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보는 이번 대선의 의미는 패러다임의 교체라는 주제를 놓고 국민들이 벌이는 토론이다. 너무 뜬금없고 이상적인가? 얘기를 마저 하자. 아이엠에프 이후 들어선 3개의 정권은 모두 신자유주의적인 정권이었다. 그 결과는, 다른 모든 걸 다 접어두고 한 두개로 특정해서 말하자면, 최고의 자살률, 그리고 낮은 출산률로 대표될 수 있을 것이다. 국민들도 다 아는 얘기다. 그러므로 이제 대선의 이슈는 단연코 복지와 경제민주화가 되어야 한다. 대선 후보들이 한국이 처한 현재 상황을 국민들 앞에 소상히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 한국에서는 이런 토론이 가능하지 않다. 아니, 가능하지 않았었다. 기득권층이 토론에 깽판을 놓기 위해 이념 문제를 갖고 들어오곤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엔 다행히도 안철수라는 후보가 있다. 안철수는 이념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정치 공학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정부가 무상 보육 정책을 폐지한단다. 후보들 모두 정부를 비난한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자. 무상 보육 등의 복지 정책을 펴는 데는 돈이 필요하다. 그러면 이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대선 후보들 앞에 놓인 답안은 두 가지일 것이다. 첫째, 모범 답안. 지금의 재정만 효율적으로 운용해도 재원은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둘째, 절대 피해야 할 답안. 세금을 올린다. 모범 답안은 사실상 거짓말과 같다. 노무현도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노무현이 거짓말을 할 당시 보수 언론들은 노무현더러 참을 말하라고 했다. 노무현이 참을 말했다면 노무현은 대선에서 떨어졌을 것이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선거 공학의 문제다. 그러나 안철수에게는 변명이 안되는 얘기다. 안철수는 선거 공학과 상관없이 분명하게, 복지를 위해서는 세금을 더 걷어야 겠다고 치고 나가야 한다. 증세를 의제의 하나로 내걸고 진지하게 토론하는 마당을 만들어야 한다. 보수 언론에서 어마어마한 공세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슈화가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안철수의 지지율이 회복불능으로 떨어져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어쩌면 문재인이 보험이 되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안철수의 진심이 받아들여져서, 헛소리나 하고 앉았는 다른 후보들과 차별화되면서 대세를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결과는 안철수의 몫이 아니다. 결과는 국민들의 몫이다. 국민들이 이념 공세에 편승해 앞에 놓인 불편한 현실을 바로 보는 것을 외면해 버린다면, 미래는 자명하다. 누구나 인정하듯 현재 한국의 체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어쩌면 이미 늦었다.)  (하고 싶은 얘기는 다 했으니 정치 얘기는 이제 그만 하도록 하자.)  

2.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로 흘러가는 사유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실체의 갯수가 몇 개이냐가 아니라, 실체성이 점차 약화되고(추상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라이프니츠에 이르러 실체성은 극단적으로 추상화되어, 예컨대 두 개의 실체는 서로 다르다는 점에서만 서로 구별가능하게 된다(물론, 이는 말장난이다). 라이프니츠는 여기서 동일성에 대한 이론을 끌어들이는데, 이 이론은 뜻 밖에도 대단히 생산적이다. 다시 말하면 나는 이 문제에 대해 할 말이 무지 무지하게 많다. 그러므로...

3. 이 글을 쓰고 있는 도중 아마존에서 중고로 주문한 인식론 책이 왔다. 앞 장에 Tom 뭐시기라고 책 주인 이름이 적혀 있고 책 중간까지 형광펜이 잔뜩 그어져 있다. 얇아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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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철수의 생각. 안철수 팀에 왜 이헌재가 끼여 있느냐는 논란이 나는 의아스러웠다.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걸까? 나는 이헌재에 대해 딱히 부정적인 생각이 없다. 언론에 나온, 예를 들면 장하준의 비판도, 아무 구체적인 논점 없이 단지 "그 사람은 안돼" 라고 이야기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렇게 아우성이라면 내가 뭔가를 놓치고 있는 것이 분명하고, 특히나 안철수에 대해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안철수에 대해, 그의 생각에 대해 거의 아무 것도 모르면서 묻지마 지지를 표방하고 있다는 반성이 들었다.

