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이슈 중 하나는 웹 컨텐트의 품질에 관한 것이다. 그래서 이런 주제를 다루고 있는 기사가 있길래 물어왔다.

http://www.infoworld.com/t/cringely/the-web-fast-cheap-and-getting-worse-the-minute-276?page=0,0


웹 컨텐트의 양은 전에 없이 커가고 있지만 실제 읽을 가치가 있는 것들은 줄어들고 있다는 이야기. 결론이 뭘까 싶어서 빠르게 읽어내려 갔지만 결론이 있을 자리에 질문 하나가 덩그란히 놓여 있다: 우리는 이제 저널리즘의 질을 추구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하는가? 라는.

   
  Fast and cheap is the rule.  
   
"빠르고 값싸게 - 이것이 웹을 지배하는 게임의 법칙이다."

   
  Back when I was only an ink-stained wretch, as many as seven different pairs of eyes would look at everything I wrote before it got published. Now one other person checks my stuff before it goes live -- and that's one more person than many other online publications use.  
   
"예전에 인쇄 매체형 저널리즘에 종사할 때는 내가 쓴 기사를 검토하는 사람이 7 명은 되었다. 지금은 온라인 매체에서 근무하는데 검토하는 사람이 한 명 뿐이다. 그나마 나은 것이 검토자가 한 명도 없는 온라인 언론사도 허다하다."

얼마 전에 겪은 일. 한국의 IT 관련 온라인 매체에서 애플의 아이클라우드 관련 기사를 하나 읽었다. 글의 대부분 영문 기사를 번역한 것이었는데 해석을 정반대로 해놓은 것이 있었다는 것. 그 매체는 댓글을 받지 않기 때문에 나는 메일로 기자에게 어서 고치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다른 어떤 분도 (아마) 트위터로 우회하는 댓글로 문제를 지적해 주었다. 그 매체는 검토자가 단 한 명도 없는 경우에 속하는가 보다. 나는 즐겨찾기에서 그 사이트를 지웠다.

   
  By and large, Web publishing follows the fast and cheap model. Because I like to pick on it, let's take the Huffington Post as an example. Arianna likes to boast about how she has a staff of 148 editors, which sounds like a lot until you compare it to an operation like the New York Times, which has a staff of 1,100. Moreover, most of Arianna's staffers are wet-behind-the-ears newbies who are repackaging other peoples' stories as fast as they possibly can; the Times' staff is full of seasoned (that is, older, better paid) journalists doing mostly original reporting.  
   
"대부분의 온라인 언론사들은 빠르고 값싸게 기사를 뽑아내는 방식을 택한다. 허핑턴 포스트의 예를 들어보자. 허핑턴의 회장인 아리아나는 스탭이 148명이나 된다고 자랑한다. 많아 보이지만 뉴욕 타임스는 1100명이다. 게다가 허핑턴의 스탭들은 대부분 초보들로 다른 사람이 쓴 기사를 재빨리 편집하여 사이트에 올릴 뿐이다. 반면 뉴욕 타임스의 스탭들은 오리지널 기사를 작성하는 노련한 기자들이다."

나는 포털에서 주로 IT 관련 기사를 본다. 거의 다 외국 기사들 재편집해 올린 것이다...

아래 인용을 읽어보라. AOL에 근무하며 기사를 쓰던 사람의 고백이다. 한국의 포털 사이트에 기사를 제공하는 언론사들의 풍경이 머리에 그려질 것 같다.

   
 

I was given eight to ten article assignments a night, writing about television shows that I had never seen before. AOL would send me short video clips, ranging from one to two minutes in length -- clips from "Law & Order," "Family Guy," "Dancing With the Stars," the Grammys, and so on and so forth. ... My job was then to write about them. But really, my job was to lie. My job was to write about random, out-of-context video clips, while pretending to the reader that I had watched the actual show in question. ...

That alone was unethical. But what happened next was painful. My "ideal" turnaround time to produce a column started at 35 minutes, then was gradually reduced to half an hour, then 25 minutes. Twenty-five minutes to research and write about a show I had never seen -- and this 25-minute period included time for formatting the article in the AOL blogging system and choosing and editing a photograph for the article. Errors were inevitably the result. But errors didn't matter; or rather, they didn't matter for my bosses.

