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멋진 휴식 - 32인의 창의성 대가에게 배우는 10가지 워라밸의 지혜
존 피치.맥스 프렌젤 지음, 마리야 스즈키 그림, 손현선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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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일을 정신없이 하다보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긴 직장 생활을 하고 나면 어느 시기가 되면 회의감이 찾아온다. 일에 치여 삶에 치여 생활에 치여 지쳐가는 몸.

 

열심히 일을 하는데 재정은 좋아지지 않고 하고 싶은 일도 아니다. 학창시절엔 그걸 생각할 겨를 조차 없었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고 그저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달려왔다. 달리다 보니 너무 지치게 된 것이다.

 

지치는 시기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누구나 이런 시기가 한 번 이상 오지 않을까 한다.

 

 

저자도 번아웃이 올 정도로 업무에 치중하다가 휴식의 중요성을 깨닫고 여유있으면서도 업무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번아웃이란 탈진 혹은 무기력이 오는 현상이다. 직장에서 일하는 동료들의 얼굴을 보라. 활기차고 눈이 반짝이는 직원이 몇명이나 되나? 다들 입꼬리는 내려가 있고 다크써클 그윽한 피곤한 표정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리 힘들까? 워라벨은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의 균형을 잡는 것이라고 추천사에서 정신과 의사 문요한이 말했듯이 적절한 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할 것이고 이 책에 그 방법과 예시가 잘 담겨 있다.

 

휴식은 지친 몸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업무를 위해서도 그게 더 도움이 된다고 이 책은 말한다. 쉼 윤리와 여가, 타임오프를 통해 오히려 과도하게 일할 때보다 창의력과 아이디어가 솟아난다는 것이다. 그저 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의식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분주함은 생산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그동안 인식이 되어왔다.

 

그것도 영 틀린 말은 아니지만 우리 모두가 생산직에서 일하는 것은 아니다.

제조업에서는 기계가 돌아가는 라인에 맞춰서 일을 하면 능률이 오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헨리포드의 분업화가 통하던 산업화 시대의 이야기다. 그것을 아직까지 일의 능률과 연관짓고 있다.

특히 6.25 이후 빠른 발전을 이룩해온 한국의 문화는 빠르고 열심히가 모토였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이제 선진국 산업을 해야 할 위치에 접어들어있다. 생산직은 국내보다 외국에 공장을 두고 있는 업체가 더 많다.

 

저자 맥스는 산속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한가했지만 놀라울 정도로 생산적이었던 박사 과정을 밟던 시절을 떠올리며 쉼 윤리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업무에 따라 다들 다르겠지만 어느 업무에나 비율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쉼윤리와 근로윤리의 적절한 조화가 도움이 될 것이다.

게으르게 하라는 뜻은 아니다. 열심히 할 때는 최선을 다하지만 쉴 때는 확실히 쉬며 일하기 까지의 에너지를 충전하고 정신적인 휴식도 확실히 취하면서 능률을 올리자는 것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일을 정신없이 하다보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긴 직장 생활을 하고 나면 어느 시기가 되면 회의감이 찾아온다. 일에 치여 삶에 치여 생활에 치여 지쳐가는 몸.

 

열심히 일을 하는데 재정은 좋아지지 않고 하고 싶은 일도 아니다. 학창시절엔 그걸 생각할 겨를 조차 없었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고 그저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달려왔다. 달리다 보니 너무 지치게 된 것이다.

 

지치는 시기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누구나 이런 시기가 한 번 이상 오지 않을까 한다.

 

 

저자도 번아웃이 올 정도로 업무에 치중하다가 휴식의 중요성을 깨닫고 여유있으면서도 업무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중간 중간에 워라벨의 대가들의 에피소드가 파란색 종이에 담겨 있는데, 익히 알고 있는 인물들도 있었고 잘 모르던 인물들도 있었다.

 

아리스토 텔레스부터 헤르만 헤세, 기업가들 까지 총 32인의 창의성의 대가의 이야기를 읽는 것도 재미있었다. 영감을 주고 창의성에 도움이 될 에피소드들을 읽고 있으면 나도 그게 막 솟아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창의성과 잠, 놀이, 온동과 고독, 성찰과 여행등으로 일에 활력과 아이디어 그리고 새로운 관점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힘을 주는 휴식은 분명히 업무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도 잘 놀고 잘 쉬고 잘 자면서 일도 잘하는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 애써야 하겠다.

 

 

이렇게 시대가 변화해왔기 때문에 더이상 과거의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미래, 미래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들을 11장에 담고 있다.