(알라딘 이북으로 "안철수의 생각"을 사서 읽었다. 아이패드가 지원되지 않아 넷북으로 읽었다. 이북 서비스에서 알라딘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그러나 공룡 아마존을 알라딘과 비교하는 것은 공정한 일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어제 밤 시간에 넷북을 들고 침대에 누워 안철수의 생각을 다 읽었다. 독후감을 한 마디로 말하라면, 모든 염려가 사라졌다는 것! 안철수는 대단히 똑똑하고, 대통령으로서 모자랄 것이 없는 소양을 갖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블로그에 대선과 관련하여 썼던 이야기들이 안철수의 책에 그대로 나오더라. 그러나, 나는 결코  표절을 한 게 아니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정상적인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품고 있는 상식적인 생각들이기에 그리 겹친 것일 뿐...)

이헌재에 대한 생각을 덧붙이고 넘어가자. 안철수는 내가 보기에 한국에서 충분히 진보적이다. 다시 말하면 상식적인 보수다. 노무현이 권력은 이미 시장(기업)으로 넘어갔다고 말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안철수가 온갖 아름다운 말로 수사하고 있는 그 모든 이야기들도 정부가 재벌들을 컨트롤해 낼 수 없다면 단지 말로 끝날 수 밖에 없다. 안철수가 아무리 중소기업, 벤처가 살아야 한다고 역설해도 현실은, 정부-대기업(예를 들면 SDS)-하청 중소 기업 순으로 주문과 돈이 흘러간다. 불필요한 추상층이 끼여 있다는 것이다. 재벌들은 한국에서 어마 어마한 부를 끌어가지만, 예를 들면 이건희의 탈세에 대해 한국 정부는 제대로 처벌을 하지도 못한다. 이래서는 정의를 말할 수 없다. (안철수는 미국에서 MBA를 한 사람이다. 예를 들면 회계부정에 대해 미국에서라면 어떤 처벌이 내려지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안철수의 정책이 구두선에 그치지 않으려면 재벌들을 실제로 제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나는 안철수와 이헌재의 접점을 거기서 본다. 무엇보다도 이헌재는 재벌을 휘둘러 본 실무 경험(!)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안철수의 책에서 내가 특히 감명받은 부분은, 안철수가 법치에 대해 너무도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는 대목이었다. 법치는 정권이 국민에게 준수할 것을 요구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국민이 정권에게 준수할 것을 요구하는 그런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내용을 문서로 정리해 놓은 것이 대한민국 헌법이다. 그동안 이런 상식적인 이야기를 대한민국에서는 듣기가 너무도 힘들었다. 나는 안철수가 그런 말을 해주어서 너무 너무 기뻤다.)

2. 형이상학적 상상력. 데카르트는 난로 옆에 발을 뻗고 앉아 근대 철학을 시작했다. 데카르트는 마치 그 이전에 아무도 없었다는 듯이 철학을 하였다. 데카르트가 시작한 사유의 방식이 스피노자를 거쳐 라이프니츠까지 내려오자 그 형이상학적 상상력이 여름밤의 불꽃놀이에서처럼 폭발한다. 데카르트가 구둣발로 짓이겨 버린 아리스토텔레스는 라이프니츠에게서 부활한다. 나는 스피노자를 사랑하지만, 어쩌면 라이프니츠에 빠져 바람을 피울지도 모르겠다. 라이프니츠에 비추어 보면 스피노자는 확실히 불만족스럽다. 라이프니츠는 놀랍게도 현대적이다. 나는 스피노자가 그렇다고 생각했었는데, 라이프니츠는 스피노자를 그의 시대로 되돌려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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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친구가 한국에 다녀오면서 "콰이어트"와 "교수대 위의 까치"를 사다 주었다. 친구에게 "인간과 음악", "해석을 위한 한문 입문"을 부탁했었는데 서점에 이 책들이 없단다. 이 책들은 어제 이야기한 그 정체성에 대한 반성의 흔적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온라인 구매를 하든지 하여야 겠다.

