의 모습에 눈을 뜨게 된다. 책 속에서 '사투리'와 '표준어'를 구분하는 서술이 자주 나오는 것도 '부(富)' 외에 '지성'으로 구분되는 새로운 계급의 탄생을 말해주는 것 같다(번역본이라 사투리와 표준어의 구분이 없는 것이 안타깝다).

 

 1부의 마지막은 비록 집이 가난하여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지성으로는 누구보다 탁월했던 릴라가 지성면에서 퇴보하고 아름다움과 부(富)를 얻어낸 반면, 레누는 끝없는 노력에 의해 고등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상태에서 끝나면서, 릴라의 선택이 비극이 될 것임을 암시한다.

 두 소녀의 인생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까? 너무나 다른 길을 선택한 두 소녀의 우정이 어떻게 끊어지지 않고 이어질 수 있을까? 2부의 이야기가 무척 기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