 
   
"한번도 본 적이 없는 텔레비젼 프로그램에 관한 기사를 하룻밤에 8 ~ 10 개 정도 써야 했다. 내 일은 AOL이 보내주는 비디오 클립을 보고 기사를 작성하는 것이었는데 사실상 거짓말을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독자들에게는 내가 프로그램을 다 보고나서 기사를 쓰는 척 했지만 사실은 임의로 편집된 1 ~ 2분 짜리 짧막한 비디오 클립을 보고 기사를 쓰는 것이었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기사를 쓰고 AOL의 블로그 시스템에 맞추어 편집하고 적당한 사진을 잘라 붙여서 기사를 내보내는 출판 시간이 35분에서, 30분으로, 다시 25분으로 계속 짧아졌다. 그러니 오류는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오류는 문제가 아니었다. 적어도 우리 팀장에게는 말이다."

   
  Web publications are under tremendous pressure to crank out as much material as they can as quickly as possible. More stories equals greater Google juice and more traffic; more traffic equals more ad impressions and clicks, and thus more revenue. That's the formula. And it's getting worse.  
   
"온라인 언론사들은 가능한 많은 기사를 가능한 빨리 출판해야만 한다. 더 많은 기사는 구글 검색에 더 많이 노출된다는 것(구글 쥬스)을 의미하고, 그러면 더 많은 트래픽이 생길 터이다. 더 많은 트래픽은 더 많은 광고와 클릭을 의미하며 그것이 곧 돈이다. 이것이 웹의 생존 공식이다. 그리고 웹의 품질이 점점 악화되어 가는 원인이다."

제프 자비스의 책 "구글노믹스" 제3장 "새로운 개방성"을 참고하라. 제프 자비스는 이러한 현상을 긍정적인 시각에서 그리고 있다. 내 생각에 이 사람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 다시 말하면 장사꾼같다.

   
 

That is why we see the rise of content factories like Demand Media and AOL's Seed that use algorithms to determine what stories to publish based on Google trending topics. The economics of Web publishing demand cheaper and cheaper methods of producing content, editorial ethics be damned (see publishers and cobras, above).

 
   
"구글의 트랜드에 맞춰 어떤 기사를 출판할지를 결정하는 알고리즘을 이용한 서비스들이 뜨고 있는데는 이런 이유가 있는 것이다. 컨텐트 출판 비용을 가능한 싸게 하라. 언론 윤리 따위는 엿바꾸어 먹어라."

   
  I keep wondering if the Web has a bottom and if we've hit it yet. Will readers finally say "enough" to the crap and demand a return to quality and accuracy? I hope so, but I can't say with any confidence I think it will happen. What do you think?  
   
"온라인 언론의 품질은 이제 바닥을 친 것일까? 이제 독자들은 기사의 품질과 정확성을 요구할 단계에 와 있는 것일까? 모르겠다."

나도 궁금하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그런데 나 역시도 남의 기사를 살짝 가공하여 포스트를 쓰고 있다. 이래도 되는 걸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서핑하다가 재미있는 기사를 발견하여 몇몇 부분을 번역하여 붙인다. 전문은 http://www.nytimes.com/roomfordebate/2011/03/20/career-counselor-bill-gates-or-steve-jobs/rival-philosophies-both-compelling에 있다.

   
  Gates hopes to analyze and adjust the education system in order to produce a more efficient and effective learning environment. He advocates sophisticated metrics to measure results. What makes one teacher better at her job than another and how can best practices be shared? Technology enables analysis and is also the delivery mechanism.  
   
빌 게이츠는 교육 시스템을 분석하고 개선하여 효율적인 학습 환경을 조성하자고 주장한다. 학습 성과를 엄밀하게 측정하여 더 나은 성과를 낳는 요인을 찾아내고 그것을 교사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빌 게이츠에게 기술이란 이러한 분석을 돕는 것이자 효율적인 학습 환경을 제공하는 매체이다.

   
  Jobs is focused more on individual learning and less on systemic education. Technology is his way to get a well-integrated mind flowing in multiple directions. His learning philosophy gives each person the ability to chart his own course. It is less about the structure of the system and more about free will.  
   
스티브 잡스는 체계화된 교육보다는 개인적 학습에 주안점을 둔다. 스티브 잡스에게 기술이란 다양한 관심사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지성을 보조하는 수단이다. 스티브 잡스의 교육 철학의 핵심은 학습 과정을 만드는 능력을 기르는 데 있다. 그것은 체계적이라기보다는 개성적이다.

   
  Jobs’ approach allows for individual experimentation to find a unique solution to each person’s quest. It is the symbol of intellectual multi-tasking. This is a more experimental, integrated search for a holistic view of the universe, one that has multiple access points. Each student becomes his or her own teacher.  
   