일자리를 뺏어가고 있는 AI는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시대의 변화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갈수록 치솟고 있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식당에서도 자동화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는 추세다. 날이 갈수록 이런 테크놀로지 물살이 더 거센 파도로 다가올 것인데, 이런 현실을 부정하고 원망 하고 내 일자리를 잃을까봐 전전 긍긍 해봤자 나아지는 것은 없다. 소용없는 에너지를 미리 소진하면서 걱정만 하고 있을 시간에 어떻게 AI와 동반 성장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귀찮고 바쁘지만 미래를 위한 학습법을 배우는 데 투자하고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일을 생각해야 한다.

 

같은 일을 오래 하다보면 다른 일을 하게 되면 어떡하나는 걱정부터 들고 아무것도 할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개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창의성을 발휘하는 타임오프를 창출하고 고귀한 여가로의 의미있는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 책의 메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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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 - 풍요로운 삶을 위한 바이블
클래스케이 지음 / 케이미라클모닝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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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각자의 내면에는 이미 마스터가 존재한다로 시작하는 이책. 마스터가 뭘까? 현실창조 관련 책이라는데 현실 창조란 또 뭐지? 뉴에이지 같은 건가? 애매하게 이야기 해고 안되면 니 능력이 부족해서다 라고 생각하게끔 하는 책인가 싶기도 했다.

 

저자는 어린시절 많은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그것을 극복해내기 위해서 여러 방법들을 찾았을 것이다. 나도 또한 뭔가 까닭을 모르게 집중이 안되고 불안정하고 불안해하며 예민하고 신경질적일때가 많았다. 제일 심각한 것은 무기력증이었다. 또한 어린시절의 어떤 트라우마 같은 것이 있었고 무엇인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 나를 방해하는 요소들이 있다는 느낌이 들어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신념의 힘은 과학에서도 이야기 하고 있다. 너무나 유명해서 다들 아는 플라시보효과의 포인트는 그게 가짜약인줄 모르는 것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핵심은 속임 이라는 것과 다름없다. 그런데 최근 연구 결과는 가짜약인줄 알고 있어도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참 신기한 일인데 굳건한 믿음이라는게 참 쉽지 않은 것이다. 잘못된 믿음을 굳게 믿고 있는 사람은 남들이 보기에 어리석다. 그러나 자기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 고집이 있다. 신념의 깊이가 고집에 의해서 결정이 된다면 그 사람들의 신념은 적어도 자신과 자신의 주변에서는 진실이 되어야 하는데 아무리 봐도 그래보이지 않는다. 그 사람들도 속으론 자신들의 신념에 대해서 자신이 없고 빈약하단 말인가?

 

삶을 결정짓는 것은 환경이나 사건이 아니라 신념이다. 한 번 굳어진 신념은 무의식과도 같다. 캐릭터 설정과 같다고 하는데, 글쎄. 잘모르겠다.

마음은 의식적으로 산다고 늘 착각한다. 사실은 몸이 마음에게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이 변화를 모색할 때마다 몸은 익숙하고 편안한 상황으로 마음을 진정시킨다. 몸은 뇌에게 신호를 보내 변화를 하지 못하게 설득한다. 우리가 같은 생각과 감정을 느끼는 이유는 간단하다. 몸의 모든 세포가 생각과 감정이 만들어내는 화학물질에 중독되었기 때문이다.

십여년 전에 열풍이 불었던 시크릿 류의 뉴에이지, 영성과 관련있는 책인것 같다. 뉴에이지는 종교인들이 참 싫어하는 것인데 비슷하다. 알랭드 보통의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처럼 종교의 장점을 신을 믿지 않고도 취하자는 것인가?

나야 독실한 무신론자라 영성이나 뉴에이지에 대한 반발은 전혀 없다. 그러나 믿음도 별로 없다. 현대 과학이 명상이나 뇌과학의 신비를 밝혀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신비한 부분이 옳았다는 것도 조금씩 증명이 되고 있긴 하다. 마음의 힘이나 신념의 힘, 생각의 힘 등 뇌 관찰 실험으로 증명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솔직히 좀 너무 간거 같기도 하다.

마스터와의 대화는 다소 유치하게 구성이 되어있다. 은유적 표현이거나 유머의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글로서만 보면 솔직히 형편없다. 인터넷 소설같은 대화체로 이루어져 있는데 많이 유치하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해도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좋다면 문학이 아니기 때문에 넘어갈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의 이야기들이 엉터리라는 증거도 없다. 물론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저 멀리 우주는 지금 현 인류가 모두 죽을 때까지 밝혀지지도 않을 방대한 미스터리의 세계이다. 너무 방대하고 신비해서 무기력함을 느낄 지경이다. 과학자들도 당장 외계에 너무나 방대한 지역이 있고 그 곳에 외계생물체가 살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없다고 말한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우주 뿐만 아니라 지구에도, 당장 내 자신의 신체의 비밀도 다 밝혀진 것이 없다.

 

그렇다고 밝혀지지 않은 것을 그대로 믿기도 그렇다. 그들이 어떻게 안단 말인가? 정보가 넘처나는 시대인 만큼 가짜 정보가 너무나 많기에 쉽사리 믿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이 맞다고 하면 옳은 것일까?

