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집에 있음. 청소. 스피노자 읽음. 대체로 촛점이 없는 게으른 하루.

E와 에릭 슈미트와의 대화를 같이 봄. 자연스럽게 진행자에 대한 비판을 하게 됨. 좋은 대담 프로그램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됨. 

(에릭 슈미트와 학생들의 대화를 다시 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학생들은 지금, 성공한 기업의 씨이오와 학생이라는 프레임 하에서 대화를 하고 있구나. 학생들이 이런 프레임에 갇혀 있다는 사실은 결코 유쾌한 것일 수 없다. 그들은 젊다. 열정을 보여주어야 하고 패기를 보여주어야 한다. 학생들이 에릭 슈미트에게 도전적인 질문들을 던질수록 이 대화는 에릭 슈미트에게 의미 있는 것이 될 것이다. 역으로 이 대화가 에릭 슈미트에게 의미 있는 것일수록 학생들에게도 그러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공한 씨이오-학생이라는 프레임이 아니라 가장 강력한 제품들을 출시하면서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IT 기업의 경영자와 그에 대한 비판적 사용자라는 프레임에서 대화를 해나갔어야 했을 것이다. 상대를 곤혹스럽게 할 질문들을 자기검열로 배제하는 것은 예의바른 태도가 아니라 오히려 무례한 태도다. 상대의 귀중한 시간을 그저 그런 얘기들로 허비하게 하는 것이니까. 에릭 슈미트에게 뭔가를 배우고 얻으려 할 것이 아니라 뭔가를 가르쳐 주려고 해야 한다. 얼토당토 않은 얘기라고? 이런 것이 열정이고 패기다. 자신을 에릭 슈미트와 똑같은 눈높이로 세우는 것, 그것이 열정이고 패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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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감기가 있는데 감기를 발전시키지 않기 위해 다량의 양을 먹음. 종일 몽롱한 상태. 이것이 공부를 하지 않은 변명이 될 수 있나?

리치몬드 공원에 다녀옴. 커다랗고 누런, 멋진 뿔을 가진 어른 사슴들과 밤비같은 꽃사슴 수십 마리가 떼지어 있더라. 공원내 식당에서 자켓 포테이토, 초콜렛 케이크, 스콘, 홍차 등을 먹음. 

연세대에서 있은 에릭 슈미트와의 대화를 봄. 나는 에릭 슈미트나 스티브 잡스 등을 현대의 사상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 노력한다. 이들은 가장 똑똑하고 가장 열성적인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서 우리의 현대적인 삶의 조건들을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반대편에는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는 현대적인 삶을 비판하는 또다른 부류의 사상가들이 있다. 우리가 찾아 들어야 할 또다른 목소리다.

(주말에 공부를 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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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목감기가 있어 장판을 뜨겁게 틀어 놓은 후 그 위에서 살았다. 누워 졸면서 가이 리치의 스내치를 봤다.

대학 때 친구가 페이스북을 통해 나를 찾았다. 반가왔다.

공부는 아무 것도 안했다. 

(이번 학기에 나는 4개의 에세이를 써야 한다. 그리고 학위 논문도 미리 준비해 둬야 한다. 학위 논문의 경우는 이미 윤곽이 나와 있다. 지난 연말에 썼던 에세이에서 비트겐슈타인의 럿셀 비판 부분을 잘라 내고, 비트겐슈타인 자신의 이론 부분만 심화시켜 다루는 것. 학기 에세이는 테마를 두 개 정도 잡아 두었다. 좀 크지 않나 하는 걱정이 있다. 그리고... 뜻하지 않게 스피노자가 끼여 들어왔다. 스피노자를 좋아하는 친구가 있어, 일주일에 한번씩 논문 한 편을 읽고 토론하기로 한 것. 이 친구랑 거의 매일 만나는 데 만날 때마다 스피노자가 주제로 오른다. 아다시피 나는 스피노자에 대해 할 말이 많고, 이 토론 과정에서, 내 생각에는, 상당히 중요한 아이디어들이 많이 나온다. 예를 들면 에티카에는 실체에 대한 정의와 신에 대한 정의가 따로 있다. 그 의미는? 간단히 말해서 실체는 존재론적 증명을 위해 필요하고, 신은 생산성이라는 관념을 포괄하기 위해 필요하다. 실제에 있어 전자는 형식적인 연결사에 불과하다고 한다면, 치른하우스가 지적한 바와 같이 스피노자에게 핵심적인 명제는 제1부 명제 16인데, 이 명제는 신의 생산성에 대한 정의를 재진술한 것이다. 나는 이 아이디어가 상당히 마음에 든다. 이 아이디어는 R이 제기한 명제 11의 아포스테리어리 증명에 관한 숙고 과정에서 튀어 나왔다. 스피노자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는 것이 부담스러우면서도 아이디어가 잘 나오고 있기 때문에 계속 끌려가고 있는 상태다. 암튼, 원래 하고자 했던 얘기는 각 테제를 구체화해서 차근차근 진행시켜야 겠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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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계획은 원래 R과 스피노자 강의에 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N이 갑자기 아트 페어에 가자고 했는데, 내가 한 순간 그 소리에 혹해버려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결국 집 핑계를 대고 둘 다  안가기로 했다. 귀가 얇은 사람은 항상 이렇다...

금요일 오전에 N이 울먹이며 전화를 했고 나는 N을 만나러 런던에 나갔다. N은 집주인이 욕실에 머리카락 하나 떨어진 것까지, 감기에 걸려서 기침을 하는 것까지 지적질을 한다고 분개해했다. 집주인한테 온 문자 메시지들과 장문의 메일들...

N과 아트 페어에 갔다. 그런데,입장료가 20 ~ 30 파운드나 한다. 내게 너무 과한 금액이었다. 나는 주저했다. 아트 페어 앞에서 함께 발길을 돌린 후 N은 테이트 모던으로, 나는 학교로 무어에 대해 생각하러 갔다.(N은 일요일날 아트 페어에 다시 가겠다고 한다. 오전부터 입장해서 종일 거기 있을 거라고. 변명하자면, 아트 페어 폐장 시간은 7시인데 우리가 거기에 갔을 때는 이미 3시가 넘었었다.)

학교에서 논문들과 씨름했다. 무척 피곤하고 졸렸기 때문에 별 소득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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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모처럼 영어 공부를 했다. 

공짜로 점심을 나눠 주는 줄에 붙어서 점심을 해결했다.

R이 어제 들은 스피노자 강의에 대해 이야기해 주면서 에티카 제1부 명제 11의 대안적 증명에 대한 나의 의견을 물었다. 열심히 나의 생각을 설명해 주었지만, 그 순간 스피노자가 내게 문제는 아니었다. 나의 개떡같은 문법과 발음, 붐비는 카페 안에서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단숨에 끌어당기고 마는 나의 엄청난 영어가 문제였다. 이야기가 끝나고 R은 도서관으로 가고, 나는 카페에 남아서 방금 한 이야기를 정리해서 R에게 메일로 보내주었다. 집에 갈 때 R을 다시 만났는데, R은 내가 정리해 준 내용이 아주 클리어하다고 했다. 공정한 평가라고 생각한다. (나는 겸손한 사람이 아니다.)

종일 무어의 논문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 생각했다.

언어가 내게 문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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