스티브 잡스의 방식에 따르면 사람마다 문제도 다르고 해법도 다르게 때문에 각자는 실험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실험적 행동은 지적인 멀티 태스킹의 상징이다. 진리는 다양한 관점의 총합이기 때문에 실험적이면서 집중된 탐구가 필요하다. 이제 학생은 스스로의 교사가 된다.

   
  My heart is with Jobs. But my mind fully understands Gates’ mandate to discover ways to maximize scarce resources to best prepare the workforce. It is beyond noble; it is essential. He is looking for the vaccine to cure education’s ailing health. Jobs is tripping our mind with the jazz of life put before us to spark awareness that the more we learn the more powerful we become.  
   
나의 가슴은 스티브 잡스를 향하고 있지만 머리는 빌 게이츠의 말에 공감한다. 빌 게이츠는 어떻게 하면 부족한 교육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우수한 인력을 양성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너무 실용적인 접근이라고? 천만에! 빌 게이츠는 현실을 말하고 있다. 반면 스티브 잡스는 더 많은 인식을 얻을 수록 더 큰 힘을 갖게 되리라는 각성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선사와 같다.
   
  How does this relate to the curriculum of higher education? Keep poetry, architectural history and Russian literature alongside mechanical engineering and agricultural studies. A discerning mind, one that blends science and Springsteen, is the backbone of the creative spirit: ideas fuel entrepreneurship.  
   
스티브 잡스의 교육 철학을 커리큐럼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기계공학이나 농학 책 옆에 시집과 건축사 책, 러시아 소설들이 놓여 있는 걸 보게 되겠지. 통찰력 있는 정신은 과학과 브루스 스프링스턴 사이에서도 연결점을 볼 수 있다. 바로 그것이 창의성이다. 그리고 이러한 창의성이 기업가 정신의 핵심이다.

   
  Gates is studying the science of education. Jobs is creating the art of learning. I’m sure there is an app for teaching arithmetic by watching the heavens and counting the stars.  
   
빌 게이츠는 교육을 개선할 방법을 연구한다. 스티브 잡스는 배움의 기술을 창조한다. 아마 둘의 장점을 한데 모을 수 있을 것이다. 들판에 누워 하늘의 별을 헤아리면서 산수를 배울 수도 있지 않겠는가?

[나의 코멘트]
1. 빌 게이츠는 교육 부문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 같다. TED에 관련 강연도 올라와 있다. 그러므로 윗 글의 빌 게이츠의 교육 철학에 대한 부분은 분명한 전거가 있을 것이다. -내가 구체적으로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2. 반면 스티브 잡스의 경우는 윗 글의 필자가 확실한 전거를 갖고 있는지 난 잘 모르겠다. 어쨌든 스티브 잡스의 교육관의 일단을 보여주는 것으로 웹에서 내가 찾은 부분을 아래 붙여 본다. 전문은 http://www.albireo.net/forum/showthread.php?t=13617&highlight=%BD%BA%C6%BC%BA%EA+%C0%E2%BD%BA에 있다. 젊은 날(1985년)의 스티브 잡스의 긴 인터뷰 기사다. 차분히 읽어 볼 만한 좋은 글이다. 참고로 이 사이트에는 매우 재미있는 읽을 거리들이 많다. 방문을 강추한다. 또, 좋은 글을 번역하여 주신 데 대해 위 사이트의 관계자분께 감사를 드린다.

   
  인도에서 돌아왔을 때 의문이 들었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서구 사회의 합리적인 사고방식이 인류의 천성은 아니다는 사실입니다. 학습의 결과이지요. 아무도 생각 방식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들 하고 있죠.

분명, 우리 교육 최대의 문제는 생각하는 방식 가르치기입니다. 컴퓨터가 생각의 품질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끼칠 테고, 아이들도 이 툴을 점점 더 활용하게 될 겁니다. 인간은 수단을 사용하죠. 책에 대해 정말 기적같은 일이 뭐냐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뭘 썼는지 읽을 수 있다는 겁니다. 아리스토텔레스를 선생님이 설명해줄 필요가 없지요. 아리스토텔레스가 무엇을 썼는지 읽을 수 있습니다. 이해하시겠죠?

이러한 직접적인 지식/아이디어의 전송이야말로 우리가 사회로서 이룬 것의 핵심입니다. 하지만 책의 문제가 있죠.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질문을 던질 수 없다는 점입니다. 컴퓨터의 잠재성이 여기에 필요하죠. 근본을 잡아서 경험을 통해 깔려 있는 원칙을 알도록 돕는 것입니다.

