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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열쇠 - 역사에서 지워진 신화적이고 종교적인 이야기
브라이언 무라레스쿠 지음, 박중서 옮김, 한동일 감수 / 흐름출판 / 2022년 6월
평점 :
기독교계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집안의 자손으로 태어났다. 직계 선조께서 순교자 기념관과 사전에 주요 인물로서 등재되어있기도 한 나는 모태신앙인이라 할 수 있다. 어릴 때부터 교회 환경에서 살아왔고, 양가 친척 대부분이 기독교인이며, 목회자로 사는 친척들을 다 세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그러나 이제는 종교를 버렸다. 그런 혈연이나 환경 관계가 종교를 믿어야 되는 필연적인 이유라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고, 여기에 다 설명하긴 어렵지만 수 많은 이유가 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인간에겐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생각과 개개인의 신념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맹신자의 신념 그 이상으로 신이 없다는 것을 믿는다. 무신론자는 종교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신이 없다는 것을 믿는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그렇다고 가족이나 주변인에게 배교를 권하지는 않는다.
물론 전도를 당할 일도 없다. 왠만한 목사와 논쟁을 해도 지지 않을 정도였으나 이젠 그게 무슨 의미냐 싶기도 하다.
종교인은 어차피 필수적으로 편향적이어야 하고, 나는 편향을 혐오하므로 논쟁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
게다가 종교에 대한 자유는 비종교인은 물론이요 종교인에게도 해당이 되야 한다. 나는 그 어떤 종교인도 간섭하거나 설득할 생각이 없다. 반대는 더더욱 없음은 물론이다.
편향적 주장에는 올바른 논리가 전개되기 어렵다. 과학은 진화론을 믿는 것이 아니라 증거로서 진화론이라는 것을 뒷받침할 뿐이다. 창조론의 증거가 더 많았다면 과학은 이미 창조론의 손을 들고 있을 것이다. 편향은 위험하다. 편향적인 근거를 말장난 등으로 합리화 하고 갖다 붙이면 말도 안되는 이론도 그럴듯하게 들린다. 사기꾼이나 사이비 종교 다단계의 말이 굉장히 일리 있게 들리는 것과 비슷하다 하겠다.
물고기의 태아와 인간의 태아는 초기에 그 모양이 거의 비슷하다고 한다. 시간이 가면서 태아가 변화되는 모습이 진화과정 그 자체를 보여준다는 한 과학자의 말도 있는데 상당히 일리가 있게 느꼈다.
![](http://image.yes24.com/blogimage/blog/r/i/rimphoo/IMG_20220530_224521.jpg)
종교는 인류의 생존에 아주 큰 역할을 했음은 분명하다.
고대에는 혈연관계가 없는 사람들을 하나로 웅집하게 만들어 생존률을 높여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는 더이상 그러한 기능을 하지 않는다. 우리의 '투쟁도피반응'이 생존률을 높여주는 기제였으나 현대에는 더 이상 필요없는 부산물이 되어버렸듯이.
그렇다 해도 내 환경에 대한 영향을 종교에 대한 관심이 남아있다. 그래서 이런 책도 읽게 된 것이다.
현대 종교는 인간에게 어떤 기다림과 기대감, 희망을 줄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특정 종교로서의 종교가 아닌 학문적 관점에서 종교에 접근하고 있다.
종교인은 신에게 더욱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을 해온 역사가 있다. 약물을 이용한 영적 체험이 그 중 하나인데, 델포이 신전의 무녀는 신과의 접점을 이루기 위해 화산에서 나오는 가스를 흡입하기도 했다. 기독교 행사에도 피에 비유하여 포도주를 마시기도 하는데, 정신적인 황홀경과도 관련이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 한다.
이렇듯 인류가 약물을 통한 종교적 환각을 시도한 사례는 상당히 많이 있다. 이런 주제를 종교인들은 불편하게 생각하고 회피하려 들 것이다. 과거의 잘못들이나 종교계 소수의 만행들을 일부라며 회피하려 하듯이. 종교는 자기 비판의 기능이 매우 빈약한 것 같다.
