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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스티븐 내들러의 "스피노자" 9장, 10장을 읽었고 지금은 7장을 읽고 있다.

1. 회사 그만 두기 전날. 매주 수요일은 이 지역의 모든 공장이 잔업이 없는 날이다. 삼성중공업의 본을 따라 모두 그렇게들 한단다. 동료와 저녁 식사를 하러 시내에 나갔더니 똑같은 옷(삼성중공업의 사복을 거의 모든 삼성 하청업체들이 자사 유니폼으로 채택했다)을 입은 사람들로 거리와 식당이 붐볐다.

갈비탕집에 빈 자리가 있어 거기서 갈비탕을 시켜 먹었다. 옆 자리에는 남자 셋과 여자 하나가 밥을 볶아 먹고 있었다. 그네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퇴근하고 기숙사에 있다가 시간이 아까와서..." 시간이 아까와서 밖으로 나가 동료들과 술도 먹고 그런다는 이야기다. 그러다 보면 자정을 넘기기 일쑤고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 지고... 그러나 퇴근하고 나면 또 "시간이 아까와서..."의 반복.

맞은 편 여자가 "책 읽으면 되잖아요..." 라고 말한다. 나도 그걸 선택했다. 그냥 자기에는 시간이 아까와서...

공장 노동자들은 종속노동이 무엇인지를 몸으로 느낀다. 종속노동이라는 개념 자체가 공장 노동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일 게다. 한국의 거의 모든 공장들은 잔업이 기본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보통 하루 12시간을 공장에서 보내게 된다. 그 12시간에다가 출퇴근 시간과 잠자는 시간 등의 생리적 용도의 시간을 더해 보라. 무엇이 남을까? 우리가 생활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위해 남겨진 시간은 없다. 그러므로 생리적 용도의 시간을 줄여서라도 "생활"을 위한 시간을 갖고자 하는 것이다.

시간이 아까와서... 라는 말의 의미는 이런 것이다.

2. 회사 그만 두던 날. 그러니까 어제. 내가 일하는 업종은 이직이 비교적 자유롭다. 그래서 그만 두는 날에 통고하거나 아예 아무 말도 없이 그만 두는 사람도 많다. 나는 인수인계를 생각해서 이주 전에 미리 이야기를 했었다. 반장에게 당분간 비밀로 해달라 했지만 다음날 오전부터 사람들은 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난 이 주는 길었고 내 마음은 펄럭였다. 드디어 그만 두는 날. 나는 작업 종료 시간보다 이르게 토치를 내려 놓고 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작별 인사를 하고 악수를 나누었다. 가는 귀가 먹은 노인도 있고 캄보디아 사람도 있고 조선족도 있다. 필리핀 친구 하나가 캔음료 하나를 건네 주어서 받아 왔다.

친구가 문자로 이제 새로운 장(chapter)로 넘어가는 거냐고 물어왔다. 내 느낌이 정확히 그랬다. 이제 인생의 새로운 장으로 넘어가는가 보다. 새로운 장은 아직 쓰여 지지 않았다.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어린 아이마냥 왼쪽 가슴에 작은 손수건을 달고 가방 필통엔 전날 밤에 누나가 정성스레 깍아준 연필을 가득 담아 놓았다. 글쎄 뭔가 집에 빠뜨리고 온 것이 있긴 할거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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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스티븐 내들러의 "스피노자" 제9장을 읽고 있다.

1. (이하는 "미디어랩"에서의 인용)
-폴은 그의 저서 "자유의 기술(Technologies of Freedom)"에서 그 문제를 추적했다. "저작권의 인정과 로열티의 지불은 인쇄매체와 함께 생겨났다. 전자 출판의 도래로 이를 실천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전자출판은 18세기의 인쇄소보다는 오히려 저작권법이 적용된 적이 없는 구두 커뮤니케이션과 유사하다."
-정보의 대가로 무엇을 청구하며 어떻게 그를 거두어들일 것인가? 정보의 질에 대한 대가는 지불되지 않을 것이다. 시시한 전화 한 통도 중요한 전화와 같은 값이다. 좋은 책이나 나쁜 책이나 가격은 같다. 꼼꼼히 읽히는 신문도 곧바로 아무렇게나 쓰이는 신문과 같은 가격에 팔린다. BBC가 방영하는 수준 높은 새로운 드라마도 재방, 삼방되는 통속 연속극과 비용의 차이가 없다. 이 중 어느 것도 불만스럽다고 해서 환불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제작자들은 정보의 질에 대해서도 청구하지 않을 것이다.
-정보의 질에 대한 대가는 지불되지 않는데 그 이유는 그에 대한 평가가 소급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보원의 질에 대해서는 대가를 지불하게 되는데, 그것은 정보원의 신뢰도에 따라 정보의 가치가 어느 정도 예측가능해 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업체들은 현재가 아닌 과거의 가치를 보상받게 되어 정보원으로서의 신뢰도의 상승을 기대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독서의 가치는 읽는 구절의 의미를 제대로 끌어내는가에 달려 있다. 정보의 경우 그 가치는 그를 쓰고 말하는 사람의 평판과 전문지식에 의해 결정된다. 이것은 내가 어린 시절에 누가 그것을 말하든 지혜는 지혜라고 믿고 싶었던 것과는 상충되는 것이다.