매우 유치한 사례를 들자면요. 비디오 게임, Pong은 중력과 각운동량(angular momentum) 원칙을 알려줍니다. 이 원칙에 따라 게임이 돌아가지요. 물론 모든 게임은, 각자의 인생만큼 다릅니다. 제일 단순한 사례이죠. 컴퓨터 프로그래밍은 깔려 있는 원칙, 본질을 끄집어내서 이를 원칙의 인식에 따라 움직이도록 할 수 있습니다.

자, 우리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을 배울 수 있다면, 그의 세계관의 원칙을 알 수 있다면요?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OK. 물론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니잖나 말씀하실 수 있겠죠. 틀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맞을 수도 있죠.

이 수단을 수 백만, 수 천만 명에게 안겨다 주는 것이 문제에요. 언젠가는 우리가 할 수 있겠지만요. 보다 더 개선시켜서 아리스토텔레스나 아인슈타인, 혹은 아직 살아계신 에드윈 랜드를 알아낼 수 있을 겁니다. 이런 교육을 받은 아이가 자라나서 어떻게 될지 상상해 보십시오. 아니, 아이 말고 우리는 어떨까요! 우리가 도전할 점이 바로 이겁니다.

지적 탐구 부문에서 흥미로운 부분이 한 가지 있어요. 우아하게 늙어가는 겁니다. 너무나 빨리 상황이 변해서 80년대 후반 쯤 되면, 근본 통찰부터가 최고의 통찰이 될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고 싶겠지요.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이요. 우리의 어깨를 타고 미래를 보는 겁니다. 흥미롭지 않습니까? 우아하게 늙어가는 겁니다.
 
   

3.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뭘 하든지 잘 하고 잘 살았을 것이다. 빌 게이츠는 2류 제품을 가지고도 시장에서 장기간 독점적 지위를 유지해낸 탁월한 수완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럼 워즈니악의 손에 이끌려 자작 키트 클럽에 가입하지 않았다면 스티브 잡스는 어떻게 되었을까? 노숙자가 되었을 수도 있고 테레리스트가 되었을 수도 있고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겉보기에는 평범한 가장이되 가슴 속에는 항상 출몰하는 이상에 고민하는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스티브 잡스의 진폭이다.

4. 빌 게이츠의 교육관은 빌 게이츠를 낳을 것이고 스티브 잡스의 교육관은 스티브 잡스를 낳을 것이다. 미국이라는 사회의 위대한 점은 스티브 잡스에게 기회를 주었다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실패를 했을 때도 그 실패를 자산으로 인정해 주었다는 것이다. 사르뜨르가 프랑스산 특제이듯이 스티브 잡스는 미국산 특제이다.

5.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만드는 컴퓨터를 무엇보다도 교육용으로 인식했던 것 같다. 빌 게이츠는 방대한 비디오 튜터리얼 라이브러리를 갖고 있는 칸 아카데미를 지원하고 있다. 둘의 공통점은 교사라는 중개자의 역할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물론 빌 게이츠는 학습 진전의 측정을 특히 중요하게 여긴다. 아마 빌 게이츠는 명시적이고 스티브 잡스는 묵시적이라는 점에서만 다를 것이다. 자기 주도 학습에서 성과의 측정은 핵심 사항이기 때문이다. 아마 둘의 차이점은 한 사람은 좀 더 이상적이고 다른 한 사람은 좀 더 실용적이라는 것일 테다. 당연히 둘은 상보적이다.

6. 분명 들판에 누워 하늘의 별을 헤아리면서 산수를 익힐 수 있을 것이다. 산수보다는 기하학이 더 적절하겠지. 그러면 정말 무궁무진한 얘기를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여기서 내 머리에 떠오르는 우화는...