신의 존재는 확인된 명확한 근거가 없는데 믿는 사람들은 굳게 믿는다. 그건 자신들의 집단과 가까운 공동체를 믿는 것과 다름 없다. 믿지 않을 수 없어서 믿는 경우도 있다. 만약 우리가 이슬람 국가에서 태어나면 어찌 그쪽 종교를 안 믿고 배기겠는가? 그러나 실제 신이 있다고 해도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대로의 모습은 아닐거란 것이다.

절대 그럴리가 없다. 왜냐하면 현대에 새롭게 밝혀지고 있는 것들이 예상과 맞는 것도 있지만 맞지 않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온갖 사기꾼들과 협잡꾼들이 자신과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서 진실에 거짓을 살짝 짬뽕 시켜서 믿게 만드는 행위를 해온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다. 그게 세력이 크다고 진리일까? 그저 권력 뿐인 것은 아닐까? 역사를 보면 승리한 국가의 종교가 살아남았지 진리라서 살아남은 것은 아니다. 로마가 다신국가에서 통치를 위해 그리스도교를 변형한 천주교를 제정하고 그리스도교가 번영했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얼마전에 읽은 박물지라는 책은 세계최초의 백과사전이다.

서기 77년에 쓴 책으로 그때 사람들의 생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당연히 헛소리지만 그당시엔느 불사조나 늑대인간등이 실제 한다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것들이 아니더라도 여러 체계면에서, 국가나 정치관, 도덕관, 인생관에 있어서 굉장히 당연하게도 자기 중심적, 로마 중심적, 시대 중심적 사고관을 가지고 그것이 옳다는 굳건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그 중에서 뭐가 옳고 뭐가 그른지는 인간이 쉽게 예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믿는 것을 죽을 때까지, 아니 죽은 뒤에도 진실로 밝혀질지 아닐지 모르는 것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도 있다. 그 과정이 인간이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것을 남에게 강요하고 절대 진리인 양 고집하는 것은 자기 종교만 옳다고 고집하는 여러 일신교도들과 다를 바 없다.

여기서 일신교가 여럿이라는게 포인트다. 하나만 존재해야 되는데 여럿이 존재하며 각자 자기가 유일하다고 싸우고 분쟁을 일으킨다. 미래에서 지금의 기록이나 생각을 보면 그 어이없음이 늑대인간이나 불사조가 실제 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이 책의 이야기 들이 진실인지 아닌지 정확히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참 좋은 이야기도 많다. 내 어릴적의 내면아이를 달래는 방법이나 무의식에 관한 이야기는 심리학이나 과학에서 말하는 것과 비슷한 부분도 있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내면 감정과 습관의 내실을 다지는 이야기는 입증과 관련없이 좋은 이야기들이다. 감정을 카르마로 보는 것은 유전 정보가 부정적 감정의 일부 원인일 수 있다는 것이고 7세 이전 어린시절에 형성된 가정과 사회의 관습에 의해 형성되고 저장되어 자동화된 감정발동의 기제들로 본다. 그래서 감정을 나 자체와 동일시 하지 않고 분리해서 보라는 좋은 조언을 한다. 감정을 내가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에 불과하다고 한다. '지도는 실제 땅이 아니다' 라는 NLP의 개념과도 비슷하다.

 

다만 이 책에 있는 이야기들이 모두 전적으로 받아들이기엔 무리가 있다고 본다. 저자가 깨달았다는 무엇에 대한 이야기가 딱히 명확하지도 않고 이미 마스터라는 것과의 대화 그 마스터라는 존제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없다. 호노포노포노를 우주위원회가 고안한 백신 프로그램이라는 다소 황당한 이야기는 그저 마스터와 케이의 대화를 표현하는 상상력의 표현인것 같기도 하고, 실제 내면에 생성된 삶을 이끌어주는 독립적인 존재를 이야기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전생운운 하는 것도 좀 황당하다. 전생이 있다는 전제하에서 이야기 하는데 그것도 입증할 수 없는 것이거니와 그저 상상력이나 꿈, 가수면 상태에서의 정신적 작용일 수도 있다. 자신의 자아를 신의 목소리라고 생각했던 옛날 사람들처럼.

 

원래 인간에게는 자아가 없거나 아주 희미했다고 하는 설이 유력하다.