2. 콰이어트. 빠르게 훑어 보았다. 예전에 이와 비슷한 내용의 책에 대한 소개를 뉴욕 타임스 컬럼에서 읽은 기억이 나서 검색해 봤는데 결국 찾지 못했다. 동유럽 출신의 여자가 쓴 책인데 미국에서는 자신이 검정 티만 입고 있어도 사람들이 다가와서 웃으라, 힘내라 등등 하며 야단을 한다는 것이다. 미국 문화의, 일종의 긍정 강박증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나중에 다시 찾아봐야 겠다. 콰이어트는 그저 그랬다. 

3. 교수대 위의 까치. 그냥 읽는데 갑자기 1장이 딱 끝났다. 어라? 이러면서 2장을 읽은데, 2장이 또 갑자기 딱 끝났다. 이 책을 이미 읽은 한 친구에게 "이 책 원래 아무 내용 없어?"라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아무 내용이 없단다. 그래서 마음 놓고 책을 던져 버릴 수 있었다. 내용 없는 책을 구매해 준 것으로 차릴 예의는 다 차린 것이니 굳이 끝까지 다 읽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4. 어제 종일 비가 왔다. 저녁 무렵에 근처에 있는 강가(운하)로 우산을 들고 산책을 나갔다. 배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모처럼 조용해진 강은 백조의 차지였다. 강 한가운데를 유유히 미끄러져 가는 백조가 신나 보였다. 보통 때라면 강 한가운데 길은 커누나 보트를 탄 사람들의 차지이니까. 돌아오는 길에 난데없이 위산이 쏟아져 내렸다. 석사 과정 강의는 반년 후에 끝나고 그 뒤엔 두 달 길이의 논문 학기만 남는다. 위산은 내가 그 과정을 잘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을 의미한다. 그에 대한 나의 반응은? 이 블로그를 매일 매일 적어야지 하고 다짐하는 것. 가이드라인 - 30분 이상 시간을 들이지 말 것! 스트레스는 받아치는게 맛이라고 나는 배웠다.

5. 오늘 오전부터 라이프니츠의 단자론 주석서를 읽고 있다. 흐뭇한 건 이걸 헌책방에서 샀다는 것. 아주 옛날에 단자론을 한국어본으로 읽은 적이 있었다. 그때의 느낌은, "I felt -as many others have felt- that the Monadology was a kind of fantastic fairy tale, coherent perhaps, but wholly arbitrary."(이 주석서의 서론에 인용되어 있는 어떤 학생의 말)과 똑같았다. 단지론의 첫 두 항을 해설과 함께 읽은 지금 나는 라이프니츠의 논증의 철저함을 긍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형이상학적 통찰에 감탄하고 있다. 라이프니츠의 접근 방법은 이렇다. 세계는 사물들의 집적들이 아니다. 세계는 어떤 통합성을 제공하고 있다. 맞나? 맞다. 그러면 이 통합성은 어디에서 왔는가? 이것이 라이프니츠의 출발점인 듯 하다. 내가 품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라면 이런 버전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문장은 단어들의 집적이 아니다. 문장은 단어들의 집적 이상의 어떤 통합성을 제공한다. 맞나? 맞다. 그러면 어떻게? 이것이 예를 들면 럿셀이나 비트겐쉬타인의 문제의식의 하나인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특정한 사례들에 폭넓은 적용성을 가지는 것, 이것이 형이상학적(철학적) 사유의 힘이다. 라이프니츠, 그대의 시작은 좋았소. 나를 실망시키지 않으면서 그대의 논설을 끝까지 끌고 갈 수 있었으면 좋겠소.