   
  죤과 그의 아버지는 별들을 보려고 나간다. 죤은 두 개의 파란색 별들과 한 개의 붉은 색 별을 본다. 그의 아버지는 한 개의 초록색 별, 한 개의 보라색 별 그리고 두 개의 노란색 별들을 본다. 죤과 그의 아버지가 본 별들의 온도의 총합계는 얼마인가?
                                             ("파인만씨 농담도 정말 잘 하시네요!"에서)
 
   

스스로 의문을 갖고 그것을 질문 형식으로 만든 후 답을 찾는 사람은 이런 식의 문제를 꾸며낼 수가 없다. 그러므로 저것은 의문 없이 만든 문제이고 오로지 평가만을 위한 문제이다. 여기서 악역은 교사다. 그러므로 합창. We don't need no education~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 2011-07-14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개인적으로 잡스와 빌게이츠에 관심이 있는 사람입니다만...꼭 이런식으로 글을꼬아서 어렵게써서 자신의 지식을 과시 하고 싶으신가봐요,,,,결코 좋은글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네여,..

weekly 2011-07-17 11:29   좋아요 0 | URL
^^
지적하신 것 중 하나엔 공감하고 다른 하나엔 공감하지 않으렵니다.
결코 좋은 글이 아니라는 것에 천번 만번 공감합니다.
그러나 지식 과시용은 전혀 아니구요.

제 블로그 포스팅의 상당 부분은 탐색용 글들이랍니다. 내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지, 관심이 뭔지, 어떤 모색을 하고 싶은지, 저것이 그것에 속하는지를 제 두뇌의 내외를 안가리고 죽 탐색해 보는 것이지요. 해서 저 글보다 환장하게 산만하고 꼬인 글들도 많지요...-.-

제 블로그 특성이 그렇다는 건데요... 저 역시 검색 엔진을 타고 다른 블로그에 들어갔다가 제가 관심 있어 하는 주제를 놓고 횡설수설하는 글을 보면 짜증이 날 때가 많았다는 경험을 되새겨 좀 더 정돈된 글을 써야 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더랬습니다.

암튼 지적 감사합니다.

행인 2012-02-17 0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지나가다 좋은 글 보고 갑니다..
위에 분한테는 좋은 글이 사탕발림처럼 좋은 말만 늘여 쓰는게 좋은 글의 기준인가 보네요.

행인-1 2012-11-20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맨 처음 댓글 다신분은 '지식 과시용'이라고 느끼신 것부터 내재한 열등감을 보이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참.
저도 지나가다 이 홈페이지에 들르게 되었는데요, 좋은 글에 감사드립니다.
 


(알라딘 블로그는 멀티미디어를 지원하지 않는 것 같다. 약간 삽질을 해보다 포기하고 대신 알라딘 블로그팀을 욕하기로 했다. 게으른 것인가, 시대착오적인 것인가? 멀티미디어가 사고와 대화의 원천이 되는 현실을 외면하려면 두 눈만 꼬옥 감으면 된다. 얼마나 쉬운가? huh?)

1. 구글의 크롬북이 드디어 출시되었단다. 크롬북의 개념은 모든 컴퓨팅을 웹 브라우저 위에서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스프레드쉬트 작업도 웹 브라우저 위에서 한다. 물론, 이 스프레드쉬트 프로그램은 웹 어플리케이션으로 인터넷 어디엔가 떠 있다가 사용자가 웹 브라우저로 불러 들여 사용하게 된다.

2. 이 프로젝트의 주체는 물론 구글이다. 구글은 웹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일도 마다하지 않는 기업이다. 그리고 크롬 오에스는 구글의 가장 야심적인 프로젝트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3. 대부분의 소프트웨어 개발사들에게 거의 모든 어플리케이션이 웹앱(웹 어플리케이션)으로 통일되는 현상은 참으로 고마운 일일 것이다. 이론적으로 보면 단 하나의 플랫폼만 고려하여 개발하고 배포하면 되니까.

4. 그러면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웹입이든 네이티브앱이든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아무 차이가 없어야 한다. 예컨대 크롬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네이티브앱과 동일한 사용자 경험을 웹앱을 통해 제공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구글독스에 가서, 예컨대 스프레드쉬트 프로그램을 열어보면 된다. 끝.

5. 스티브 잡스가 전지전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앱 스토어는 애초 그의 구상 속에 있지 않았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본 것은 그의 통제권 밖에서 아이오에스용 네이티브 앱들이 인기를 얻는 현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가 한 일은 네이티브 앱의 유통 공간을 자신의 통제권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네이티브 앱들은 더 나은 사용자 경험을 제공한다. 그러므로 거기에 가격을 매길 수 있었다. 앱에 가격을 매길 수 있게 되자 컨텐츠를 앱으로 포장한 컨텐츠 앱이 등장했다. 컨텐츠 앱은 컨텐츠를 유료화하는 수단일 뿐이다. 더 데일리가 대표적인 예. 문득 깨닫고 보니 애플은 네이티브 앱의 옹호자가 되어 있었고 구글은 웹 앱의 수호자가 되어 있었다. 큰 줄기는 컨텐츠라고 본다. 애플은 컨텐츠를 앱으로 포장하여 유료화하는 대신 더 나은 질을 보장하겠다는 입장이고 구글은 누구나 쉽게 컨텐츠에 접근할 수 있다는 개방성을 옹호하는 입장이다.