자아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개념이다. 영장류 중에서 침팬치나 오랑우탄 고릴라 등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자신인줄 안다고 한다. 다른 동물들은 그런 능력이 없다. 서기 전 약 1000년 경으로 추정되는 시기에 인간에게 없던 자아라는 것이 생기고 내면의 목소리를 최초로 가졌던 그 시대 사람들은 그것을 신의 목소리라고 착각했는데, 그 마스터라는 것이 자아와의 대화를 뜻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그저 상징적인 도구로 쓰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뇌혁명의 하루야마 시게오에 따르면 좌뇌는 내 자신의 경험과 이성의 뇌이고 우뇌는 인류가 쌓아온 유전정보를 담은 뇌라고 확신하면서도 명확하게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을 본인도 인정을 했다. 그게 맞다고 가정하에 여기서 나오는 이야기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이 책을 표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대화는 그저 은유적 표현 방법의 하나이고, 여기서 나오는 기법들 중에서 효과가 있을 것 같은 기법은 한 번씩 사용 해보는 식으로 이용하는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어차피 내면의 추상적인 이야기들은 옳은지 아닌지 밝히고 말게 없다. 목적을 이룰 수 있다면 활용할 수 있는 것을 활용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내면아이 달래기나 정화에 관한 이야기는 활용해봐도 좋을 것 같다. 자기 암시라는 얼핏들은 기법과도 비슷한 효과가 있을 것 같다. 정화는 다른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닌, 내 안에 있는 자신을 미워하는 '정보'를 향해서 하는 거라는 말은 좋은 이야기 같다.

 

다만 너무 맹신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플라시보 효과는 가짜약인줄 알고 먹어도 나타난다고 한다. 이 책의 이야기를 플라시보 쯤으로 생각하고 활용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앞서 저자가 믿음을 강조한 것은 여기에 나오는 말들을 굳게 믿고 사실이라는 전제하에 받아들이라는 이야기 같은데 플라시보처럼 추상적인 것들에 대한 믿음의 효과를 믿는 것이지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믿기는 솔직히 어렵다.

 

판단은 독자 각자가 하면 될 것이다. 추상적인 것들은 증명하기가 애매하다. 증명할 수 없는 것들, 종교나 신 같은 것들을 믿고 안믿고는 개인의 자유이듯 믿고 싶으면 믿고 효과가 있다면 활용하면 될 것이다. 믿고 안믿고에 너무 집착하지는 말자. 남의 믿음을 내 마음대로 침범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독실하고도 철저한 무신론자지만 신앙인을 설득할 마음도 간섭할 마음도 없다. 다만 나에게 간섭할때는 가만히 있지 않는다. 남을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의 논리로 자꾸 간섭하려 하거나, 추상적인 것을 물리적인 증거로 증명하려들면 어떤 종교처럼 자꾸 물리적 증거를 찾고 유사 과학이 되려 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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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 마케팅 - 인간의 소비욕망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매트 존슨.프린스 구먼 지음, 홍경탁 옮김 / 21세기북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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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을 구매할 때 우리는 자신의 판단이나 주변의 추천에 의해 물건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마케팅 광고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마케팅기법은 나날이 발전을 해서 소비자의 무의식까지 자극하기 때문인데, 저자는 판매자와 소비자의 그런 격차를 줄이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기업은 판매증진을 목적으로 심리기법 및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 나쁘게 말하면 '수법'을 연구해온것은 다들 아는 사실일 것이다. 모두가 아는 유명한 기업이 어떤 수법을 썼고 어떻게 현혹시켰나를 추적해보고, 그 매커니즘을 밝혀낸다.

더이상 수동적인, 당하기만 하는 소비자가 아니라 상호 대등하면서 건전한 관계를 지향해야 한다고 이 책은 이야기 하고 있다.

 

일단 독자가 받아들이기 어려울지도 모르는, 신경의 오류를 짚어준다. 개 사료로 만든 요리를 구분할 수 없는 일반인은 물론 전문가인 소믈리에도 똑같은 화이트 와인에 레드 식소를 탄 와인의 맛을 다르게 평가 했다고 한다. 혀에 닿는 것은 물리적인 미각만이 아닌 뇌 내부의 주관적 인식이라는 것이다. 뇌는 현실을 직접 경험하지 않고 현실 모형인 심성모형(mental model)을 구축하는데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이 외의 다양한 실험 또한 같은 결과로 나타났다.

원효대사의 해골물 같은 것일 것이다. 어떤 음식을 싫어하면 그 음식이 들어갔다는 것을 알고 먹으면 속이 매슥거리기 까지 하지만 모르고 먹으면 또 잘 먹는다. 멸치젓만 보면 구역질을 하던 지인은 김치에 멸치젓이 들어가지 않았다고 말하니(실은 들어갔는데) 아무 문제 없이 먹는 것을 직접 보기도 했다. 이런 인지 착각은 언듯 믿기 어렵지만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같은 와인을 주고 하나는 비싼 와인이라고 말하고 하나는 값싼 와인이라고 말했는데, 비싼 와인이라고 믿고 마실때 뇌의 쾌락 중추에서 뉴런이 활발하게 발화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이미지나 감정적 기억이 대상을 다르게 해석하게 한다는 것이 충분히 증명이 되어있다. 코카콜라가 이미 유명한 브랜드이지만 매년 수십억달러를 광고와 브랜딩에 쓰는 이유는 아무 관련없는 행복을 코카콜라와 연결하여 브랜딩하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연상설계'를 위해서이다. 연상이 측두엽에 물리적으로 각인되는 브랜드 화를 위해서 엄청난 돈을 쓰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학습이라고 할 수 있다.