6. 이 글을 쓰는 와중에 데카르트의 철학 저작집 제1권이 왔다. 아마존에 중고로 주문한 것이다. 책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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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게티어의 3, 4쪽 되는 짧은 논문을 읽기 위해 플라톤의 테아이테투스를 읽고 있다. 이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철학책이 또 있을까? 플라톤은 신이고 테아이테투스는 성경이다. 

2. 데카르트의 철학 저작집 두 권을 아마존에서 중고로 주문했는데 한 권은 이틀 만에 와버렸고 다른 한 권은 배송 중이란다. 내가 2 학기 동안 들을 강의 중 데카르트가 출몰하는 것이 심리 철학, 심리학의 철학, 근대 철학이다. 더하자면 형이상학에도 데카르트가 출몰한다. 내가 개인적으로 관심을 두고 있는 스피노자의 경우엔 더더욱이 그러하다. 스피노자의 어휘 사전이 데카르트니까. 데카르트는 읽어야 할 철학자다.

3. 내가 피하고자 한 강의들 중엔 미학, 정치 철학 이런 것들이 있다. 첫째, 내가 관심이 별로 없다. 둘째, 읽어야 할 책 목록이 길다. 셋째, 어쩌면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일 수 있는데, 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반성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미학에서라면, 나는 한국사람으로서 서양 사람들과 다른 접근 방법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그러한 것에 욕심을 내기에는 학기가 너무 짧다. 김용옥의 강의를 유튜브에서 몇 편 찾아 본 것은 혹시 몰라 일종의 속성 과외를 한 것이었다. 다행히 이번에 나온 시간표를 보니 피해갈 수 있을 것 같다! -이걸 다행이라고 말해도 되나?

4. 친구랑 이런 저런 이야기(사내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모종삼의 우환 의식이라는 개념이 떠올랐다. 옛날에 학교 다닐 때 모종삼의 책을 읽다가 중국 철학의 커다란 특질 중 하나가 우환 의식이라는 대목에서 무릎을  탁 치던 기억이 난다. 동시에 그 책을 탁 던져 버리던 기억도. 중국 철학(한국 철학, 동양 철학 등등)은 젊은 내게 어울리지 않는 철학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제 이 개념이 굉장히 강력한 설명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이 아이디어를 계속 발전시켜 보고 싶다. 한 5년 정도 후에는 구체적인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겠지 하고 혼자 생각하며 웃는다. 도중에 이 프로젝트를 까먹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그 아이디어의 발단이 사내 정치에 대한 친구와의 대화였다는 점을 잊지 않기 위해 여기 기록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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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과 삼성의 미국 특허 소송에서 애플이 이긴 직후에 삼성에서 일하는 친구들과 바베큐 파티를 한 적이 있었다. 소송 결과에 대한 우리 모두의 생각은 일치했다. 삼성이 그동안 잘 베껴서 애플과의 기술 격차를 빠르게 줄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삼성도 선도 기업으로서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할 때가 되었다...