6. 누가 이길까? 물론, 더 나은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쪽이겠지. 그런데 궁극의 사용자 경험이란, 요컨대 기기가 중국인(혹은 영국인?) 비서처럼 되는 것일 게다. 즉, 극도로 인격화되고 개인화된 기기(미디어 랩). 이런 기기들은 딱히 웹에 의존적이지 않을 것이다. 이런 기기들의 원초적 형태라 볼 수 있는 RSS 피드기나 신문 구독앱들을 보라. 웹은 보편적이고 개방적이고 광대하다. 그런데,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개인화된 비서들을 필요로 한다! 수십년 전에 사람들이 예상한 방향이 이러한 방향이었다.

7. 물론 웹에서도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꼭 웹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구글은 꼭 웹이어야 한다고 고집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에 걸어 놓은 크롬 오에스 광고를 보라. 그것이 크롬 오에스에서만 가능한 것인가? 아니. 그것이 크롬 오에스가 더 잘 하는 일인가? 아니. 그것이 컴퓨팅의 전부인가? 아니. 그럼 크롬 오에스는 무얼 하자는 것이지? 침묵.

8. 그러므로. 크롬 오에스 프로젝트는 구글의 처참한 실패로 기록될 것이다.

9. 그러나. Dear Sophie라는 저 광고는 구글스럽지 않은 감성으로 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아마 세상의 많은 젊은 남자들의 감성을 일깨워 준 광고이리라.^^ 하여 크롬 오에스에 관한 숱한 말들이 세월에 흩어져 가다 어느덧 잊혀져 버린 날에도, 아이가 세상에 태어난 날에 맞추어 아이에게 메일을 쓰기 시작한 세상의 많은 젊은 아버지들이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다 혹 크롬이라는 낱말을 되살려 낼지도 모르겠다. 하하^^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하이드 2011-06-20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 2011-06-20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튜브에서 '이전 소스코드 사용하기' 체크셨나요?

크롬이라던가 파이어폭스라던가 기타 다른 문제라면 모르겠지만, 만약 위의 소스코드 잘못 긁어와서 동영상 재생이 안되었던거라면, 누가 게으르고 시대착오적이고 두 눈 꼭 감고 있는 걸까요?

weekly 2011-06-20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게으르고 시대착오적인 것은 저였군요...-.-

weekly 2011-06-21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롬에서 엔터키가 이상하게 먹는다든지, 제가 쓴 댓글이 등록이 안된다든지, 먼댓글을 썼다 지웠는데 상대편 블로그에 흔적이 그대로 남는다든지 하는 자잘한 오류를 겪다 보니 이것도 당연히(-.-) 안되는 것으로 생각해 버렸습니다.

파이어폭스로 옮겨 왔으니 크롬에서의 엔터키 이상은 이제 문제가 아닌데 나머지 것들에는 신경이 쓰이네요. 혹 제가 뭘 잘못하고 있는지 깨쳐 주실 수 있을런지요?
 

아래 포스팅에 이어 계속한다.

리버럴 아트는 깨어있는 시민이 가져야 할 기본 소양을 구성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글쓰기이다. 자신의 의사를 명확하게 개진하고 다른 사람의 논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 요컨대 소통의 기본 전제이기 때문이다. 또 예를 들면 한국에서는 영어로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리버럴 아트에 속한다. 무엇보다도 현대 세계의 수많은 정보가 영어로 작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의 전문가들은 소통의 다리이기보다는 소통의 장벽이기 때문에 그네들의 속임수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보에 직접 접근하고 그에 기반해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 절대로 필요하다.

음악을 제대로 소비하고 생산할 수 있는 능력, 미술을 제대로 소비하고 생산할 수 있는 능력, 영화를 제대로 소비하고 생산할 수 있는 능력, 전문가들의 통계 조작에 속지 않는 능력... 이 모든 것들이 리버럴 아트에 속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일상적인 필요 이상의 것을 전제한다. 다른 말로 하면 생존이 아니라 생활을 요구한다. 삶이란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향유하는 것이어야 함을 요구한다. 그리고 다시 반복하자면 이러한 삶을 위한 환경, 도구가 곧 리버럴 아트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영역에서 리버럴 아트에 기여할 수 있는 제품을 세상에 제공하고자 노력한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애플 기기들의 특성, 즉 사용자 경험을 최우선으로 한 디자인은 그 자체가 리버럴 아트로서의 자신들의 미적 취향을 반영하는 것인 동시에 사용자들로 하여금 리버럴 아트에 대한 접근을 쉽게 해 준다. 