 

브랜드를 가렸을 때는 펩시 콜라가 맛있다고 하지만 가리지 않으면 코카콜라가 맛있다고 말하는 비율이 훨씬 상승한다. 콜라는 코카콜라가 제일 맛있다며 고집하는 친구들을 보지 않았나? 나는 많이 봤다. 이런 특정한 몇가지 뿐만 아니라 많은 것들이 다양한 형태로 모형화를 만들어 낸다. 그것이 뇌의 메커니즘이기 때문이다. '플라시보 효과'를 그들의 제품에 대한 감정과 개념이라는 약효로 바꿔버리는 것이다. 즉 인간의 믿음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자신들의 이익으로 만드는 수법인 것이다. 이런 비도덕적인 광고는 이제 너무나 많아서 죄책감을 느끼는 기업인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런 사실을 우리가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원치 않는 것들에 영향을 받는, 일종의 폭력이나 강압과도 같은 것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모르는 글자로 된 계약서와 아는 글자로 된 계약서가 전혀 다르게 다가 오는 것과 같다.


우리가 좋아하는 책도 마찬가지로 마케팅의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나는 베스트 셀러 목록을 참고하지 않는다. 1위에 올랐던 책을 아무리 읽어봐도 그게 좋은 책이라서 1위가 된 것이 아니라고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

또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삼국지는 한국에서 인기가 있어 많은 번역본이 출간되었는데, 너무 많아서 무엇을 골라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그래서 추천글을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하기도 하는데 가장 많이 거론 되는 삼국지는 이문열 평역 삼국지이다.

90년대 출간 당시 신문 광고에는 당시 서울대를 수석입학한 학생의 한마디가 실렸다. '이문열 삼국지가 논술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논술에 '왜' 도움이 되었는지는 구체적으로 쓰여있지 않았다. 사실 논술에 도움이 되려면 논평이나 사설을 읽는게 더 도움이 된다.

삼국지 3번 이상 읽은 사람과는 말을 섞지 말라는 기존의 속설에 힘입어 엄청난 판매고를 올렸다. '삼국지를 3번 이상 읽으면 거기에 나오는 각종 권모 술수 지략을 배운 똑똑한 사람에게 읽지 않은 보통 사람이 속아 넘어갈 수 있다' , 즉 똑똑해진다는 메세지를 서울대 수석과 맞물려 소비자에게 전달한다.

 

그러나 중국 인문학계의 거장 류짜이퓨는 삼국지를 3번 이상 읽으면 권모술수와 집단적 폭력성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위험이 있어 오히려 해를 끼친다고 경고하고 있다.

사실 나도 삼국지를 3번 이상 읽은 사람에 속하고, 그런 사람들이 모인 동호회 같은 곳에도 활동을 했었지만 남달리 뛰어나다고 생각한 사람은 한 명도 보지 못했다. 그저 마케팅의 영향이라 하겠다.

 

삼국지를 추천해달라는 글을 읽어보면 이문열 삼국지를 추천하는 덧글이 달린다. 그런데 그 추천인은 다른 삼국지는 읽어본 적이 없기 마련이다. 여러 판본을 읽어본 사람은 대부분 이문열을 추천하지 않는다. 작가의 의견이 너무 많아 편향적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물론 원본 삼국지는 유비 정통으로 편향적으로 쓰였지만 그것을 간파하지 못할 독자는 별로 없다.

결론은 삼국지는 똑똑해지기 위해서 읽는 책이 아니다. 그저 재미로 읽는것이 좋다. 읽어야 될것 같아서, 똑똑해질것 같아서 읽는다면 마케팅 전략에 넘어간 것이다.


책에는 더 많은 놀라운 사실을 밝히고 있다. 이런 사례들은 인간이 얼마나 교묘하게 조정당하기 쉬운지를 잘 알려준다. 디지털 중독시대에 쇼핑몰이나 글로벌 기업인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은 끝없이 우리를 자극한다. 검색엔진이 미성년자 자녀가 임신했다는 것을 부모보다 먼저 알게 된 이야기는 유명하다. 알고리즘의 수학적 연산은 엄청난 속도로 빠르게 결과를 산출해낸다.

스토리 텔링, 공감, 충동 성향, 쾌락과 고통등을 이용한 마케팅 등 이쯤되면 세상만사가 마케팅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마케팅 천지다. 마치 문학작품에 숨겨진 상징이나 의미처럼 잘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내는 능력이 필수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인지하기 힘든 수 많은 것들이 마케팅에 이용이 되고 소비자를 뒤흔들어 놓는다.