아이폰 등장 후 노키아가 침몰해 버린 것과 비교해 보면 삼성이 빠르고 유연하게 시장에 대처하여 아이폰 등장 이전의 위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거의 경이적으로 보일 정도다. 이런 것이 삼성의 컨셉이고, 사실 이런 것이 한국의 컨셉이다. 그러나 삼성이 이런 컨셉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삼성의 이런 컨셉을 답습하는 누군가가 등장한다면? 물론 그 누군가는 중국의 기업들이고 곧 시장의 강자로 등장할 것이다.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애플 얘기를 잠시 해 보자. 사람들은 흔히 애플을 삼성이나 엘지 등에서 조달받은 부품들을, 중국의 공장을 이용해 예쁘게 디자인된 케이스에 담아 내놓는 디자인 회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애플이란 기업을 오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디자인 자체에 대한 오해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플의 디자인 총책임자 조나단 아이브는 "디자인은 어디서 시작되는가?"라는 질문에 "소재에서!" 라고 대답한다. 소재에서! 디자인은 머리 속의 착상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타협불가능한 현실"(윌리엄 제임스의 말을 화이트헤드가 인용한 것)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소재는 우리의 사고 바깥에 존재하는 물리적 현실이고 그것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공학이 필요하다. 이번 아이폰5의 케이스는 주로 알루미늄이라고 하는데, 알루미늄이라는 소재를 제대로 다루기 위해 애플에서 수많은 연구를 하였을 것임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나는 지금 아이폰5의 알루미늄 케이스에 대단한 기술이 들어갔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런 걸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떤 문제가 주어졌을 때 애플이 어떤 수준에서 사고를 시작하는지를 보자는 것이다. 휴대폰 케이스 디자인이라는 문제가 주어졌을 때, 적어도 애플의 디자인 총책임자가 말한 바에 따르면, 애플은 소재 공학에서부터 문제에 접근한다는 것이다. 내 말의 요점이 이것이다. 

기존의 제품들이 따라올 수 없는, 최고의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모바일 기기를 만들고자 했을 때 스티브 잡스는 어디에서부터 사고를 시작했을까? 작고 빠르고 자원의 낭비가 없으며 상위 층에서 필요로 하는 기능을 유연하게 제공할 수 있는 잘 디자인된  운영체제와, 고성능에 저전력을 보장하는 모바일 프로세서. -이런 것이 공공연하지만, 쉽게 따라할 수 없는 것이기에 사람들이 외면하고 마는 아이폰 성공의 비밀일 것이다. 정말 공짜는 없다.

그러나 나는 애플을 기준으로 삼성을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애플과 같은 기업은 애플 하나 뿐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삼성은, 둔한 화면 조작감은 성능 좋은 프로세서와 램으로 보완하고, 질이 떨어지는 화면에 대한 불만은 대형 화면에 대한 시장 수요를 재빨리 수용하는 방식으로 우회하고, 외관과 사용자 인터페이스 디자인은 애플의 것을 빠르게 참조(혹은 복사)하고, 애플의 제품 출시 일정을 고려하여 적절한 타이밍에 자신의 제품을 출시하는 방식 등으로 애플과 정면 대결하는 것을 피하면서 경이적으로 잘 대처해 왔다. 

그런데 이제 삼성에게 문제는, 내 관점에서는 애플이 아니라 중국의 기업들이라는 것이다. 애플이 갖고 있는 원천 기술은 시장 2 등 그룹의 최강자 삼성조차도 쉽게 확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에 비해 삼성은 원천 기술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에 중국의 기업들에 빠르게 시장을 잠식당할 가능성이 크다. 애플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고 생각되는 반면, 빠르고 유연하게 시장의 흐름을 따라잡아 물량을 쏟아내는 데 있어 독보적인 삼성의 능력은 시간이 갈수록 중국의 기업들과의 사이에서 변별력을 잃을 것 같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 이것은 삼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삼성이라는 기업의 컨셉이 한국이라는 국가의 컨셉이기 때문이다.

리눅스라는 오픈 소스 운영체제가 있다. 이 운영체제에 접근하는 태도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이 운영체제를 서버 운영체제로 이용하는 것이다. 리눅스를 유닉스 수준으로 이용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 운영체제에 여러 응용 프로그램을 얹고 패키징하여, 주로 데스크탑 운영체제로 이용하는 것이다. 일종의 윈도 대안 운영체제로 이용하는 방법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이 운영체제의 핵심 부분(커널, 사실 이 커널의 이름이 리눅스다)에 직접 접근하는 것이다. 앞서의 두 방법이 커널을 추상화된 방식으로 이용하는 것이라 한다면 이 마지막 방법은 커널을 직접 그 자체로 이용하는 것이다. 직접 그 자체로 이용한다는 것은 결국 커널의 커스터마이징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커널을 서버 환경이나 모바일 환경 등에 맞게 가공하여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애플이 모바일 기기를 만들고자 결정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이 이것이다. 적당한 커널 제품을 찾아내고 그것을 요구에 맞게 가공하는 것. 각 접근 방법마다 고유한 기술이 있겠지만 우리가 원천 기술이라고 말하는 것은 커널 자체에 대한 직접 접근 방법을 의미한다. 