자 이제 몇 가지 인용이다.

   
  We ascribe beauty to that which is simple,
which has no superflous parts,
which exactly answers its end,
which stands related to all things,
which is the mean of many extrems.
                -Ralph Waldo Emerson, The Conduct of Life
                  (How to Design Programs, 페이지 xxiv에서 재인용)
 
   
   
  아름다운 것이란 단순하고, 불필요한 부분이 없고, 목적에 딱 들어맞고, 모든 것과 관련이 있고, 극단들 사이에서 중용을 유지하는 것이다.
 

리버럴 아트란 바로 저러한 미적 가치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다. 즉, 단순하고 목적에 딱 맞는 것들을 골라낼 수 있는 능력. 그러므로 리버럴 아트는 능력이자 태도이다. 도구이자 내용이다. 직관적 사용성과 단순성이 미학과 연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종합하자면 리버럴 아트는 삶의 질과 관련된 것이고 더 높은 질을 골라 내는 기준이자 태도이자 능력이자 도구이자 결과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아름답다는 느낌을 동반한다.

   
  If you want to enjoy art, you must be an aristically cultivated person; if you want to exercise influence over other people, you must be a person with a stimulating and encourging effect on other people. Every one of your relations to man and to nature must be a specific expression, corresponding to the object of your will, of your real individual life. If you love without evoking love in return - that is, if your loving as loving does not produce reciprocal love; if through a living expression of yourself as a loving person you do not make yourself a beloved one, then your love is impotent - a misfortune.
                                                         -Karl Marks
             (Economic and Philosophic Manuscripts of 1844, XLIII 마지막 문단)
 
   
   
  그대가 예술을 향유하고 싶다면 예술적인 소양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대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으려면 다른 사람을 북돋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대가 인간이나 자연과 맺게 되는 모든 관계는 그대의 삶의 정확한 실존적 표현이어야 합니다. 그대의 삶의 표현을 통해 그대의 사랑이 그대를 사랑받는 사람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그대의 사랑은 불모이며 하나의 불행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리버럴 아트는 능력이다. 예술을 향유하는 능력이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우리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능력이고 사랑을 표현하는 능력이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우리를 사랑하게 하는 능력이다. 능력이고 도구이고 표현이다. 곧 우리의 실존을 구성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하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스티브 잡스의 애플(WWDC 2011을 보고)

아래 포스팅(http://blog.aladin.co.kr/weekly/4850380)의 4번 항목은 과장이라고 생각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다시피 스티브 잡스는 기판의 회로 배선처럼 사용자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도 아름다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어쩌면 약간 미친 CEO임에 틀림없다.

(공학적으로 우수한 것은 미학적으로도 우수하다는 것을 많이들 경험해 보았을 것이므로 그리 튀는 얘기가 아닐 것 같기도 하다...)

그렇더라도 휴대폰을 손으로 정상적으로(!) 잡았을 때 수신율이 떨어지는 제품을 세상에 내놓을 회사는 아마 애플 밖에 없을 것이다. 휴대폰 안에 유닉스라는 거대한 운영체제를 구겨 넣고도 내장형 배터리 하나만으로 충분할 거라고 믿는 회사도 애플 밖에는 없을 것이다. 이 사례들은 사용성과 미적 기준이 충돌하였을 때 스티브 잡스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 혹은 애초 어떤 항목이 더 높은 우선순위에 있었는지를 시사해 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스티브 잡스의 변명은 이러할 지도 모르겠다. 사용성이란 기술의 발전으로 계속 개선될 수 있는 것인 반면 미학은 영원한 것이다. 다른 표현으로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미학이란 궁극의 사용성이다. 또 다른 표현으로는 미학이란 미래의 사용성이다.

(그러므로 스티브 잡스는 예술가다. 예술가들은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모두는 아니더라도 누군가에 의해서는 즐겁게 향유될 수 있는 어떤, 말하자면 영원한 가치를 염두에 두고 자신의 창조물을 평가한다.)