 

문제는 모르면 인지조차 힘들고 알면서도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계에서 뇌에 대한 연구를 발표하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일반인들이 아니라 마케팅 관련자들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뇌과학이 밝혀놓은 것들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가만히 있으면 도태되는 것이다. 거울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말처럼 뛰어도 배경이 같이 움직이기 때문에 가만히 있으면 변동이 없는게 아니라 뒤쳐지는 것이다. 이것을 한 학자가 진화과정에 비유하기도 했다.

 

마케팅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소비자가 해야 할 일은 배우는 것이다. 마케팅 수법이 비약적으로 진화한만큼 우리도 그 마케팅의 기제들을 알고 있다면 무심코 당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소비자도 진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마케팅도 더 진화를 할지도 모른다. 그것에 사활을 걸고 연구를 하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그것들을 다 알기 위해 뇌과학에 대한 연구를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런 책이 필요하다. 그게 아니더라도 뇌과학의 매커니즘들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니 호기심도 생기고 재미도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읽어볼만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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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니우스 박물지 - 세계 최초의 백과사전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세쿤두스 지음, 존 S. 화이트 엮음, 서경주 옮김 / 노마드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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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77년에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세쿤드스가 쓴 [박물지]는 세계 최초의 백과사전이라고 한다.

현대의 백과사전과는 조금 다르게 인간을 중점으로 인간에게 어떤 의미이며 역할을 하고 있는지의 관점에서 씌여있다. 찬란했던 로마 제국시대에 쓰인 것이라 로마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이 책은 원본이 아니라 고등학교 교장인 존 화이트가 청소년 판으로 편집한 것을 번역했다고 한다.

원본은 37권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이고 옛날 언어로 되있어서 번역하기도 어려울 것이고 읽는 사람도 곤욕일 것이다. 천문, 수학, 지리학, 민족학, 인류학, 생리학, 동물학, 식물학, 농업, 원예학, 약한 광물학 조각 작품, 예술 등 종합적인 지식이 담겨 있는데, 그중에서 지구와 원소, 인간, 동물, 예술품과 장인들에 대해서만 담았다.

그래도 큰 양장본에 6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니, 원본은 얼마나 방대한 작업이었는가를 추정할 수 있다.

1942년 전에 쓰인 이 책은 물론 과학적인 부분도 있으나 비과학적인 내용도 많이 담겨 있다. 그래서인지 현대의 판타지 세계관에 영향을 많이 미쳤다고 한다. 부록에서는 현재 게임이나 영화등에 등장하는 상상속 동물 중 이책에서 따온 것들을 보여주고 있다. 10~15세기 중세 유럽에서 [동물지]가 인기를 끌었는데, 이 책을 많이 참고했다고 한다.

J.R.R 톨킨이 현대 판타지의 아버지라고 불린다면 박물지는 판타지를 창조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으니, 판타지의 창조주쯤 되려나.

불사조에 대한 부분에 '이런 새가 존재한다는 것이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라는 기록이 되어있다. 현대의 기준으로 보면 말도 안된다며 웃을 이야기 겠지만, 시대가 시대인 만큼 감안해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정보가 넘쳐나는 것이 아니고 이동 수단도 여의치 않았던 시대에 이런 저술을 했다는 자체만으로 어마어마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세계 최초의 인쇄술이라 할 수 있는 기술이 활자를 구워서 찍었던 것인데 그게 1041년이라고 하니 짐작이 갈 것이다. 당시에는 전부 써서 기록했을 것인데, 이 책 외에도 많은 책을 썼다고 하니 대단한 일이다. 안타깝게도 현재는 박물지만 전해지고 있다. 백과사전이라고 하지만 사실 미신을 사실인양 기록한 것들도 보이는데, 보고 들은 것을 검증해서 기록한게 아니기 때문에 옛 기록들이 으례 그렇듯 문학적 기록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당시의 수 많은 기록과 책을 참조해서 쓰였던 것인데, 지금은 아니라고 판명된 것이지만 그때는 사실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많이 담겨 있다.

성경도 은유적 표현들을 빼더라도 지금으로선 말도 안되는 판타지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있다. 저자의 한계라기 보다는 시대의 한계일 것이고, 그래서 이 책이 더 가치가 있을 것이다. 당시 시대 사람들의 생각과 관점을 그대로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에.

신의 모습과 형태를 묻는 것은 인간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어떤 신이든 세계와 별도로 존재한다면 그 신은 어디에 있든 모든 촉각, 모든 시각, 모든 청각, 모든 생명, 모든 정신이며, 그 자체로 모든 것이다. 여러 신이 존재한다는 믿음은 순결, 화합, 이해, 희망, 명예, 관용, 정절 등 인간의 선악 개념에서 나온 것이다.