흔히 영적 체험이라고 주장하는 사례들 중에서 사실은 가수면 상태에서의 체험이 대부분일 것이다. 가능성을 열어두는 성격상 전부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특히 가위에 눌린다하는 것이 그럴 것이다. 불안 상태에서 깨어있는 상태와 비슷한 뇌파를 보이는 렘수면(가수면) 상태에서의 체험일 수 있다. 나는 어릴때부터 가위에 눌리는 일이 자주 있었다. 지금은 거의 없는데 유년 시절에는 아주 빼빼 마른 아이여서 빈혈이 잦았고 잠이 깊이 들지 못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이런 현상이 가끔 있었는데 가수면 상태에서 의식과 꿈과 환상의 경계점이라고 할만한 상태에 이르게 되면 의식이 있으면서도 꿈을 꾸게 된다. 갓 20대 초반 시절에 게임을 하다가 늦게 자는 버릇이 있어 회사에 가면 늘 피곤했기에 점심이나 쉬는 시간에 살짝 일찍 가서 박스 창고에서 잠을 취했다. 그러나 그 창고를 관리하는 회사의 대리가 자주 나를 깨우고 혼을 내곤 했다. 그렇지만 잠을 포기 할 수 없는 나는 그래도 몰래 몰래 숨어들었는데, 가수면 상태에서 대리가 나를 깨우는 것을 생생하게 느껴서 깨어보면 아무도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는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을 보게 된다고 한다. 귀신 등을 두려워 하는 사람은 귀신 같은 형태의 환상이 생생하게 느껴질 수 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종교인들이 불편해할 고대의 전통적 행위들을 이 책에서 지적하고 있다. 종교도 나름대로 근대화 과정을 거치고 현대에 적응을 한 상태지만 많은 부산물들을 어찌하지 못한다. 그런 과거 행위들을 청산하기 위한 행동 중 빠질 수 없는 하나가 바로 약물을 통한 영적 체험의 단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명문 프린스턴 신학대를 졸업한 바트 어만은 성경 왜곡의 역사라는 책을 통해서 성경이 어떤 오류가 있으며 시대에 따라 어떻게 합리화를 해왔는지를 지적한 바 있다.
성경은 결코 완벽하지 않다. 억지로 완벽하다고 해봤자 오류가 상당히 많다. 신약의 어떤 서에서는 동방박사가 등장하지만 다른 서에서는 전혀 언급조차 없는가 하면 예수 행적의 기록도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종교가 무조건 옳다고 고집만 부릴 것이 아니라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자기들 유리한 것은 인정하고 불리하다 싶으면 얼버무리는 식의 합리화는 시대가 지나면 지날수록 통하지 않을 것이고 먼 미래에는 흔적조차 없어질지도 모른다. 진정한 종교인이라면 이런 미래를 걱정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미지에 세계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고 신을 인정할 수는 없다. 모른다는 것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확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떤 것이 있다고 주장하는 순간 모른척을 할 수가 없는 속성이 된다는 것은 이해가 가긴 하지만. 반대로 신이 존재 하지 않는다고 확실히 말할 어떤 근거도 없다.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생각 되지만 아예 없다고 확정할 수는 없다.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온갖 여러가지 종교, 일신교만해도 여러 분파가 있고 서로 뿌리를 공유하면서 자기네들만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 또한 조금도 인정할 수 없다. 만의 하나 신이 있다면 현재 인간이 인식하고 상상할 수 있는 형태를 훨씬 벗어날것이라고 생각된다. 과거 우주를 관측하기 전에 우주에 대해서 생각한 것들이 실제와 전혀 달랐듯이.
신화나 종교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역사적인 배경이 많고 어려운 용어가 다소 있어 쉽지만은 않은 독서가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