2. 예를 들어 어떤 정보를 접했을 때 우리는 곧장 그 정보의 신뢰도를 확인하려 든다. 만약 그 정보의 최종 출처가 어떤 개인의 블로그라면 그것을 토대로 진지한 대화나 사고를 벌이는 건 우스운 일이다. 만약 뉴욕 타임스라면? 우리는 진지해진다. 우리는 뉴욕 타임스를 신뢰성 있는 정보원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3. 뉴욕 타임스가 신뢰성 있는 정보원으로 자신을 가꾸는 노력의 일단은 http://estima.wordpress.com/2011/05/28/nytpublished/ 에 소개되어 있다(한국어 사이트다).

4. 우리가 뉴욕 타임스를 신뢰할 수 있는 정보원이라고 인식한다는 의미는, 궁극적으로 그리고 비트겐쉬타인적으로 표현하면, 언어가 실재에 잣대처럼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의미는 직접성이다.

5. 그러므로 확실성의 한 요소에는 직접성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 직접성의 공간으로 신체를 말하든 실존을 말하든. 어떻든 그 공간은, 말하자면 언어와 실재, 사유와 연장... 등등이 직접 만나는 곳일테다.

6. 웹 콘텐츠 시장의 현황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이제 더 질 좋은 콘텐츠에 지갑을 열 준비가 되어 있을까? 그런 틈새가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걸 현실화시키는 것은 정치인도 아니고 사상가도 아닌 기업가다. 예를 들면 스티브 잡스나 머독.

7.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라는 게이트를 통해서만 음악을 구할 수 있는 꽉 막힌 구조의 기기인 아이포드를 시장에 내놓으며 음악을 훔치지 말고 우아하게 즐길 것을 권했다. 우아하게.

8. (아래는 "미디어랩"에서의 인용)
-"경제학자에게 있어 공공재란 부가되는 분배와 관련된 한계비용이 본질적으로 없는 것을 말한다. 가장 좋은 예가 TV 방송이 된다. 일단 고정된 제작비용이 발생하고 그 프로그램이 전파로 송출되면 그를 한 가구가 보든 2천1백만 가구가 보든 방송사에는 비용의 차이가 없다."(벤자민 콤페인의 "Who owns the Media?"에서)

9. 그러므로 음악을 훔친다와 우아하게 즐긴다는 도덕적, 법적 범주에서 크게 다름이 있는 것은 아닐테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소유권이나 저작권과 관련하여 다름이 있는 것은 아닐 테다. 우아함이란 생태계, 혹은 문화적 토양의 고양과 관련 있는 말일 것이다. 예컨대, 음악을 우아하게 즐긴다는 것은 음악 생산의 문화적 토대에 기여하면서 음악을 즐긴다는 것을 뜻하는 것일 게다.

10. 다시 말하면 우아함이란 전체로서의 삶의 질과 관련있는 말이다. 예를 들면 나는 후손에 DNA를 전해준다. 이것은 생식, 혹은 생존 차원의 문제다. 그 이상의 가치, 그 이상의 질, 그 이상의 문화적 토대를 전해주는 현재 나의 행위는 전체로서의 나의 삶의 우아함을 정의한다.

11. 그것이 바로 젊은 날의 스티브 잡스가 한 말의 의미다.

"지적 탐구 부문에서 흥미로운 부분이 한 가지 있어요. 우아하게 늙어가는 겁니다. 너무나 빨리 상황이 변해서 80년대 후반 쯤 되면, 근본 통찰부터가 최고의 통찰이 될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고 싶겠지요.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이요. 우리의 어깨를 타고 미래를 보는 겁니다. 흥미롭지 않습니까? 우아하게 늙어가는 겁니다." (출처는 http://www.albireo.net/forum/showthread.php?t=13617&highlight=%BD%BA%C6%BC%BA%EA+%C0%E2%BD%BA)

12. 그러므로 선이란 그러한 가치의 생산이다. 그러므로 악이란 그것의 반대다. 그리고 선도 악도 가치도 모두 사회성이란 맥락 안에서 의미를 갖는다.