한국에서 리눅스에 접근하는 방법은 어떤 것일까? 한국이라는 나라의 컨셉대로라면 주로 첫 번째, 두 번째 방법일 것으로 짐작된다(물론, 비유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한국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제품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으므로 적어도 두 번째 방법으로 리눅스가 이용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그리고 이제 내가 생각하는 것은, 한국이 더 이상 첫 번째, 두 번째 수준에, 즉 제공된 추상을 이용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될 것이라는 것이다. 역으로 말하면 한국은 각 응용에 추상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국은 국가의 컨셉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디자인을 말할 때 예쁜 겉모양에 주목할 나이는 이제 지나갔다. 연필 선으로 매끄럽게 그려진 그림이 아니라 내 마음대로 움직여 지지 않는, 고집불통의 구체적인 소재에 직접 대면하여야 할 나이가 된 것이다. 저 독불장군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으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리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애플이 모바일 칲에 관한 최고 수준의 인재들을 끌어모으고 관련 회사들을 사들이고 하여 자신이 원하는 칲을 만들기까지 5년이 걸렸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자. 이런 작업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고, 그렇게 정직하게 투여된 시간만이 애플을 애플이게 할 것이라는 것이다.

한국에 이제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많으면 5년, 10년? 어제 안철수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것을 보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일단 어떤 경우든 박근혜가 대통령이 될 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통령은 문재인보다는 안철수가 되기를 바란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문재인이 안철수보다 대통령직을 더 잘 수행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 그러나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면, 단지 문재인 정부가 주도하는 정책이라는 이유에서 야당이 반대를 일삼게 될 가능성이 아주 많다. 나는 문재인 정부가 노무현 정부2가 될까 두렵다. 안철수는 그런 문제에서 민주당의 문재인보다 훨씬 자유롭다. 안철수는 이념적 프레임에서 훨씬 자유롭다. 안철수는 기업가이자 교육자였고, 무엇보다도 젊은이들의 멘토였기 때문에, 자신이 젊은이들에게 제공하고자 염원했던 그런 생산적인 환경을 만들어 내는 데, 다시 말하면 한국의 컨셉을 바꾸는데 최고의 적임자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안철수에게 이념적 박식함과 철저함을 요구하지 말자. 그것은 안철수 현상에 대한 심각한 오독이고, 스스로는 진보적이라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약간 나약한 수준의 꼴통에 불과한 기성 세대들의 고집일 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제 학교에서 읽어야 할 도서 목록을 받았고 조금 전에 아마존에서 읽어 두어야 할 책 주문을 했다. 딴데 신경쓰지 말고 내 일에만 충실하기.)

추) 다시 읽어보니 한국(혹은 삼성)의 컨셉을 안철수의 혁신성과 연결시킨 부분이 너무 뜬금없어 보인다. 역시나 글은 쓰고 나서 잠시라도 묵혀 두어야 한다...-.- 컨셉이라는 것은 일종의 전략이고 전략에는 가치판단이 배제되는데 이를 어찌 안철수와 연결시킬 것인가? 사실 연결 고리는 무수히 많다. 현재의 한국의 컨셉을 적당한 피상성에 속도를 가미한 것이라 한다면, 이를 대체할 컨셉은 느리지만 심도 있는 것이 될 것이다. 이런 컨셉은 사회 경제적 측면을 그대로 반영한다. 역으로 접근해 보자. 한국인이 영어를 잘 못하는 이유가 무얼까? 교사가, 가르치기 편하고 학생들을 평가하고 통제하기 쉬운 방식으로 영어를 가르치기 때문. 초등학교에서 일제고사를 치르는 이유는? 교사들을 통제하고 그렇게 하여 학생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한국 사회에 패자 부활전이 드문 이유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하여 사람들을 통제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 정부는 청년 실업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을까? 아니. 적당한 실업은 청년들을 경쟁에 몰아넣어 딴 생각을 못하게 한다. 최저 임금을 올릴 필요가 있을까? 아니. 이유는 이미 말했다... 등등. 이렇게 기득권층은 국민들끼리 치열하게 경쟁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부를 안전하고 깔끔하게 보호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가 채택하게 되는 전략은 필연적으로 피상성에 속도를 더한 컨셉이 될 것이다. 간단히 말해 한국에는 야근이 많게 되어 있다. 그리고 내 생각에는 이것이 현재 대한민국이 돌아가는 방식이고,  동시에 안철수가 개혁하고자 하는 대상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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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2-09-20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좋은 글에 추천이 없다니!! 너무 잘 읽었습니다.

