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가 독서 주간이라서 강의가 없다. 그래서 이번 주 내내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공부할까 했는데... 집에서는 집중력이 떨어지더라. 주로 지난 주말에 빌려온  비트겐슈타인의 1930-1932 캠브릿지 강의를 읽었다. 비트겐슈타인은 여전히 가장 불투명한 철학자 중 하나로 남아 있는 것 같은데, 그 불투명성은 참으로 이해하기가 힘든 면이 있다. 강의록, 대화록, 철학 노트 등이 상당히 많이 남아 있고, 비트겐슈타인과, 예컨대 "논고"를 한 줄 한 줄 토론한 사람이, 내가 알기로 적어도 세 명은 되기 때문이다(럿셀, 램지, 노만 맬컴). 이 책을 읽으면서 또 한번 느끼게 되는 것은, 특히 초기 철학에 관한한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가장 훌륭한 해석서는 비트겐슈타인 자신의 노트나 대화록, 강의록 등이라는 점이다. 당연한 이야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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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공부, 이후에 푹 놀았다. 밤에 테레비로 지옥의 묵시룩을 봤다. 말이 필요없는 걸작. 광기에 대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인간 광기 일반에 대한 이야기로 해석하는 것은 이 영화에 대한 가장 끔찍한(!) 오독이 될 것이다. 이런 오독에 기대어 사람들은 곧장 허무주의자가 되고 현실주의자가 되고 보수주의자가 된다. 즉, 알리바이에 기대어 사는 사람이 된다. 그러나, 스피노자의 말을 비틀어 말하자면, 전쟁터의 군인들의 광기는 높고 화려한 빌딩 숲의 사무실에 앉아 계산기를 두드리는 자본가의 광기와 많이 다르다. 이러한 분별력만이 우리를 진정한 현실주의자로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일요일밤, 자기 전에 보기에 좋은 영화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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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일은 없었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고, 철학 토론을 했고, 새로운 철학자를 발견했고, 감질나는 진전에 애를 태웠고, 일주일 안에 이 문제에 대한 완전한 이해에 도달하고 말 것이야, 라는 다짐과 함께, 배가 고파 집으로 돌아왔다. 미쳐가고 있는 중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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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4 16: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weekly 2012-11-05 18:37   좋아요 0 | URL
하하 말씀 감사합니다. "끝도 안나는 공부를 끝내다", 멋진 말씀입니다.^^
 

스피노자의 관념 이론을 명제 태도와 연결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심리 철학 에세이 주제로 구상한 것인데, 스피노자에 과도한 시간을 쏟는 것을 정당화하려 만들어낸 알리바이일지도 모르겠다. 정말 그렇다면 나중에 쫄딱 망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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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과 에스프레소 카페에서 에티카 제1부 공리6에 대해 토론했다. R이 먀슈레의 에티카에 대한 책의 일부를 번역해 주어 그것을 토대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문제가 된 것은 다음과 같은 문장 등이었다:

"In the idea and the objective content of what it represents in thought in so far as its content is external to it by nature there is no causal link." 

나는 이 문장은 단지 "In the idea and its object there is no causal link."로 고쳐 쓸 수 있다고 말했고, R은 나에게 동의하지 않았다. 내가 고쳐 쓴 문장은 평범한 내용을 담고 있다. R은 먀슈레의 문장은 그보다 깊은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그렇다면 그 깊은 의미를 제시해 보라는 나의 채근에 마땅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R과 토론을 마친 후 나는 도서관으로 갔고 에티카를 펴놓고 나의 주장을 검토해 보았다. 마슈레 문장의 "the objective content of what it represents in thought"는 단순히 the object of the idea를 뜻할 뿐이다. 그렇다면 "as far as its content is external to it by nature"는 "the objective content of what it represents in thought"와 똑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저 문장은 쓸데없이 중복된 표현을 포함하고 있는, 아주 나쁜 문장이라는 뜻이다. 나는 마슈레의 저 문장은 에티카 제2부 명제 5를 재진술한 것에 불과하다고 느낀다.

"Ideas... admit not the objects themselves, or the things perceived... as their efficient causes..."

이런 말을 왜 하는가 하면, 마슈레의 저 문장들을 검토하다가, 전에 한국에서 마트롱의 "스피노자 철학에서 개인과 공동체"라는 책을 읽으면서 든 느낌과 똑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마트롱은 그 책에서 거침없이 스피노자의 저작들을 해명해 나가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내 생각에 마트롱은 스피노자의 추상적인 문구들을 그보다 더 추상적인 문구들로 옮겨적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 것도 해명되지 않았다. 마트롱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엔 스피노자가 마치 아무도 손을 대지 않은 것처럼 처음 그대로 놓여 있을 뿐이다.

추상적인 문구들은 그보다 구체적인 단어들을 통해 해명되어야 한다. 나는 이걸 윤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해석자가 원저작자의 텍스트 안에 머물게 되고, 그래야 그것을 해석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추상적인 문구들을 그보다 더 추상적인 문구들을 통해 해명해도 된다고 하면 해석자는 임의대로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다. 텍스트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해석을 창의적인 작업의 하나로 보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해석의 실패에 대한 증후로 받아들인다. 비슷한 일이 비트겐슈타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것을 목격한다. 그런 문헌들을 읽으면서 내가 받는 느낌은, "그게 비트겐슈타인하고 무슨 상관이 있다는 얘기일까?"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가 요구하고 싶은 것은,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해명은 비트겐슈타인이 직접 쓴 문장들을 직접 인용해 나열하는 것만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라는 것이다. 어떤 창의적인 해석이라도, 그것이 해석인 한 이조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철학에 있어서 문제는, 예컨대 해석의 실패에 대한 증후들이 심오한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마구 유포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전적으로 비윤리적인 일이다. (물론, 먀슈레가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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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1 18: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weekly 2012-11-02 19:18   좋아요 0 | URL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스스로", 그러니까 자신이 직접 경험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철학에서든, 문학에서든 그 어디서든 말이죠. 저는 요즘 한국에 가면 꼭 서산마애삼존불을 봐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답니다. 삼존불의 얼굴이 영락없는 한국의 아이 얼굴이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실존을 솔직하고 자유롭게 표현해 낸 감성과 용기가 그처럼 독보적인 표현을 담은 불상을 창조해 낼 수 있었다는 사실에 존경을 표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곳 영국에서 커다란 정원이 딸린 대저택들을 많이 방문합니다. 그런 저택들에는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를 모티브로 한 대리석상들이 많이 소장되어 있지요. 제 눈에는 비싼 모조품으로 보여요. 일관되게 기하학적으로 정형화된 미를 표현한 신체들과 무표정한 표정들... 대저택 소유자들의 무미건조한 삶을 반영하고 있다고 느끼게 되지요. (이런 작품들에 비하면 렘브란트의 작품들은 얼마나 살아 있는지!) 스스로 사고하고, 느끼고, 발견하고, 그리고 그렇게 자기화한 것만을 표현하려는 노력, 이런 것만이 삶을 실존적으로 만들어 줄 수 있겠지요. 저는 이 이외의 길은 알지 못합니다.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씁쓸하게 말씀하셨지만 님께서도 마찬가지이실 거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