55p-

 

로마 카톨릭이 국교가 되기 이전 시대이기 때문에 종교에 대한 저자의 관점이 재미있다. 로마가 카톨릭을 국교로 삼지 않았더라면 문화적으로 더 빠른 발전을 이루었을지도 모른다. 종교가 진실이든 아니든 정치와 예술에 관여함으로서 도태가 되었다. 특히 철학 정치적 문학적으로는 그 이전시대보다 못한 계몽적이고 유치한 저작들을 낳았다.

 

인류의 역사에서 서기 전 500년 후 500년은 굉장히 중요한 시기이다. 이 시기에 소크라테스를 시작으로 공자, 예수, 석가모니, 조로아스터 등의 인물이 탄생했고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간의 자아라는 것이 인류가 처음부터 가졌던 것이 아니라, 기원전 1000년 경에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것이 사실이라고 가정하면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목적은 무엇인지를 깊이 고민하는 능력의 발달이 가져온 것들이 철학이고 그것들을 깊이 탐구한 성인들이 탄생하게 된 결과로 나타났을 것이다. 이 책에도 저자의 만물에 대한 인간 중심적이긴 하나 나름 세밀하고 심오한 고찰들이 담겨 있다. 양에대한 묘사를 할 때 양 자체가 어떤 동물인가 보다는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중점으로 씌여있다.

우리가 만화나 그림을 보면서 보면 그 대상에 대해 더 잘 알수 있지만, 글로서만 보는 것은 상상력을 더 자극시키게 된다. 글만으로 이미지를 떠올리는 능력이야 말로 인간이 가진 중요한 능력이고 그런 활동은 두뇌를 활성화 시킨다고 한다.

이 저작물은 세계를 탐구하는데 있어서 한계가 있던 시절 여러 기록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도록 수집하고 기록한 것이다. 지금 우리가 보는 이 책에는 여러가지 사진과 후대에 그린 삽화들도 들어 있지만 원본에는 없었을 것이다. 물론 내가 원본을 직접 보지는 못했으니 정확히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잘해야 간단한 그림들이었을 것이다.

동물 하나를 설명할 때도 자세한 설명과 함께 그 시대의 생각과 관점 관련된 에피소드들이 함께 들어있다. 대상을 그림 없이 글로서만 자세히 묘사를 하기 때문에 의도적이지 않더라도 읽는 재미가 있게 씌여져있다. 청소년 용으로 쉽게 각색해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이유도 있지 않을까.

 

로마가 큰 제국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지식이 중요함을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현대에서 책을 쓰는게 쉽지 않은데 방대한 저작물을 직접 읽고 기록을 했을 저자는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엄청난 수고를 했을 것이다.

 

그때의 저작물을 읽는 것도 재미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 시대 사람의 관점으로 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역사를 다룬 저작물은 많지만 어쩔 수 없이 역사를 현대적 관점에서 해석한 것들이 되기 마련인데, 그때의 기록을 평역 없이 보는 것이 오히려 더 새로운 경험이 되버리는 것 같다.

진정한 의미의 고전이다. 해석자의 해석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해져 고전을 독자적인 생각으로 해석하는 데는 오히려 서투르게 되버렸는 지도 모른다. 그 해석이 옳고 그르고가 문제가 아니라 사고의 발판으로 삼기에는 그대로 보는 것이 역시 도움이 되는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글은 네이버 컬처블룸 카페를 통해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 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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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란사 - 조선의 독립운동가, 그녀를 기억하다
권비영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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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운동가를 기리는 것은 그들을 위한게 아니다.

우리가 알아주지 못한다고 그분들이 섭섭해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분들이 어디선가 보고 있을 거라는 것은 그저 살아있는 인간들의 착각 혹은 희망이다. 은유적 표현이라 해도 좋겠다.

사후 세계가 있다는 증거가 없지만 있다 치더라도 그분들이 안다는 보장은 없다. 그 긴 세월 동안 세상의 일을 일일히 모니터링하지는 않을거고 그 세상의 삶에 집중하고 있지 않겠는가.

설사 안다해도 그들은 고작 자신을 알아주길 바래서 위대한 일에 목숨을 바치지는 않았을 것이며, 그저 대의를 위해 하나 뿐인 소중한 목숨을 걸었을 것이다. 알지도 못하는 후세 사람들의 존경을 받자고 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들을 기리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위한 것이다.

인간으로 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은 남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나라를 위하는 것은 나라에 속한 사람들을 위하는 것이니 여기에 해당된다.