(물론 안테나 게이트는 미학보다는 공학, 즉 기술적 실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아야 하겠지만.)

문제는 사람들이 스티브 잡스의 고집을 인정해 주느냐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불평을 하면서도 그의 고집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예컨대 탈착불가능한 배터리는 분명 많이 불편하다. 그러나 배터리를 탈착가능하도록 만들면 나의 아이폰4의 외양 디자인이 어떻게 변할까를 생각해 보면 끔찍하다. 차라리 지금의 불편한 사용성을 감수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조차 든다.

물론, 이런 생각이 든 것은 전적으로 스티브 잡스의 존재로 인한 것이다. 나의 자연스러운 성향대로라면 미적 요구 때문에 내장형 배터리를 선택한다는 것은, 한 마디로 미친 얘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스티브 잡스는 교주거나 예술가, 또는 교사, 또는 사상가다. 그들은 모두 우리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면 피카소 이전이라면 우리는 피카소의 그림을 아름답다고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생각들이 든 것은 요즘 웹 서핑을 많이 하면서 한 장의 사진을 보았기 때문이다. 기술과 리버럴 아트의 교차로에 스티브 잡스가 서 있는 사진. 물론 스티브 잡스식의 포장하기일 뿐이라고 반박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재반박하겠다. 모든 것은 포장하기일 뿐이라고, 나는 그대의 잘 된 포장을 요구하겠노라고, 그러니 나를 감탄시킬 그대의 포장을 내게 보여주시라고...

























(이미지 출처: http://live.gdgt.com/2010/01/27/live-apple-come-see-our-latest-creation-tablet-event-coverage/#07-53-00-pm)

스티브 잡스의 이상은 두 가지 인간형을 전제하고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직관적 사용성이 전제하고 있는 인간형이다. 예컨대 어린 아이, 할머니, 할아버지 등이다. 파일의 디렉토리 구조가 나에게는 자연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저 분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스티브 잡스는 그 차이를 안다.

다른 하나는 애플 제품들의 미적 가치관이 염두에 두고 있는 인간형이다. 애플의 제품들은 버튼이 여러 개 달리고 번쩍번쩍 하는 최첨단의 이미지를 우리에게 주지 않는다. 오히려 아름답지만 저런 것이 어떻게 동작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하는 경우마저 있다. 즉, 스티브 잡스는 공학 제품을 마치 예술 작품인냥 내놓는 것이다. 즉 그것을 미적 경험의 장소로 제공하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http://reviews.cnet.com/2300-33_7-10002000-3.html)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제품들이 일상적인 도구로 사용되기를 바라면서도 일상적인 가치 이상의 것을 그 도구들에 심어 놓는다. 어린 아이,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도 전혀 어렵지 않은 사용성을 제공하면서도 동시에 독특한 미적 경험을 선사하고 싶어한다. 이 둘 사이에 모순이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미적 가치, 미적 경험을 일상적인 것 이상의 가치, 일상적인 것 이상의 경험과 동일시하는 것을 용서하기 바란다. 물론 전자가 후자에 포함되는 것임을 잘 안다. 그러나 말을 순하게 하고 싶다.)

미적 경험을 추구한다는 것은 우리가 미적 경험의 환경 안에 놓여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여기서 미적 경험이란 미적인 것의 소비와 생산 모두를 의미한다. 그리고 미적인 것의 소비와 경험을 가능케 하는 환경을 우리는 미적 도구라고 말한다. 이 미적 도구를 다른 말로 무엇이라고 하는가? 리버럴 아트(liberal arts)!

(헤... 우선은 여기까지 하자. 이 글은 나의 아래 포스팅에 대한 나 자신의 댓글(주석)로 시작되었다. 해서 글이 이렇게 크게(?) 발전할 줄 몰랐다. 그러므로 일단...)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222 2012-06-05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놀랍군요, 이렇게 깊숙한 내용의 글을 쓰시다니...^^
대개는 이런 설명은 감적인 부분으로만 이해할 수 있기 떄문에 듣는 사람이 생각이 매우 깊거나 아예 생각이 없을때가 아니면 잘 안씁니다만...잘보고 갑니다.

덧붙힘 : 디자인과 효율의 적정 비율은, "특정 기준"을 중심으로 5.3 대 4.7이 아닐까 하네요, 여기서 5.3은 최대 5.7까지 올라갈 수 있고, "휴대폰" 이라는 기준에서 그 경우가 배터리 탈착이나 3.5인치 화면 등이 예라고 할 수 있겟네요.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