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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래도 날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 어린 시절이 나에게 하는 말, 애착 심리학
우르술라 누버 지음, 손희주 옮김 / 생각의길 / 2021년 5월
평점 :
심리학은 어린 시절 경험한 부모와의 애착 관계가 훗날 애정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한다. 안정적인 경험을 하지 못하면 관계 모델에 저장이 되고, 어른이 되서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여자 교도소에 수감된 인물간의 갈등관계를 다룬 넷플릭스 호주 드라마 웬트워스를 보면 주요인물들의 대부분이 어린시절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을 보여준다. 죄수들은 물론이고 교도소장과 간수들까지도. 자신도 모르게 어린 시절의 지배를 받으며 죄를 짓기도 하고 고통을 받으며 실수를 반복하는 인물들에게 공감이 많이 갔다. 할머니의 나이가 되어도 어린시절의 애착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은 드라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일들은 어디에서나 벌어지고 있다.
이 책의 인물들도 그러하다. 가명을 썼지만 실제 인물들의 이야기이다.
여태 경험한 관계의 역사가 성공과는 거리가 멀고, 지금까지 이를 개선하려고 한 모든 노력이 헛된 것처럼 보이면 ' 더 싶숙이 잠수를 하고' 현재 맺고 있는 관계의 정황을 새로운 관점에서 관찰하는 일이 중요하다.......
....... 자신이 경험한 첫 사랑, 다시 말해 부모에 대한 사랑과 현재 함께하는 사람과의 사이에 발생한 문제 간의 관련 여부를 알지 못하면 부부관계가 때로는 수수께끼와 문제로 밖에 인식되지 않는다. 그러면 우리는 치명적인 실수를 계속해서 반복하는 '선고를 받는다'
- 33p 중에서 -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자신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관계에서 왜 문제들이 일어나는지, 왜 내가 그런 행동과 말을 했는지를 잘 모른다. 상대에게 원인이 있을 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도 분명 문제가 있을 수 있고, 상대도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수도 있다. 잘 모른다면 모른다는 것이 바로 문제이다. 문제의 원인을 모르면 해결하기도 어렵기 마련이고.
이 책은 그런 감정이나 행동이 일어나는 원인을 어린시절에서 찾아 봄으로써, 관점의 변화를 통해 좀 더 자신에 대해서 알고 이해하고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 기제를 찾는법을 배우는 데 목적이 있다. 독일 최고의 심리상담사 겸 부부치료 전문가라는 저자 우르술라 누버는 이런 분야에 전문가이다.
책 전반에 등장하는 러브스토리의 유형을 통해서 우리의 (각기 다를) 관계 유형에 대조해 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있다.

애착대상은 아이에게 '항구'와 같다. 마음이 좋지 않을 때 보호받을 수 있는 항구가 있다는 경험은 심리적 안정감을 주고 어려운일이 생길 때마다 버틸 수 있는 기둥이 되어 주는데, 이런 기둥이 없거나 불안하거나 흔들리면 심리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부모가 제대로 항구가 되어주지 못하면 '불안'하다고 느끼는 경험을 하게 되고, 성인 이후의 애착 관계에서 '불안'을 피하기 위해 회피적 성향을 나타나게 되거나, 애착 상대의 잘못된 행동을 사랑이라고 잘못 해석하기도 한다.
공감이 많이 가는 이야기다. 사람은 어떤 상황에 맞닥뜨릴때 객관적 지표를 따르기 보다는 자신의 과거 경험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부모와의 관계도 그렇겠지만 과거 연인에게 상처를 받은 경험이 많은 사람은 경계심이 많고 남자 혹은 여자는 다 똑같다고 생각하기 쉽다. 경계를 하거나 더 애정을 갈구하는 유형으로 나뉘고 다시 상처를 받거나 그것을 방지하려고 들 것이다.
이성적 대상이 아닌 부모의 모델이 왜 이렇게 영향을 주느냐 하면 그것은 자신에게 가까운 사람이 어릴때는 부모이고, 커서는 연인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안정적이지 못한 애착관계를 형성하면 그 결핍욕구는 평생을 따라다닌다고 말한다. 책에는 나는 어떤 유형인지 체크해볼 수 있는 검사문항이 있다.
상대방이 나에게 의존하면 불편함을 느끼는 회피형, 의존형은 반대로 상대에게 집착하거나 애정을 심각하게 갈구할 것이다.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의존하거나 집착을 하거나 과한 애정을 강요하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이 둘의 유형에 해당될 것이다.
회피적 요소와 불안감이 공존하는 유형은 양가성 유형이다. 자기 자신과 상대방을 가장 힘들게 할 유형일 것이다.
안정형은 안정된 감정을 바탕으로 자신감과 솔직함을 드러내곤 한다. 이런 유형도 주변에 있었기 마련일 것이다. 꺼리낌 없는 솔직하고 자신감 넘치는 성격 때문에 인기가 많은 스타일이다.
불안정 애착 유형과 회피적 애착 유형의 조합은 나르시시즘 형태의 관계 조합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자아도취 성향은 언듯보면 자신감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다양한 문제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

책에서는 애착관계, 즉 연인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중점으로 나오지만, 책을 읽고 나니 이런 어린시절의 애착 모델이 연인관계가 아닌 인간관계에도 반영이 된다고 보인다. 그만큼 어린시절의 애착관계형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중요한 어린시절을 다시 경험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내 애착유형이 어떤 유형인지 인지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에 가까울 것이다.
누구나 자신에게는 관심이 있다. 자신을 잘 돌보지 않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나 자신에 대해서 들여다볼 수 있게 하기 때문에 소설을 읽는 것처럼 재미있었다.
350페이지가 넘는 책이 지루하지 않게 몰입이 되었다. 남이 쓴 남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지만 내 자신에 대한 이야기와 절로 대조해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결국 글쓰는 남의 얘기지만 읽고 떠오르는 생각은 내 얘기가 된다.
내 어린시절이나 과거와 현재 애착 관계를 들여다 볼 수 있게 하기 때문에 내 과거를 소재로 한 영화를 본 것처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자연스레 갖게 해주었다. 그것은 굉장히 뜻깊은 경험이다.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애틋하고 때로는 감동적이었다. 그저 내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아닌, 탐구하고 온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책을 빨리 읽는 편이지만 일부러 천천히 읽었다.
다만 번역 문장이 좀 이상한 감이 있었다. 원문을 알 수 없으니 정확한 것은 모르지만 문장자체로 봤을 때, 이게 무슨말이지? 싶은 문장들이 다소 있었다. 79페이지 부분1 을 보면 배우자가 자신의 감정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면 빨리 성급해진다/ 관계를 형성하는 일보다 성과를 올리는 일이 중요하다/ 라는 문항이 있는데 일치한다고 생각 하는 부분에 체크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화를 나누고 싶어하면 성급해 진다는게 무슨 말인지 애매하다. 대화를 나누고 싶어할 때 거부감이 든다거나 성급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거나 성급하게 대화를 끝내고 싶다거나, 명확하지가 않다. 이 뿐만 아니라 문장이 너무 길거나 요점이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상당히 있어서 아쉬움이 든다.
이 책의 내용은 누구에게나 같지만 동시에 누구에게나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경험현실이 어떻게든 조금씩이라도 각기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깊이 돌아보고, 앞으로의 내 삶과 애착 관계에 대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줄 것이다. 사실 별 기대같은건 하지 않고 그냥 읽은 책이었는데, 감정적으로나 이성적으로도 뭔가 가득 채운 느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