이름이 잘 알려졌다고 더 훌륭하거나, 아예 흔적도 없다고 덜 훌륭한 것은 아닐 것이다. 독립운동을 성과로 평가 할 수는 없다. 실제로 어쨋는지는 알길이 없으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분들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조금이라도 더 바르게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 훌륭한 분들의 희생 정신을 기리고 애국심을 고취하여 현재와 미래를 잘 이끌어나가기 위한 정신적 지표로 삼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

 

 

하란사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독특한 그 이름은 이화학당에서 받은 세례명 '낸시'를 우리식 발음으로 부른 것에서 비롯되었는데, 원래 김씨였으나 남편의 성을 따라 하란사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다고 한다. 본명은 나오지 않는다. 저자가 개화기 여성들의 열전에서 그 이름을 발견하였고 자료 조사를 했는데, 아무래도 많이 남아있지 않는 자료를 토대로 하다 보니 상상력이 많이 동원되었을 것이다.

좀도둑 소년 병수를 잡는 과정에서 만난 란사와 화영은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활동적이고 거침없는 란사와는 달리 기생출신으로 다소곳한 화영은 그러나 비슷한 나이라는 것과 둘 다 후처라는 공통점으로 인해 친해진다. 소매치기 소년 병수는 독립운동가의 아들로 설정이 되어있는데, 후에 란사와 함께 하는 여정에 참여하게 된다.

 

남편 하상기의 배려로 일본 및 미국 유학을 가서 한국 최초의 미국 자비 유학생 및 문과 졸업자가 되었고, 이화학당의 교사가 되어 여성들의 의식을 깨우는데 힘썼다.

 

하란사의 시대를 뛰어넘는 행동은 남편의 배려 및 본인의 강렬한 의지가 있어서 였다. 그런 란사를 동경하며 지켜보는 화영은 남편의 눈치를 보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봉사활동을 한다.

 

 

저자는 재미를 위해서인지 란사가 의친왕에게 연정을 품었다는 설정을 했다. 소설의 몰입도를 높이는데는 보탬이 되었을 것이다. 전기가 아닌 소설이기에 가능한 설정이다. 실제야 어땠는지 알 길은 없다. 그러나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것만은 사실일 것이다. 백과 사전을 찾아보니 독립지사들과 만찬에 참석했다는 언급이 있었다.

하란사의 배움에 대한 의지와 열정은 대의를 위한것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 신여성이란 그저 서양옷을 입고 머리를 자른 것이 아닌 여성들도 깨어나야 한다는 의지 표현이 아니었을까?

드물게 고등 교육을 받은 여성으로서 란사는 교육의 중요성을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일생을 교육에 바쳤을 것이다. 교육과 독립운동 모두 나라를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란사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배움의 중요성을 알려준다.

 

배움의 중요성은 현재에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사기를 당할 때는 보통 그 분야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를 때다. 학문이라는 것은 예로부터 기득권들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기도 했다. 천주교의 교황들이 히브리어를 알고 성경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은 그들의 특권이었다. 일부러 엉터리 해석을 해서 면죄부를 팔아 이득을 취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원인 중의 하나기도 하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를 반대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문자를 알고 있다는 것은 특권이며, 배우기 쉽고 과학적인 한글이 보급이 되어 백성들도 문자를 알게 되면 자신들만 누리는 이득에 위협이 된다는 매우 집단 이기주의적이고 좁은 생각으로 반대를 한 것이다. 그래서 한글 창제 이후로 500년 동안 묻히다 시피 한 것이었다. 물론 일반 백성들은 세종의 뜻대로 한글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나,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된 것은 1896년 최초의 한글 신문인 독립신문이 발간되면서이다. 모두가 한글을 사용하면서 일본에 저항하자는 뜻이었다고 한다. 식자층들의 특권을 포기하고 일본에 저항한 최초의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만큼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배움을 게을리 했던 것이 참 후회되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배우려는 의지를 가졌던 하란사 및 선조들에 비하면 비교도 안될 정도로 배움의 기회가 널려 있는데도 배우지 아니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독립운동으로 인한 숭고한 정신 뿐만 아니라 배움에 대한 정신도 우리에게 의미를 가져다 주는 하란사인 것이다.

 

읽기 쉽게 쓰였고 재미도 있기 때문에 부담없이 접근할 수 있으면서도 많은 것을 느끼게 한 소설이었다. 학생들이 이 책을 읽고 배움의 중요성과 대의를 깨닫는다면 더 의미가 있겠다.

 

과거의 학문을 배운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배우는 토대이다. 이미 전화를 발명했는데 그걸 모르고 처음부터 전화기를 만들려고 하는 노력은 아무 의미가 없듯이 과거의 학문을 모르고 새로운 것을 배울 수는 없다. 인간의 숭고한 정신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위대했던 인물들의 정신을 알고 본받는다면 적어도 못난 인간은 되지 않을 것이다.

감히 그분들을 위한다는 착각은 하지 말자.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이런 분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네이버 문화충전200% 카페를 통해 책을 제공받은 뒤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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