weekly 2012-09-21 00:06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어이쿠, 말씀 감사합니다. 글이 너무 엉망이어서 막 수정하려 들어온 참이었습니다....-.-^^

Aucklander 2012-09-21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weekly님의 대선에 관한 견해 잘 읽었습니다^^ 요새 대선에 관한 인터넷 기사들이 많이 올라와 자주 훑어보고 있습니다.
문재인 후보가 안철수 후보보다 경험도 있고 정치신념도 있어 문후보가 되었으면 했는데 weekly님의 글을 읽고보니 안철수 후보가 되는 것이 현재 한국 정치적 흐름상 더 나을 수 있단 생각이 드네요.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야당과의 마찰은 피할 수 없을 것이고 따라서 효과적인 정책 이행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문후보이건 안후보이건간에 두 후보 단일화후 한 사람에게 표 몰아주기로 박근혜잡기를 감행해야겠지요. 현재로선 두 후보가 협력하여 박근혜측에 대항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인 것 같습니다.
본격적으로 학업 시작하셨군요. 화이팅입니다!

weekly 2012-09-21 20:16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Aucklander님, 안녕하셨어요?^^ 아직 수업은 시작되지 않았고요, 요즘은 리딩 리스트에 있는 책들, 논문들을 차분히 읽고 있답니다. 방금 전까지 플라톤의 테아이테투스를 읽고 있었는데 그제 아마존에 주문한 데카르트 전집 중 한 권(중고)이 벌써 왔네요.^^ 슬슬 긴장이 되네요...

예... 문재인, 안철수 모두 권력에 마음이 있어 대선에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단일화는 무리없이 잘 되겠지 하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다 안/문/박이 4:2:3인 구도에서 문재인이 안철수를 지지하며 후보 사퇴하는 방식으로 단일화되었으면 좋겠어요.

다들 공감하는 얘기겠지만 현재 한국에 가장 큰 위협은 출산률 저하이기 때문에 차기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해 낼 수 있다면 그 정권은 성공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치 사회 경제적 패러다임이 전환되어야 할 거구요. 이렇게 하는 데는 당연히 재원이 필요할 거구요. 그 재원은 더 많이 가진 사람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어 충당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결국 기득권층의 양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구요. 새나라당이 다수당인 상황에서 문재인은 노무현이 받았던 이상으로 기득권층의 비토를 받을 것 같구요. 이런 점에서 안철수는 기득권층이 좀 더 안심하고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을 만한 인물일 것 같습니다. 안철수 자신이 엘리트 중의 엘리트 출신이기 때문이니까요.

암튼 한국의 정치 쪽은 이제 궤도에 잘 오른 것 같으니 저도 그만 관심 끊고 공부나 열심히 해야 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하고 있답니다.^^ (그런데 잘 안되네요...-.-) 저는 부재자 투표나 열심히 하면 되겠죠!^^

건강하시구요. 올 한 해 뜻 했던 바를 잘 마무리하는 분기가 되시기를 기원할께요~