13. 그리고 그것이 바로 스피노자의 윤리학의 발단이다. 스피노자의 윤리학은 코나투스에서 시작하여 참된 것으로 나아간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인간의 심리가 그렇게 짜여져 있으므로. 에티카는 매슬로의 욕구 5단계설에 따라 설명될 수도 있을 것이다(낮은 단계의 욕구가 충족되면 다음 단계의 욕구로 옮겨간다).

(아래는 "플랫폼 전략"에서의 인용)
1). 생리적 욕구
2). 안심 안전의 욕구
3). 애정이나 소속의 욕구
4).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
5). 이상적인 자신이 되고 싶은 자아실현의 욕구

14. 그러므로 다시 질문. 진리 안에 있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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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스티븐 내들러(김호경 번역)의 "스피노자" 11장, 12장을 읽었다.

1. 스티븐 내들러. 지난 5월11일날 책을 받고 두어 시간 열정을 들이고 나서는 책에서 손을 놓고 있었다. 나의 열정이 급격히 식은 이유를 스티븐 내들러는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이 서문에서 재빠르게 변명을 한다. 

" 나의 목적은 스피노자 사상에 대한 다양한 자료, 즉 그에게 영향을 끼쳤던 가능한 모든 사상가들과 전승들을 조사하고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떠한 사람도 평생 완성할 수 없는 막대한 과제다. 다른 말로 하자면, 매우 분명하게도 이 책은 "지적인" 전기가 아니다."(볼드체 강조는 내가 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끝까지 고집을 부리고 싶다. 내들러씨, 그러면 사람들이 철학자가 쓴 철학자의 전기에 대해 무엇을 기대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까? 더구나 당신이 동원한 방대한 유대 관련 문헌들이란!

고집을 부리면서도 나는 미소를 짓는다. 스티븐 내들러가 저리 변명을 하는 것을 보면 비슷한 비판을 많이 받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더구나 스티븐 내들러의 변명에는 절대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이 담겨 있다. 즉, 스피노자 사상의 원천을 조사하는 것은 한 사람의 삶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과제라는 것. 당장 머리에 떠오르는 것만 열거해 보자. 스콜라 철학, 아랍 철학, 네오 스콜라 철학, 유대 철학... 더 진행할 필요도 없다. 여기서 이미 기가 꺽여 버린다.

뭐... 한국의 어떤 분은 스콜라 철학을 모르고서는 스피노자를 논하지 말라고 했다고 하더라. 나는 이런 말을 무척 싫어한다. 어떤 주제에 대해 논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열거하는 사람들을 나는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암튼 그 분과 스티븐 내들러와의 차이는 분명해 보인다. 즉, 스티븐 내들러는 자신의 작품을 내고 평가를 받는 자리에서 스피노자 사상의 원천을 파악하는 연구의 어려움을 토로한 것이고 그 분은 자기 스스로는 아무 것도 안한 상태에서 다른 사람을 평가한 것이다. 작품을 썼으므로 평가받아야 하는 사람과 작품을 쓰지 않았으므로 자신은 평가받을 필요없이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사람, 누가 우리의 문화를 더 풍요롭게 할까? (물론 그 분의 저 말은 스피노자 철학에 있어 스콜라 전승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었으리라. 그러나 그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어떻게 중요하다는 것인지를 밝히지 않는 한 이런 말은 허세에 불과하다고 본다.)

존경합니다, 내들러씨. 방대한 자료를 섭렵하여 이렇듯 완전판 스피노자 전기를 내주셔서!

2. 전습록에 있는 이야기 중 하나.
양명의 제자: 주일이란 무엇입니까? 예컨대 책을 읽을 때 오로지 책에만 마음을 두는 것이 주일인가요?
양명: 그럼 색을 좋아할 때 오로지 색에만 마음을 두는 것도 주일이냐? 주일이란 진리와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한단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양명에게 이렇게 물어야 할 차례인 것 같다. 진리란 무엇인지, 진리와 하나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우리가 진리 안에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지...

어쩌면 스피노자가 답을 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당신이 진리 안에 있다면 당신은 당신이 진리 안에 있다는 것을 안다.

말장난! 하고 외치고 싶다. 그러나 조금 신중해 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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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매일 한 일, 그리고 단상들을 여기에 적는다.

과정을 드러낸다는 것의 의미는 민망한 오해, 허투른 결단, 오만한 무지, 유치한 사고, 끝없는 맴돌이, 허망한 가지치기, 눈에 뻔히 보이는 헛점들, 어이없는 실수들, 시간과 노력의 낭비들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것이겠지. 다시 말하면 빠르고 분명한 실패를 하도록 북돋우는 것. 그런데 그런 것들이 과정을 이루는 계기들의 거의 전부일런지 모른다. 우리에게 방법이 있다면 각 계기들을 버리지 않고 전부 실존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 뿐일런지 모른다. 더 많이 묻고 부딪히고 깨지는 것 말고는 실존을 풍족하게 할 방법이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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